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파란 카보 베르데 어떤 나라?…축구 왜 잘 할까 [뉴스] 카보 베르데를 응원하는 팬들이 지난달 27일(현지시간)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한 경기장에서 열린 사우디아라비아와의 2026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조별리그 H조 3차전을 0-0으로 비겨 조 2위로 32강 진출을 확정하자 국기를 펄럭이며 환호하고 있다. 카보 베르데 대표팀 선수 가운데 6명이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선수들이다. 2026.6.27 EPA 연합뉴스
아프리카 세네갈에서 서쪽으로 500㎞ 떨어진 섬나라 카보 베르데(포르투갈어 표기 Cabo Verde, 영어 표기 Cape Verde)가 4일 아침 7시(한국시간) 미국 마이애미 스타디움에서 리오넬 메시가 이끄는 아르헨티나와 2026 북중미월드컵 32강전을 치른다. 인구 52만 밖에 안 되는 듣도 보도 못한 나라가 처음으로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것도 감격일텐데 조별리그를 통과, 디펜딩 챔피언이자 국제축구연맹(FIFA) 1위 아르헨티나와 16강 진출을 다툰다.
KBS와 JTBC 중계진이 이따금 짤막하게 이 나라를 소개하던데 부족한 것이 적지 않았다. 30일 유튜브 채널 최욱의 매불쇼 화요일 코너 거침없는 세계사 에 출연한 선 킴이 이 나라의 슬픈 역사를 돌아봐 눈길을 끌기도 했다.
잠시 축구 얘기를 뒤로 미루고 이 나라의 슬픈 사연에 귀기울여 보자. 카보 는 곶 , 베르데 는 녹색 이란 뜻이다. 따라서 녹색 곶 이란 뜻이다. 15개의 섬으로 이뤄져 있는데 제주도 면적의 곱절 밖에 안 된다. 포르투갈이 식민지로 삼기 전에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였다. 식수 문제 때문이었다.
웬만한 세계지도에도 빠지기 쉬운 나라다. 대서양 한가운데 북아메리카와 북아프리카 사이 딱 중간에 위치해 있고, 아주 작은 섬들이기 때문에 빼버리기가 쉽다.
1444년 포르투갈 항해사가 베르데 곶 일대를 발견했다. 1456년 제노바와 포르투갈 항해자가 섬에 처음 상륙했다. 1462년 포르투갈 사람이 산티아구섬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포르투갈인들이 카보 베르데 섬을 처음 발견했을 때의 모습을 그린 상상화
골드 코스트는 가나의 노예 수출항 이름이다. 이 당시만 해도 세네갈과 감비아가 세네감비아 한 나라였다.
이 무렵 포르투갈이 식민지로 삼아 500년 넘게 다스렸다. 후추가 중요 동력이었다. 유럽에서 후추는 부의 상징이었다. 육류를 먹는 이들에게 후추는 중독성 있는 향신료였다. 포르투갈에서는 인도산 후추를 먹기가 쉽지 않았다. 대항해 시대는 결국 후추 찾아 삼만리 였다. 바스코 다가마가 서양인 최초로 희망봉 찍고 인도까지 갔다가 조국에 돌아왔다. 이 때 카보 베르데가 중간 기착지 중 하나였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 하는 데도 카보 베르데는 역할을 했다. 포르투갈인들이 카보 베르데를 먼저 발견하자 다급해진 콜럼버스가 서인도 제도를 향해 그곳에 도착한 뒤 인도에 도착했다고 서둘러 공표하게 만들었다.
이 무렵 포르투갈인들이 아무도 살지 않는 이 섬을 식민지로 삼은 뒤 노예무역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아프리카 추장들에게 총 등을 선물하고 청년들을 사왔다. 노예들을 카보 베르데에서 잘 먹고 지내게 한 다음, 쿠바 등 서인도 제도, 브라질 등 아메리카대륙 곳곳에 팔았다. 당시 노예선 갑판 아래 선실에 층층이 빼곡히 채워 운송했다.
이 섬들은 16세기부터 대서양 노예 무역의 중심 기착지였다. 포르투갈 정착민들과 서아프리카에서 끌려온 흑인 노예들이 오랜 세월 섞이면서 혼혈인 크레올(Creole) 이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게 됐다. 당연히 포르투갈어를 쓰고 가톨릭을 믿는다.
놀랍게도 이들 노예들 중에는 우리 임진왜란과도 인연을 맺은 이들도 있었다. 포르투갈은 마카오로 흑인 노예를 데려와서 명나라에 팔았다. 명나라는 이 노예들을 조선에 파견해 용병으로 쓴다. 선조가 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으니 명이 파랑국(포르투갈)과 무역을 해 파견했습니다 라고 답했다. 이에 선조는 잘하는 것이 무엇이냐 고 물었고, 신하는 잠수를 잘한다고 합니다 고 답했다. 이렇게 해서 카보 베르데 출신 용병들은 잠수를 해 왜국 함선에 구멍 내는 공을 세웠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따로 진위 여부를 확인하지는 못했다.
아무튼 자꾸만 식민지를 잃던 포르투갈은 급기야 가장 컸던 브라질까지 빼앗긴다. 포르투갈 독재자 살라자르의 통치가 헐거워진 틈을 타 1975년 7월 5일 독립했다.
월드 뮤직에 밝은 이들은 세계적인 디바 세자리아 에보라가 바로 이 나라 출신이란 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 특유의 애수 어리고 정감 넘치는 목소리로 많은 팬들을 거느리고 있는 그녀는 한의 음악 모르나(morna)를 세계 음악 팬들에게 들려줬다.
포르투갈 감독 페드로 코스타의 영화 대부분이 이 나라를 소재로 삼고 있다. 그의 작품 중 하나인 용암의 집 을 보면 살라자르 정권 아래 많은 포르투갈인들이 카보 베르데로 돌아왔다는 걸 알 수 있다.
아프리카 국가치고는 민주주의 지수가 높은 나라다. 경제 상황도 주변 나라들보다 매우 안정적이며 주요 산업은 관광업, 어업, 항만산업이다. 치안도 좋은 편이며 에볼라와 같은 치명적인 감염병도 걱정할 것이 없다. 유럽인들에게는 휴양지로도 각광 받는다. 최근에는 포르투갈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포르투갈 사람들이 많이 들어와 경제성장률이 올라갈 것이란 전망이 많다.
이쯤에서 축구 얘기로 돌아가자. 이 나라 사람들은 인구도 적은데 어떻게 이렇게 축구를 잘하게 됐을까? 축구 유전자 때문일지 모르겠다. 포르투갈의 살아 있는 레전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증조 할머니 이사벨 다비에다드가 이 섬 원주민이었고, 박지성의 절친 나니의 부모가 카보 베르데 출신이었다. 스웨덴의 레전드 헨리크 라르손의 아버지도 이곳 출신이며, 프랑스 레전드 파트리크 비에이라도 이쪽 혈통이다.
이 나라의 FIFA 랭킹은 2000년 182위에서 올해 67위까지 뛰어올랐다. 그 배경에 디아스포라 전략 이 있다. 카보 베르데 출신 이민자들이 포르투갈·네덜란드·프랑스 등 유럽 각국에 정착해 낳은 2세들이 유럽 리그에서 성장한 뒤 카보 베르데 국적을 선택해 대표팀에 합류하는 것이다. 베베(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브루노 바렐라, 자미로 몬테이로가 대표적이다. 현재 선수단 절반 이상이 포르투갈 리그 출신이며, 6명이 네덜란드 태생이다. 유럽 무대 경험을 갖춘 실용적 스쿼드가 67위라는 랭킹의 실체다.
호세 마리아 네베스 카보 베르데 대통령은 이미 흑상어 란 별명의 자국 대표팀이 세계를 놀라게 했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게티 이미지
조제 마리아 네베스 대통령은 이번 대회에 신예 팀들이 계속해 운명을 쓰고 있다 며 아르헨티나를 1-0으로 누를 것이라고 영국 BBC 인터뷰를 통해 장담했다. 그는 우리는 이기기 위해 경기를 하고 있다. 팀에 대한 기대치가 낮지만, 그 팀이 승리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가능하다. 카보 베르데와 같은 작은 나라는 항상 그런 노력을 해야 한다. 사람들을 영원히 놀라게 해야 한다 고 힘주어 말했다.
카보 베르데는 처음 월드컵 본선에 진출해 아이슬란드에 이어 두 번째로 적은 인구로 본선 토너먼트에 진출하는 기록을 썼다. 이들은 마흔 살의 골키퍼 보지냐(Vozinha Josimar Jose Evora Dias)가 영웅으로 떠올랐던 스페인과의 조별리그 첫 경기를 0-0으로 비기는 믿기 힘든 승부를 연출했고, 두 차례 월드컵을 우승했던 우루과이와도 2-2로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도 0-0으로 비겼는데 스페인이 우루과이를 꺾는 바람에 H조 2위로 마감, 32강에 오르는 기쁨을 만끽했다.
아르헨티나와는 FIFA 세계랭킹에서 무려 66계단 차이다. 카보 베르데는 아프리카 국가 가운데 13위에 그쳤다.
그런데도 네베스 대통령은 아르헨티나와 메시를 (조별리그에서와) 같은 결의와 의지, 그리고 승리하고 다음 단계에 진출하려는 열망으로 맞설 것 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우리에게 불가능한 것은 없다 고 말한 카보 베르데 감독 페드로 레이탕 브리토(별명 부비스타 )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부비스타는 처음부터 우리는 우리 나라를 전 세계에 알리는 것이 우리의 목적 중 하나라고 말해왔다 며 이런 시기에 아르헨티나, 메시와 맞붙을 수 있다는 것은 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우리나라에 매우 좋은 일 이라고 말했다. 미드필더 데로이 두아르테는 꿈 속에 있는 것 같다 며 아르헨티나와의 대결이 힘들 것이라고 인정하면서도 무엇이든 가능하다. 믿어보자 고 말했다. 만약 아르헨티나를 꺾으면 이틀 뒤 독립기념일이 장난 아니게 될 것이다.
지면 어떻게 될까? 네베스 대통령은 결과가 어떻든, 우리는 고개를 높이 들고 임무를 완수한 채 월드컵을 떠날 것 이라고 당당히 밝혔다. 노예제의 슬픔과 식민의 역사를 털고 스페인과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등 세계 최강 축구 팀들을 상대로 당당히 맞선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각국 팬들의 뇌리에 각인될 것 같다.
산티아구섬에 있는 수도 프라이아 시티 모습.
임병선 에디터 byeongseon1610@mindl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