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석의 한글철학 (53)] 삭망(朔望)이 한꼴이다! [칼럼] #1. ‘마침보람’에 새겨진 스승과 제자의 길
다석 류영모의 제자 박영호 선생이 2026년 10월 11일 오후 7시 39분 숨을 돌렸다. 선생은 부고도 알리지 말고, 빈소도 차리지 말며, 부의금도 받지 말라는 유지를 남겼다. 묘역조차 남기지 않으려 했으나 유족과 제자들 뜻에 따라 수원 연화장 공원묘역에 작은 이름표 하나 남겼다. 평생 ‘제나’를 벗고 ‘얼나’로 솟나기를 갈망했던 구도자의 마지막 길이다. 이제 그는 한아님, 한웋님 품으로 돌아갔다.
선생을 기리며 펼친 것이 다석에게 받은 ‘졸업증(卒業證)’이다. 한 사람 생애를 추억하려고 펼쳤다. 이 졸업증에는 스승을 만나고, 스승에게 줄기찬 물음을 묻고, 스승 곁을 떠나 홀로 공부하고, 마침내는 제 말로 믿음을 밝힌 제자의 길이 있었으니까. 또한 이 길은 오늘 우리가 이어야 하는 길이기도 하다. ‘마침’을 적어 준 졸업증 앞에서 새로 비롯할 일을 생각하는 까닭이기도 하고.
다석이 제자에게 준 졸업증은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는 박영호가 유일하다. 으뜸 제자 신천 함석헌조차 받은 바 없다. 다석은 한문으로 卒業證”을 쓰고 그 밑에 ㅁ+아래아+ㅌ, 침, 보, ㄹ+아래아+ㅁ”이라 썼다. 오래 앞, 주시경은 맞힌보람”을 알파벳 쓰듯이 닿소리 홀소리를 풀어서 썼다. ㅁㅏㅈㅎㅣㄴㅂㅗㄹㅏㅁ”이라 쓴 것. 한때 영어 알파벳처럼 풀어쓰기를 시도한 것이다. 세종이 첫소리 가운뎃소리 끝소리를 한꼴로 뭉쳐 쓰라는 걸 파기한 셈이다. 머리(初聲)-몸(中聲)-발(終聲)”이 한꼴인데, 머리 떼고 몸 떼고 발 떼니 소리 적는 글꼴이 엉망이었다. 그래서 다시 한꼴 뭉쳐쓰기로 되돌렸다.
박영호가 받은 ‘마침보람’을 다른 제자보다 뛰어나다는 인정으로 읽으면 안 된다. 다석에게는 큰 제자들이 많았다. 신천 함석헌은 씨알사상을 역사와 민주주의, 평화철학으로 확장했다. 김흥호는 『다석일지』를 해제하며 다석 종교철학을 학문과 강단으로 이었다. 학산 이정호는 훈민정음 해례본과 역학을 탐구하면서 다석 한글사상과 통하는 사유를 열었다. 가난과 섬김을 실천한 이현필, 농촌과 생명운동에 힘쓴 류달영, 저마다 삶의 자리에서 다석의 말씀을 받든 수행자들도 있었다.
이들이 모두 같은 꼴로 살아간 것은 아니었다. 받은 말씀을 저마다의 삶에서 새롭게 일으켰다. 박영호는 그 가운데서도 스승의 생애와 사상을 밝히는 일을 평생 과업으로 삼았다. 그리고 그것을 제소리 제 말로 풀어내고 세상에 전하는 데 일생을 바쳤다. 졸업증은 그 일을 끝냈다는 표창이기에 앞서, 스승에게 매달리던 제자가 홀로 참을 물을 수 있는 자리에 이르렀음을 생각하게 한다. 그러므로 졸업증은 제자 박영호의 삶과 함께 읽어야 한다.
그림1) 다석이 박영호에게 보낸 졸업증 원본이다. 한시 네 줄과 십자 모양 글귀, 한글 덧글이 한 종이에 담겼다.
맞힌보람”에서 ‘맞힌’은 ‘ㅈ+ㅎ=ㅊ’이 되는 까닭에 ‘마친보람’이라 읽고 써도 무방하다. 그런데 다석은 ㅁ+아래아+ㅌ, 침, 보, ㄹ+아래아+ㅁ”이라 썼다. 자세히 보면 손 글씨로 쓴 미음(ㅁ)은 기윽니은을 한꼴 쓰기로 썼다. 그러니까 ‘ㅁ=ㄱ+ㄴ’으로 쓴 것이다. 하늘이 땅 그리는 기윽(ㄱ), 땅이 하늘 받느는 니은(ㄴ)이 한꼴로 돈다. 늘 잊지 않아야 한다. 다석 한글은 소리와 뜻을 함께 보아야 잘 보인다.
졸업증 : 卒業證 : ㅁ+아래아+ㅌ, 침, 보, ㄹ+아래아+ㅁ”
ㅁ+아래아+ㅌ, 침, 보, ㄹ+아래아+ㅁ”도 소리 내어 읽으면 ‘마침보람’으로 읽을 수 있다. 하늘아(ㆍ)는 ㅏ로도 읽을 수 있고, ㅗㅏ를 한 소리 내듯 읽을 수 있으며, ㅗ로도 소리 낸다. 제주에서는 ‘말(言)’, ‘(馬)’을 소리 낼 때 ‘말’은 말이라 하고, ‘’은 몰이라 한다. 다석이 제자 박영호에게 ㅁ+아래아+ㅌ, 침, 보, ㄹ+아래아+ㅁ”을 주면서 한시와 한글을 쓴 까닭은 ‘보ㄹ+아래아+ㅁ’을 자랑스러운 ‘보람’이면서, 또 ‘보롬-보름’으로도 보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자, 이제 뜻을 캐물어 보자.
‘ㅁ+아래아+ㅌ’은 ‘맡’으로 읽고, ‘맡다’로 뜻 삼는다. ‘맡다’라는 말은 스승이 가르친 것을 다 차지했다는 뜻이다. 이제 스스로 제 ‘므름’을 ‘브름’으로 불릴 줄 알 뿐만 아니라, ‘프름’으로 풀 줄도 알게 되었다는 뜻이겠다. ‘므름-브름-프름’이 한꼴로 돌고 돌아야 ‘알맞이’가 열린다. 알음앓이로 ‘알(知)’이 알맞이 되면 알음알이 주렁주렁 열리고 맺혀서 ‘슬기(智)’로 익는다. 말갛게 익어서 단내가 난다. 감로(甘露)가 따로 없다.
‘침’은 ‘마치다’로 뜻 삼는다. 그런데 하나 더 있다. 다석은 정음교(正音敎)를 말하면서 ‘바른소리치킴’이라 말한 바 있다. ‘바른소리(正音)’로 제소리 터지면 늘 속알이 치켜올려 진다. 그야말로 ‘치킴’이다. 다석은 늘 ‘올라가 올라가’라고 외쳤고, ‘올’을 타라고 일갈했다. 올을 타고 치켜올려 지는 자리에 ‘침’이 있다. 그러므로 ‘ㅁ+아래아+ㅌ, 침’은 이제 스승의 알을 다 차지했다는 것이요, 제소리를 딛고 또 딛어 치켜 올라가라는 소리요, 올을 타라는 소리겠다.
여기서 ‘제소리를 낸다’는 것은 스승의 말을 버리고 저만의 이름을 세운다는 뜻이 아니다. 받아들인 말씀이 제 몸을 지나며 다시 살아나야 한다는 뜻이다. 책에 쓰인 뜻을 외우는 일과, 그 뜻이 제 삶에서 참인지 묻는 일 사이에는 거리가 있다. 박영호가 걸어간 길은 그 거리를 몸으로 건너는 공부였다. 그의 전기와 어록, 강의와 주해를 읽으면 스승의 말씀을 지키려는 마음과 그 말씀을 오늘의 말로 풀려는 마음이 함께 움직인다. ‘므름-브름-프름’의 돌아감은 그 평생 공부를 돌아보게 한다.
‘보, ㄹ+아래아+ㅁ’은 ‘보람’으로 읽고, 자랑스러움으로 뜻 삼는다. 또 하나는 ‘보롬’으로 읽고 ‘보름’으로 뜻을 삼는 일이다. 다석은 ‘보롬-보름’으로 제자 박영호에게 다시 한번 일깨워 주고 싶었던 게다. 이제 다 차지했으니 ‘보름’으로 꽉 찬 달이지 않겠는가. 환한 달빛이지 않겠는가. 다 배워서 ‘배움’이니, 배부름이지 않겠는가. 그래서 다석은 달이 차고 기우는 꼴에 빗대어 ‘밀음-믿음-밑음’을 일깨운다. 박영호는 다석을 찾아가 듬배질 해댔다.
#2. 듬배질에서 단사로 홀로 깨친 믿음
박영호 생애는 처음부터 구도행이었다. 그는 평생 자신의 길을 밝혀 줄 ‘선생님’을 찾았다. 그 길은 전쟁의 참혹한 죽음에서 시작되었다. 한국전쟁 때 학도의용군으로 전쟁에 참여한 그는 수많은 죽음을 목격했다. 살아 있는 몸들이 한순간에 주검으로 바뀌는 참혹한 현실은 그의 영혼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불면과 신경쇠약이 뒤따랐다. 죽음이 무엇인지, 인간은 왜 사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를 일으켜 세운 것은 톨스토이의 『참회록』이었다. 톨스토이 역시 삶의 무의미와 죽음의 두려움 앞에서 진리를 찾았던 사람이다. 박영호는 그 책을 통해 신앙에 눈떴다. 그에게 종교는 교회에 다니거나 교리를 받아들이는 일만이 아니었다. 죽음의 공포를 넘어 참된 삶을 찾아가는 길이었다. 이후 그는 톨스토이 저작과 동서양 종교철학을 탐독했다. 전쟁에서 받은 상처가 책 한 권으로 모두 사라졌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삶을 다시 물을 수 있는 말이 생겼다. 그 물음이 그를 선생님을 찾아가는 길로 이끌었다.
1956년 『사상계』에 실린 함석헌의 「한국 기독교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읽은 것은 또 하나의 전환이었다. 그는 함석헌에게 편지를 썼고, 마침내 스승을 만났다. 함석헌의 가르침 아래 천안 씨알농장에서 약 3년 동안 낮에는 농사짓고 밤에는 공부했다. 성경과 사서삼경을 읽었고, 톨스토이와 간디의 삶을 익혔다. 농사와 공부가 둘이 아니고, 신앙과 생활이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몸으로 배웠다.
그런데 그토록 존경하던 함석헌에게도 스승이 있었다. 다석 류영모였다. 박영호는 1959년 서울 YMCA 연경반에서 다석의 금요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다석은 성경을 말하다가 노자를 불러왔고, 불교를 이야기하다가 공자의 중용을 논했다. 예수를 말하면서도 불교를 부정하지 않았으며, 유교와 도교를 넘어 한아님ㆍ한웋님으로 나아가는 길을 밝혔다. 박영호에게 그것은 새로운 사상의 문이 열리는 경험이었다.
그는 경기도 의왕 청계산 자락에서 땅을 개간해 농사를 지었다. 그러면서 서울 YMCA를 찾았고, 구기동 다석 집에도 드나들었다. 몸은 땅을 일구고 얼은 하늘을 우러렀다. 노동과 사색을 함께 하는 삶이었다. 톨스토이에게서 신앙의 물음을 얻었고, 함석헌에게서 씨알의 삶을 배웠다면, 다석에게서는 그 모든 물음을 한길로 꿰는 말씀을 얻었다.
송아지가 어미 소의 젖을 얻기 위해 머리로 유방을 쿡쿡 들이받듯이, 제자 박영호는 스승에게 신앙적·사상적 가르침(진리의 젖)을 끊임없이 갈구하며 치열하게 매달리고 들이받았다. 23세이던 1959년, 박영호는 서울 자하문 밖 구기리에 살던 다석을 처음 찾아갔다. 당시 박영호는 한국전쟁을 겪으며 생긴 지독한 정신적 방황(신경쇠약)을 극복하고 참된 진리를 목말라하던 청년이었다. 그는 스승을 만난 날부터 마치 배고픈 송아지가 어미 소에게 듬배질하듯 격렬하게 매달렸다. 스승이 인도하는 집회는 단 한 번도 빠지지 않았고, 일주일에 몇 번씩 스승 집 문을 두드렸다.
나는 6년 동안 다석 선생님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졌다. 어미 소의 젖을 빠는 송아지처럼 치열하게 스승의 가르침을 빨아먹었다.”라고 말한 까닭이다.
박영호는 얌전하게 가르침을 받아 적는 제자가 아니었다. 스승의 말 한마디, 글 한 줄을 깊이 파고 들며 의문이 생길 때마다 끈질기게 들이받고 질문을 던졌다. 스승의 사상적 진수를 모두 빨아들이겠다는 듯한 이 무서운 구도열이 바로 그가 보여준 ‘정신적 듬배질’이었다.
그림2) 젊은 박영호와 다석 부부(류영모, 김효정). 맨 왼쪽이 박영호다.
그러나 1965년 다석은 뜻밖에도 박영호에게 ‘단사(斷辭)’를 명했다. 다시는 찾아오지도 말고, 편지도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박영호는 눈물을 흘리며 스승을 떠났다. 다석이 왜 단사를 명했는지 생각해야 한다. 스승의 말씀을 되풀이하는 제자로 남지 말고, 스스로 깨치는 사람이 되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스승 밖으로 나가야 비로소 스승의 참뜻을 얻을 수 있다는 역설이다.
단사는 마침보람과 같은 사건이 아니다. 스승이 끊어 낸 때와 제자가 졸업증을 받은 때 사이에는 홀로 감당한 공부 시간이 놓여 있다. 그 시간을 지우면 졸업증은 매달리는 제자를 떼어 놓는 쪽지처럼 보이기 쉽다. 그러나 박영호는 떨어져 나간 자리에서 농사를 짓고, 책을 읽고, 사색하고, 글을 썼다. 이제 묻고 답할 사람은 스승 곁에 있는 제자 자신이었다. 들은 말씀을 삶에서 되물으며 제 믿음으로 익혀야 했다.
박영호는 다섯 해가량 사색과 성찰을 거듭하여 『새 시대의 신앙』을 썼다. 생전 회고에 따르면, 탈고하고 출판한 뒤에도 곧장 다석에게 책을 보내지는 않았다. 소식이 끊긴 제자를 걱정한 다석이 전병호를 보냈고, 박영호는 그 편에 책을 전했다. 이후 추석 무렵 구기동을 다시 찾았다. 다석은 책을 읽었다며 ‘동(同)’과 ‘합(合)’의 뜻을 짚어 주었다. 형이하는 동이요, 형이상은 합이라면서 말이다. 물리적으로 같음과 정신으로 합함을 가려 보게 한 것이다. 졸업증은 우편으로 왔다. 1970년 무렵이다.
나는 이 사연을 스승이 알을 쪼아 주고 제자가 안에서 껍질을 깨는 줄탁동시(啐啄同時)의 일로 읽었다. 다석의 쪼음은 단사였고, 박영호의 쪼음은 홀로 깨친 신앙이었다. 스승의 가르침을 받는 공부에서 제 뜻으로 진리를 밝히는 공부로 넘어간 것이다. 단사는 버림으로 끝나지 않았고, 독학은 스승을 잊는 일로 끝나지 않았다. 둘 사이에서 책 한 권이 익었다. 그 책을 사이에 두고 스승과 제자는 다시 마주했다.
다석은 본디 제자를 따로 두거나, 누군가를 가르쳐서 대를 잇겠다는 생각이 없는 철저한 사상가였다. 그러나 6년 동안 송아지처럼 듬배질하며 진리의 젖을 갈구한 박영호에게만은 예외였다. 1970년 어느 날, 류영모 선생은 박영호에게 직접 ㅁ+아래아+ㅌ, 침, 보, ㄹ+아래아+ㅁ”이라고 적은 봉함엽서 한 장을 건넸다. ㅁ+아래아+ㅌ, 침, 보, ㄹ+아래아+ㅁ”은 학업을 마쳤다는 증서, 즉 일종의 졸업장이었다.
훗날 사람들이 왜 수많은 제자 중 박영호 선생만 유일하게 졸업장을 받았느냐”라고 묻자, 그는 웃으며 이렇게 회고했다. 내가 하도 어미 소의 젖을 빨듯이 류영모 선생에게 매달리고 듬배질을 해대니까, 선생께서 ‘이제 너는 다 배웠으니 그만 받아먹고 나가서 네 일을 해라’라는 뜻으로 떼어내신 것입니다.”라고 말이다.
송아지 듬배질은 어미 소를 아프게 하지만, 그 자극 덕분에 어미 소 몸에서는 젖이 더 풍부하게 돌게 된다. 박영호의 거침없고 치열한 질문(듬배질)은 다석 류영모라는 거인에게서 끊임없이 깊은 사상과 지혜의 샘물을 솟구치게 만들었다. 스승의 바지춤을 붙잡고 늘어졌던 그 6년간의 ‘듬배질’ 덕분에, 다석사상은 박영호의 손을 통해 오늘날 세상에 온전히 전해질 수 있었다.
이 과정을 떠올리면 ‘다 배웠다’는 말을 새로 듣게 된다. 모든 물음에 답을 갖추었다는 뜻으로만 들을 수 없다. 이제 스승의 답을 기다리는 일을 마치고 제 삶으로 답해야 한다는 뜻이다. 배우는 관계가 끝난 뒤에도 말씀의 관계는 계속된다. 제자가 스승의 곁을 떠났다고 해서 근원까지 떠나는 것은 아니다. 마침보람은 스승에게 돌아가 기대는 길을 열어 준 증서라기보다, 제 발로 서서 그 근원을 우러르라는 당부로 읽힌다.
#3. 초하루에 보름 첫비롯을 따르는 길
자, 이제 졸업증에 쓴 한시, 한글풀이로 들어가 보자. 우선 삭망(朔望)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림을 보자. 삭(朔), 곧 초하루와 그 앞뒤다. 그믐이 지나면 초하루다. 초하루가 삭(朔)이다. 달빛 한 조각 없는 그야말로 ‘빈탕’이다. 텅 빈 우주 빈탕이다. 해그림자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달이 사라진 자리다. 해그림자 속에서 텅 비어 버린 자리다. 그 자리가 지나야 초이틀이다. 그믐은 그믐달이고, 초이틀은 초승달이다. 그믐달과 초승달은 ‘손톱달’이라고도 한다.
그림3) 그믐은 그믐달이고, 초이틀은 초승달이다. 손톱달이라 한다. 그 사이는 이름이 없다.
그 다음은 달이 차고 기우는 모든 과정을 알아야 한다. 다시 그림을 보자. 오른쪽에서 햇빛이 온다. 햇빛 그림자에 가린 것이 ‘삭’이다. 초하루다. 이 달의 이름은 ‘없’이다. 그저 초하루요 삭일 뿐이다. ‘망(望)’은 보름달이다. 보름은 다 찼다는 뜻이다. 꽉 찼다는 뜻이다. 반면, ‘삭(朔)’은 다 비었다는 뜻이다. 텅 비었다는 뜻이다. 무엇이 비었고, 무엇이 가득 찼을까? ‘햇빛’이다. 달은 본디 제빛이 없다. 제빛을 갖지 못했다. 제빛이 없으니 그저 햇빛을 되비출 뿐이다.
그림4) 오른쪽에서 오는 햇빛에 따라 달의 꼴이 달라진다. 지구와 달, 그리고 해의 위치에 따라 밀물 썰물이 들고 나고, 달의 꼴도 달라진다. ‘달라진다’는 말이 ‘달’로 시작되는 것도 흥미롭다.
스승으로부터 받은 빛이 보름달이다. ㅁ+아래아+ㅌ, 침, 보, ㄹ+아래아+ㅁ”은 스승으로부터 다 차지했다는 뜻이니, ‘보, ㄹ+아래아+ㅁ’은 ‘보름’이겠다. 보름달이겠다. 얼마나 다 차지했으면, 배움으로 배부른 보름달이겠는가. 다석은 ‘보’에 그치지 말라고 한시를 썼다. 한시의 뜻을 살펴보자.
박영호가 뒤에 스승의 말씀을 풀어 전한 일도 이 달빛 비유와 함께 생각할 수 있다. 그는 류달영이 설립한 성천문화재단 성천아카데미에서 다석사상과 노장철학을 강의했다. 다석사상연구회 강연과 연구 모임을 통해 후학을 길렀다. 스승에게 직접 들은 말을 자신이 풀어 다른 이들에게 전했다. 그에게 강의는 지식을 가르치는 일에 머물지 않고 함께 깨치는 공부로 이어졌다.
다석의 말씀은 어려웠다. 한글 소리와 뜻을 새롭게 엮었고, 성경 말씀과 동양고전의 깊은 뜻을 한데 놓고 읽었다. 『다석일지』와 강의를 처음 읽는 사람은 그 말뜻을 곧장 알아듣기 어려웠다. 박영호는 그 어려움 앞에서 해설자 길을 택했다. 말씀의 뜻을 풀고, 그 말이 어느 경전과 이어지는지 살폈으며, 추상으로 남지 않도록 삶의 사례로 설명했다. 스승이 들려준 말씀을 제자의 말로 밝힌 것이다.
다석 말씀이 씨앗이라면 박영호 강의는 그 씨앗이 새로운 땅에 뿌리 내리게 하는 일이었다. 그는 다석사상을 특정 학문 분야나 종교의 전유물로 가두지 않았다. 누구든 공부하고, 깨치고, 자신의 삶에서 실천할 수 있는 말씀으로 전하려 했다. 졸업증을 풀이하는 일도 그 길에 잇대어 있다. 한문 한 줄을 한글 한 줄로 바꾸는 데서 그칠 수 없다. 소리를 내어 읽고, 글꼴을 살피고, 낯선 뜻말을 제 삶에 대어 보아야 한다. 달의 차고 기움이 왜 한 사람의 공부와 이어지는지 물어야 한다.
우선 전체 뜻을 풀면 아래와 같다.
朔朢潮汐海率原 삭망조석해솔원
초하루에 보름, 밀물에 썰물, 바다는 첫비롯 따르네.
望朢朕始悔無我 망망짐시회무아
보름 바라보며 나 비로소 뉘우쳐 ‘나없’에 나아가네.
朔先晦后唯一合 [合朔(합삭)一點(일점)] 삭선회후유일합
合朔·一點 합삭·일점 — 해와 달이 합하는 때, 한 점
초하루 앞에 그믐 뒤는 오직 오롯한 하나라네.
維新親故絕對可 [新故(신고)/恒同(항동)] 유신친고절대가
新故·恒同 신고·항동 — 새것 옛것, 늘 같음
새롭게 하여 옛것 어뵈니 ‘늘없’ 옳이네!
한 줄 한 줄 풀어 보자.
朔朢潮汐海率原 삭망조석해솔원
초하루에 보름, 밀물에 썰물, 바다는 첫비롯 따르네.
삭망(朔望)을 풀 때는 초하룻날과 보름날”처럼 ‘과’를 넣어선 안 된다. 그러면 ‘삭과 망’이 된다. 다석은 오히려 초하루에 보름”이라고 말했을 터다. 노자 늙은이 1월(章)에서 무명천지지시(無名天地之始)”를 풀 때 이름 없에 하늘 땅이 비롯고,”라 하였다. 유명만물지모(有名萬物之母)”는 이름 있에 잘몬의 어머니.”라 풀었다. ‘~에서’라 하지 않고 ‘~에’라 풀었다. 왜일까? ‘~에서’는 쪼개지는 말이다. ‘~에’는 그 자리다. 쪼개진 자리가 아니다. ‘~과’는 초하루도 있고 보름도 있다는 뜻이다. 또 초하룻날에서 보름날”로 써도 그리된다.
달은 하나다. 그 하나가 끊임없이 뒤바뀔 뿐이다. 그믐달, 초승달, 상현달, 소망달, 보름달, 가망달, 하현달로 바뀐다고 여럿이 아니다. 하나다. 그 하나가 달리 보일 뿐이다. 삭망(朔望)도 하나다. 삭이 따로 있고, 망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한 개의 달이 여러 꼴로 보일 뿐이다. 돌고 돌아가는 달이요, 돌고 돌아가는 몯돌(地球)이요, 돌고 돌아가는 해다. 서로가 맞물려 돌고 돌아갈 뿐이다. 어디 한 자리에 붙박여 있지 않다. 붙박여 있지 않으니 ‘없(無)’일 뿐이다.
초하루에 보름이다. 그 자리가 그 자리다. 돌고 돌아갈 뿐이다. 초하루에 보름은 사실 한꼴이다. 하나다.
밀물에 썰물이다. 그 자리가 한자리다. 밀써는 자리다. 여닫는 자리다. 가오는 자리다. 둘이 아니다. 하나 한자리다.
그러므로 바다는 첫비롯(原)을 따른다. 솔(率)을 거느리고 이끄는 뜻으로 풀면 안 된다. 왜냐하면 우주는 저절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저 스스로 절로 돌아가는 제절로일 뿐이다. 그러니 ‘따르네’로 썼다.
‘초하루에 보름’이라는 풀이에서 내가 붙드는 것은 한 달의 날짜를 차례로 헤아리는 일만이 아니다. 비어 있는 때와 가득 찬 때를 서로 떨어진 두 세계로 만들어 놓지 않는 일이다. 다가가 듣는 시간만 공부였던 것이 아니다. 말씀이 끊긴 뒤 그 뜻을 홀로 살아 보는 시간도 공부였다. 듬배질과 홀로서기는 그 한 사람이 건너온 길의 서로 다른 꼴이다.
밀물과 썰물의 비유도 그렇다. 밀려드는 말씀이 있어야 하지만, 받은 말씀만으로 저를 채워 놓아서는 제 물음이 돌아올 자리가 없다. 썰물이 빠진 자리를 잃어버린 자리라고만 여길 수 없는 까닭이다. 새로 물을 자리가 열리고, 스스로 살필 일이 드러난다. 다석이 준 마침보람을 배움의 결산표처럼 읽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다. 거기에 채워야 할 공부와 비워야 할 공부가 함께 적혀 있다. 바다가 첫비롯을 따른다는 말은, 그 움직임을 저 혼자 차지한 힘으로 여기지 말라는 일깨움으로도 들린다.
덧 : 《설문해자》에서는 ‘삭(朔)’을 다음과 같이 썼다.
朔,月一日始蘇也。从月屰聲”(삭, 월일일시소야. 종월역성.)
풀면, 삭(朔)은 매달 첫째 날에 달이 비로소 다시 살아나는 것(始蘇)이다. ‘月(달 월)’의 뜻을 따르고, ‘屰(거스를 역)’의 소리를 따른다.”이다. 허신은 이 글자를 형성자(뜻+소리)로 보았다. 여기서 눈길을 줄 말은 ‘시소(始蘇, 비로소 깨어나다ㆍ살아나다)’다. 초하루는 죽었던 달이 새롭게 부활하는 신성한 날이다.
시간적 의미로는 끝없는 순환”이다. 달이 태양과 지구 사이에 일직선으로 놓여 눈에 보이지 않게 되는 시점(신월, New Moon)일 뿐더러, 그믐날을 뜻하는 ‘회(晦)’를 붙여서 회삭(晦朔)이라 하는데 ‘끄트머리(끝이 시작)’, ‘세월 흐름’을 뜻하기 때문이다. 공간적 의미로는 북쪽(北方)이다. 우리 옛사람들은 오행(五行)에서 북쪽을 ‘끝이자 새로운 시작’이라 하였다. 겨울이다. 달 주기가 끝나고 새로 시작하는 ‘삭(朔)’의 속성이 북쪽과 맞닿아 있어, ‘북쪽 바람’을 삭풍(朔風), ‘북쪽 변방’을 삭방(朔方)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다석은 늘 죽어야 다시 산다”고 했다. 달이 온전히 제 몸을 비워 캄캄하고 깜깜한 그믐(晦)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새 생명인 초하루(朔)로 부활하듯, 사람 역시 자신의 에고(몸나)를 비워내야만 영원한 생명(얼나)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우주 이치를 ‘삭(朔)’이라는 글자가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전쟁에서 수많은 죽음을 보고 삶을 물었던 박영호에게 죽음과 새로 삶의 문제는 멀리 있는 관념이 아니었다. 톨스토이를 읽고 함석헌을 찾아가고 다석을 만난 길은 그 물음에서 비롯했다. 졸업증의 달 역시 그 길 바깥에 걸린 장식이 아니다. 제 몸과 제 이름에 붙박인 나를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다 찬 것처럼 여긴 배움을 어떻게 다시 비울 것인가. 초하루가 보여주는 ‘비롯’은 바로 그 물음으로 우리를 돌려세운다. 이제 둘째 줄에서 그 물음의 주인인 ‘나’를 만나게 된다.
#4. ‘나없’에 나아가 오롯한 하나로
望朢朕始悔無我 망망짐시회무아
보름 바라보며 나 비로소 뉘우쳐 ‘나없’에 나아가네.
삭망(朔朢)과 망망(望朢)에서 보름을 뜻하는 망(朢)은 회의자(會意字)다. 큰 눈을 부릅뜬 사람(臣, 신하 신→본래 ‘눈’의 상형)이 있다. 글자 윗부분에 있는 ‘臣’은 본래 신하라는 뜻이 아니라, 사람이 눈을 크게 뜨고 어딘가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는 형상이다. 그리고 맨 아래는, 흙더미 위에 서 있는 모습(壬, 빼어날 정 → 땅 위)이다. ‘壬’은 사람이 흙더미나 높은 언덕 위에 발을 디디고 우뚝 서 있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망(朢)은 사람이 높은 언덕 위에 올라가, 눈을 아주 크게 뜨고 저 멀리 하늘에 가득 차오른 보름달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다.
《설문해자》에서는 ‘망(朢)’을 우주적 현상과 정치적 신하의 도리를 엮어 아주 흥미롭게 풀이한다. 朢,月滿與日相朢,以朝君也. 从月从臣从”(망, 월만여일상망, 이조군야. 종월종신종정.) 풀면, 망(朢)은 달이 가득 차서(보름) 태양과 서로 똑바로 마주 보는 것(相朢)이니, 이는 마치 신하가 조정에 나아가 임금을 알현하는 것(以朝君)과 같다. ‘月(달)’, ‘臣(신하)’, ‘(조정/발디딤)’의 뜻을 모두 따랐다.”이다. 청나라의 단옥재(段玉裁)는 이를 두고 해(태양)가 달을 비추어 비로소 달에 빛이 생기는데, 땅 위 인간이 볼 때 그 빛이 온전히 꽉 차서 보이는 날이 바로 망(朢)이다”라고 했다.
그런데 다석은 임금 왕(王)을 이렇게 풀었다. 하늘(ㅡ)도 하나요, 땅(ㅡ)도 하나요, 사람(ㅡ)도 하나다. 이를 뚫은 이(ㅣ)가 곧 임금이라고. 그러니 임금(王)은 하늘땅사람을 꿰뚫은 이다. 줄곧 뚫린 이로 살아야 하는 까닭이 예 있다. 바랄 망(望)과 보름 망(朢) 아래에는 임금 왕(王)을 닮은 까치발 정ㆍ임(壬)이 있다. 본디 임(壬)은 아홉 번째 천간이요, 짊어진다는 뜻을 가졌다. ‘맡다’, ‘맡았다’의 뜻이다. 또 방위로는 북쪽을, 오행으로는 물(水)을 뜻한다. 듬배질처럼, 획의 오른쪽이나 양끝이 들려 있어서 ‘까치발 정’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솟구치듯이 저를 치켜올려야 한다.
망망(望朢)을 ‘보름 바라보며’라 풀었다. 눈 크게 뜨고 똑바로 쳐다보아야 한다. 까치발 딛고 딛어 뚫고 솟아야 한다. 솟구쳐야 한다. 그냥 바라보는 걸로는 안 된다. 맡았으면, 북쪽 ‘삭(朔)’을 바라보아야 한다. 초하루에 보름이면, 보름에 다시 초하루다. 그 자리에 그치면 안 된다. 멈춰서도 안 된다. 배웠다고, 배움이 알알이 익었다고 그 자리에 붙박이면 영 꽝이다. 도루묵이다. 보름에 삭을 바라보며 뉘우쳐야 한다. 꿰뚫어 선 이(王:壬)로, 하늘아이(天子) 나(朕)는 뉘우쳐야(悔) 한다[짐(朕)에는 신분 귀천 없이 일컬을 때, 하늘아이라 할 때도 쓴다]. 그래야 ‘나없(無我)’에 나아간다.
박영호가 대중에게 널리 알려 준 다석의 뜻말은 ‘제나’, ‘몸나’, ‘얼나’ 등이다. 이 말들은 본디 다석 사유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박영호는 그것들을 분명한 설명의 얼개로 세우고,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도록 풀어냈다. 졸업증에 쓴 ‘무아(無我)’를 ‘나없’으로 읽을 때도 이 뜻말들의 자리를 함께 살필 필요가 있다. 없어져야 할 나가 무엇이며, 그 나를 비운 자리에 어떤 삶이 열리는지를 묻는 일이다.
‘제나’는 제가 저라고 붙들고 있는 나다. 제 욕망과 제 생각, 제 소유와 제 이름에 매여 있는 나다. ‘몸나’는 먹고 입고 자고 살아가는 육신의 나다. 몸을 지닌 인간은 시공간의 한계 안에서 태어나 늙고 병들어 죽는다. 그러나 다석이 말한 ‘몸나’는 없애 버려야 할 몸이 아니다. 몸에만 매달려 저를 온통 육신으로 여기는 집착이 문제다. 박영호는 이 ‘몸나’와 ‘제나’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탐욕과 자기중심성이 어떻게 인간을 참 생명에서 멀어지게 하는지 밝혔다.
반면, ‘얼나’는 하늘 얼을 받아 솟나는 참나다. 몸이 낳은 나를 넘어서 얼로 다시 나는 것이다. 다석은 이를 ‘솟나’와 ‘거듭남’의 문제로 생각했다. 박영호는 이 뜻을 기독교의 중생(重生), 불교의 법신(法身), 동양철학의 참된 자기와 견주어 설명했다. ‘제나’에서 ‘얼나’로 나아가는 길은 자신을 없애는 허무가 아니다. 붙박인 자아를 벗고 한아님ㆍ한웋님 뜻으로 살아가는 새 삶이다.
‘나없’ 길에서 뉘우침은 배운 것을 모두 잘못이라고 돌려세우는 일이 아니다. 그 배움을 내 것이라고 움켜쥐고, 더는 물을 것이 없다고 여기는 마음을 돌아보는 일이다. 스승에게 가장 가까이 있었던 사람일수록 들은 말씀을 제 권위로 삼을 수도 있다. 마침보람까지 받았다면 그 종이를 자기 이름 앞에 내세우기 쉽다. 그러나 졸업증 둘째 줄에는 ‘나’를 높이 세우는 말과 함께 뉘우쳐 ‘나없’에 나아가는 말이 있다. 자랑스러운 보람 안에서 자랑하는 나를 비우게 하는 것이다.
다석은 일부러 달(月)이 들어간 한자를 골라서 썼다. 다음을 보라.
삭, 망, 조 : 朔, 朢, 潮
망, 망, 짐 : 望, 朢, 朕
이 한자 속 달들은 그믐에 보름으로 돌고 도는 달이다. 그 돌아가는 달로 밀물 썰물이 들고나고, ‘하늘아이’로 드러난다.
朔先晦后唯一合 [合朔(합삭)一點(일점)] 삭선회후유일합
合朔·一點 합삭·일점 — 해달이 합하는 때, 한 점
초하루 앞에 그믐 뒤는 오직 오롯한 하나라네.
이 글에서는 ‘삭선회후(朔先晦后)’를 잘 보는 일이다. 풀면 초하루 앞에 그믐 뒤는”이다. 앞에서 보았던 그림을 다시 보자. 초하루 앞은 어딜까? 그믐이다. 그믐 뒤는 어딜까? 초하루다. 삭(朔)이다. 글 뒤에 작은 글씨로 合朔·一點”이라 썼다. 합삭·일점은 곧 해달이 합하는 때, 한 점”이라는 뜻이다. 초하루는 해달이 한꼴이다. 한 점이다. 빈탕이다. 텅 비었다. 가오는 자리다. 여닫는 자리다. 그 자리는 ‘없(無)’자리다. ‘휑(虛)’이요, ‘텅(空)’이다.
후(后)는 ‘뒤’를 뜻한다. ‘뒤 후(後)’를 쓰지 않고 ‘임금 후(后)’를 썼다. 모두 ‘뒤’를 뜻한다. 다석은 후(后)을 ‘한가지 동(同)’의 파자(破子)로 후(后)를 함께 본 것이다. 후(后)를 데칼코마니로 보면서 양옆에 놓고 붙이면 동(同)이 된다. 한가지 곧 하나라는 뜻이 된다. 그런 까닭에 ‘유일합(唯一合)’이 더 강조된다. 오직 그것 하나뿐(唯一)이라는 것이다. 后 = 同 = 合으로 이어 보아야 잘 보인다. 합(合)은 정신을 더하는 일이다. 정신을 하나로 꿰는 일이다. 텅 빈 자리, 없자리, 바로 그 빈자리가 오직 오롯한 하나다. 그 하나는 텅 빈 ‘없’이고!
스승과 제자가 다시 만났을 때 다석이 ‘동(同)’과 ‘합(合)’을 짚어 주었다는 대목은 깊은 울림을 준다. 글씨를 같은 모양으로 따라 쓰고, 말을 같은 소리로 되풀이한다고 해서 정신까지 한길에 서는 것은 아니다. 스승의 집에 날마다 드나들던 때보다 떨어져 지낸 뒤에 오히려 뜻이 맞닿을 수도 있다. 홀로 서야 한다는 가르침과 하나에 이르러야 한다는 가르침은 여기서 서로 어긋나지 않는다. 홀로 묻되 저만의 울타리에 갇히지 않는 공부가 요청된다.
박영호가 다석사상을 ‘일원다종교주의’의 사유로 읽어 낸 일도 이 ‘하나’를 생각하게 한다. 다석은 기독교와 불교, 유교와 도교를 두루 공부했으나 어느 하나에 갇히지 않았다. 여러 종교의 가르침이 서로 다른 말과 형식을 지니고 있어도 궁극에는 하나의 참을 향한다는 깨달음이었다. 박영호는 이를 다석사상의 중심에 놓고 설명했다. 예수와 석가, 공자와 노자가 저마다의 말로 하나의 근원을 우러른다는 이해다.
물론 종교마다 다른 역사와 교리, 신관을 하나로 환원할 수는 없다. 다석의 일원다종교주의는 그 차이를 지우는 종교 통합론이라기보다, 차이를 넘어서는 참의 근원을 묻는 사유에 가깝다. 박영호는 그 근원을 ‘하나’와 ‘얼나’의 문제로 풀었다. 그의 저술이 지닌 힘은 종교 간 비교를 넘어 한 인간이 어떻게 저 홀로 서는 깨침에 이를 수 있는가를 끝까지 물었다는 데 있다. 졸업증의 ‘유일합’을 읽는 자리에서도 차이를 지운 획일함보다, 저마다의 삶으로 참을 향해 열리는 정신의 일을 보아야 한다.
아래 그림을 보라. 달은 차고 기운다. 그런데 다석은 보이는 달이 아니라, 안 보이는 자리, 빈 자리, 텅 비어 없는 자리, 없이 계시는 자리, 초하룻날 삭(朔)을 가리킨다. 불교는 손가락으로 보름달을 가리킨다. 그러나 다석은 텅 빈 자리를 가리킨다. 보름달에 머물면 안 된다. 다시 비어 돌아가야 한다. 다석이 박영호를 일깨운다.
그림6) 차고 기우는 여러 달의 꼴이다. 다석 류영모가 가리키는 곳은 달이 차고 기우는 그 사이, 곧 텅 빈 자리다.
‘없이 계시는 한아님’ 역시 다석사상의 깊은 자리다. 눈에 보이거나 손에 잡히는 어떤 형상으로도 한아님을 붙잡을 수 없다. 그러나 그 없이 계심이 모든 존재의 바탕이다. 박영호는 기독교의 하느님과 불교의 공(空), 도교의 무(無)를 서로 견주면서 다석이 말한 절대의 뜻을 설명했다. 없는 것이 아니라, 어떤 붙박인 모습으로도 가둘 수 없는 참의 근원이다. 졸업증에서 비어 있는 달의 자리를 살피는 일은 그 없이 계심을 눈앞의 형상에 가두지 않는 공부와 이어진다.
다석의 ‘가온찌기ㆍ가온찍기’와 ‘가온’ 사유도 빼놓을 수 없다. 가온은 양쪽 가운데만을 뜻하지 않는다. 저마다 치우침을 벗고 참의 중심을 깨치는 자리다. 그 가온에 제 마음을 찍어 한아님과 잇대려는 일이 가온찌기ㆍ가온찍기다. 박영호는 이러한 다석 사유를 『중용』의 성(誠)과 중(中), 종교의 궁극에 대한 물음과 연결하여 해설했다. 한 점으로 모인다는 말을 작게 웅크리는 일로만 들을 수 없는 까닭이다. 제 치우침을 벗고, 제 이름보다 넓은 삶에 마음을 여는 일이 그 점에 걸려 있다.
#5. ‘늘없’에서 다시 여는 다석길
維新親故絕對可 [新故(신고)/恒同(항동)] 유신친고절대가
新故·恒同 신고·항동 — 새것 옛것, 늘 같음
새롭게 하여 옛것 어뵈니 ‘늘없’ 옳이네!
‘유신(維新)’은 『시경(詩經)』 대아(大雅) 문왕편의 주수구방기명유신(周雖舊邦 其命維新)”에 나오는 말이다. 낡은 것을 고쳐 새롭게 한다는 뜻이고. ‘친고(親故)’는 친척과 오랜 벗을 뜻하는 옛말이다. 그렇지만 나는 ‘친(親)’을 ‘어뵈니’로 풀었다. 다석은 『대학(大學)』의 ‘친민(親民)’을 풀어 말하길 씨어뵘”이라 하였다. 어버이 뵙듯이 뵌다는 뜻으로 푼 것이다. 하여 유신친고(維新親故)을 새롭게 하여 옛것 어뵈니”로 풀었다.
절대(絶對)는 상대(相對)를 끊고 넘어선 자리다. 여기 이곳 현상세계 너머다. 그렇다고 그 너머가 형이상학의 초월 세계는 아니다. 끊어진 자리는 다시 이 자리다. 그걸 깨닫는 것이 참을 꿍꿍하는 일이요, 참을 알음앓이 하는 일이다.
다석이 쓴 이 한시에는 ‘바다 해海’, ‘뉘우칠 회悔’, ‘그믐 회晦’가 쓰였다. 모두 매양 매(每)를 품었다. 우리말 매양은 ‘늘’, ‘언제나’, ‘마다’라는 뜻이다. 흥미롭잖은가? 다석은 말놀이를 즐겼다. 한자 하나하나를 쓰면서 언 듯 매양 매(每)가 보이도록 했다. ‘늘’이다. 그런데 이 ‘늘’은 두 가지로 풀 수 있다.
늘 안 바뀐다.
늘 바뀐다.
처럼, 늘은 바뀌기도 하고 바뀌지 않기도 한다. 그야말로 ‘늘’은 두 얼굴을 한 얼굴로 가진 말이다. 다석은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를 길 옳단 길이 늘길 아니고,”라 하였다. ‘길’이란 ‘옳다 그르다’의 ‘옳다’가 아니란다. ‘늘길’이란다. 이때 ‘늘’은 붙박여 있지 않은 ‘길’을 뜻한다. ‘길’은 늘 바뀌고 뒤바뀌면서 가는 까닭이다. 오늘 옳은 것이 하제 가서는 그른 것이 될 수 있다. ‘옳’에 붙박이면 ‘길’은 열리지 않는다. 붙박이지 않은 자리가 ‘없’자리다. 그래서 ‘절대(絶對)’를 여기선 ‘늘없’이라 풀었다. ‘늘’조차 끊어 넘어선 자리가 절대이기 때문이다. 새롭게 하여 옛것 어뵈니 ‘늘없’ 옳이다. 이 자리를 깨쳐야 한다. 늘 스스로를 새롭게 하여 옛것 어뵈야 한다. 다석은 사서삼경조차 구약이라 했다. 아니, 세상에 있는 진리의 말씀은 다 구약이라 했다.
작은 글씨를 뒤에 붙였다. 新故·恒同”이다. 신고·항동이란 새것 옛것, 늘 같음”이란 뜻이다. ‘늘 상(常)’을 쓰지 않고 ‘늘 항(恒)’을 썼다. 마음(心) 속 하늘땅(二) 사이에 빛(日)이 있으란 이야기다. 그 자리가 ‘늘없’ 자리다. ‘’자리다. 그 자리에 솟아야 하리라.9
새롭게 하여 옛것을 어뵌다는 뜻을 박영호의 저술 생애에 대어 본다. 마침보람을 받은 뒤 그에게는 또 다른 일이 주어졌다. 다석 전기를 쓰는 일이었다. 1971년부터 그는 스승의 생애와 사상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다석이 남긴 일지와 자료를 살피고, 직접 말씀을 들으며 구술을 채록했다. 다석이 읽은 책을 찾아 읽었고, 스승의 사유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시대의 흐름 속에서 추적했다. 단순히 일화를 모은 것이 아니라 한 사상가의 삶과 생각이 어떻게 자랐는지 그 뿌리와 줄기를 밝히는 작업이었다.
1981년 다석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작업은 계속되었다. 1985년에 펴낸 『씨 다석 류영모의 생애와 사상』은 다석 연구의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다. 이후 개정과 보완을 거쳐 『다석 전기―류영모와 그의 시대』로 이어지면서 다석의 일생은 더욱 촘촘하게 기록되었다. 그가 남긴 전기와 평전은 한국 근현대 사상사를 연구하는 이들이 거쳐야 할 기초 문헌이 되었다. 스승을 떠나 홀로 공부했던 사람이 다시 스승의 삶을 기록하는 일에 돌아온 것이다.
박영호의 업적은 전기에 머물지 않는다. 1990년대 『문화일보』에 다석의 사상을 325회에 걸쳐 연재한 일은 각별하다. 대중에게 낯설었던 다석의 한글철학을 신문 지면으로 끌어냈기 때문이다. 연재를 바탕으로 『다석사상전집』을 펴냈고, 『다석 류영모 어록』, 『다석 류영모 명상록』, 『다석 류영모의 얼의 노래』 등을 엮고 풀었다. 다석의 말과 글을 흩어진 기록으로 남겨 두지 않고 서로 잇대어 읽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다석 마지막 강의』는 다석이 1971년에 한 강의의 녹음을 글로 옮기고 풀이한 책이다. 주규식의 기록을 바탕으로 한 『다석 씨알 강의』도 펴냈다. 『다석중용강의』와 불경 풀이, 『죽음 공부』와 『깨달음 공부』에서도 스승의 사유를 새롭게 밝혔다. 이 저술들을 관통하는 물음은 하나다. 다석은 무엇을 깨쳤고, 그 깨침을 어떤 말로 남겼으며,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는 다석사상의 보존자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해석자였다. 스승의 언어를 지키는 일과 오늘의 말로 풀어내는 일 사이의 긴장을 피하지 않았다. 때로는 한 뜻말을 여러 경전과 비교했고, 때로는 어려운 사유를 분명한 개념으로 정리했다. 다석의 깨침은 박영호를 거치면서 여러 사람이 함께 배우고 토론할 수 있는 자리로 옮겨졌다. 옛것을 어뵈는 마음은 옛말에 머무르는 것으로 다할 수 없었다.
다시 졸업증을 보자. 시 옆에 으이아오(ㅡㅣㆍ) 십자가를 그렸다. 비어 있는 십자가다. 그 빈 자리에 한 시에 나온 글귀 몇 개를 골라서 썼다.
십자가 위(머리)
晦朔 회삭 — 그믐, 초하루
십자가 가운데(몸)
朕望朢 짐망망 — 나, (바라)봄, 보름
십자가 아래(발)
始悔明 시회명 — 비롯, 뉘우침,
머리는 회삭이다. 그믐에 초하루다. 늘 텅 비어 있으란 이야기다.
몸은 ‘짐망망’이다. 나는 보름 바라보란 이야기다. 몸은 채우란 이야기다. 채우고 비우기를 돌리고 돌리란 이야기겠다. 머리는 비우고 몸은 채우는 일이다. 그것들 돌리는 일이겠다.
발은 시나브로 뉘우치고, 시나브로 비롯해야 한다. 큰이(大我)는 발 뒤굼치로 숨을 쉰다고 했다. 발 뒤굼치로 숨을 쉬어야 한다. 그 자리에 ‘(明)’이다. 해달이 한꼴로 도는 자리는 삭(朔)이다. 그러므로 ‘’은 보름달이 아니다. 초하루다. 빈자리다. 텅 비어 빈 그 자리가 ‘’이다.
박영호는 이러한 사유를 관념으로만 설명하지 않았다. 하루를 하나의 일생으로 살아가는 ‘일일일생(一日一生)’, 식욕을 줄이고 몸을 다스리는 ‘하루 한 끼’, 죽음 앞에서 삶을 온전히 깨닫는 ‘죽음 공부’를 함께 강조했다. 죽음을 공부한다는 것은 삶을 부정하는 일이 아니다. 죽음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비로소 오늘의 삶이 얼마나 귀한지 알게 된다는 뜻이다. 머리와 몸과 발로 나누어 읽은 졸업증의 글귀가 다시 한 사람의 하루 안으로 들어오는 자리다.
‘씨’은 한 생명 안에 깃든 하늘의 가능성을 일깨우는 말이다. 씨은 작지만 그 안에 온 생명의 싹을 품는다. 함석헌이 씨을 역사와 사회를 움직이는 민중의 주체로 발전시켰다면, 다석은 그 씨 안에서 한아님의 얼이 어떻게 솟나는지를 물었다. 박영호는 씨의 삶이 곧 얼나의 삶과 떨어져 있지 않음을 밝히고자 했다. 작은 한 점을 읽다가 한 생명의 일을 생각하게 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하늘을 우러르는 공부는 제 발이 디딘 땅의 삶과 떨어져 있지 않다.
다석은 달이 차고 기우는 일에 빗대어;
그믐∞초하루
끝∞비롯
새것∞옛것
관계를 살피면서,
‘첫비롯’
‘나없’
‘하나’
‘늘없’
‘맟’
을 말씀하셨다. 이것이 졸업증에 쓴 한시 풀이다. 그런데 이조차 제자가 어려워 할까봐, 한글로 덧글을 붙였다. 글씨가 작은 데다가 한문을 흘려 써서 알아보기 어려운 글꼴이 몇 있다. 그렇지만 어렵지 않게 읽을 수는 있다.14
이 졸업증을 읽는 일은 박영호를 기리는 일의 한복판에 놓인다. 스승이 제자에게 보낸 글을, 그 제자가 살아낸 평생과 함께 읽는 것이다. ‘첫비롯’, ‘나없’, ‘하나’, ‘늘없’은 농사를 짓고 책을 쓰고 후학과 함께 공부한 시간에 기대어 읽을 말이 된다.
2025년 5월, 수원에서 스승의 날 초청 강연을 마치고 선생님과 함께 걸었다. 날은 맑았고, 선생님 영혼은 더 맑았다. 그날 함께 걸었던 선생을 이제 글 속에서 다시 만난다. 먼저 듣고 배운 사람은 뒤에 묻는 사람에게 무엇을 건네야 하는가. 받은 말씀을 되풀이하는 일에 머물 것인가, 그 말씀으로 오늘의 삶을 새롭게 물을 것인가.
그림6) 2025년 5월 수원에서 스승의 날 초청 강연을 마친 뒤 함께한 박영호 선생과 글쓴이다. 글쓴이는 이제 박영호 선생의 뒤를 잇는 생각을 한다.
다석에게 직접 배운 세대가 하나둘 세상을 떠난 뒤, 임락경 목사처럼 스승의 삶을 가까이에서 본 이들의 증언은 더욱 귀하다. 박영호의 귀천은 말씀을 직접 듣고 그 삶을 지켜본 세대의 소중한 자리가 비었다는 뜻이다. 그 빈자리를 이름을 높이는 말만으로 채울 수는 없다. 남겨진 기록을 읽고, 흩어진 자료를 모으며, 무엇이 스승의 말씀이고 무엇이 제자의 풀이인지 살펴야 한다.
무엇보다 ‘박영호 아카이브’를 구축해야 한다. 그가 평생 수집한 다석 관련 자료는 한국 근현대 종교철학의 중요한 사료다. 친필 일지와 서신, 강의 노트와 구술 채록, 저술 초고와 교정지, 출판 자료와 제자들의 기록까지 조사해야 한다. 원본의 소재와 소장 이력을 확인하고 디지털로 보존해야 한다. 졸업증 원본과 관련 기록을 함께 살피는 일은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그와 함께 박영호 전집을 기획해야 한다. 한 권의 책이 여러 출판사를 거쳐 개정되면서 무엇이 달라졌는지, 다석 원문과 박영호 주해가 어떻게 구별되는지 밝혀야 한다. 『다석일지』와 어록, 강의록을 교차 대조하는 일이 중요하다. 박영호가 어떤 자료를 바탕으로 무엇을 새롭게 해석했는지 살필 때 그의 공헌도 온전히 드러난다. 뜻말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과 근거를 살피는 일은 함께 가야 한다.
이것은 다석학파의 학문적 토대를 세우는 일이다. 다석에게서 함석헌으로, 김흥호와 이정호로, 박영호와 여러 수행자로 이어지는 사상의 흐름을 밝혀야 한다. 각 제자가 무엇을 받아들였고, 무엇을 달리 해석했으며, 어떤 새로운 뜻말을 일으켰는지 살펴야 한다. 그럴 때 다석학파는 말씀을 반복하는 모임을 넘어 서로 다른 깨침이 만나며 자라나는 살아 있는 학문이 된다.
박영호가 받은 마침보람의 참뜻을 생각한다. 마침은 끝이면서 새로운 시작이다. 스승에게서 배움을 마치는 것은 스승을 떠나는 일에 머물지 않고, 스승의 뜻으로 홀로 서는 일이다. 다석은 박영호에게 마침보람을 주었고, 박영호는 한평생 그 뜻을 살아냈다. 이제 박영호의 제자들과 다석학을 공부하는 후학들이 새로운 마침보람을 받을 차례다. 그것은 스승을 기리면서도 스스로 공부하고 깨쳐 새로운 사유를 일으키는 일이다. 박영호가 남긴 기록을 온전히 보존하고, 그의 해석을 넘어 다석에게 묻고, 다석을 넘어 오늘의 삶을 묻는 일이다.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이름조차 남기지 않으려 했던 박영호. 그러나 그는 이름보다 오래 남을 말씀의 길을 닦았다. 흙을 일구며 얼을 키웠고, 스승의 말씀이 사라지지 않도록 평생 글을 썼다. 이제 그의 몸나는 흙으로 돌아갔으나, 그가 밝힌 얼나의 길은 남아 있다. 다석의 제자로 살았던 박영호가 이제 스승이 되었다. 우리가 그에게 받은 가르침은 무엇인가. 스승의 말씀을 외우는 데 그치지 말고, 제 삶에서 다시 깨쳐 새 길을 열라는 것 아닐까. 마침보람. 배움이 마친 자리에서 새로운 깨침이 시작된다.
박영호 선생이 한아님, 한웋님 품에 안겼다. 그의 한평생 구도행에 깊은 존경과 고마운 마음을 올린다.
김종길 다석철학 연구자 gjg6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