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피로증 지어낸 조선일보가 주는 피로증 [뉴스] 배재고 야구부의 5·18 민주화운동 비하 사태가 일단락되고 있는 듯하다. 20일 전국대회 6개월 출전정지 처분을 재심의해 징계수위를 출전정지 1개월로 낮추기로 결정한 것이 표면상 이 사태의 종결 수순으로 보인다. 배재고 야구부와 학부모, 교직원이 광주일고를 찾아 사과하고 5·18 묘역에 참배했으며, 광주일고는 협회에 선처 요청 을 했고 배재고 학생들은 역사 교육을 받았다.
그렇다면 이것으로 충분한 것인가. 그러나 지속적 혐오의 토양을 바꾸는 것은 결코 몇 가지의 일회적인 조치들로써 간단히 이뤄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태 개선의 핵심은 이것이 단지 경기장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일시적인 감정적 충동에서 빚어진 것이 아니라, 경기장 밖에서, 교실과 일상에서 체계적으로 육성되고 축적된 것이라는 인식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에 있다.
이에 대한 필요 처방 중 하나가 바로 ‘시민교육’일 것이다. 국가교육위원회가 사회적으로 의견이 나뉘는 사안을 학교에서 적극 다루도록 하는 ‘학교시민교육 원칙’을 제시한 것도 그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의 공적 이슈를 교육 주제로 포용하겠다는 취지다. 국교위가 23일 부산 공개토론회를 시작으로 의견 수렴에 나선 만큼, 지속적이며 진지한 태도가 요구된다.
조선일보의 22일 사설 배재고, 탱크데이 이슈 교육, 정치 편향 배제 자신할 수 있나 .
그렇다면 조선일보의 22일자 사설 와 같은 문제제기는 진지한 태도인가. 이 사설은 교사가 균형 잡힌 시각으로 수업을 하지 않을 경우 오히려 부작용이 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면서 대통령이 스타벅스 사태에 대해 저질 장사치의 비인간적 막장 행태”라고 성급하게 성격 규정을 하는 풍토 아래서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위가 정치적 입김을 철저하게 차단한 지침을 마련할 수 있을지 솔직히 걱정스럽다고 했다.
‘편향’을 걱정하는 것, 얼핏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민주시민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비슷한 정책을 시도한 바 있다면서 민주시민교육 자체가 편향인 듯 예시한다. 그 같은 편향을 막을 안전 장치가 없는 상태에서 섣불리 정치 이슈 교육을 도입하는 것은 안하느니만 못한 부작용을 낳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며 사실상 반대 입장을 편다.
‘민주시민교육’과 같은 교육이 편향이라면 그같은 편향이 아닌 교육은 어떤 교육인지 먼저 묻게 되는데, 그보다는 편향을 걱정하는 조선일보의 편향’을 더욱 분명히 보게 된다. 문제 해결을 위한 상식적 접근조차 냉소하는 상식 외면의 편향이자, 신문 칼럼에 대체로 정연한 논리와 일관성을 기대하는 독자들을 외면하는 편향이다.
조선일보의 이런 편향, 이런 논리, 이런 태도가 불러 일으키는 피로증이야말로 배재고 사태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구조적인 장애물이다. 이를 ‘조선일보 피로증’이라고 부를 만한데, 마침 조선일보가 피로증을 지적하는 칼럼을 내보냈다. 지난 16일자 ‘5·18 피로증’이라는 이름까지 붙여 가며 5·18을 피로증상과 연결시킨 이 편집인 칼럼이야말로 ‘조선일보 피로증’을 유발한다.
조선일보 편집인은 ‘스타벅스 5·18 마케팅 논란’과 배재고 야구단의 행위에 대해 비극적 사태에 대한 조롱은 도리가 아니다”라며 점잖게 타이르는 듯하지만, 본론으로 들어서자마자 펜 끝을 돌려 모든 사태의 원인을 ‘민주당’과 ‘그로 인한 피로증’으로 귀결시킨다.
필자는 스타벅스 사태를 두고 비판적 공론에 맡겼으면 될 일”이었다며 정부 여당의 과도한 개입을 비판한다. 그러나 정작 이 칼럼이야말로 그 비판적 공론의 공간을 스스로 봉쇄하고 있다. 스타벅스의 마케팅이 왜 문제였는지, 5·18이라는 역사적 비극을 상업적 소재로 희화적으로 소비하는 행위가 어떤 위험을 지니는지에 대한 논의는 지워버린다. 대신 대통령의 발언이 ‘장사치’라는 표현으로 지나쳤다는 지적, 정부의 대응이 ‘갑질’이었다는 프레임으로 채웠다. 비판적 공론을 요청하는 척하며 오히려 공론장을 막고 있다.
칼럼은 민주당이 세월호 사고나 핼러윈 참사 등 정치와는 상관없는 사고를 정치에 노골적으로 이용했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국가의 구조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아 수백 명의 학생이 수장된 사건, 경찰력 배치와 재난 대응 체계의 부실로 150여 명의 젊은이들이 죽음으로 내몰린 참사, 이것이 정치와 무관한 사고라면, 국가의 존재 이유와 책임을 묻는 일 자체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뜻이 된다. 설령 백보 양보해 이를 ‘순수한 사고’로 본다면, 정치와 무관한 그 사고에 온갖 불순한 낙인-세금 도둑, 시체 장사 같은 표현들-을 찍어 정치적 갈등의 소재로 만든 이들은 누구였는가. 그러나 이 칼럼은 유가족과 시민의 정당한 권리 주장을 ‘불순한 정치 세력’으로 모독하고 낙인찍기를 방조하거나 옹호한 언론은 누구였는지에 대해선, ‘순수한 사고를 오히려 정치적인 사건’으로 만든 조선일보 자신을 포함한 언론의 행태에 대해선 전혀 말하지 않는다.
조선일보의 7월 16일자 편집인 칼럼.
민주당의 운동권 성향을 비판하겠다며 느닷없이 6·25 남침 피해와 천안함 폭침을 끌고 들어와 전형적인 ‘안보·이념 레퍼토리’도 반복한다. 국가 권력이 자국 국민을 무참히 학살한 5·18 광주민주화운동이나 국가의 무능과 방기로 인해 국민이 희생된 사회적 참사를 내전과 의문의 군함 침몰과 동일 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칼럼은 민주당의 탄핵 남발과 입법 폭주 가 계엄 사태의 한 단초 가 되었다고 서술한다.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에 따른 야당의 입법 권한이나 탄핵 소추로 헌정을 유린한 ‘불법 계엄 선포’의 정당성을 강변하려 한다.
이념이 뭐든, 어떤 정당을 지지하든 많은 사람이 죽고 다친 비극적 사태를 야유하거나 조롱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조선일보 편집인은 글머리에서 짐짓 점잖은 태도로 대중과 학생들을 훈계한다. 그러나 겉으로는 5·18 비하를 개탄하는 척하면서, 시종일관 5·18의 의미와 정신을 지키려는 노력을 ‘민주당의 전유물’ ‘지나친 보상’ ‘국민의 피로증 유발’로 폄훼한다. 그럼으로써 극우 세력이나 철없는 청소년들이 행하는 5·18 조롱의 심리적 배경에 면죄부를 쥐여주고 있는 셈이다. ‘도리’를 말하지만 결국 역사적 비극을 교묘하게 야유하고 조롱한다.
필자는 ‘5·18 피로증’이라는, 스스로 창의적 이라고 여겼을 개념을 들고 왔지만, 비약과 억지 결부로 점철된 이 칼럼이야말로 독자에게 극심한 피로를 안긴다. 이런 류의 글들이 드러내는 것은 ‘5·18 피로증’이 아니라 ‘조선일보 피로증’이라고 해야 할 만하다.
9일 오전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서구 5·18 기념문화센터 앞에서 5·18 3단체(유족회·부상자회·공로자회)와 5·18 기념재단이 배재고 야구부 학생들의 선처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6.7.9. 연합뉴스
지난 14일 배재고 1학년 전원을 대상으로 민주시민교육 강의를 했던 이는 이재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이었는데, 그는 강의를 시작하면서 자도 상관없다”고 했다고 한다. 정말 자라는 말은 아니었다”는 그의 해명을 그대로 수긍할 수 있는지, 민주화운동가 출신이지만 국힘당 전신 계열의 정당에 들어가 5선 국회의원을 지내며 특히 이명박 정부 핵심 인사였다가 윤석열 정부에 의해 그 자리에 임명됐던 인물이 배재고의 민주시민교육 강사로 엄선 된 경위에 대해선 굳이 따지지 않기로 한다.
다만 자도 상관 없다”고 한 말로써 그는 자신도 의식하지 못했을 어떤 진실을 한 가닥 드러내고 있는 듯하다. 그 자신에게 혹은 조선일보와 같은 언론에게 던진 말, 배재고 사태와 같은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는 일에 대해서는 굳이 잠에서 깰 필요가 없다”는 메시지일 듯도 하다. 배재고 야구부 사태, 배재고로부터 시작된 이 사태는 결코 배재고가 시작도 아니며 끝은 더더욱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이명재 에디터 promes65@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