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란 12.3 , 계엄의 밤 돌아가 연대로 내란 종식 [사회혁신] 영화 란 12.3 의 이명세 감독이 29일 제주시청 CGV 극장에서 열린 제주 상영회 직후 관객과의 대화(GV)에 나서고 있다. (한요나 시민기자)
이 엄청난 일들이 얼마나 엉터리 같고 어처구니 없는 그들만의 잔치 속에서 벌어졌는가. 저는 이 사건을 역사의 법전은 아니더라도, 예술의 법정에 확실히 박제해 두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명세 감독은 지난 29일 저녁 제주시청 인근 CGV에서 열린 시네마틱 다큐멘터리 상영 직후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GV)에서 기획 의도를 이렇게 밝혔다. 이날 제주도민들과 함께 영화를 관람한 이명세 감독과 김민재 배우는 스크린 너머 현실로 이어지는 내란의 실체와 시민 연대의 가치를 깊이 있게 나눴다.
영화 란 12·3 포스터
다큐의 문법 파괴한 감각적 미장센, 그날 밤을 복원하다
은 전형적인 다큐멘터리의 작법을 완전히 벗어났다. 설명적인 내레이션 대신 만화적 기법과 AI 그래픽, 긴박한 오케스트라 사운드를 채워 넣었다. 특히 감독이 가장 공들였다는 오프닝 연출은 일국의 헌정 질서를 유린한 내란 이라는 범죄가 얼마나 허술하고 광기 어린 밀실 모의였는지를 드러낸다. 감독은 이 사건을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내란으로서 예술의 법정에 박제하고 싶었다 며 범람하는 가짜 뉴스와 SNS 전쟁의 시대에 영상 미디어가 가진 파급력을 직시하고 비판적으로 수용해야 함을 강조했다.
영화는 단순히 계엄 선포라는 단일 사건을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계엄 해제까지 수차례 반복되었던 내란의 실패와 시도를 낱낱이 기록한다. 추경호 국민의힘 당시 원내대표가 의원들의 집결을 방해하며 시간을 끌려 했던 시도, 정족수가 채워지려는 순간 헬기와 추가 병력을 투입해 국회를 무력화하려던 움직임, 나아가 단전·단수까지 계획하며 국회를 고립시키려 했던 과정들이 기록되어 있다.
해제 표결이 가결된 뒤에도 즉시 계엄이 해제되지 않자, 시민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공식 발표가 있기까지 새벽 4시가 넘도록 그 자리를 지키며 잠들지 못했다. 정권 교체를 이뤄낸 것은 몇몇 정치인의 술수가 아니라, 그 긴박한 밤을 끝까지 지켜낸 시민들의 간절하고도 처절한 연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 연대의 가치는 장애인을 위한 배리어프리 상영에서도 확인된다. 이명세 감독은 시각장애인 아버지를 둔 박성미 작가가 자비를 들여 화면 해설을 직접 제작해 배포한 뒷얘기를 전하며, 스크린으로 재현된 진실 앞에서 소외되는 이가 없어야 한다는 뜻도 전했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윤석열을 몰아낸 주역이라는 것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 포스터
내란 막고 정권 교체한 진짜 주인공은 국민
영화는 계엄 선포부터 국회 해제 요구 결의안 가결까지를 96분의 상영시간에 밀도 있게 담아냈다. 이 작품은 단순한 영화적 기록을 넘어, 우리가 지켜낸 민주주의의 가치를 다시 묻는다. 김민재 배우는 영화가 과거의 이야기로 박제되지 않고 내 삶과 일상에 깊숙이 들어와 있음을 매 순간 체감한다 며 크레딧에 이름을 올린 수많은 후원자를 보며 우리가 함께 연대하고 있다는 희망을 확인한다 고 소회를 밝혔다.
관객들은 영화를 통해 내란의 밤이 단순히 지나간 과거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이어지는 현재진행형임을 절감했다. 이 감독은 특히 영상 미디어의 파급력이 지대한 지금, SNS를 통해 퍼지는 가짜 뉴스를 선별하고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고 강조했다. 시민 한 명 한 명이 꼼꼼한 역사의 기록자가 되어야 한다는 당부였다.
진보의 분열, 내란 단죄를 흐리게 하다
하지만 극장 문을 나서는 순간, 우리는 위태로운 현실과 마주한다. 정권 교체 일 년을 넘긴 2026년 현재, 우리는 과연 시민들이 지켜낸 민주주의 위에 제대로 서 있는가. 지금 민주·진보 진영은 당권 경쟁에 매몰되어 심각한 내홍을 겪고 있다. 혁신과 연대 대신 파열음만 내는 정치권의 모습은 내란에 대한 엄중한 단죄의 목소리를 흐트러뜨린다.
정치가 제 할 일을 잊고 다툼에 몰두하는 사이, 그 틈새를 비집고 다시 고개를 들어 호시탐탐 때를 노리는 것이 극우 보수 세력이다. 민주 진보 진영의 분열은 결과적으로 내란 세력에게 기사회생의 여지를 제공하고 있다.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내부의 불필요한 경쟁을 멈추고, 더 큰 가치인 민주주의의 완결 을 향해 힘을 합쳐야 한다.
종교의 외피 쓴 극우 세력과 끝나지 않은 싸움
내란은 어느 날 갑자기 돌출된 사건이 아니다. 이명박 정권이 씨를 뿌려 박근혜 정권이 키운 극우 세력이 그 토양이다. 전광훈, 손현보 등 극우 성향 목사들이 주도한 윤 어게인 집회에서 보듯, 이들은 종교 라는 방패 뒤에 숨어 법망을 비웃었다. 방치된 이들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협하는 위험한 세력으로 성장했다.
최근 판사를 살해하겠다고 난동을 부린 서부지법 폭동 주동자들이 가벼운 처벌을 받고 풀려난 현실은 내란 세력에게 다시 힘을 실어준 꼴이 되었다. 배재고등학교의 스타벅스 가야지 응원 구호가 리박스쿨 도서 배포에서 비롯됐듯 교내에서 아무렇지 않게 일간베스트 저장소 (일베) 용어가 놀이로 소비되고 유명 커피 프랜차이즈는 5·18 왜곡 마케팅 에 나서는 것은 우리 일상에 스며든 극우화의 징후들이다. 내란을 도모했던 망령들은 사라지지 않고 우리 곁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다. 종교라는 이름으로 정치를 오염시키고, 혐오를 생산하는 이들에 대해 우리 사회가 단호한 경계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명세 감독 사진 프로덕션 에므
종결(完) 아닌 진행형(中) 내란… 다시 연대해야 할 때
이명세 감독이 영화 제목 뒤에 완 (完)이 아닌 중 (中)을 띄운 것은, 내란이 현재 진행형이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함이다. 감독은 극장은 곧 광장 이라며, 영화를 함께 보는 행위 자체가 연대의 시작임을 강조했다. 오는 12월 3일까지 극장 상영을 멈추지 않겠다는 다짐은, 영화라는 도구를 통해 시민들이 광장에서 다시 만나길 바라는 마음이다.
지금 우리가 을 다시 보아야 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정권 교체라는 과거의 승리에만 머물러 있을 여유가 없다. 계엄의 밤으로 돌아가 우리가 나눴던 절박함과 분노를 다시 기억해 내야 한다. 진보 진영은 소모적인 분열을 멈추고 힘을 모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혐오를 먹고 자라는 극우 세력은 더 큰 괴물이 되어 우리의 평범한 일상을 다시 짓밟을 것이다.
이명세(왼쪽 두 번째) 감독이 관객과의 대화(GV) 이후 김민재(가운데) 배우, 박성미(오른쪽 두 번째) 작가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그 날 밤, 장갑차 앞을 가로막고 총구를 맨몸으로 밀어냈던 시민들의 흔들림 없는 연대. 그것은 헌법을 수호하겠다는 의지이자, 더 나은 사회를 향한 위대한 발걸음이었다. 오직 그 연대의 힘만이 끝나지 않은 이 기나긴 내란의 진정한 마침표(完)를 찍을 유일한 무기다.
영화 이 기록한 그날의 함성은 지금도 우리 귓가에 울리고 있다. 다시금 광장에서, 다시금 일상에서, 우리는 서로를 연결해야 한다. 분열을 넘어 연대로, 무관심을 넘어 기억으로, 그렇게 우리는 내란의 어둠을 걷어내고 민주주의라는 거대한 빛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이 영화는 바로 그 연대의 출발점이며, 끝이 아닌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이제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 스크린은 묵묵히 묻고 있다. 우리에게는 아직 찍지 못한 마침표가 남아있다. 그 마침표는 오직 광장에서 시민들이 손을 맞잡을 때 비로소 완성될 것이다.한요나 시민기자 hanyon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