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하늘과 마음에 건네는 작은 볕뉘, 흐리터분하다 [사람들] 반갑습니다. 우리말의 결을 살려 마음을 보듬는 토박이말 결지기 입니다.
[오늘의 토박이말] 흐리터분하다
오늘 알려드릴 토박이말은 흐리터분하다 입니다. 그림 속, 잿빛과 엷은 보랏빛이 섞인 구름 사이로 희미한 햇살 한 줄기가 살며시 얼굴을 내밀고 있습니다. 맑게 개지도, 그렇다고 비가 쏟아지지도 않는 흐릿한 하늘 아래 한 사람이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손에 쥔 겉옷을 가만히 매만지는 모습에서 어딘가 개운하지 않은 마음까지 느껴지는 듯합니다.
이런 날에는 하늘만 흐린 것이 아니라 내 마음까지 덩달아 흐려지는 듯할 때가 있습니다. 무엇 하나 똑똑하게 잡히지 않고, 그렇다고 뚜렷한 까닭을 꼬집어 말하기도 어려운 답답한 마음 말입니다. 오늘은 바로 이런 때 부려 쓰면 좋은 토박이말 흐리터분하다 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개운치 않은 기별과 흐릿한 하늘빛 속에서
요즘 들려오는 기별 가운데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들이 적지 않습니다. 안타까운 갖가지 사고와 서로에게 상처를 남기는 일, 걱정을 더하는 기별이 잇따르다 보면 하루를 시작하면서도 마음이 좀처럼 개이지 않을 때가 있지요.
오늘 마주한 하늘도 그렇습니다. 구름이 잔뜩 낀 것은 아닌데 하늘빛은 흐릿하면서도 볕은 여전히 뜨겁습니다. 시원하게 비라도 내리면 좋으련만 그렇지도 않으니 어딘가 답답하고 개운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하늘빛도, 마음도 또렷하지 않은 날 떠올려 보면 좋은 말이 있습니다. 바로 흐리터분하다 입니다.
날씨에도, 사람의 마음에도 쓸 수 있는 흐리터분하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흐리터분하다 를 두 가지 뜻으로 풀이합니다.
첫째는 사물이나 현상 따위가 똑똑하지 못하고 흐리다 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늘이나 날씨가 뿌옇고 흐릴 때 하늘이 흐리터분하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고 흐릿한 모습을 나타내기에 잘 어울리는 말이지요.
둘째는 성질이나 행동 따위가 답답할 정도로 흐리고 분명하지 못하다 는 뜻입니다. 사람의 태도나 행동이 분명하지 않아 답답할 때도 그의 태도가 흐리터분하다 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흐리터분하다 는 하늘처럼 흐릿한 모습뿐 아니라 사람의 성질이나 행동이 분명하지 못한 모습까지 나타낼 수 있는 말입니다. 이보다 조금 여린 상태를 나타내고 싶을 때 쓸 수 있는 하리타분하다 라는 말도 있답니다. 두 가지 말을 다 알고 있으면 날씨가 흐리다 라고만 할 때보다 그날의 흐릿한 느낌을 조금 더 꼼꼼하게섬세하게 나타낼 수 있습니다.
오늘 하늘이 참 흐리터분하네.
오늘 하늘은 하리타분하다.
그 사람은 왜 그렇게 흐리터분하게 말하는지 모르겠다.
그 사람도 하리타분해 보일 때가 있더라.
이렇게 쓰임도 느낌도 조금 다릅니다. 어려운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며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끼는 모습을 그대로 담아낸 말입니다. 이런 말 하나를 알고 제대로 부려 쓰는 것만으로도 우리말의 결은 한결 더 넉넉해집니다.
마음이 흐리터분한 날도 있습니다
우리의 나날살이에도 가끔 흐리터분한 날이 찾아옵니다. 엄청 애를 썼는데도 일이 똑똑하게 풀리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누군가의 말과 행동이 분명하지 않아 마음이 답답할 때도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인지 알 것 같으면서도 막상 말로 꺼내려 하면 잘 잡히지 않을 때도 있지요. 그럴 때 나는 왜 이렇게 답답할까 하며 스스로를 나무라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의 마음도 늘 맑게 갤 수는 없으니까요. 말끔하게 답을 찾으려고 애쓰기보다 오늘 내 마음이 조금 흐리터분하구나 하고 가만히 인정해 주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새 구름 사이로 볕이 비치듯 마음에도 작은 틈이 생길지 모릅니다.
[마음 나누기]
요즘 여러분의 나날살이에서 참 흐리터분하다 고 느꼈던 일은 무엇이 있을까요? 하늘빛이 흐리터분했던 날도 좋고, 누군가의 말이나 행동이 흐리터분해 답답했던 때도 좋습니다. 또는 까닭을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마음이 개운하지 않았던 때도 좋습니다. 오늘은 그런 마음을 억지로 감추기보다 내 마음이 흐리터분하구나 하고 들여다보면 어떨까요? 여러분이 겪은 흐리터분한 일 과 그 마음을 달래 준 작은 볕뉘가 있다면 함께 나누어 주세요.
[한 줄 생각]
하늘이 흐리터분한 날이 있듯 마음이 흐리터분한 날도 있습니다. 그런 날에는 맑아지라고 다그치기보다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는 것도 마음을 보듬는 일입니다.
[오늘의 토박이말]
▶흐리터분하다
뜻 1 : 사물이나 현상 따위가 똑똑하지 못하고 흐리다.
보기 1: 구름이 잔뜩 끼어 오늘은 하늘빛이 흐리터분하다.
뜻 2 : 성질이나 행동 따위가 답답할 정도로 흐리고 분명하지 못하다.
보기 2 :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게 말하는 그의 태도가 몹시 흐리터분하다.
[토박이말 길잡이] 결지기 이창수
이창수 시민기자 maljig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