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차고 소리가 잦아들 때까지… 마지막 악보 같은 책 [사회혁신] 류이치 사카모토의 저서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황국영 옮김, 위즈덤 하우스)는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명제에 직면한 예술가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삶과 음악, 그리고 세상을 향해 건넨 숭고한 고백이자 깊고 정갈한 최종 보고서이다. 이 책은 암이라는 절망적인 선고 앞에서 슬퍼하거나 자책하기보다, 자신에게 남겨진 유한한 시간을 선명하게 인지하고 그 시간 동안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세상에 남겨야 하는지를 담담하게 적어 내려간 회고록이다. 사카모토 류이치라는 세계적인 음악가가 생의 종착지에서 마주한 것은 신파적인 슬픔이나 실존적 공포가 아니었다. 그는 시간의 흐름과 존재의 소멸이라는 거대한 자연의 법칙을 깊은 존중과 함께 수용하며, 그 안에서 피어나는 미세한 소리들과 음악, 그리고 타인 및 세계와의 연대를 끝까지 집요하게 탐구해 나갔다.
책의 제목이 된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라는 문장은 그가 과거 음악감독으로 참여했던 영화 마지막 황제 의 원작자 폴 보울스의 소설 『사랑의 그늘』(The Sheltering Sky)에 등장하는 구절에서 인용된 것이다. 본래 이 문장은 인간이 자신의 삶이 언제 끝날지 알지 못하기에 매번 맞이하는 일상을 무한한 것으로 착각하며 살아간다는 비극성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두 번에 걸친 암 판정을 받고 시한부 삶을 살아가던 그에게 이 문장은 관념적인 시적 표현이 아니라, 자신의 생명에 남아 있는 물리적 한계를 온몸으로 직면하게 만드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지독한 질문으로 다가왔다.
대부분의 인간은 자신의 끝을 멀리 있는 타인의 일처럼 느끼며 영원히 시간이 지속될 것 같은 착각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그가 던진 이 질문은 독자들로 하여금 각자의 삶이 지닌 유한성을 강렬하게 깨우쳐 준다. 보름달이라는 주체적이고 상징적인 대상을 설정함으로써 그는 자신의 잔여 시간을 정량화하는 동시에, 순환하는 자연의 시간과 소멸해 가는 인간의 시간 사이 조화를 꾀한다. 그는 신형 바이러스와 전쟁, 그리고 개인적인 질병이라는 거대한 비극이 뒤얽힌 세계 속에서, 매달 밤하늘에 뜨는 보름달을 바라보는 행위를 통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삶의 중심을 되찾고자 했다.
류이치 사카모토(일본어: 坂さか本もと 龍りゅう一いち, 1952년 1월 17일 ~ 2023년 3월 28일)
죽음을 앞둔 그의 글은 결코 지나친 감상주의나 눈물겨운 애원으로 흐르지 않는다. 오히려 철학적이면서도 지극히 객관적이고 서늘할 정도의 시선을 유지한다. 병실 창밖으로 보이는 계절의 변화, 투병 과정에서 겪는 육체적 고통과 약물의 부작용, 그리고 날마다 사그라드는 자신의 체력마저도 마치 정교한 악보를 써 내려가듯 담담히 기록한다. 이러한 담담함은 생에 대한 포기나 자포자기가 아니라, 자신에게 남아 있는 소중한 시간을 온전히 제 손으로 다스리고 정돈하겠다는 강한 정신적 의지의 표현이다. 그는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죽음이라는 사건 앞에서 무너지지 않고,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영역인 현재의 순간 과 음악적 행위 에 집중함으로써 스스로의 삶을 끝까지 주체적으로 완수해 나간다.
그의 마지막 예술적 여정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기존의 인공적인 조화와 완벽주의에서 벗어나 자연의 소리 그 자체 로 회귀했다는 점이다. 젊은 시절 YMO(Yellow Magic Orchestra)를 통해 최첨단 신시사이저와 전자음악의 선구자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고, 이후 수많은 영화 음악과 클래식 편곡을 통해 완벽한 멜로디와 미학적 화성을 구축했던 그가 삶의 끝자락에서 마침내 다다른 곳은 다름 아닌 노이즈 와 자연음 이었다. 그는 빗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 쓰나미에 휩쓸려 피아노 선율이 틀어진 이른바 쓰나미 피아노 의 소리에 깊이 매료되었다. 인간의 손으로 완벽하게 조율된 피아노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음이 틀어지지만, 사카모토는 그것을 튜닝이 틀어진 고장 난 상태 가 아니라 인간의 강요에서 벗어나 자연의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과정 으로 바라보았다. 물에 잠겼던 피아노가 발산하는 왜곡되고 기괴한 소리야말로 자연이 인간의 도구에 가하는 자연스러운 화음이자 깊은 대화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 책에서 그는 소리란 단순히 청각적인 자극이나 미학적 도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간과 시간, 그리고 인간의 존재가 교차하는 순간에 발생하는 신비로운 우주적 현상임을 강조한다. 그는 완성된 곡을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소리가 발생했다가 공기 중에서 수평선 너머로 스러져 가는 그 빈 공간과 정적에 집중했다. 이는 자신의 생명이 점차 사그라드는 투병의 과정과도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하나의 소리가 울려 퍼진 뒤 마침내 정적으로 돌아가듯, 인간의 존재 역시 거대한 자연의 정적 속으로 수렴한다는 깊은 깨달음을 그는 언어가 아닌 음악과 소리를 통해 몸소 체현해 낸 것이다.
또 류이치 사카모토는 상아탑이나 음악실 안에 고립된 순수 예술가에 머무르지 않았다. 그는 환경 문제, 원전 반대 운동, 평화주의에 대해 끊임없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어 온 사회적 실천가였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이후 그가 보여준 행보는 예술가가 거대한 사회적 비극 앞에서 어떤 인류애와 역할을 가져야 하는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그는 피해 지역의 아이들에게 악기를 지원하고 오케스트라를 결성하여 음악을 통한 치유와 연대에 앞장섰다.
이 책에서도 그는 자신의 건강이 극도로 나빠지는 와중에도 사회적 의제와 역사적 책임감을 결코 내려놓지 않았음을 담담히 전한다. 개발이라는 명목 하에 파괴되는 도시의 숲을 지키기 위한 호소, 전쟁과 폭력에 대한 반대, 그리고 인간성의 회복을 향한 그의 열정은 예술이 단순히 유희나 개인적 감상의 대상에 그쳐서는 안 되며, 시대를 관통하는 시대정신의 고뇌이자 반영이어야 한다는 신념을 보여준다.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도 그는 나 몰라라 하는 이기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 자신이 떠난 후 후세에 어떤 세상을 물려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그가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품고 있던 중요한 과제였다.
책의 후반부는 그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이어간 음악 작업과 연주회에 대한 기록으로 채워져 있다. 이미 몸은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조차 힘겨운 상태였지만, 그는 피아노 앞에 앉아 자신과의 마지막 대화를 나누듯 키보드를 눌렀다. 2022년 12월에 방송된 온라인 콘서트 《Ryuichi Sakamoto: Playing the Piano 2022》는 그의 마지막 모든 에너지와 예술적 혼을 쏟아부은 결정체였다. 하루에 한 곡씩, 며칠에 걸쳐 나누어 녹음해야 했을 정도로 체력이 고갈된 상태였음에도, 그의 손끝에서 울려 퍼지는 선율은 그 어느 때보다 명징하고 깊은 울림을 주었다.
그는 음악을 통해 삶을 연장하려 한 것이 아니라, 음악을 통해 자신의 삶을 완성하고자 했다. 그에게 음악은 투병의 고통을 잊게 해주는 도피처가 아니라, 자신이 여전히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유일한 언어였다. 생의 마지막 앨범 《12》에 담긴 곡들은 그가 날마다 느낀 몸의 상태와 감정, 그리고 주변의 소리를 있는 그대로 담아낸 일기와도 같다. 날짜로 붙여진 트랙 제목들은 그가 보름달을 기다리며 센 수많은 날들의 흔적이자, 세상을 향해 건넨 마지막 인사이기도 하다.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는 한 위대한 예술가의 단순한 투병기나 회고록에 그치지 않는다. 이 책은 우리 모두에게 삶의 유한성과 존엄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철학적 유언장이다. 사카모토 류이치는 자신의 죽음을 통해 역설적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일깨워 준다. 우리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달이 뜨고 지는 것,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는 자연의 이치를 무심하게 지나치곤 한다. 그러나 그에게 보름달은 매번 찾아오는 당연한 현상이 아니라, 삶에서 허락된 한정되고 소중한 순간들이었다.
그가 남긴 질문은 이제 글을 읽는 독자 각자에게 돌아온다. 당신은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습니까? 류이치 사카모토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사랑했던 소리와 자연의 품으로 돌아간 그의 영혼은 그가 남긴 음악과 이 책 속에 담긴 고결한 문장들로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울림이 되어 남아 있다.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는 오래된 명언처럼, 그의 육신은 사라졌으나 그가 마지막까지 응시했던 보름달의 빛과 소리의 여운은 끊임없이 우리 곁을 순환하며 삶의 가치를 일깨워 줄 것이다. 이 책은 죽음을 앞둔 예술가의 서글픈 퇴장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마무리하고 세상과의 아름다운 이별을 완수한 인간의 숭고한 승리 기록이다.
p. 45
인간의 수명이 80세에서 90세까지 길어진 것은 기껏해야 최근 30~40년 사이의 일입니다. 20만 년으로 알려진 인류의 긴 역사와 의료 시스템이 없던 시대를 생각하면 과연 무리해서 생명을 연장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괴롭고 힘든 치료를 거부하고 최소한의 케어만으로 마지막을 맞이하는 가치관을 조금 더 허용하는 세상이 되어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스위스나 네덜란드의 합법적 안락사에도 관심이 있습니다. 말은 이렇게 하면서, 방사선 치료와 외과 수술을 받고 화학 치료까지 병행하려는 스스로의 모습에 모순을 느낍니다. 신체보다 의식이 훨씬 보수적이라는 사실에 고민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자연스럽게 살다 자연스럽게 죽어가는 것이 동물 본래의 순리이자 생명 본연의 모습이라고 믿습니다. 인간만이 거기에서 벗어나 있죠. _ 「암과 살아간다」 중에서
박철 시민기자 pakchol@empa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