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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진술을 거부할 권리가 있고··· 미란다 카드의 주인공

진술을 거부할 권리가 있고··· 미란다 카드의 주인공
[사회혁신]
에르네스토 미란다가 1967년 체포됐을 때의 머그샷. 애리조나주 박물관 아카이브 퍼블릭 레코즈 술집바닥에서 끝난 이야기 1976년 1월 31일,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한 술집에서 내기 놀음 끝에 시비가 붙었고, 사내 하나가 칼에 찔려 숨졌다. 서른넷이었다. 이름은 에르네스토 아르투로 미란다(Ernesto Arturo Miranda, 1941~1976). 미국 수사극에서 경찰이 수갑을 채우며 미란다카드를 꺼내 읽어 주는 그 문구, 이른바 미란다 원칙 의 바로 그 미란다다. 전해지기로 그를 찌른 혐의로 붙잡힌 용의자는 경찰이 읽어 주는 미란다 권리 고지 카드를 듣고 입을 꾹 다물었고, 풀려난 뒤 달아났다. 끝내 이 죽음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은 없다. 카드에 이름을 남긴 사내의 죽음 앞에서 그 카드가 쓰였다는 이야기다. 역사는 가끔 이렇게 짓궂다.   1967년의 미란다(위키피디아) 학교를 일찍 떠난 청년, 어느 밤의 범죄 미란다는 1941년 3월 9일 애리조나주 메사에서 멕시코계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좀도둑질로 소년원을 드나들었고 학교도 일찍 떠났다. 1963년 3월, 피닉스에서 18세 여성이 납치되어 성폭행을 당했다. 이 사건의 첫 번째 피해자는 헌법교과서에 이름이 실리지 않은 그 여성이다. 경찰은 3월 13일 미란다를 붙잡았다. 그는 줄 세우기가 끝난 뒤 경찰에게 내가 어땠소? 하고 물었고, 경찰은 피해자로부터 가해자로 지목되었다고 일러 주며 취조를 이어 갔다. 두 시간 남짓 이어진 취조 끝에 그는 가해사실을 명시한 자백서에 서명했다. 그 순간 누구도 그에게 진술거부권과 변호인을 부를 권리를 알려 주지 않았다. 그런데 자백서 머리에는 내 권리를 알고 스스로 적는다 는 문구가 미리 인쇄되어 있었다. 권리는 알려 주지 않고, 알았다는 문구만 먼저 찍어 둔 셈이다. 재판에서 그는 납치와 강간혐의로 각각 징역 20년 이상 30년 이하를 선고받았고, 두 형은 함께 집행되었다.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위치한 매리코파 카운티 법원 청사(1929년 건립). 국가 사적지(National Register of Historic Places)에 등재되어 있다(위키피디아) 5대 4, 아슬아슬한 승부 국선변호인이 항소했지만 주 대법원은 판결을 유지했고, 사건은 연방대법원까지 올라갔다. 1966년 6월 13일, 연방대법원은 5대 4로 가해자 미란다의 손을 들어 주었다. 다수의견을 쓴 대법원장 얼 워런(Earl Warren, 1891–1974)의 요지는 이랬다. 붙잡혀 신문받는 사람에게는 진술거부권이 있고, 그가 하는 말은 법정에서 불리하게 쓰일 수 있으며,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고, 돈이 없으면 나라가 변호인을 붙여 준다는 사실을 먼저 알려야 한다. 이를 어기고 받아 낸 자백은 증거로 쓸 수 없다. 이 판결 뒤 미국경찰은 그 문구를 작은 카드에 찍어 수사관마다 지니게 했고, 그것을 읽어 주는 일이 미란다 경고 가 되었다. 반대의견도 매서웠다. 존 마셜 할란 2세(John Marshall Harlan II, 1899–1971)는 수사의 손발을 묶을 위험한 실험이라 꼬집었고, 바이런 화이트(Byron White, 1917–2002)는 풀려난 범죄자가 다시 거리로 나올 것이라 경고했다. 반대한 사람은 모두 4명이었다. 한 표만 달랐어도 1966년의 이 판결은 없었다.   대법원장 시절의 얼 워런, 1953~1969년경(위키피디아) 이기고도 진 사람 정작 본인은 어떻게 되었을까. 1967년 다시 열린 재판에서 자백서는 증거에서 빠졌다. 그러나 동거하던 여성이 그가 털어놓았다 고 증언했고, 그는 같은 형량을 다시 받았다. 1972년 가석방으로 풀려난 뒤에는 자신의 이름을 딴 미란다 경고 이른바 미란다 카드에 서명해 푼돈에 팔았다고 전해진다. 세계 수사관행을 바꾼 사람이 무죄 판결은 한 번도 받아 보지 못했다. 그가 얻은 것은 자유가 아니라 이름이었다. ‘미란다’ 이름 석 자가 원칙이 되었고, 원칙은 그의 몸을 떠나 수많은 사람의 편이 되었다.   미란다가 수감되었고 재판이 열렸던 옛 매리코파 카운티 법원(위키피디아) 카드를 둘러싼 오랜 싸움 미란다 판결은 곧 정치의 먹잇감이 되었다. 1968년 대선에서 리처드 닉슨(Richard Nixon, 1913–1994)은 법원이 범죄에 무르다는 공세를 폈고, 같은 해 의회도 자백을 더 널리 증거로 쓰도록 법을 고쳤다. 그러나 2000년 연방대법원은 7대 2로 이 원칙이 헌법에서 나온 것이라며 지켜 냈다. 다수의견을 쓴 사람은 보수성향으로 이름난 대법원장 윌리엄 렌퀴스트(William Rehnquist, 1924–2005)였다. 반대하던 쪽이 판례의 무게 앞에 고개를 숙인 장면이다. 다만 2022년 연방대법원은 미란다 카드를 읽어 주지 않고 받은 자백이 법정에서 쓰였더라도, 그것만으로 따로 배상소송을 걸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원칙은 살아 있으나 구제의 길은 좁아졌다. 미란다 카드는 이렇게 지금도 줄다리기의 한복판에 있다.   1972년의 닉슨(위키피디아) 우리에게도 카드가 있었다 한국의 헌법 제12조는 체포나 구속을 당할 때 그 이유와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권리를 알려야 한다고 정하고, 형사소송법 제200조의5와 제244조의3은 체포이유와 진술거부권을 알리도록 한다. 대법원도 체포현장에서 곧바로 알려야 한다고 본다. 법전에는 다 있다. 하지만 법전에 있다고 현장에 있는 것은 아니다. 1987년 1월 서울대생 박종철(1964–1987)은 남영동에서 물고문으로 숨졌고, 경찰은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고 둘러댔다. 이 거짓말이 6월 항쟁의 불씨가 되었다. 박정희(1917–1979) 시대인 1975년 4월에는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대법원 확정판결이 난 지 하루도 안 되어 여덟 명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고문으로 받아 낸 이른바 ‘자백’이 증거의 왕이던 시절이다. 이 판결은 2007년 재심에서 무죄가 되었다.   박종철(나무위키) 지금 한국이 읽어야 할 카드 2024년 12월 3일 밤 윤석열의 비상계엄 포고령에는 위반자를 영장 없이 체포하고 구금할 수 있다 는 문구가 들어 있었다. 헌법이 영장 없는 체포를 엄격히 가두어 둔 것을 윤석열은 한 장의 포고령으로 뒤집으려 한 것이다. 미란다 사건에서 한국이 건져 올 것은 세 가지로 보인다. 첫째, 미란다 카드는 누구에게나 같은 목소리로 읽어 주어야 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수사하던 쪽과 수사 받던 쪽이 자리를 바꾸는 나라에서 어제의 수사관은 오늘의 피의자가 된다. 내 편에게는 느리게, 남의 편에게는 빠르게 읽는 미란다 카드는 카드가 아니라 무기다. 수사 받는 이가 누구든 방어할 권리를 똑같이 보장해야 수사의 정당성도 선다. 둘째, 자백보다 증거다. 한국은 2022년 1월 1일부터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 신문조서도 피고인이 내용을 부인하면 증거로 쓰지 못하게 했다. 심문실의 자백에 기대던 관행을 법정의 증거 싸움으로 옮기는 일이다. 수사효율을 이유로 이 흐름을 되돌리자는 목소리가 나올 때마다 박종철의 이름과 인혁당의 여덟 사람을 떠올려야 한다. 신문과정을 영상으로 남기고 변호인 참여를 넓히는 일도 빈틈없이 챙겨야 한다. 셋째, 피의자의 권리와 피해자의 보호는 맞바꾸는 물건이 아니다. 미란다 사건의 첫 피해자는 이름도 남기지 못한 여성이었다. 피의자에게 미란다 카드를 읽어 주는 나라는 피해자에게도 지원과 안전을 읽어 줄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은 수사 받는 사람의 인권을 말할 때마다 피해자 보호가 밀린다는 오랜 불만을 사 왔다. 둘을 함께 세우는 쪽이 미란다 카드의 정신에 맞다. 미란다는 두 번 유죄를 받았고 술집에서 허망하게 죽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이 붙은 ‘미란다 경고’는 오늘도 세계 곳곳에서 낯선 사람의 어깨를 지켜 준다. 권력이 미란다 카드 읽기를 귀찮아하는 순간을 역사는 기억한다.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메사 시 묘지에 있는 에르네스토 아르투로 미란다의 무덤(위키피디아)  김성수 시민기자 wadans@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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