전쟁국가 미국, 광복 81년에 다시 본다 [뉴스] 내일은 광복 81주년이다. 그 하루 전에, 태평양 건너에서 조용히 마무리되고 있는 일 하나를 먼저 짚어야겠다. 미국이 자기 부처의 이름을 바꾸고 있다.
78년 만에 벗은 이름
2025년 9월, 트럼프 대통령은 국방부(Department of Defense)를 전쟁부(Department of War)로 부르도록 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튿날 국방부 누리집의 이름이 바뀌었고 주소도 war.gov로 넘어갔다. 부처의 법적 개명은 의회의 몫이지만 그 절차도 진행 중이다. 지난 6월 상·하원 군사위원회가 2027회계연도 국방수권법안에 개명 조항을 넣었고, 7월 22일에는 하원 본회의가 216 대 212로 이를 통과시켰다. 78년 만의 복귀다.
주목할 것은 전쟁부 가 미국의 발명품이 아니라는 점이다. 19세기까지 영국은 War Office, 프로이센은 전쟁성, 일본은 육군성이었다. 전쟁은 주권의 정당한 도구였고, 그래서 부처 이름에 전쟁 을 넣는 데 아무 거리낌이 없었다. 그 이름이 세계에서 사라진 것은 1928년 부전조약이 전쟁을 국가정책의 수단으로 삼는 것을 포기하게 하고, 1945년 유엔헌장 2조 4항이 무력의 위협과 행사 자체를 금지한 뒤였다. 각국이 전쟁부 를 국방부 로 바꾼 것은 그 규범 전환의 언어적 반영이었다. 미국의 국방부도 1947년 국가안보법의 산물이다.
그러니 이번 되돌림은 미국이 자기 과거로 돌아가는 정도의 일이 아니다. 부전조약 이전의 언어체계로 돌아가는 것이다. 유럽이 두 차례 대전을 겪고 스스로 폐기한 원형을, 유럽연합이라는 기획 전체가 그 폐기 위에 세워진 그 원형을, 미국이 되줍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이것은 정직해진 것이기도 하다. 미국의 정복은 유럽식 세력균형 전쟁의 형태가 아니라 개척과 문명화의 형태를 띠어 왔다. 명백한 운명 은 정복을 정복이라 부르지 않는 언어였다. 유럽은 그래도 전쟁을 전쟁이라 불렀지만, 미국은 그것을 방어 라, 해방 이라, 자유의 확산 이라 불렀다.
인디언 학살이 국가적 기억에서 끝내 청산되지 않은 것도 애초에 그것이 전쟁 으로 명명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이번 개명은 원형의 계승이라기보다 위장의 해제다. 1947년에 전쟁을 방위로 바꾼 것이 냉전기의 자기 정당화였다면, 2026년에 그 옷을 도로 벗은 것은 더 이상 정당화가 필요하다고 느끼지 않는다는 신호다.
2024년 12월 6일 시민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불법적인 비상계엄을 선포한 윤석열 대통령의 사퇴와 탄핵을 촉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그 이름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이름이 바뀌었을 뿐, 우리가 겪어온 실체는 늘 그 이름이었다.
160년 전 제너럴셔먼호와 신미양요가 한반도를 외교·군사적 실험장으로 취급했다. 20세기에는 가쓰라-태프트 밀약과 애치슨 라인이, 그리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가 한국인의 생명과 주권을 전략적 계산의 부차적 요소로 처리했다. 21세기에도 오산기지의 탄저균, 지난달 같은 기지에서 흘러내린 백린, 조지아주에서 쇠사슬에 묶인 기술동맹의 엔지니어들이 이어졌다. 형태는 시대마다 달랐지만 인식체계는 하나였다. 한국을 주체가 아니라 수단으로 보는 시선.
그 관성의 가장 이르고 가장 무거운 얼굴이 원폭이다. 두 도시에서 죽거나 병든 이들 가운데 조선인이 10만 명이었다. 그들은 전쟁의 당사자도, 항복 협상의 주체도 아니었다. 타자의 생명은 셈에 넣지 않아도 무방하다는 계산 — 이것이 원죄의 원형이고, 아직 청산되지 않았다.
청산의 길은 법리적으로 이미 열려 있다. 2007년 일본 최고재판소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전쟁 피해자 개인의 청구권을 실체법적으로 소멸시키지 않았다고 판결했다. 여기에 하나를 더 짚어야 한다. 1951년 그 조약이 체결될 때 대한민국은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이유로 서명국 명단에 없었다. 그렇다면 일본과 미국 사이에 오간 상호 청구권 포기가, 애초에 그 자리에 있지도 않았던 조선인 개인의 대미 청구권까지 지울 수는 없다. 원폭을 설계하고 투하를 결정하고 실행한 나라를 직접 상대할 길이 논리적으로 열려 있다는 뜻이다.
방어의 언어를 벗은 나라와 마주 서게 된 지금, 이 오래된 빚을 다시 꺼내는 것은 과거로 가는 일이 아니다. 상대가 자기 이름을 정직하게 되찾았다면, 우리도 정직하게 셈을 청구할 때가 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안에도 있다
여기서 방향을 돌려야 한다. 상대의 이름만 탓하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나라가 속국이 되는 것은 대개 군사적 정복이 아니라 정체(停滯)를 통해 온다. 구한말이 정확히 그 경로였다. 조선은 결코 작은 나라가 아니었다. 그런데 세도정치가 결정을 소수 가문에 가두면서, 시대의 압력에 반응하는 속도 자체를 잃었다. 군사적으로 정복당하기 훨씬 전에 이미 결정할 능력을 잃은 나라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런 공백은 반드시 밖에서 메워진다. 안에서 결정하지 못하면, 밖에서 결정한 것을 통보받게 되어 있다. 동맹국의 전투기가 통보 없이 우리 상공을 드나들고, 주둔지의 유해물질 사고가 10년 전과 판박이로 반복되어도 국가 차원의 신속하고 일관된 대응이 만들어지지 못하는 장면들이 그 증거다.
백린 사고 이후 한국 사회가 보인 것은 분노가 아니라 피로와 냉소였다. 분노는 아직 재협상의 언어이지만, 냉소와 경멸은 위임의 비가역적 철회다. 그런데 그 경멸은 상대만을 향한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는 우리 자신을 향한 것이기도 하다.
지난 10년, 한국은 어느 나라도 이루지 못한 것을 두 차례나 해냈다. 대통령을 두 번 무혈로 끌어내렸고, 연인원 1700만 명이 광장을 지켰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광장이 두 번이나 정권을 바꿔놓은 뒤에도 그 권력을 낳는 규칙 자체는 그대로다. 소선거구제는 건재하고, 거대 양당의 적대적 공생은 여전하며, 국민발안과 시민의회는 여의도 문턱을 넘지 못한다. 국민투표도 없다. 대리인은 위임받는 순간부터 구조를 바꿀 유인을 잃는다. 규칙을 쥔 자들에게 규칙 개정의 전권을 맡겨두는 한, 혁명은 늘 정권교체로 끝나고 구조교체로 이어지지 못한다.
광복 81년, 세 가지
그러므로 광복 81주년에 해야 할 일은 세 가지다.
첫째, 상대의 이름을 정확히 읽는 것. 미국은 방어의 언어를 벗었다. 그 나라와 맺은 동맹이 무엇을 뜻하는지, 주한미군의 성격과 전시작전권과 연합훈련의 방향을 그 바뀐 이름 위에서 다시 계산해야 한다. 이것은 반미가 아니라 산수다.
둘째, 81년 미뤄온 셈을 청구하는 것. 조선인 피폭자와 그 후손에 대한 사죄와 배상은 국제 여론과 미국 의회를 향한 입법 촉구, 배상기금 제안까지 여러 무대에서 계속 살아있는 의제가 되어야 한다. 아울러 미국 안에서 매파의 오판을 바로잡을 책임은 미국 시민 자신에게 있다. 1970년대 처치위원회가 CIA와 NSA의 치부를 미국 스스로 파헤치고 의회 감독체제를 세웠던 그 자기교정 능력이야말로 미국이 존경받던 이유의 실체였다. 결자해지(結者解之), 매듭을 묶은 자가 스스로 풀어야 한다. 스스로 바로잡지 않는 매듭은 남이 잘라낼 수밖에 없다.
셋째, 그리고 가장 근본적으로, 우리 자신의 결정능력을 재설계하는 것. 국민발안이 실체적 효력을 갖도록 하고, 국민투표 발의권을 대통령 한 사람의 재량에서 풀어내는 것, 되돌릴 수 없거나 세대를 넘는 결정은 국민이 직접 답하게 하는 것, 매번 국민투표에 부칠 수 없는 사안은 추첨으로 뽑힌 시민이 충분한 정보와 시간을 갖고 숙의하는 시민의회에 맡기는 것들이다.
권력의 위임에는 반드시 해지 조항이 있어야 한다. 국민이 멈추게 하고 되물을 수 없다면 그것은 위임이 아니라 양도다. 그 논의를 여는 자리가 선거개혁 시민대토론회이고, 개헌 논의가 다시 열린 지금이 그 좁고도 귀한 창이다.
이젠 주권자다운 길을 개척해야
미국은 78년 만에 자기 이름을 되찾았다. 감출 필요를 느끼지 않게 되었다는 뜻이니 반길 일은 아니지만, 적어도 우리는 이제 무엇과 마주하고 있는지 헷갈리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어떤가. 광복(光復), 빛을 되찾았다는 이름을 81년째 쓰고 있다. 그런데 되찾은 것은 주권이라는 형식이었을 뿐, 그 주권을 실제로 잘 쓰는 능력까지 함께 얻은 것은 아니었다. 이름은 되찾았으나 이름값은 아직 다 치르지 못한 것이다.
상대는 이름을 바꿔 자기 실체를 드러냈다. 우리는 이름을 그대로 둔 채 그 실체를 채워야 한다. 광복 81주년, 다시 원점에 서서 주인에게 물어야 하는 이유다.이원영 국토미래연구소장, 시민인권위 공동위원장 leewysu@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