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록밴드 시대유감 커버에 국민의힘 왜 생트집?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지난 1일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에서 영국 록밴드 매시브 어택(Massive Attack)이 전광판을 배경으로 서태지와 아이들의 시대유감 을 커버해 공연하고 있다. 공연 동영상 갈무리
지난 1일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에서 영국 록밴드 매시브 어택(Massive Attack)이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영상과 자막이 나오는 전광판을 배경으로 서태지와 아이들의 시대유감 을 커버해 공연하고 있다. 공연 동영상 갈무리
영국 브리스틀 출신 트립합 밴드 매시브 어택(Massive Attack)의 지난 1일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무대 연출을 둘러싸고 뜻하지 않게 정치권 공방이 뜨거웠다. 홍성규 진보당 대변인은 지난 6일 국회 공식 브리핑을 통해 내란본당 국민의힘의 그 못된 입틀막, 블랙리스트 DNA가 이제 지구 반대편 영국의 락밴드까지 향하고 있다 며 참담하고 부끄러운 국제적 망신살이 아닐 수 없다 고 밝혔다.
이어 이범석 의원은 심지어 한국인이 아니면 만들기 어려운, 외국인밴드가 자발적으로 다루기에는 고도로 기획된 정치적인 메시지 라며 음모론까지 제기했다 며 매시브 어택에 대한, 락 스피릿 에 대한 참담한 모독이다. (이들은) 한국의 민주화운동 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공도 거론했는데, 이 배후는 또 어떻게 갖다붙일 심산인가? 라고 따져 물었다. 시대유감 가사 가운데 모두를 뒤집어 새로운 세상이 오길 바라네 를 인용하며 시대유감 은 끝내 사전검열 을 폐지시켰듯 국민의힘의 지구촌 사전검열 협박 은 끝내 국민의힘을 해체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범석 국민의힘 인천시의원이 오는 11월 행정사무감사에서 사실관계를 확인하겠다고 밝힌 것을 문제삼은 것이었다. 이 시의원은 지난 3일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축제를 주관한 인천관광공사를 겨냥해 정치색이 드러난 행사에 지자체와 정부 예산이 지원되는 것이 맞느냐 면서 행정감사를 통해 바로잡겠다고 주장했다. 같은 정당 소속 이재호 인천 연수구청장은 유감을 표명했다.
매시브 어택은 1988년 결성된 뒤 지금까지 넉 장의 앨범만 발표하고 항상 음반 제작보다 공연 활동에 열심이었던 밴드다. 힙합, 덥, 레게, 소울, 록등 다양한 음악 스타일을 섞어 자신들만의 새로운 음악을 창조했다는 평가를 듣는다.
40년 가까이 무대에 설 때마다 인권과 평화, 반전, 기후 대응 등 진보적 이슈를 외쳐 온 매시브 어택은 지난 1일 펜타포트 록페스티벌 무대에 올랐는데 이때 대형 전광판에 광주민주화운동 영상이 상영되며 서태지와 아이들이 1995년 발표한 노래 시대유감 을 커버해 눈길을 끌었다. 전광판 자막으로 케이팝은 독재와 부패에 맞선 저항의 시기에 태동했다 가 떠오른 것을 시작으로 광주의 당시 모습과 학생들과 노동자들의 가두투쟁 영상, 노동조합 집회 영상이 흘러나왔고 밴드 멤버들이 시대유감 의 후렴구 검게 물든 입술 을 부르자 관객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정직한 사람들의 시대는 갔어 가사로 화답하는 모습이 연출됐다.
지난달 31일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개막 때 더 볼런티어스 공연을 많은 이들이 함께 즐기고 있다. 올해 축제는 지난 2일까지 사흘 동안 이어져 국내외 66개 팀이 무대에서 공연했다. 2026.7.31 연합뉴스
다양한 반응이 나왔다. SNS에 댓글로 정치적 선동 이라며 불편한 심경을 내비치는 이들도 있었지만 속시원하고 감동적이었다 고 반기는 이들도 있었다. 또 시대유감 이란 노래 자체가 기성세대의 무책임한 행태를 비판하는 것이지, 5·18이나 노동 현장의 현실과는 무관하다고 지적하는 이도 있었다.
중앙일보는 모자이크 처리된 신군부의 민간인 학살 화면 위에 1980년 미국 광주에서 한국 정부가 자행한 민간인 학살을 지원했다 는 자막이 나온 점을 문제 삼았다. 당시 미국 정부가 신군부의 광주 학살을 묵인 내지 방조한 것은 맞지만, 지원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역사학계 중론과 동떨어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앙일보는 음악 저작권 관련 기업 메이저세븐이엔엠의 김지욱 대표 발언을 인용했다. 그는 한국 입장에서는 비극이고 상처인 역사인데, 왜 그것을 자기들 마음대로 해석하고 그것을 외국에서도 그렇게 영상으로 보여주는지 모르겠다”며 한국의 역사를 외부자의 시선으로 재배열한 ‘맥락의 재식민화’”라고 비판했다. 현장에서 직접 공연을 본 한 음악팬이 록 페스티벌에 진보적인 의제, 사회적인 의제가 나오는 것은 록 페스티벌 역사를 봐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면서도 매시브 어택은 외국 그룹 특성상 디테일까지는 챙기지 못한 것으로 나는 이해했다”고 말했다고 인용했다.
매시브 어택은 지난 5월 27일 핀란드 헬싱키 공연 때부터 이 동영상과 자막을 써왔으며 6월 26일 일본 후지 록 페스티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인천 공연만을 위해 만든 것이 아니라 세계 투어 프로그램의 일환이란 뜻이다.
매시브 어택의 두 맴버가 지난달 29일 싱가포르 공연 도중 팔레스타인 국기를 펼쳐 들고 있다. 이들은 관객들과 함께 팔레스타인 해방 을 외쳤다. 2026.7.29 로이터 연합뉴스
이 밴드는 인천에 오기 전인 지난달 29일 싱가포르 공연 때도 팔레스타인을 지지한다는 뜻을 밝혔다가 경찰에 의해 구금돼 조사를 받았다. 밴드의 리더 로버트 델 나자와 그랜트 마샬 두 멤버가 팔레스타인 국기를 들고 관객들과 함께 팔레스타인 해방 을 외친 것이 문제가 됐다. 이들은 묵고 있던 호텔 객실을 수색당했고 일시적으로 여권을 압수당했다. 멤버들은 다음날 인스타그램에 놀라움과 실망 을 표명했다.
법률 집행이 엄격하기로 이름난 도시국가 싱가포르는 공개 석상에서의 발언과 집회를 엄격히 규제한다. 외국 국기를 공개 전시하는 행위를 제한하고 공공 행사에서 정치적 표현을 규제하는 두 가지 법률이 있다. 경찰 대변인은 지난달 31일 델 나지와 마샬의 싱가포르 재입국이 금지되며 공연도 금지된다고 영국 BBC에 밝혔다.
매시브 어택은 공연 전과 마지막에 공연 장소의 상당 부분이 자연스럽게 팔레스타인 해방 이라는 구호를 외쳤으며, 이 자발적인 표현만으로도 정부의 검열법을 위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지만 굴하지 않았을 것 이라고 전했다.
밴드는 금지 조치에 대해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이 상황을 초현실적인 경험 이라고 묘사하며 157개국이 인정하는 주권 국가의 깃발을 단순히 게양하는 것이 어떤 법도 위반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고 말했다. 그들은 싱가포르 팬들과 즉흥적으로 연대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팬들은 팔레스타인 국민과 연대하는 도덕적 책무를 분명히 느꼈다 고 덧붙였다.
14만 6000명의 사용자가 좋아요!를 누른 밴드의 인스타그램 게시물은 팬들의 응원 메시지로 가득 찼다고 방송은 전했다. 한 인스타그램 사용자는 싱가포르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자라면서 무슨 말을 하는지, 얼마나 크게 말하는지, 언제 침묵하는 것이 더 안전한지 조심하는 법을 배웠다 며 팔레스타인과 함께해 주셔서 감사하다. 그리고 진실성이 여전히 중심 무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줘 감사하다 고 적었다.
콘서트에 참석한 싱가포르 콘텐츠 크리에이터 크리스탈 림-랑은 인스타그램 게시물에 복잡한 문제 라고 적은 뒤 예술가들은 자신이 공연하는 국가의 법을 존중해야 한다 고 믿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 역시 예술이 항상 아이디어에 도전하고, 사회를 반영하며, 어려운 대화를 촉발해왔다고 믿는다. 예술과 정치를 분리하려는 시도는 결코 간단하지 않다 고 덧붙였다.
서태지가 2024년 발표한 시대유감 뮤직비디오
그런데 영국에서 건너온 트립합 밴드가 왜 시대유감 을 골랐을까? 음모론에 쉽사리 이끌리는 국민의힘 정치인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고민의 결과다. 칼럼니스트 김원상 씨가 지난 5일 콘텐츠 퍼블리싱 플랫폼 브런치에 올린 글의 일부다.
은 삼풍백화점 붕괴로 드러난 사회의 무책임을 바라보며 쓰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 곡이다. 기성 권력의 위선, 정직한 사람이 살아남기 어려운 시대를 공격적인 얼터너티브 록에 담았다.
1995년 한국공연윤리위원회가 사회 비판적인 가사를 고치라고 요구하자 서태지는 거부했다. 가사를 고치는 대신 아예 노랫말을 전부 빼고 연주곡만 4집에 실었다. 팬들의 항의는 정태춘을 비롯한 음악인들이 오래 벌여온 사전심의 철폐 운동에 대중적 증폭제가 됐고, 법 개정과 1996년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을 거치며 음반 사전심의는 사라졌다. 가사를 복원한 은 1996년 싱글로 다시 나왔다.
그러니 매시브 어택의 은 낯선 한국 노래를 빌린 팬서비스라기보다 한때 제도에 목소리를 빼앗겼던 노래를 현재로 다시 불러내는 행위에 가깝다.
밴드 스스로도 2026년, 기업에 의한 문화의 흡수와 정치적 표현을 이유로 한 예술가 검열이 다시 커지는 상황에서 이 곡의 역사가 중요한 교훈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 커버를 서태지를 향한 연속성, 부활, 연대의 행위라고 불렀다. 공개된 제작 크레딧으로 보면 서태지나 서태지컴퍼니와의 공동 협업한 것이라기보다 매시브 어택이 독자적으로 구성한 라이브 커버다.(중략)
자체가 5·18을 다룬 곡은 아니다. 매시브 어택은 이 노래를 광주와 노동자·학생들의 대정부 시위 영상에 연결해 한국 민주화 역사의 더 긴 흐름 안에 배치했다. 검열과 권위주의에 맞선 저항의 연속성으로 볼 수도 있고, 서로 다른 시대와 사건을 너무 넓게 묶은 몽타주라고 비판할 수도 있는 연결이다.(중략)
(모자이크가 안 돼 있던 후지 록 페스티벌과 모자이크가 돼 있던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을 연이어 관람한) 내게 그 차이는 검열이라기보다 국민적 트라우마를 한국 관객에게 다시 꺼내 보이는 방식에 대한 배려로 읽혔다. 메시지는 유지하되 지역의 기억과 감각에 맞춰 표현의 강도를 조정한 것, 적어도 한국 관객을 자극해서 정치적 효과를 극대화하려 했다는 해석과는 잘 맞지 않는 장면이었다.
김원상의 글은 ▲ 지원했다 라는 동사, ▲문장에 대한 비판이 배후설로 이동할 때, ▲공공지원은 사상 일치의 계약이 아니다, ▲내 상식에 가해진 대규모 습격 등의 제목으로 이어진다.
시대유감 대목만 따로 떼놓고 감상하면 매시브 어택의 투어 공연의 의미를 총체적으로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있겠다 싶어 95분 분량 전체를 물린다.
임병선 에디터 byeongseon1610@mindl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