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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나눔과 비움, 낮아짐으로 돌아오는 참생명

나눔과 비움, 낮아짐으로 돌아오는 참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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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생의 『우리들의 하느님』은 화려한 성전과 교리 속에 갇힌 하느님이 아닌, 가난하고 낮고 보잘것없는 모든 생명 곁에 자리하는 참된 신성과 생명 평화의 가치를 나지막이 일깨워 주는 산문집이다. 권정생이라는 이름 세 글자는 한국 아동문학사에서 가장 숭고하면서도 서글픈 빛을 발한다. 『강아지 똥』과 『몽실언니』로 잘 알려진 그는 평생을 가난과 병마 속에서 살았고, 경북 안동 일직면 조탑리의 조그마한 오두막집에서 홀로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그가 남긴 글과 삶의 궤적은 세상 그 어떤 거대한 사상가나 종교인의 가르침보다 깊고 울림이 크다. 『우리들의 하느님』은 권정생이 세상을 떠나기 전 여러 매체에 기고했던 산문과 일기, 서간 등을 모아 엮은 책으로, 그의 기독교적 영성과 생명 사상, 평화주의, 그리고 문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가장 순수하고 직설적인 언어로 담겨 있는 결정체다. 이 책을 읽는 일은 단순한 문학적 감상을 넘어, 우리가 무심코 누려 온 현대 문명의 욕망과 이기심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영적 도전에 가깝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우리들의 하느님은 거대하고 화려한 예배당이나 철학적인 성경 교리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권정생이 만난 하느님은 땅바닥을 기어 다니는 벌레, 들판의 잡초, 오두막 방구석에서 쌀알을 주워 먹는 쥐, 그리고 전쟁과 가난으로 고통받는 어린아이들의 눈물 속에 계신다. 권정생은 당시 한국 개신교의 대형화, 기복주의, 세속화를 향해 서슴없이 쓴소리를 던진다. 수백억 원을 들여 웅장한 성전을 짓고, 십일조와 성금을 강요하며, 오직 인간의 물질적 축복만을 구하는 종교는 그에게 있어 하느님을 모독하는 행위에 불과했다. 그가 바라본 진짜 하느님은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와 스스로 가난해진 분이며, 모든 생명과 함께 고통받는 신이다. 이러한 관점은 정통 신학의 틀을 넘어선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예수의 가장 근본적인 가르침인 사랑과 겸손으로 돌아가자는 지극히 원초적이고 순수한 복음적 호소다. ​ 권정생(權正生, 1937년 9월 10일~2007년 5월 17일) 권정생은 본문에서 자신이 꿈꾸는 참된 신앙과 교회의 모습을 구체적이고 소박한 언어로 밝히기도 한다. ​ 내가 만약 교회를 세운다면, 뾰족탑에 십자가도 없애고 우리 정서에 맞는 오두막 같은 집을 짓겠다. 정면에 보이는 강단 같은 거추장스런 것도 없이 그냥 맨마루바닥이면 되고, 여럿이 둘러앉아 세상살이 얘기를 나누는 예배면 된다. ㅇㅇ교회라는 간판도 안 붙이고 꼭 무슨 이름이 필요하다면 까치네 집 이라든가 심청이네 집 같은 걸로 하면 되겠지. ​이 문장은 세속적 권력과 물질적 권위에 집착하는 현대 종교에 대한 가장 강렬하고도 순수한 비판이다. 높이 솟은 십자가와 거창한 강단은 신과 인간, 사제와 신도 사이의 위계를 만들어내지만, 권정생이 원하는 공간은 문턱 없이 누구나 둘러앉아 따뜻한 온기를 나누는 오두막이다. 까치네 집 이나 심청이네 집 같은 정겨운 이름은 종교가 제도나 교단이라는 거대한 울타리를 넘어, 이웃과 자연을 품는 따뜻한 보금자리가 되어야 함을 일깨워준다. ​또한 그는 과거 시골 예배당의 소박했던 풍경을 떠올리며 진정한 신앙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지를 나지막이 고백한다. ​ 내가 예배당 문간방에 살면서 새벽종을 울리던 때가 진짜 하느님을 만나는 귀한 시간이었는지 모른다. 특히 추운 겨울날 캄캄한 새벽에 종줄을 잡아당기며 유난히 빛나는 별빛을 바라보는 상쾌한 기분은 지금도 그리워진다. ​웅장한 성가대의 찬양이나 화려한 조명 아래서 드리는 예배가 아니라, 캄캄한 새벽 조용히 종줄을 잡고 새벽 별빛을 바라보던 그 소박하고 경건한 순간이 바로 신과의 진정한 만남이었다는 회상이다. 권정생에게 하나님은 거룩한 신학 서적 속에 갇혀 있는 분이 아니라, 새벽녘의 맑은 공기와 차가운 종줄의 감촉, 그리고 밤하늘에 빛나는 별빛의 아름다움 속에 실재하는 분이었다. ​ 권정생의 유언장 권정생의 영성은 철저하게 생명 중심주의와 맞닿아 있다. 그는 인간 중심적인 사고방식을 단호히 거부한다.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라는 오만함이 자연을 파괴하고, 다른 생명체들을 수단화하며, 결국 인간 스스로를 멸망으로 몰아넣는다고 경고한다. 책 속에서 그는 뜰에 놓인 쥐틀에 걸린 생쥐 한 마리를 보며 깊은 죄책감을 느끼고, 마당의 잡초를 뽑으면서도 그 생명들에게 미안해한다. 미물이라 여겨지는 미생물이나 벌레 하나조차 하느님이 창조한 동등한 생명의 식구로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현대의 생태학적 사상을 훌쩍 뛰어넘는 깊은 자비와 연민을 보여준다. 모든 생명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깨달음은 그로 하여금 자갈밭에 떨어진 뼛조각 하나, 죽어가는 개 한 마리의 고통에도 함께 눈물 흘리게 만들었다. ​특히 그는 인간의 그릇된 소비 욕망과 환경 파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매서운 일침을 가한다. ​ 내 몫의 이상을 쓰는 것은 벌써 남의 것을 빼앗는 행위이다. 자연살리기나 환경운동은 먼저 내가 지나친 과소비를 하고 있지 않는가를 생각해볼 일이다. ​이 구절은 거창한 담론이나 구호로만 존재하는 환경운동을 향해 던지는 통렬한 반성문이다. 내가 필요 이상으로 누리는 물질적 풍요는 결국 자연의 지분을 수탈하거나 가난한 이웃의 몫을 빼앗아 온 결과라는 시각이다. 권정생은 스스로 절제하고 나눔을 실천하는 길임을 자기 삶과 글을 통해 증명했다. ​이러한 생명에 대한 사랑은 필연적으로 반전과 평화에 대한 강렬한 열망으로 확장된다. 권정생 자신이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이라는 한국 현대사의 가장 비극적인 시대를 온몸으로 통과한 피해자였다. 전쟁이 인간을 어떻게 파괴하고, 영혼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드는가를 직접 목격했기에 그는 어떠한 명분의 전쟁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단언한다. 국익이나 정치적 이념, 심지어 종교적 명분이라 할지라도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행위는 악일 뿐이다. ​ 이오덕(좌)선생과 권정생(우) 작가 그는 본문에서 이념과 국가주의라는 거대한 허상을 가차 없이 파헤치며 다음과 같이 파격적인 진심을 내비친다. ​ 이 세상 그 어느 나라에도 애국 애족자가 없다면 세상은 평화로울 것이다. 젊은이들은 나라를 위해 동족을 위해 총을 메고 전쟁터로 가지 않을 테고... 이 세상 모든 젊은이들이 결코 애국자가 안 되면 더 많은 것을 아끼고 사랑하며 살 것이고 세상은 아름답고... ​ 애국자 가 없어야 세상이 평화로워질 것이라는 이 문장은 언뜻 역설적으로 들리지만, 그 속에는 국가와 이념이라는 명분 아래 다른 민족과 인간을 적대시하고 살육을 정당화해 온 인류사에 대한 뼈아픈 통찰이 담겨 있다. 맹목적인 애국심이 국경을 나누고 전쟁을 일으키는 무기가 되는 현실을 경계하며, 나라라는 울타리를 넘어 모든 인류와 생명을 동등하게 사랑하는 보편적 인류애만이 온전한 평화를 가져올 수 있음을 일깨운다. ​권정생의 삶과 글이 갖는 독보적인 힘은 그 언어와 삶이 완벽하게 일치했다는 점에서 나온다. 그는 말로만 무소유와 가난을 외치지 않았다. 그가 살았던 조탑리 오두막은 겨우 몇 평 남짓한 단칸방으로, 전등 하나와 작은 문갑, 이부자리 정도가 전부인 공간이었다. 그는 평생을 지독한 늑막염과 방광 질환으로 고통받았지만, 결코 자신의 처지를 슬퍼하거나 세상을 원망하지 않았다. 인세로 들어오는 거액의 돈을 단 한 푼도 자신을 위해 쓰지 않고 가난한 어린이들과 북녘의 아이들을 위해 쓰도록 유언으로 남겼다. 그에게 가난은 어쩔 수 없이 당한 고통이 아니라, 가장 정직하게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자발적 선택이었다. 남을 더 많이 가지게 하기 위해 스스로 적게 가지는 삶, 자연을 수탈하지 않기 위해 최소한의 생계만을 유지하는 삶이야말로 그가 온몸으로 보여준 참된 성자의 모습이었다.   자신의 생가 앞에 앉은 권정생 선생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은 권정생이 살았던 시대보다 훨씬 풍요로워졌고 첨단화되었다. 그러나 정신적 빈곤과 생태적 위기, 이기주의와 물질 만능주의는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 사람들은 더 많은 물건을 소유하고, 더 높은 위치에 오르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하며 스스로를 소진시킨다. 바로 이러한 시점에 『우리들의 하느님』이 던지는 질문은 비수처럼 가슴을 찌른다.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행복은 무엇인가, 우리가 짓밟고 올라선 그 수많은 생명들의 희생 위에 세워진 풍요가 과연 가치 있는가 하는 질문들이다. 권정생은 나지막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우리에게 나눔과 비움, 낮아짐의 삶으로 돌아올 것을 권유한다. ​이 산문집의 문체 역시 그의 삶만큼이나 담백하고 소박하다. 화려한 수식어나 거창한 논리학을 동원하지 않는다. 시골 할아버지가 수수하게 내뱉는 옛날이야기 같기도 하고, 혼자 나지막이 읊조리는 기도문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 소박한 문장 속에는 거대한 철학서나 신학서에서도 찾기 힘든 진실함과 영성이 넘쳐난다. 거짓이나 위선이 전혀 섞이지 않은 그의 글은 읽는 이로 하여금 절로 고개를 숙이게 만들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는 묘한 능력이 있다. ​결국 『우리들의 하느님』은 단순히 한 문학가의 에세이집이 아니다. 이 책은 시들어가는 우리 시대의 영성을 소생시키는 생명수이자, 자본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바치는 나침반이다. 권정생이 조탑리 오두막에서 평생에 걸쳐 써 내려간 이 조용한 고백은, 우리가 잃어버린 진짜 하느님 , 즉 가난한 이들의 눈물 속에 계시고 들판의 풀 한 포기 속에 살아 숨쉬는 평화와 생명의 참된 가치를 다시금 일깨워 준다. 세월이 흘러도 그의 글이 지닌 빛이 바래지 않는 이유는, 그가 남긴 언어들이 책장 속에 갇힌 글자가 아니라 그의 거룩하고 정직했던 삶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박철 시민기자 pakchol@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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