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압박에 세계은행 이어 IDB·ADB도 흔들...기후금융 목표 재점검 [뉴스] 개발도상국의 기후변화 대응을 돕기 위해 국제사회가 마련한 1조3000억달러(약 1750조억원) 규모의 글로벌 기후금융 로드맵이 출범 초기부터 좌초될 위기에 내몰렸다.
13일(현지 시각)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에 따르면, 다자간개발은행(MDB)의 최대 지분을 쥔 미국의 거센 압박에 밀려 미주개발은행(IDB)과 아시아개발은행(ADB) 등 주요 다자대출기관들이 기후금융 대출 할당 목표를 폐지 또는 변경을 내부적으로 논의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세계은행이 지난 6월 기후 관련 목표를 일부 폐기하기로 결정한 데 따른 후속 움직임이다. FT에 따르면, 미국은 MDB에 기후금융 확대 목표를 낮추고 화석연료 사업에 대한 금융 제한도 완화할 것을 요구해왔다.
개발도상국의 기후변화 대응을 돕기 위해 국제사회가 마련한 1조3000억달러(약 1750조억원) 규모의 글로벌 기후금융 로드맵이 출범 초기부터 좌초될 위기에 내몰렸다. 미국의 압력으로 세계은행을 비롯한 개발금융기관들이 기후목표 폐지를 공약했거나 논의중이다./ 세계은행
세계은행 이어 IDB·ADB도 ‘기후 대출 목표치’ 백지화 착수
지난 6월 세계은행은 전체 금융 집행액에서 기후 공동 이익(Climate Co-benefits) 으로 산정되는 비중을 45%까지 높이겠다는 목표를 철회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세계은행은 앞으로는 실제 온실가스 감축량과 기후위험에 대한 회복력이 높아진 사람의 수 등 ‘결과’를 중심으로 평가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변화가 다른 개발은행으로도 확산되고 있는 흐름이다.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해 지역의 최대 개발금융 공급처인 IDB는 전체 자금의 45%를 기후 분야에 쏟아붓도록 설계된 현행 목표를 재조정하라는 미국의 실질적인 압력을 받아왔다. IDB는 2025년 기후금융 지원액을 전년 대비 46% 늘려 99억5000만달러(약 13조원)까지 확대한 바 있다.
IDB는 자금 조달 규모라는 단일 숫자만으로는 실제 지원 성과를 완전히 담아내지 못한다 면서 기후 행동의 의지가 꺾인 것이 아니라 투자의 실질적 영향력과 성과 지표에 초점을 맞추는 개편 이라고 밝혔다.
ADB는 2025년 자체 재원에서 135억달러(약 18조원)를 기후금융으로 약정했으며, 이는 전체 연간 금융약정의 51%였다. 하지만 ADB 역시 목표치 폐기 여부를 신중히 저울질하고 있다. ADB는 현재 2019~2030년 자체 재원에서 누적 1000억달러 이상의 기후금융을 공급하고, 2030년까지 연간 금융의 50%를 기후금융으로 만드는 목표를 두고 있다. ADB 측은 현행 목표가 아직 유효하지만 2027년 정기 제도 검토 과정에서 조정 여부를 다룰 것이라는 공식 입장을 내놨다.
선진국 재정 긴축 맞물려… ‘연 3000억달러’ 신규 목표 비상
개발은행의 녹색 금융 후퇴는 주요 공여국들의 재정 긴축 기조와 맞물려 파장이 커지고 있다.
유엔(UN)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를 통해 합의된 신규 기후재원 조성 목표(NCQG)에 따르면, 선진국이 주도해 2035년까지 개도국 기후금융을 연간 최소 3000억달러(약 405조원)로 확대하기로 했다. 또 공공, 민간 투자 유치 등을 포함해 총 1조3000억달러(약 1758조원)를 조성하도록 노력하기로 약속한 상태다.
특히 MDB는 이 목표를 달성하는 핵심 통로로 꼽혀왔다. 적은 규모의 정부 출자자본을 기반으로 국제 자본시장에서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한 뒤 개발도상국에 대출하고, 다시 민간자본을 끌어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FT에 따르면 MDB가 저·중소득국에 제공한 기후금융은 지난해 1030억달러(약 139조원)까지 증가했다.
하지만 재정 적자와 국내 보수 여론에 직면한 유럽 각국은 공적 지원 축소에 나서고 있다.
독일은 연간 60억유로(약 8조8500억원) 지원 목표 달성이 불투명해졌고, 영국은 향후 3년간 약 60억파운드(약 10조5500억원)를 ODA 기후금융으로 쓰기로 했다. 이전 5년간 116억파운드와 비교하면 연평균 기준 약 14% 감소한 규모다. 올해 초에는 유엔 녹색기후기금(GCF) 공여 약정액도 반토막 냈다.
화석연료 규제 완화 요구… 개도국 에너지 전환 차질 불가피
국제금융계에서는 저소득·개발도상국으로 흘러가는 녹색 자금줄이 마를 경우 화석연료 탈피와 기후 적응 사업이 치명상을 입을 것으로 우려한다. 다자개발은행은 신용등급이 취약한 개도국 프로젝트에 상대적으로 저렴한 금리로 대출을 제공해 민간 자본의 진입을 유도하는 마중물 역할을 해왔다. 실제로 지난해 개발은행의 중소득국 기후금융은 전년 대비 21% 늘어난 1030억달러(약 139조원)에 달했다.
천연자원보호협의회(NRDC)의 조 스웨이츠(Joe Thwaites) 국제기후금융 디렉터는 미국이 지분율이 높다고 해서 유일한 주주는 아니다 라며 미국 외 다른 공여국 주주들이 자금 운용의 독립성을 지키고 목소리를 내야 할 시점 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