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메가 프로젝트 환호 속에 던지는 다섯 개 질문 [사회혁신] 6월 29일 청와대 영빈관. 대통령은 두 그룹 총수를 ‘국가영웅’이라 부르면서 국민을 대표해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비서실장은 브리핑에서 단군 이래 이런 규모의 투자가 릴레이로 발표된 사례는 없다”고 했다. 반도체, 피지컬AI, AI데이터센터의 3대 메가 프로젝트. 서남권 800조 원, 삼성 2655조 원, SK 2100조 원. 숫자의 융단폭격 앞에서 시장도 언론도 잠시 산수를 멈췄다. 숨도 멈출 지경이다. 그러나 나라의 향후 20~30년을 건다는 계획일수록 필요한 것은 박수가 아니라 검증이다. 다섯 가지 질문을 던진다.
① 4700조와 1500조 사이의 간극
삼성 2655조 원과 SK 약 2100조 원을 합치면 4700조 원을 넘는다. 지난해 명목 국내총생산(약 2600조원)의 1.8배다. 그런데 정부 발표 자료 기준 집계는 약 1500조 원 수준이고, 두 수치의 간극을 묻는 기자에게 비서실장은 4700조는 확인하지 마시고 기업에다 확인하라”고 답했다. 국가의 명운을 걸었다는 프로젝트의 총액이, 발표 당일 정부 안에서조차 하나로 정리되지 않은 것이다.
내역을 뜯어보면 숫자의 성격이 드러난다. SK하이닉스의 용인 600조 원은 부지와 건물값이 아니라 향후 십수 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집행될 생산설비·장비 투자의 누계다. SK의 AI데이터센터 1000조 원은 자기자본이 아니라 전략적 파트너 투자, 고객사 입주 계약, 프로젝트 파이낸싱”으로 유치하겠다는 돈, 즉 아직 존재하지 않는 돈이다. 수십 년의 누적 설비투자와 미래의 외부 조달을 현재형 한 줄로 압축하면, 숫자는 커지지만 정보는 사라진다. 청와대는 스스로 기조가 언더 프로미스, 오버 딜리버리”라고 했다. 하지만 기조는 숫자의 회계적 규율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29일 청와대에서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열린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투자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2026.6.29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② 슈퍼사이클 정점에서 그린 20년 곡선
비서실장은 흥미로운 수치를 공개했다. 1985년 이후 40년간 삼성전자가 반도체로 벌어들인 누적 이익이 295조 원인데, 올해 한 해 이익이 350조 원이라는 것이다. 경이로운 숫자다. 그러나 경제사에서 이런 종류의 숫자는 대개 축포가 아니라 경고음이었다. 40년치 이익이 1년에 쏟아지는 국면이란, 정의상 사이클의 정점 부근일 공산이 크다.
메모리는 산업사에서 가장 골이 깊은 사이클 산업이다. 불과 3년 전인 2023년, 두 회사의 반도체 부문은 도합 20조 원대 적자를 냈다. 사이클 리스크를 묻는 외신 기자에게 돌아온 답은 오늘 투자를 발표한 분들은 이게 사이클이 아니라 계속 가는 것으로 받아들인다”였다. ‘이번엔 다르다(this time is different)’는 금융사에서 가장 비싼 값을 치러 온 단어다. 물론 AI가 수요의 구조 자체를 바꿨을 수 있고, 메모리 시장이 5년 내 4배로 커진다는 전망도 있다. 최태원 회장 자신도 시장의 수요를 면밀히 관측하며 투자를 집행하겠다”는 단서를 달았다. 문제는 발표는 확정형인데 집행은 조건부라는 점, 그리고 그 간극이 만들어낼 비용의 계산서가 어디에도 없다는 점이다. 하나 더 있다. 최 회장은 공급부족이 가격 급등과 시장 축소를 부를 수 있어 공급을 대폭 늘리겠다고 했다. 증설로 가격을 안정시키겠다는 것은 정의상 미래 마진의 하락을 감수하겠다는 뜻이다. 국가에는 옳고 주주에게는 물음표인 이 긴장을 누가 어떻게 메울지도, 답을 못찾겠다.
③ 발표문에서 잘 읽히지 않는 전기와 물 문제
계획대로라면 AI데이터센터만 총 18.4GW다. 대형 원전 13기가 쉼 없이 돌아야 감당할 상시 부하이고, 현재 국가 전체 발전설비(약 145GW)의 13%에 해당한다. 여기에 서남권 팹 4기가 더해진다. 정부의 답은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100GW 조기 달성”인데, 태양광 누적 보급이 27GW 남짓임을 감안하면 남은 4년 안에 지금까지 수십 년간 쌓은 설비의 세 배 규모를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실현되면 훌륭하다. 다만 그것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메가 프로젝트이며, 3대 프로젝트의 성패가 제4의 프로젝트에 얹혀 있다는 사실은 발표문 어디에도 강조돼 있지 않다.
용수도 같은 구조다. 서남권 ‘다중수원 100만 톤’은 각 댐의 여유량과 미사용 물량, 하수 재이용, 발전용수를 긁어모은 산수이고, 전제는 정상 강수다. 비서실장 스스로 가뭄 발생 시 시뮬레이션은 지금 만들고 있다”고 했다. 순서가 뒤집혔다. 시뮬레이션이 발표보다 먼저 이루어졌어야 한다. 용인 송전망의 주민 수용성을 묻는 질문에 돌아온 어느 지역이 늦어지면 다른 지역이 먼저 될 것”이라는 답도 마음에 걸린다. 지역 간 경쟁 압박은 갈등의 해결이 아니라 갈등의 외주화이기 때문이다.
④ 리스크는 누가 감당하는가
구조를 보자. 정부는 전력·용수·부지·인허가를 책임지고” 공급하기로 했다. 기업의 투자는 시황 조건부다. 지방정부 매칭 재원이라는 ‘5조~20조 원’의 실체는 막 취임한 지자체장의 의지 표명이며, 실무 협의는 시작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브리핑에서 확인됐다. 반도체 특별회계는 2027년 약 2조 원. 800조원 프로젝트의 0.25%다. 미국은 반도체법으로 390억 달러의 직접 보조금을 편성했고, 일본은 TSMC 구마모토 1공장(총투자 약 11조 원)에만 4760억 엔을 현금으로 지급했다. 우리는 인프라와 세제라는 간접 지원으로 800조 원짜리 결단을 견인하겠다는 설계다. 이 설계가 틀렸다는 게 아니다. 다만 전례 없는 총력 지원”이라는 수사와 재정의 실제 크기 사이의 간극은 정직하게 공개되어야 한다.
이 비대칭이 호황 동안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사이클이 꺾이는 순간이다. 기업이 투자 속도를 조절하면—기업에는 그럴 권리가 있고, 이사회에는 그럴 의무마저 있다—먼저 깔아 놓은 송전망과 도수관로와 산업단지는 좌초자산이 되고, 청구서는 한전과 수자원공사를 거쳐 결국 국민에게 온다. ‘이익의 사유화, 리스크의 사회화’라는 오래된 문법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수요 검증에 연동된 단계별 투자 게이트, 인프라 선투자의 분담과 회수 규칙이 정부·기업 간 협약으로 명문화되어야 한다. 90도 인사가 아니라 이것이 진짜 계약이다.
정부가 서남권에 800조원, 충청권에 81조원을 투자하는 등 3대 메가 프로젝트를 추진한다고 밝힌 29일 충남 아산 삼성디스플레이 아산캠퍼스 모습. 삼성디스플레이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와 차세대 디스플레이 생산 거점인 아산·천안캠퍼스를 기반으로 10년간 100조원 상당의 대규모 투자에 나설 것으로 전해졌다. 2026.6.29
⑤ 산업의 시계는 정치의 시계와 다르게 간다
정부는 이 정부 안에 완공”을 목표로 내걸며 2년 만에 시작한” 구마모토를 인용했다. 그러나 구마모토는 기존 산업 기반 위에 직접 보조금으로 지은 단일 팹이었다. 서남권은 그 수십 배 규모, 도시 하나를 새로 짓는 클러스터다. 대통령 직할 전담관,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는 특별위원회, ‘반도체 짜르’까지— 추진력은 인상적이지만, 거버넌스 전체가 특정 인물과 임기에 묶여 있다. 20~30년짜리 프로젝트를 5년의 정치 시계에 맞출 때 생기는 부작용은 정해져 있다. 급행 인허가가 건너뛰는 안전·환경·갈등 비용, 그리고 정권 교체와 함께 증발하는 추진 체계다. 호남 배치는 균형발전 논리로 정당화되고 그 논리는 상당 부분 타당하다. 그러나 균형발전이라는 대의가 정치적 시간표와 결합할수록, 입지 결정의 경제성 검증은 더 엄격해져야지 느슨해져서는 안 된다.
돌발 변수 발생 시의 브레이크는 마련돼 있는가
송종운 평화와먹고사는문제 연구소장
이번 프로젝트의 방향은 옳고, 어쩌면 불가피하다. 잠재성장률 1%대의 나라가 슈퍼사이클로 확보한 실탄을 미래에 걸겠다는 결정은 놀랄 만한 결단이다. 다만 대도약과 대도박의 차이는 액셀이 아니라 브레이크의 유무에 있다. 독립적 수요 검증에 연동된 단계별 투자 게이트, 인프라 선투자의 분담·회수 규칙, 정권을 넘어 지속될 초당적 추진 체계, 그리고 국민이 진척을 확인할 수 있는 공개 마일스톤. 이 네 가지가 법과 협약에 박혀야 8월 출범할 반도체특위가 축하연을 위한 조직위원회가 아니라 사업을 위한 이사회가 된다. 초격차는 발표의 크기가 아니라 실행의 규율에서 나온다. 대통령의 90도 인사는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이제 고개를 들어 장부를 들여다봐야 한다.송종운 평화와먹고사는문제 연구소장 menwchen@mac.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