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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부모를 찾는다는 것과 과거에서 벗어난다는 것

부모를 찾는다는 것과 과거에서 벗어난다는 것
[사람들]
1974년 5월, 전북 남원에 있는 용성초등학교 앞에서 한 아이가 발견됐다. 당시 아이는 세 살 무렵으로 추정됐다. 서류에 기록된 출생연도는 1971년. 아이는 훗날 벨기에로 입양됐고, 이상진 이라는 한국 이름을 갖게 됐다. 벨기에에서 사용하는 이름은 팀(Tim) 이다. 아이의 이름과 출생연도는 서류에 남았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존재했을 삶의 흔적은 좀처럼 찾을 수 없다. 왜 성은 이씨가 되었는지, 상진이라는 이름은 누가 지었는지, 생년월일은 누가 처음 기록했는지, 아이가 발견되기 전까지 누구와 살았는지, 어쩌다 학교 앞에 혼자 남겨졌는지 알려진 것이 없다. 기록은 아이가 발견된 순간부터 시작하지만, 정작 아이의 인생에서 가장 궁금한 시간은 기록에 새겨져 있지 않다. 세 살 무렵이었다면 혼자 걸을 수 있는 나이였을 것이다. 이름과 나이가 진짜라고 하더라도 이를 증명하는 부분은 다른 문제이다. 실제 나이가 서류와 일치하는지, 발견 당시 아이가 무엇을 기억하고 있었는지 확인할 방법도 마땅치 않다. 이상진을 만난 기자에게도 남원은 특별한 곳이다. 기자의 고향 역시 남원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발견된 용성초등학교는 옛 남원역에서 가까운 곳에 있다. 지도를 펼쳐 보면 한 도시 안의 익숙한 지명들이 이어진다. 하지만 같은 지역에서 태어나고 자란 두 사람의 삶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한 사람은 한국에서 살아가며 작가가 되었고, 다른 한 사람은 어린 시절 한국을 떠나 벨기에에서 성장했다. 두 사람을 이어 준 것은 고향이라는 공통점과 입양이라는 경험이었다. 기자는 생후 80일의 둘째 아들을 입양해 더 큰 가족을 이루었다. 아들은 어느덧 대학생이 됐다. 아이를 입양해 함께 살아가는 부모의 마음과, 자신의 뿌리를 알지 못한 채 성장한 입양인의 마음이 같을 수는 없다. 그러나 서로 다른 위치에 서 있는 두 사람에게는 상대의 삶을 이해하고 싶은 궁금증이 있었다.   현재의 이상진 씨와 벨기에 입양 당시 어린 이상진의 모습. 질문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기자는 기사를 쓰기 위해 이상진의 삶을 물었다. 그가 어떤 과정을 거쳐 벨기에에 도착했는지, 그곳에서 어떻게 성장했는지, 왜 친부모를 찾으려 하는지 알고 싶었다. 하지만 질문 속에는 취재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마음도 있었다. 기자가 입양한 아들은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까. 그 아이가 언젠가 자신의 출생과 뿌리를 궁금해한다면 어떤 마음으로 그 질문을 마주해야 할까. 이상진에게도 궁금한 것이 있었다. 자신을 입양한 부모는 왜 아이를 입양했을까. 어떤 마음으로 자신을 가족으로 받아들였을까. 입양한 부모의 선택을 이해하는 일 때문에 입양부모가 된 기자의 마음을 질문하기도 했다. 입양은 한 아이에게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 주지만, 동시에 설명되지 않은 과거를 남기기도 한다. 새로운 삶이 시작됐다고 해서 이전의 삶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상진에게는 벨기에에서 살아온 시간과 자신을 사랑해 준 가족이 있었다. 그럼에도 한국에 남겨진 출생의 비밀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일찍 철이 들어야 했다.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생활비와 학비를 스스로 마련해야 했다. 독립하고자 했던 마음도 크게 작용했다. 그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학업을 이어 갔다. 그리고 벨기에의 명문 대학 가운데 하나인 솔베이 대학에 진학했다. 그는 주어진 환경을 탓하며 주저앉기보다 스스로 길을 만들어 간 사람이었다. 오늘날 흔히 말하는 자수성가형 인물이다. 그러나 성공 이라는 말은 한 사람의 삶을 지나치게 간단하게 설명한다. 대학에 진학하고 자신의 힘으로 삶을 꾸려 나갔다고 해서 그 과정에 놓인 고통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어려움을 극복한 성공담일지 모르지만, 당사자에게는 견뎌야 했던 시간과 누구에게도 쉽게 말할 수 없었던 외로움이 남아 있다. 그는 입양된 가정에서 사랑을 받았다. 벨기에의 부모는 친자녀가 있었음에도 이상진을 차별하지 않고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자신을 키워 준 부모를 존경한다. 그들이 보여 준 사랑은 자신의 삶을 지탱하는 중요한 토대였다. 그렇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가정 안에서 사랑받는 것과 사회에서 동등한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이상진이 벨기에에서 느낀 일 가운데 하나는 인종차별이었다. 동양인이라는 사실은 외모에서부터 드러났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공부하고 일하고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싶었지만, 눈에 보이는 외모의 차이는 때때로 보이지 않는 벽이 됐다. 저는 경제 경영 분야에서 일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벨기에 현지에서의 여러 장벽에 부딪히면서 관련 공부와 진로를 포기해야 했던 아픔이 있습니다. 원래 소극적인 성격은 아니었지만 반복되는 고난은 사람을 위축시킵니다. 하고 싶은 일을 앞에 두고도 받아들여질 수 있을지 먼저 걱정하게 만듭니다. 도전하기도 전에 장벽을 예상하고, 관계를 맺기도 전에 거절당할 가능성을 생각하게 됩니다. 저처럼 어린 시절부터 스스로 생계를 책임지고 대학에 진학한 사람에게도 세상은 공평하지 않았습니다. 노력하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는 말은 살아온 현실을 온전히 설명하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능력을 증명하는 데 힘을 쏟지만, 어떤 사람은 그 능력을 보여 줄 기회를 얻기 위해 더 많은 장벽을 넘어야 합니다. 그 성공의 이면에는 차별과 외로움, 포기해야 했던 꿈이 남아 있습니다. 자수성가라는 말은 제가 이룬 성취를 설명할 수 있지만, 대신 치러야 했던 보이지 않는 대가까지 말해 주지는 못합니다.”   이상진 씨가 한국에서 벨기에로 입양된다는 내용의 서류. 후견인 탁연택은 당시 대한사회복지회 회장이었다. 이상진은 태권도를 배운 뒤 여동생, 아버지와 함께 1989년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 어린 시절 떠나온 나라였다. 자신이 태어난 곳이지만 그에게 한국은 익숙한 이름이면서도 낯선 땅이었다. 첫 방문에서 받은 한국의 인상은 좋았다. 그는 한국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자신이 태어난 나라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바람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한국은 첫사랑을 만난 곳이기도 했다. 한 나라에 대한 감정은 역사나 문화에 대한 인상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과 나눈 시간, 처음 느낀 감정이 한 장소를 특별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가 한국에 정착하기란 쉽지 않았다. 의무병제였던 당시, 벨기에에서 병역 의무를 수행해야 했고, 한국에서 생활할 수 있는 경제적 기반도 없었다. 비자 문제도 해결해야 했다. 한국어는 충분하지 않았고, 한국에서 활용할 수 있는 학위와 경력 역시 현실적인 과제였다. 한국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생활을 시작할 수는 없었다. 정착에는 돈이 필요했고, 언어와 제도가 필요했으며, 자신이 살아갈 수 있는 구체적인 조건이 마련돼야 했다. 결국 그는 한국에 머물지 못하고 벨기에로 돌아갔다. 이후 2003년, 그는 다시 한국을 찾았다. 이번에는 단순한 방문과는 다른 목적이 있었다. 자신의 뿌리를 찾고 싶었다. 자신이 어디에서 태어났고, 누구의 자녀였으며, 어떤 사연으로 용성초등학교 앞에서 발견됐는지 알고 싶었다. 그는 KBS 전주방송국에 출연하기도 했다. 자신의 사연을 알리기 위해 전단지를 직접 만들어 남원과 전라북도 일대에 뿌렸다. 이 사연은 당시 연합뉴스에도 보도되었다. 누군가 자신을 알아보고 연락해 주기를 기다렸다. 전단지 한 장이 오랫동안 닫혀 있던 기억을 열어 줄지도 모른다는 기대였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 찾기는 생각처럼 진행되지 않았다. 그는 DNA 검사도 두 차례 받았다. 한 번은 벨기에에 있는 한국대사관을 통해서였고, 다른 한 번은 미국의 비영리단체 KAMRA를 통해서였다. KAMRA는 실종이나 (국제)입양된 입양인과 친부모 및 실종자 가족을 유전자 검사로 연결하는 일을 해 온 단체다. 검사는 과학적인 방법으로 가족을 찾을 가능성을 열어 준다. 기억과 추측만으로는 확인하기 어려운 혈연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러나 검사를 받는다고 해서 곧바로 가족을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비교할 수 있는 유전자 정보가 있어야 하고, 연결될 가족이 검사에 참여해야 한다. 기록이 남아 있지 않거나 가족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면 기다림은 길어질 수밖에 없다. 이상진은 자신의 출생을 둘러싼 질문을 풀기 위해 여러 방법을 시도했지만 아직 부모를 찾지 못했다. 반세기 전의 사건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에게도 한때는 부모를 꼭 만나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자신을 낳은 사람을 만나면 그동안 비어 있던 삶의 한 부분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왜 자신이 발견 당시 혼자였는지, 누가 자신의 이름을 지었는지, 가족은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묻고 싶은 것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던 2023년, 전단지를 본 한 나이 든 여성이 그에게 연락해 왔다. 얼굴이 닮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선물을 준비해 그 여성을 찾아갔다. 오랜 기다림 끝에 자신을 낳은 어머니와 연결될지도 모른다는 기대도 있었다. 그러나 만남은 그가 바라던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 여성은 그가 찾던 부모가 아니었다. 여성이 알고 있던 지인 가운데 창, 즉 판소리를 하는 사람이 아이를 찾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서로가 찾는 사람은 일치하지 않았다. 기대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오랫동안 부모를 찾던 사람에게 닮았다는 말 한마디는 쉽게 지나칠 수 없는 신호다. 혹시 이번에는 다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대가 커질수록 결과가 어긋났을 때의 허탈함도 커진다. 그 만남 이후 이상진은 부모 찾기에 대한 마음을 내려놓았다. 정확하지 않을 수 있는 50년 전의 기억에만 매달리는 일이 쉽지 않았다. 자신의 출생을 둘러싼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그 질문을 해결하는 데 삶의 모든 시간을 걸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생각이 달라졌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싶다는 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이제는 그 마음이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모두 차지하도록 내버려 두고 싶지 않은 것이다.   지난 10월 7일, 진화위사무실 앞에서 빠른 조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과 집회가 진행되었다. 이날 집회에는 해외입양인, 고아수용시설 피해자 등 관련 20여 개 단체 50여 명이 참석했다. 과거에 매여 있으면 그곳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이 있습니다. 부모를 찾는 일이 중요하다고 해서 삶 전체가 부모를 찾는 과정으로만 채워져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답을 얻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것과 답을 얻기 위해서만 살아가는 것은 다릅니다. 앞으로 친구들을 많이 만나고 인생을 즐겁게 살고 싶습니다. 부모를 찾는다는 목표가 삶의 중심에서 뒤로 물러나고,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과 앞으로 만나게 될 사람들에게 시선을 돌리려 합니다. 이 말은 체념이 아니라 오랫동안 답을 찾지 못한 사람이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국계 여성과 결혼해서 가정을 이룬 이상진은 성인이 된 두 딸을 두고 있다. 태국과 한국, 벨기에를 오가며 생활한다. 세 나라를 오갈 수 있는 삶은 한편으로는 자유로워 보인다. 태어난 나라와 성장한 나라, 새로운 생활의 터전을 오가며 다양한 문화와 사람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살기에는 태국이 좋다고 말한다. 한국에 대해서도 좋은 감정을 갖고 있다. 한국 사람들은 친절하고 한국 음식도 좋아한다. 한국 곳곳을 여행하는 일도 즐겁다. 자신이 태어난 나라를 다시 찾아와 그곳의 음식과 풍경을 경험하는 일은 여전히 의미가 있다. 한국에서 살아가는 일은 별개의 문제라고 했다. 그가 한국 생활을 망설이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행정절차의 어려움이다. 특히 부모를 찾는 과정에서 필요한 정보에 접근하고 관련 절차를 밟는 일이 복잡하게 느껴졌다고 말한다. 입양인이 친가족을 찾는 과정에는 단순한 호기심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 자신의 출생에 관한 정보를 확인하고, 과거의 기록을 살펴보고, 필요하다면 관련 기관에 자료를 요청해야 한다. 그러나 당사자가 한국어와 한국의 행정체계에 익숙하지 않다면 절차는 더욱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그가 한국어를 배우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한국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에게 복잡한 서류와 행정용어는 또 다른 장벽이다. 입양인은 자신의 출생에 관한 정보를 찾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지만, 정작 그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낯선 언어와 제도를 통과해야 한다. 한국 사람들은 친절하지만 깊은 관계를 맺기는 쉽지 않다고 느끼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물론 사람마다 경험은 다르며, 한국 사회 전체를 하나의 성격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 다만 그가 여러 나라에서 살아오며 체감한 차이는 그에게 현실이다.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분위기와 관계를 맺기까지 필요한 시간은 한국에서 정착을 고민하는 이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 그의 이야기는 해외 입양인이 한국에 돌아오는 일이 단순히 고향을 방문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이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 한국을 찾는 입양인에게 이곳은 여행지인 동시에 자신의 출생을 확인해야 하는 장소다. 때로는 가족을 찾는 곳이고, 때로는 기록의 공백과 마주하는 곳이다. 반가움과 실망이 한 장소 안에 함께 존재한다. 이상진의 삶에는 서로 다른 두 가지 이야기가 함께 놓여 있다. 하나는 벨기에에서 새로운 가족을 만나 성장하고 자신의 힘으로 삶을 일궈 온 이야기다. 다른 하나는 남원에서 발견된 세 살 무렵의 아이가 누구였는지, 왜 그곳에 혼자 있었는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이야기다. 첫 번째 이야기는 성취와 가족의 사랑으로 이어진다. 두 번째 이야기는 기록의 공백과 오랜 기다림으로 남아 있다. 두 이야기는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 그가 벨기에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이해하려면 그가 어떤 출발점에서 삶을 시작했는지도 함께 바라봐야 한다. 그는 자신을 입양해준 부모를 존경한다. 특히 가족의 일원으로 많은 사랑을 준 누나에 대한 특별한 감사가 있다. 그는 가족 중 유일한 한국계였지만 누나는 그가 좋은 사람으로 성장하는 데 있어 물심양면으로 많은 도움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좋은 가정에서 성장한 사람도 자신의 출생을 궁금해 할 수 있다. 친가족을 찾고 싶다는 마음이 양부모와 성장한 가정의 사랑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입양을 둘러싼 이야기는 때로 성공과 실패라는 두 가지 틀로 정리된다. 좋은 가정에서 성장해 사회적으로 성공하면 입양은 잘된 일로 평가되고, 어려움을 겪으면 입양의 문제점이 부각된다. 하지만 한 사람의 삶은 그런 평가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사랑받았다는 사실과 뿌리를 알지 못한다는 사실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 성공한 삶과 해결되지 않은 상처도 함께 남을 수 있다.   10월 7일 진화위 인근 카페에서 이상진씨(오른쪽) 벨기에 임입인 구상필 씨, 몽테뉴해외입양연대 배진시 대표, 기자, 후원자 등이 인터뷰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상진은 명문대학을 졸업했고, 결혼했으며, 두 딸을 키우고 있다. 세 나라를 오가며 생활하고 앞으로의 삶을 계획한다. 그의 삶은 1974년 5월 용성초등학교 앞에서 멈춰 있지 않다. 그곳에서 시작된 질문을 안고도 그는 지금까지 자신의 삶을 살아왔다. 그렇지만 그의 출생을 둘러싼 의문이 개인의 노력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기록이 없거나 부족하다면 그 기록을 찾아야 하고, 관련 자료에 접근할 수 있는 절차가 마련돼야 한다. 해외에서 성장한 입양인이 한국어와 행정체계에 익숙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출생에 관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 입양인의 뿌리 찾기를 개인의 끈기와 운에만 맡겨 둘 수는 없다. 그가 두 차례 DNA 검사를 받았고, 방송에 출연했으며, 전단지를 만들어 남원과 전북 일대에 뿌렸다는 사실은 그동안 얼마나 많은 노력이 이어졌는지를 보여 준다. 그런데도 아직 부모를 찾지 못했다. 누군가의 출생을 둘러싼 진실이 밝혀지기 위해서는 당사자의 노력뿐 아니라 기록과 제도, 사회적 관심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 기자는 그와 이야기를 나누며 입양한 아들의 미래를 생각했다. 지금은 대학생인 아들이 훗날 자신의 출생을 궁금해 한다면, 그 질문에 어떤 방식으로 도움을 줘야 할까. 입양한 부모의 사랑과 친가족을 향한 그리움이 서로 충돌하지 않도록 어떤 지원을 해줘야 할까. 이상진은 자신의 부모를 찾고 싶어 했던 사람이다. 그리고 이제는 과거에만 매달리지 않고 현재의 삶을 즐기고 싶어 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 두 마음 가운데 어느 하나만 진짜라고 말할 수는 없다. 부모를 찾는 마음이 약해졌다고 해서 그 질문이 거짓이 되는 것은 아니다. 과거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해서 자신의 뿌리를 잊은 것도 아니다. 부모를 찾는 일을 삶의 유일한 목적으로 삼기보다, 답을 얻지 못하더라도 자신의 삶을 살아가겠다는 쪽으로 진행 중이다. 그는 자신을 키워 준 부모에게 감사하고, 두 딸과 함께 살아온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친구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한다. 태국과 한국, 벨기에를 오가면서 앞으로의 삶을 계획한다. 이상진은 이제 과거에 매여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앞으로는 인생을 즐겁게 살고 싶다고도 했다. 그 말은 부모 찾기를 포기했다는 선언이라기보다, 부모를 찾지 못한 삶도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이겠다는 다짐에 가깝다. 그는 더 이상 세 살 무렵의 아이로만 남아 있지 않다. 그에게는 지금의 삶이 있고, 사랑하는 가족이 있으며, 앞으로 만나고 싶은 친구들이 있다. 과거를 알아야만 현재의 삶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한 사람의 출생을 둘러싼 기록은 그 사람의 삶과 연결돼 있다. 그 기록을 찾고 확인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당사자에게 과거를 강요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삶을 이해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기회를 돌려주는 일이다. 남원에서 발견된 세 살 무렵의 아이는 반세기 동안 자신의 삶을 살아왔다. 그는 성공했고, 사랑받았으며, 차별과 외로움을 견뎠다. 그리고 아직 답을 얻지 못한 질문을 품고 있다. 그 질문은 그의 인생 전부가 아니다. 그러나 그의 인생에서 지워도 되는 질문도 아니다.이득신 작가 dsshine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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