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스케치] 25년 흐른 9·11···기억을 넘어 치유로 [사회혁신] 2001년 9월 11일 발생한 월드 트레이드 센터 테러 사건 25주기가 지나갔다. 9·11은 미국의 국치일과 같은 날이다. 이 날을 앞뒤로 결코 다시는 (Never Again) 구호가 외쳐진다. 올해는 25주기란 상징성 때문에 비극에 대한 기억 되살리기가 더욱 활발했다. 50년 뉴요커로서, 비록 건물이 무너져 내린 현장에 있지 않았지만, 그 날을 멀찍이 경험한 필자는 매년 이 날에 추모 공원격인 9·11 메모리얼 을 찾는다. 옛 월드 트레이드 센터 자리에 세워진 프리덤 타워 가 보이는 집을 나서 걸으면 한 시간이면 그곳에 도착하니 이 날을 슬쩍 지나치려 해도 쉽지가 않다. 올해도 그때를 회상하는 순례(?)에 나섰다.
올해는 25주년의 상징성 때문에 이 비극에 대한 기억 되살리기가 더욱 활발했다. 50년 뉴요커로서, 비록 건물이 무너져 내린 현장에 있지 않았지만, 2001년 9월 11일을 경험한 필자는 매년 이 날에 추모 공원격인 9.11 메모리얼 을 찾는다. 아파트에서 옛 월드 트레이드 센터 자리에 세워진 자유의 타워(Freedom Tower) 가 보이는 집을 나서 걸으면 한 시간 내에 그곳에 도착하니 이 날을 슬쩍 지나치려 해도 쉽지가 않다. 올해도 그때를 회상하는 도보 순례(?)에 나섰다.
항상 그렇듯 뉴욕은 이날도 물론 분주하다. 아침부터 9·11 메모리얼 에 피해자 가족들이 모여 한 사람 한 사람 희생된 가족의 이름을 부르고 기념 행사를 치른다. 그 날 책임을 다하려 현장으로 달려갔다가 희생되었거나, 그 후 질병으로 사망한 경찰, 소방관은 순교자의 위치에 있다. 이들의 이름이 불리면서 그날의 역사가 고스란히 재연된다. 이 시간, 일반인은 현장을 찾을 수 없다.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시간과 공간이니 분위기는 성스럽고 엄숙하다. 관광이나 호기심의 대상이 아니란 뜻이다.
하지만 9·11 메모리얼 로만 방문객이 몰리지 않는다. 해가 갈수록 그날의 비극에 대한 기억, 또 현장 순례를 넘어, 참사의 아픔을 치유하고 평화를 추구하자는 메시지가 담긴 장소와 행사가 사람들의 발길을 끈다. 망각한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경고를 넘어서 정치 사상가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의 말대로 과거의 과오와 결함으로부터 미래의 지혜가 될 재료 를 찾는 노력이 눈에 띈다. 아픈 역사의 기억 속에서 희망의 재료를 건져내려는 노력의 현장을 포토 스케치로 옮긴다.
(이길주 시민기자)
신성한 신앙 예식으로도 느껴졌다. 추모객 가족이 흰 종이를 대고 검은 크레파스로 문질러 희생자의 이름을 뜨고 있었다. 처음이 아닌 듯했다. 손놀림이 익숙했다. 생명을 앗아간 9·11, 그 비극과 참사도 기억하지만, 동시에 희생자가 살았던 삶의 가치를 잊지 않겠다는 마음이 읽혔다.
(이길주 시민기자)
9·11 메모리얼의 추모 광경에도 미세한 변화가 있었다. 이날은 미국의 상처와 아픔인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긴 강처럼 이 역사의 물결 속에는 미국이 아닌 다른 국적자들의 희생도 포함되어 있다. 여기 9·11은 단순한 미국의 비극과 아픔이 아님을 말하는 이미지가 보인다. 한국 국적자, 또 한국계 미국인의 희생을 전한다. 추모객이 많은 것 같지는 않다. 이날 필자가 찾은 유일한 태극기이다.
(이길주 시민기자)
독일 바이에른 지역의 소방대원들은 9·11 25주기를 뉴욕에서 보내기 위해 방문 일정을 짜고 여행비용을 마련했다고 한다. 뉴욕에 머무르는 열흘 동안 뉴욕시 소방국(FDNY) 관련 행사로 일정을 짤 정도로 국제적 동지의식이 강했다. 좀처럼 밝은 표정을 찾기 어려운 추모 현장이지만, 이들은 연대감에 대한 자부심을 미소로 표현했다.
(이길주 시민기자)
9·11 메모리얼에는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 충돌한 두 여객기(American Airlines Flight 11과 United Airlines Flight 175)를 상징하는 기내식 운반용 서비스 카트 두 개가 추모객의 발길을 멈춰 서게 했다. 지상에서도, 공중에서도 희생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이 카트들이 상기시킨다. 추모객들이 직접 만질 수 있는 이 카트는 그날에 대한 감정 이입을 돕는다.
(이길주 시민기자)
맨해튼 미드타운 42가에 위치한 뉴욕 시립도서관 뒤에 브라이언트 파크(Bryant Park)가 있다. 이곳에 빈 철제 의자 2753개가 펼쳐져 있었다. 희생자 숫자다. 이곳에 추모객들이 흰 카네이션과 회상 또는 추모 메시지를 적은 노트를 매달았다. 방문객들이 자신의 꽃과 노트를 남기고 나서 의자 사이를 오가며 다른 이들의 메시지를 읽는, 하나 되기 위한 추모 행위였다. 나의 아픈 속내를 모든 이와 공유하고, 다른 이의 아픔도 품어주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 끔찍한 테러의 총 희생자는 2977명이다. 월드 트레이드 센터, 그리고 펜타곤(국방부 건물)과 펜실베이니아에 추락한 유나이티드 항공 93편의 희생자들을 합친 숫자다.
(이길주 시민기자)
한 노트에는 9·11 이전의 세계가 더 친절하고, 안전하고, 순박하고, 밀접했다. 우리는 어떻게 그것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The world before 9/11 seemed kinder, safer, simpler, more connected. How do we find that…) 묻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세상은 더욱 평화가 없게 됐다는 비탄인데, 9·11이 발생하고 미국은 이라크를 침공했다. 지금 미국은 이란과 전쟁 중이다. 그날을 겪은 뒤 미국이 더욱 폭력적이 된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이길주 시민기자)
(이길주 시민기자)
태어나기 한참 전에 발생한 사고 추모의 현장을 찾아 메시지를 남기는 어린이들도 만날 수 있었다. 누구를 위한 메시지를 남기려는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상이 구체적인 인물인가? 아니면 교육적 가치 때문에 부모를 따라 이곳에 온 경우인가? 어쨌든 식상한 표현 살아있는 역사 교육의 현장 이 그래도 제일 정확한 표현 같았다.
(이길주 시민기자)
두 일본인 추모객은 일종의 문화 체험 을 위해서 왔다고 했다. 전범국인 일본에서는 전사자나 전쟁의 희생자를 대놓고 개인 차원에서 추모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그래서 전쟁 사망자의 이름을 합사하는 전통이 있다. 개인의 아픔보다는 집단의 아픔으로 기억하는 것이다. 일본인 방문객들은 미국의 추모 문화가 개인의 존재를 드러내고, 추모자가 깊은 속내를 드러냄으로써 떠나간 이나 남아 있는 가족, 친지가 치유로 다가간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이길주 시민기자)
낮에는 희생자들이 떠난 빈자리를 상징했던 브라이언트 파크에서 그날 저녁 무료 추모 클래식 연주가 펼쳐졌다. 추모의 마음은 침묵으로만 표현되지 않는다는 메시지로 읽혔다. 편한 곳을 찾아 앉거나 눕고, 또 친지, 가족들이 음식을 나누기도 했다. 자유와 평화, 개성의 잔디밭이라고 이름 지어도 될 듯했다. 9·11의 상처를 극복하고 가야 할 지향점이다.
(이길주 시민기자)
뉴욕에서 가장 화려하고 활발한 곳은 타임스퀘어다. EFS—전자기기(Electronics), 의류(Fashion), 공연(Show)을 광고하는 전광판으로 뒤덮인 이곳에 9·11을 잊지 말자는 메시지가 떴다. 대형 광고용 전광판에 그날의 기억을 촉구하는 호소, 그 자체가 기억이 희미해지고 있다는 징표일지도 모른다.
(이길주 시민기자)
타임스퀘어 인근에서는 희생된 영혼의 안식을 기원하는 해원굿과 같은 공연도 눈길을 끌었다. 흰 드레스 차림으로 구천을 떠도는 영혼이 안식처를 찾고 꽃에 둘러싸여 영면에 드는 장면에서 관객들은 희생자의 영혼도 그렇게 되길 기원하는 듯했다.
(이길주 시민기자)
(이길주 시민기자)
치유 노력의 가장 확실한 징표는 Intrepid 박물관 으로 꾸려진 퇴역한 항공모함에서 펼쳐진 대규모 자원봉사 프로그램이었다. 수백 명의 봉사자들이 필요한 식품을 구입하지 못하는 계층을 위해 곡물을 포장해 기부했다. 이 항공모함이 현역으로 운용되던 시기에는 폭격기들이 작전에 투입되기 전 대기 중이었을 격납고는 자원봉사자들의 흥과 열기로 채워졌다. 봉사자들의 표정에서 그날의 아픔을 극복한 듯한 인상을 받았다.
(이길주 시민기자)
9·11 마케팅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Rise or Die (일어나든지 죽든지)란 부제가 달린 로빈 후드에 관한 영화 Uprising 이 그날 개봉했다. 9·11 즈음에 고개를 드는 증오심, 애국심, 영웅심에 편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흥행 전략은 완전히 실패했다. 2000 곳이 넘는 극장에서 개봉됐지만 현재까지 300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데 그쳤다. 9.·1에 대한 사고가 성숙해진 결과라 믿고 싶다.
(이길주 시민기자)
아픔과 미움, 또 치유의 분위기로 채워졌던 맨해튼의 9·11. 지하철에서 만난 뉴요커는 도저히 눈이 가지 않을 수 없는 차림이었다. 축복, 은혜, 감사 가 가슴과 두 무릎 위치에 새겨져 있었다. 아직도 남아 있는, 그날이 가져다준 슬픔, 혼란, 증오심을 대체할 메시지가 담긴 패션임은 확실하다.이길주 뉴욕통신원 kiljy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