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왜곡 이진숙 재조명 포럼 … 학문 조항 악용해 [행사]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제8조 제1항은 5·18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한 사람을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한다. 처벌 대상에는 신문과 방송, 전시물과 공연물, 그리고 공연히 진행한 토론회, 간담회, 기자회견, 집회, 가두연설 등에서의 발언”도 들어간다. 그런데 같은 조 제2항에는 예외가 있다.
제1항의 행위가 예술·학문, 연구·학설, 시사사건이나 역사의 진행과정에 관한 보도를 위한 것이거나 그 밖에 이와 유사한 목적을 위한 경우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
법이 학문을 위해 남겨둔 문이다.
8월 13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5·18 민주화운동의 재조명 국회 공개포럼’이 열렸다. 이진숙 국민의힘 의원과 새역사국민운동이 공동 주최했다. 이 의원은 5·18이 특정 진영의 소유물이 되어서는 안 되며, 불편한 질문이 나오더라도 학술적으로 접근할 길은 열려 있어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그 문으로 무엇이 들어왔을까.
국민의힘 이진숙 의원 주최로 13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린 5.18 민주화운동의 재조명 국회공개포럼 에서 참석자들이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2026.8.13 연합뉴스
그 안에서 나온 말들
이영훈 새역사국민운동 공동대표는 1980년 5월 광주에서 벌어진 일을 소요 사태”라고 불렀다. 한국을 지배하는 강력한 힘으로 ‘딥스테이트’를 거론하면서 그것이 형성되는 결정적 계기를 1980년 5월 광주에서 찾았다.
그는 5·18이 법적으로 민주화운동이라는 점을 인정했고 북한군 개입설에도 선을 그었다. 그렇다면 ‘소요 사태’와 ‘딥스테이트’라는 해석은 무엇에 기대고 있을까.
주동식 전 국민의힘 광주 서구갑 당협위원장은 호남과 주사파를 순망치한 관계”라고 규정했다. 이어 5·18 문제의 해결을 거론하면서 대외적으로는 고립”, 내부적으로는 분열”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좌파들은 첩의 자식들”이라는 표현도 나왔다.
객석에서는 고성과 항의가 터졌다. 참석자 사이에 물병이 날아가고 멱살잡이가 벌어졌으며 폭행 신고를 받은 경찰도 출동했다. 이진숙 의원은 이런 소란으로 행사가 중단되는 것이 특정 세력의 목표라는 취지로 말하며 포럼을 계속했다.
여기까지 듣고 나면 자연스럽게 묻게 된다. 우리는 어디까지를 학문이라고 불러야 할까.
학문의 자유와 ‘성역’
학문에는 불편한 질문을 던질 자유가 있어야 한다. 국가가 마음에 들지 않는 질문을 금지하기 시작하면 연구는 권력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일이 된다. 그렇다고 질문을 던지는 순간 대답까지 연구가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자료를 찾아야 한다. 사료의 출처와 맥락을 따져야 한다. 기존 연구와 대조해야 한다. 자기 주장에 불리한 증거에도 답해야 한다. 새로운 해석이라면 새 사료를 제시할 수도 있고, 이미 알려진 자료를 더 설득력 있게 읽을 수도 있으며, 기존 설명보다 나은 논증을 보여줄 수도 있다.
5·18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군 문서가 발견될 수 있다.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증언이 나올 수도 있다. 이미 알려진 자료에 새로운 질문을 던져 기존 해석을 수정할 수도 있다. 기존 조사와 판결의 사실인정을 바꿀 만한 근거가 있다면 검토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실제로 아직 규명할 영역도 남아 있다.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헬기 사격을 확인하고 북한군 개입 주장에는 근거가 없다고 규명하는 등의 성과를 냈지만, ‘군에 의한 발포 경위 및 책임 소재’를 비롯한 핵심 과제 일부에는 진상규명 불능 결정을 내렸다. 연구가 파고들 곳은 그런 빈틈이다. 그런데 이번 포럼에서 눈에 띈 것은 새로운 사료보다 새로운 이름이었다.
민주화운동은 ‘소요 사태’가 됐다. 국가폭력의 역사는 ‘딥스테이트’의 탄생 이야기와 연결됐다. 새로운 이름에는 그것을 떠받칠 근거가 필요하다. 새 사료가 될 수도 있고, 기존 자료를 새롭게 읽는 해석이나 더 설득력 있는 논증이 될 수도 있다.
5·18 문제를 두고 고립과 분열을 말하는 대목에서는 이야기가 1980년 광주를 떠난다.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밝히던 자리에 앞으로 특정 지역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라는 정치 전략이 들어선다.
이진숙 의원은 5·18이 특정 진영의 소유물이 되어서는 안 되며 불편한 질문도 학술적으로 다룰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날에도 더 이상의 토론은 필요 없다”는 태도가 5·18을 성역으로 강요하는 것이라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
‘성역’이라는 말에는 묘한 기능이 있다. 누군가 5·18을 성역이라고 부르는 순간, 아직 논쟁을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배역이 정해진다. 기존의 연구와 조사 결과를 지키자는 사람은 금기를 떠받드는 사람이 되고, 그것을 공격하는 사람은 금기에 맞서는 용감한 사람이 된다. 논증을 시작하기도 전에 배역이 배정되는 것이다.
그러나 정말 연구가 금지돼 있었을까. 이영훈 대표 자신은 포럼에서 5·18에 관한 역사적 담론이 특정 정치세력에 의해 장악됐다고 주장하며 이를 해체하고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연구 성과가 한쪽에 더 많이 축적돼 있다는 사실에서 곧바로 다른 쪽의 연구가 금지돼 있었다는 결론은 나오지 않는다. 그 사이를 채울 근거가 필요하다. 연구가 적었던 것과 연구를 못 하게 한 것은 다른 이야기지 않는가.
역사에 성역을 둘 이유는 없다. 새로운 자료가 나오면 다시 살피고, 틀린 사실이 드러나면 고치면 된다. 다만 연구의 문을 열어둔다는 말이 지금까지 확인된 사실을 그때마다 백지로 돌려놓자는 뜻까지 품지는 않는다.
이영훈 새역사국민운동 공동대표가 13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린 국민의힘 이진숙 의원 주최 5.18 민주화운동의 재조명 국회공개포럼 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2026.8.13 연합뉴스
‘성역’과 ‘자학사관’
이런 논법에는 비교해볼 만한 선례가 있다. 일본의 역사수정주의 논쟁이다.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와 전쟁 가해, 1980년 광주의 국가폭력은 역사적 맥락도 다르고 가해와 피해의 구조도 다르다. 여기서 비교하는 것은 사건의 크기나 성격보다 논쟁의 방식이다. 상당한 검증을 거친 가해의 역사를 다시 논쟁 가능한 상태로 돌려놓을 때 어떤 언어가 사용될까.
일본의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은 공식 자료에서 창립 계기 가운데 하나로 중학교 역사교과서의 ‘위안부’ 서술을 직접 거론한다. 자신들이 만든 교과서는 ‘자학사관’을 배제하고 일본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서술했다고 설명하며, 최근까지도 ‘자학사관’의 극복과 ‘긍지 있는 교과서’를 운동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자학사관’이라는 말에는 독특한 전환이 들어 있다.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 지배, 전쟁 중의 가해를 얼마나 정확하게 기술했느냐는 질문이 뒤로 밀린다. 그 사실을 가르치는 일이 일본을 어떻게 보이게 만드느냐는 질문이 앞으로 나온다. 역사적 사실을 따지는 자리에 국가적 자긍심이라는 다른 척도가 들어오는 순간 질문 자체가 변한다. 무슨 일이 있었는가에서 왜 우리를 나쁘게 말하는가로 옮겨가는 셈이다.
‘성역’과 ‘자학사관’은 뜻이 서로 다르다. 그러나 논쟁에서 하는 일에는 닮은 구석이 있다. ‘성역’이라는 표현은 기존의 사실인정을 옹호하는 사람을 금기를 지키는 사람으로 만든다. ‘자학사관’이라는 표현은 가해의 역사를 기록하고 가르치는 사람을 자기 나라를 깎아내리는 사람으로 만든다. 사실을 반박하기 전에 그 사실을 말하는 사람의 자격부터 문제 삼는 방식이다.
물론 역사 해석은 계속 바뀐다. 역사학은 그렇게 발전해왔다. 새로운 문서가 발견되면 기존 해석을 바꾸고, 잘못 알려진 숫자가 있으면 바로잡고, 통설을 뒤집을 증거가 나오면 통설도 버린다.
역사학은 원래 수정된다. 그래서 역사 연구에서 이루어지는 정상적인 수정과 부정적인 의미의 ‘역사수정주의’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사료와 더 나은 해석, 더 설득력 있는 논증으로 기존 설명을 고치는 것은 역사학의 일상적인 작업이다.
여기서 문제 삼는 역사수정주의는 축적된 증거를 무시하거나 선택적으로 다루면서 정치적 목적에 맞춰 가해의 사실을 축소하고 다시 불확실한 문제로 돌려놓는 움직임을 가리킨다.
스벤 잘러(Sven Saaler)는 현대 일본의 민족주의와 역사정치를 분석하면서 역사수정주의와 정치의 결합을 추적했다. 다케나카 아키코(竹中晶子)는 1995년 이후 일본의 아시아·태평양전쟁 기억에서 나타난 수정주의적 전환을 분석했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수정 자체보다 그 근거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보면 이 차이가 더 선명해진다. 1993년 고노 담화에서 일본 정부는 당시 일본군이 위안소의 설치와 관리, 위안부의 이송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고 밝혔다. 모집 과정에서는 많은 경우 여성들이 본인의 의사에 반해 회유와 강압 등을 통해 모집됐으며, 때로는 행정·군 관계자가 직접 모집에 관여했다고 설명했다. 피해 여성들에게 사죄와 반성도 표명했다. 이어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회피하지 않고 역사 연구와 교육을 통해 기억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 뒤에도 역사정치는 계속됐다. 교과서와 ‘위안부’, 전쟁 책임을 둘러싼 수정주의적 운동은 이어졌다. 야마구치 도모미(山口智美)는 일본과 미국에서 벌어진 ‘위안부’를 둘러싼 ‘역사전쟁’을 연구하며 현대 일본 우익의 역사수정주의가 국경을 넘어 전개되는 양상을 분석했다.
여기서 역사부정의 조금 더 세련된 형태를 볼 수 있다. 언제나 그런 일은 없었다”고 말할 필요는 없다. 이미 확인된 사실을 다시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문제’처럼 만들어놓는 방법도 있다. 이 글에서는 그것을 ‘재논쟁화’라고 부르겠다.
재논쟁화는 이미 논의된 문제를 다시 연구하는 행위 일반을 뜻하지 않는다. 기존 결론에 의문을 제기하는 행위 자체도 문제 삼지 않는다. 새로운 사료나 더 나은 해석과 논증을 제시하지 않은 채, 기존의 재판과 국가 조사, 사료와 선행연구 가운데 자기 주장에 불리한 근거에는 충분히 답하지 않으면서 이미 상당한 검증을 거친 사실의 확정성만 계속 낮추는 방식이다.
모든 사실을 지울 필요도 없다. 일부는 인정해도 된다. 대신 기존 통설이 편향돼 있다”,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그동안 질문하는 것조차 금지돼 있었다”고 반복한다. 그러다 보면 사실과 의견의 경계가 흐려진다. 어느 순간 재판과 조사와 연구를 거쳐 확인된 사실도 여러 견해 가운데 하나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물론 물음표 자체에는 죄가 없다. 학문은 물음표로 움직인다. 중요한 것은 그다음이다. 새로운 자료가 있는가. 기존 자료를 더 잘 설명하는 해석이 있는가. 지금까지의 설명보다 설득력 있는 논증이 있는가.
다시 5·18로 돌아가 보자. 새로운 군 문서가 발견돼 발포 경위에 관한 기존 설명을 바꿀 수도 있다.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자료가 기존 조사 결과의 일부를 뒤집을 수도 있다. 이미 알려진 자료를 새로운 관점에서 읽어 더 설득력 있는 해석을 제시할 수도 있다.
그런 작업 없이 민주화운동이 ‘소요 사태’로 불리고, 이미 축적된 연구를 두고 ‘성역 때문에 질문하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면 질문은 달라진다.
무엇을 새로 밝혔는가. 그리고 무엇을 다시 논쟁거리로 만들려 하는가.
한국 사회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전쟁 가해를 축소하거나 흐리는 역사수정주의를 오래 비판해왔다. 그렇다면 우리 자신의 국가폭력을 대할 때도 같은 판단 기준을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남의 역사수정주의를 바라볼 때 세운 기준과 우리 자신의 역사를 바라볼 때 적용하는 기준이 달라서는 곤란하다. 역사 인식을 둘러싼 논쟁은 책과 토론회 안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런 역사인식 논란을 거친 사람이 정당의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이 되고, 다시 국회의원의 이름으로 국가기관의 공간에서 행사를 열면 문제는 정치적 책임의 영역으로 넘어온다. 그래서 이번 포럼의 주최자를 다시 보게 된다.
만 기자 = 이영훈 새역사국민운동 공동대표가 13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린 국민의힘 이진숙 의원 주최 5.18 민주화운동의 재조명 국회공개포럼 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2026.8.13 연합뉴스
누가 그를 국회로 보냈는가
국민의힘은 이번 행사와 거리를 뒀다. 원내지도부는 개최 전에 이진숙 의원에게 취소를 요청했다. 행사 다음 날인 8월 14일에는 최은석 원내수석대변인이 포럼 강행을 상당히 부적절”하다고 평가하고 재발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당은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에 동의한 적이 있고 민주화운동 계승에 관한 입장도 확고하다고 설명했다. 이진숙 의원의 윤리위 회부 여부에는 아직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했다.
이 입장은 그대로 기록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질문도 더 정확해진다. 당이 포럼의 개최를 부적절하다고 판단한다면, 그보다 앞서 이진숙을 국회의원 후보로 선택했던 판단은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이진숙은 과거 5·18 민주화운동을 ‘광주사태’로 표현하거나 항쟁에 나선 시민들을 ‘폭도’로 매도하는 SNS 게시물에 공감을 나타내 논란을 빚었다. 2024년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는 좋아요 연좌제”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앞으로 ‘손가락 운동’에 조금 더 신경을 쓰겠다고 답했다.
2026년 2월에는 5·18 사적지인 전일빌딩245에서 예정됐던 그의 강연을 광주시가 직권 취소했다. 광주시는 과거 5·18 관련 언행과 행사의 정치적 성격을 들어 조례상 ‘공익을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그로부터 석 달가량 뒤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는 대구 달성군 국회의원 보궐선거 후보로 이진숙을 단수공천했다. 5월 4일 최고위원회는 공관위의 단수공천안을 최종 확정했다.
단수공천에는 당의 판단이 들어간다. 국민의힘이 이진숙의 5·18 역사관 때문에 공천했다고 볼 근거는 없다. 그런 인과관계를 주장할 필요도 없다.
더 단순한 질문이면 충분하다. 과거의 역사인식 논란을 안고 있던 후보를 당이 단수공천하고 최고위원회가 확정했다. 석 달여 뒤 그 의원이 연 포럼을 같은 당 지도부가 사전에 만류했고, 행사 다음날에는 공식적으로 ‘부적절’하다고 평가했다.
날짜만 놓고 보면 이렇다. 5월 1일, 이진숙의 단수공천이 이루어지고, 5월 4일, 국민의힘 최고위에서 공천이 확정되었다. 8월 13일, 그가 공동 주최한 국회 포럼에서 5·18을 ‘소요 사태’라고 부르는 발표와 5·18 문제를 고립과 분열로 다뤄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8월 14일, 국민의힘 지도부가 포럼 강행을 ‘부적절’하다고 공식 평가하고 재발 방지를 언급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제 5월의 공천 판단과 8월의 ‘부적절’ 판단 사이에서 무엇이 달라졌는지 당이 설명할 차례다. 행사는 의원 개인의 선택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공천은 당의 선택이었다. 둘을 함께 설명할 책임도 남는다.
예외가 원칙을 삼킬 때
5·18 특별법이 학문과 연구에 예외를 둔 것은 필요한 선택이었다. 국가가 역사 해석을 독점하는 사회보다 불편하고 엉뚱한 주장까지 연구의 장에서 검증할 수 있는 사회가 낫다.
그래서 제8조 제2항은 중요하다. 법은 행사 이름이 무엇인지 묻지 않는다. 제1항이 정한 허위사실 유포 행위에 해당하는지, 그리고 제2항의 예술·학문, 연구·학설 등의 목적을 위한 경우인지가 법률상 쟁점이다.
여기서는 두 가지 판단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 ‘재논쟁화’는 이 글에서 역사정치의 작동 방식을 설명하기 위해 붙인 이름이다. 특별법의 법률요건과는 별개다.
법원이 판단할 문제는 더 구체적이다. 어떤 발언이 제8조 제1항의 허위사실 유포에 해당하는지, 해당한다면 제2항의 예외가 적용되는지를 따져야 한다. 그 행사가 학문적으로 설득력 있는 연구였는지를 평가하는 일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좋은 연구와 합법적인 표현은 서로 다른 범주다. 엉터리 연구도 표현의 자유와 학문의 자유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정부가 연구의 질을 심사해 발언 허가증을 발급하는 사회도 바라기 어렵다.
그래서 이번 포럼을 비판하는 가장 강한 방법은 질문 자체를 막는 데 있지 않다. 질문하게 두면 된다. 실제 발언이 특별법 위반에 해당하는지, 제8조 제2항의 예외가 적용되는지는 구체적인 법적 절차에서 가려질 문제다.
국회도 자기 공간을 어떤 기준으로 빌려줄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토론의 역사관과 정치적 내용을 사전에 심사해 허가 여부를 정하자는 뜻은 아니다. 그런 장치는 얼마든지 정치적 검열로 변할 수 있다.
누가 대관을 신청할 수 있는지, 국회나 국가기관의 공식 입장으로 오인될 가능성을 어떻게 막을지, 안전과 시설 이용 목적을 어떤 절차로 판단할지 같은 기준을 명확히 하는 쪽이 낫다.
광장에서 하는 말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하는 말은 같은 말일까. 장소가 발언을 진실로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국가기관의 공간은 행사에 일정한 공적 권위를 빌려준다. 그 권위를 누구에게 어떤 절차로 빌려줄 것인가는 국회가 답할 문제다.
5·18 당시 계엄군이 헬기 사격을 한 광주시 동구 금남로 전일빌딩. 사진 속 원안을 중심으로 공중 정지 상태의 헬기에서 사격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5·18기념재단
학문의 이름을 지키기 위해
5·18을 더 연구하자는 주장에는 반대할 이유가 없다. 연구하면 된다. 새로운 사료를 찾을 수도 있다. 이미 알려진 자료에 다른 질문을 던질 수도 있다. 기존 조사와 연구보다 더 설득력 있는 설명을 내놓을 수도 있다. 아직 규명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 거기서부터 시작하면 된다.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발포 책임자 등 일부 핵심 과제를 규명하지 못한 만큼 후속 연구의 여지도 실제로 남아 있다. 역사학은 그렇게 움직인다. 일본의 역사도 한국의 역사도 예외일 이유가 없다.
문제는 그런 작업 대신 새로운 이름만 나올 때다. 민주화운동에는 ‘소요 사태’라는 이름이 붙었다. 국가폭력의 역사에는 ‘딥스테이트’라는 설명이 붙었다. 5·18 문제를 고립과 분열로 다루자는 정치적 주장도 같은 무대에 올라왔다.
그리고 그 무대에서는 학문의 자유가 거론됐다. 법이 어디까지 허용하는지는 법원이 판단할 일이다. 하지만 학문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순간에는 다른 책임이 따라온다. 자료를 내놓고, 기존 연구와 씨름하고, 자기 주장에 불리한 근거에도 답하며 자신의 해석을 검증에 내놓겠다는 책임이다.
책임 없이도 말할 자유는 있다. 하지만 그런 말을 굳이 학문이라고 불러줄 의무까지 생기지는 않는다. 법은 학문을 위해 작은 문 하나를 열어두었다. 그 문을 닫아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문 위에 ‘학문’이라고 써 있다는 이유만으로 안쪽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이 연구가 되는 것도 아닌 것이다.
학문이라는 이름에는 검증하겠다는 약속이 따라붙어야 한다. 그 약속이 빠지는 순간, 학문은 자유를 지키는 이름에서 누군가의 알리바이로 변한다.정승호 시민기자 jeong.seungho@hoasen.edu.v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