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을 위한 나라는 없다 [사회혁신]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동정의 시선이 아니라 미래를 함께 설계할 든든한 파트너로서의 정치다.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를 거치며 2030 세대의 표심은 이전과 확연히 다른 보수적 성향을 드러냈다. 전통적으로 진보 진영의 든든한 우군으로 여겨졌던 청년층의 이탈은 정치권에 큰 충격을 주었고, 이들의 표심을 되찾기 위한 대책 마련이 진보 진영의 핵심 화두로 떠올랐다. 그러나 거시적인 안목과 근본적인 성찰 없이 표심을 의식해 서둘러 내놓은 대책들은 오히려 졸속 행정의 오명을 쓰며 역효과를 낳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더불어민주당 황희 의원이 제안한 이른바 ‘버스 하우스’다. 폐차되는 버스를 개조해 청년들의 임시 주거 공간으로 활용하겠다는 이 발상은 주거 안정을 바라는 청년들의 눈높이를 참담할 정도로 간과한 비현실적 발상이다. 주거 문제는 단순히 비를 피할 공간의 유무를 넘어, 삶의 질과 자립의 기반을 다지는 중대한 사안이다. 최소한의 인간적 존엄과 미래를 그릴 수 있는 주거 환경 대신 낡은 버스를 대안으로 내민 것은 청년들의 절박함을 가벼운 이벤트로 이용하려 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만 35세 미만 청년의 자발적 퇴사에도 구직급여를 지급하겠다는 방안 역시 논란의 도마 위에 올랐다. 청년 실업과 고용 불안을 해소하겠다는 취지이지만, 노동 시장의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기보다 포퓰리즘적 처방에 매몰된 결과다. 기업의 체질 개선이나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라는 본질을 외면한 채, 퇴사 후 지원금 수급 조건만을 완화하는 방식은 도덕적 해이를 부르고 장기적인 고용 생태계를 훼손할 우려마저 있다.
선거 승리와 표심만을 의식해 급조된 정책들은 이처럼 명확한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지금 청년들이 정치권에 바라는 것은 눈앞의 환심을 사기 위한 일회성 짜맞추기식 지원이 아니다. 그들이 진정으로 갈구하는 것은 노력한 만큼 공정하게 보상받고,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도약의 기회 와 삶의 불확실성을 견뎌내게 하는 사회적 안정 이다.
청년 세대의 마음을 얻으려면 파편화된 복지나 전시성 아이디어를 남발할 것이 아니라, 양질의 일자리, 주거 사다리의 복원, 그리고 공정한 경쟁이라는 근본적인 토양을 다져야 한다.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동정의 시선이 아니라 미래를 함께 설계할 든든한 파트너로서의 정치다. 지금이라도 조급한 표심 잡기에서 벗어나 청년의 삶을 거시적이고 진정성 있게 담아낼 수 있는 구조적 대개혁으로 눈을 돌려야 할 때다.홍순구 시민기자 dranx@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