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거두어들이는 일, 가을걷이 [칼럼] 반갑습니다. 우리말의 결을 살려 마음을 보듬는 ‘토박이말 결지기’입니다.
날씨가 참 좋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하늘도 맑고 춥지도 덥지도 않으니 더욱 그렇게 느끼는 듯합니다. 언제 찾아올지 모를 추위를 생각하면 이 좋은 때를 마음껏 즐겨야 한다는 말도 나옵니다.
그런데 요즘 이런 좋은 날씨를 즐기며 곳곳을 다니다 보면 ‘가을추수행사’, ‘추수철’, ‘추수체험’과 같은 말을 자주 보게 됩니다. 가을에 익은 곡식을 거두어들이는 일을 굳이 ‘추수’라고만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 오늘은 ‘가을걷이’ 이야기를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오늘의 토박이말] 가을걷이
‘추수’와 뜻이 같은 ‘가을걷이’
추수 (秋收)’라는 한자말을 풀어 보면 ‘가을에 거둔다’는 뜻입니다. 가을에 익은 곡식을 거두어들이는 일을 가리키니 ‘가을걷이’와 뜻이 다르지 않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도 ‘추수’를 ‘가을에 익은 곡식을 거두어들임’이라고 풀이하고 비슷한 말로 ‘가을걷이’를 올려놓았습니다. ‘가을걷이’를 찾아보아도 같은 뜻으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말뜻만 놓고 보면 참 알기 쉽습니다. ‘가을’에 ‘걷이’를 붙였으니 가을에 거두어들이는 일이라는 뜻이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가을에는 무엇을 걷을까요?
‘걷다’에는 여러 뜻이 있지만 여기에서 말하는 ‘걷다’는 흩어져 있거나 널려 있는 것을 한데 거두어들이는 뜻입니다. 가을이 되어 벼가 누렇게 익으면 벼를 거두고, 콩이 여물면 콩을 거둡니다. 밭과 들에서 거두어들이는 일이 이어집니다. 그래서 ‘가을걷이’라는 말에는 단순히 계절 이름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가을에 거두어들이는 농촌의 모습까지 담겨 있습니다.
가을걷이가 끝난 들판에는 찬 서리가 내리기 시작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실린 이 보기글을 읽으면 가을걷이가 끝난 뒤의 들판의 바람빛(풍경)까지 절로 떠오릅니다. 거두어들일 것은 거두고 빈 들판에 서리가 내리는 때가 되었음을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갈걷이’라고도 합니다
‘가을걷이’는 줄여서 ‘갈걷이’라고도 합니다. ‘가을’을 줄여 ‘갈’이라고 한 것이 눈에 띕니다. 우리가 지금도 ‘가을’이라는 철 이름을 여러 모습으로 부르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말이기도 합니다.
또 ‘가을’이라는 말을 가을걷이 와 같은 뜻으로 쓰기도 합니다. 물론 문맥에 따라 철이름을 가리키는 ‘가을’과 거두어들이는 일을 가리키는 ‘가을’이 달라질 수 있겠지요.
이렇게 알고 보면 ‘가을걷이’ 하나를 통해 ‘갈걷이’와 ‘가을’까지 이어지는 우리말의 쓰임을 함께 살펴볼 수 있습니다.
‘추수’ 쓰지 말자는 것 아니라 ‘가을걷이’와 함께 살려 쓰자
제가 ‘가을추수행사’나 ‘추수체험’ 같은 말을 보며 아쉬웠던 것은 ‘추수’가 잘못된 말이어서가 아닙니다. ‘추수’는 말집(사전)에 올라 있는 말이고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와 뜻이 같은 토박이말 ‘가을걷이’도 함께 알고 쓸 수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입니다.
무엇보다 ‘가을걷이’는 말을 처음 듣는 사람도 ‘가을에 무엇인가를 걷는 일인가 보다’ 하고 뜻을 어림하기 쉽습니다. 말의 생김새만 보아도 뜻을 헤아릴 수 있다는 것이 토박이말이 가진 재미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래서 ‘추수’를 쓰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가을걷이’라는 말도 함께 살려 쓰자는 것입니다.
가을의 바람빛(풍경)을 더 잘 보여 주는 말
추수 라고 하면 가을에 곡식을 거두는 일이 떠오릅니다. ‘가을걷이’라고 하면 여기에 ‘가을’이라는 철의 모습이 조금 더 또렷하게 붙습니다.
농부들이 추수를 서둘렀다”와 농부들이 가을걷이를 서둘렀다”를 나란히 놓아 보면 어떨까요?
뜻은 같지만 ‘가을걷이’에서는 누렇게 익은 들판과 거두어들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조금 더 가까이 다가오는 듯합니다. 말 하나가 장면을 불러오는 셈입니다.
그래서 저는 가을걷이가 이루어지는 이 가을철에 이 말을 한번 더 눈여겨보았으면 합니다. 농촌의 모습을 담은 말이지만 농촌에 사는 사람들만 써야 하는 말은 아니니까요.
우리 곁의 가을걷이
오늘날에는 농사를 짓는 모습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기계가 논밭을 오가고, 옛날보다 훨씬 짧은 시간에 많은 곡식을 거두어들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가을걷이’라는 말까지 낡은 말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가을이 돌아오고 곡식이 익어 거두어들이는 일이 이어지는 한 이 말이 가리키는 모습도 우리 곁에 남아 있습니다.
농촌 체험이나 지역 잔치에서도 ‘가을걷이’라는 말을 써 볼 수 있습니다. ‘추수체험’이라고 하던 것을 ‘가을걷이 체험’이라고 부르면 어떤 일을 하는 자리인지 오히려 더 쉽게 다가올 수도 있겠습니다.
가을에는 거두는 기쁨이 있습니다
가을걷이는 단순히 곡식을 거두는 일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한 해 동안 씨를 뿌리고 가꾸어 온 것이 열매를 맺고, 그것을 거두는 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가을걷이라는 말을 떠올리면 농부들의 수고와 함께 잘 여문 곡식을 거두는 기쁨도 생각납니다.
저는 ‘가을걷이’라는 말을 더 자주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한자말을 밀어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좋은 말을 하나 더 알고 함께 쓰기 위해서입니다. 가을 들판을 지나실 일이 있다면 누렇게 익은 벼와 거두어진 들녘을 보며 ‘가을걷이’라는 말을 한번 떠올려 보시면 어떨까요?
‘추수’와 같은 뜻이지만 우리말의 모습이 더 또렷하게 드러나는 말입니다.
[마음 나누기]
여러분은 ‘가을걷이’라는 말을 어디에서 만나 보셨나요?
[한 줄 생각]
가을걷이는 익은 것을 거두는 일이며, 한 해의 수고가 열매로 돌아오는 때이기도 합니다.
[오늘의 토박이말]
▶ 가을걷이
뜻: 가을에 익은 곡식을 거두어들임.
보기: 가을걷이가 끝난 들판에는 찬 서리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한마디: 올해도 가을걷이를 잘 마쳤습니다.
[토박이말 길잡이] 결지기 이창수
이창수 시민기자 maljig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