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일 히틀러 100년 되는 날 독일 극우 AfD 전당대회 [행사] 4일(현지시간) 독일 동부 에르푸르트에서 이틀 일정의 독일대안당(AfD) 전당대회 막바지 2년 임기의 공동 대표로 재선출된 알리스 위델과 티노 크루팔라가 뭔가 얘기를 나누고 있다. 2026.7.4 로이터 연합뉴스
독일 정당 지지율 1위를 달리는 극우 성향 독일대안당(AfD)이 4일(현지시간) 튀링겐주 에르푸르트에서 진입로를 봉쇄하는 반대 시위를 뚫고 전당대회를 마쳤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나치당(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NSDAP)이 에르푸르트에서 열차로 30분 떨어진 이웃 도시 바이마르에서 전당대회를 열어 아돌프 히틀러(1889∼1945)에게 권력을 몰아준 지 정확히 100년 되는 날이다.
일간 벨트 등에 따르면 AfD 전당대회가 열린 튀링겐주 에르푸르트에는 이른 새벽부터 전국에서 모인 시위대가 시내 도로 12곳을 봉쇄하고 전당대회 저지를 시도했다. 경찰은 이날 오후 기준 에르푸르트에 집결한 시위 참가자를 3만 1000명으로 파악했다.
도심 전차 선로에 몸을 붙인 한 참가자는 AFP 통신에 1933년~1945년 나치 정권의 일이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 고 말했다. 반파시스트 연합 정당 저항 (widersetzen) 소속 레나 라우파츠는 AfD는 대규모 강제 추방과 거리 테러를 원하면서도 실제 문제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한다 고 비판했다.
그러나 전당대회는 예정대로 열렸다. 반대 진영의 봉쇄를 예상한 대의원들이 새벽부터 행사장 안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AfD는 전당대회 시작 5시간 전인 오전 5시에 이미 대의원 600명 중 540명이 모였다고 전했다.
AfD가 당내 행사를 열 때마다 크고 작은 시위가 열린다. 유독 이날 시위가 격렬했던 이유는 오는 9월 주의회 선거에 앞서 2년 임기의 공동대표를 뽑는 날인 데다 전당대회 날짜와 장소가 가진 역사적 의미가 작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치당은 1926년 7월 3∼4일 바이마르에서 일명 제국 당대회를 열어 히틀러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청년 조직 히틀러 유겐트 를 만들었다. 현재 독일을 비롯한 유럽 여러 나라에서 법으로 금지된 나치 경례와 구호 하일 히틀러 (히틀러 만세)도 이 행사를 통해 당내 공식 인사법으로 굳어졌다. 괴벨스가 나치당 베를린 총책으로 부상해 히틀러의 선전선동과 우상화에 총력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도 같은 해였다.
이 때문에 좌파 진영은 AfD가 일부러 날짜와 장소를 맞춰 잡아 도발했다고 주장한다. 안드레아스 아우드레치 녹색당 원내부대표는 AfD가 이곳 에르푸르트에서 의도적, 노골적으로 히틀러 정당 NSDAP의 전통을 잇고 있다 고 말했다.
AfD는 전당대회 저지에 실패한 시위대가 행사장 바깥에서 소음을 내며 행사를 방해하는 가운데 알리스 바이델과 티노 크루팔라를 2년 임기 공동대표로 다시 선출했다.
AfD 반대 시위대 AP 연합뉴스
독일 기성 정당들은 AfD와 어떤 경우에도 협력하지 않는다는 일명 방화벽 원칙에 따라 AfD를 고립시키고 있다. 그러나 오는 9월 작센안할트·베를린·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주의회 선거를 앞두고 AfD가 주정부 권력을 잡을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커졌다. AfD는 옛 동독 지역인 작센안할트와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에서 여론조사 지지율 40% 안팎으로 단독 정부 수립을 노리고 있다.
나치를 연상시키는 언행으로 악명 높은 튀링겐주 AfD 대표 비외른 회케는 이날 연설에서 방화벽이 우리를 키워줬다 며 이제 우리는 독일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이 됐다. 곧 옛 동독 지역에서 첫 주총리를 맞게 될 것 이라고 주장했다.
AfD가 처음으로 독일 정치권에서 존재감을 분명히 드러낸 것은 2024년 9월의 일이었다. 경제난과 반이민 정서에 힘입어 경제적으로 뒤처진 옛 동독 지역에서 덩치를 키우는 데 성공했다. 튀링겐주 주의회 선거 예비 결과에서 32.8%의 득표율로 승리했다. 독일에서 극우 정당이 주의회 선거에서 승리한 건 1945년 나치 패망 이후 79년 만의 일이어서 많은 충격을 안겼다. 작센주 주의회 선거에서는 보수 성향 기독민주당(CDU)이 31.9%로 1위에 올랐고, AfD가 30.6%로 근소하게 따라붙었다.
AfD는 튀링겐주와 작센주에서 2019년 선거 대비 각각 9.4%포인트, 3.1%포인트를 더 득표하며 존재감을 키웠다. 2차 세계대전 이래 극우 민족주의를 경계하는 분위기가 이어져 왔던 독일에서 이민 반대와 혐오 논리를 앞세운 극우 정당이 힘을 얻었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AfD는 2013년 창당한 이래 이슬람 혐오나 난민 배척 정서를 먹이 삼아 덩치를 키워 왔다. 미국 일간 워싱턴 포스트(WP)에 따르면, AfD는 2015년 유럽의 시리아 난민 위기를 발판으로 연방 하원에서 첫 의석을 차지했다. 이어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음모론을 펼치고 팬데믹 정책 반대 시위를 벌였다. 극단주의 세력 이슬람국가(IS)의 테러가 발생했을 때도 이주민 혐오 논리를 펼쳤다.
튀링겐주와 작센주는 옛 동독에 속하는 지역으로, 경제적으로 낙후한 탓에 반이민 정서가 강했는데 여기에 더해 우크라이나 전쟁, 높은 물가 등의 문제도 겹치며 극우의 주장에 날개를 달아준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 통신은 이번 결과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인플레이션 등 여러 위기를 맞아 유럽 전역에서 정치적 지형이 분열되고 반체제 정당이 부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독일 정치권을 대표하는 사회민주당(SPD)과 CDU 등은 극우 성향의 AfD와는 연정을 꾸리지 않겠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독일 헌법수호청(BfV)은 튀링겐주와 작센주의 AfD를 우익 극단주의 단체로 지정해 합법적으로 감시하고 있다.
독일 신나치주의자들 게티 이미지
한편 영국 BBC는 BfV 연례 보고서를 인용해 이 나라의 우익 극단주의자들이 여전히 독일 민주주의에 가장 큰 위협이며, 지난해 그 수가 5만 8700명으로 크게 증가했다고 지난 1일 전했다. 보고서는 이 숫자가 전년도에 견줘 8000명 이상 늘어났다며, 극좌 폭력 사태도 증가하고 있어 독일의 법치주의에 대한 경고라고 덧붙였다.
시난 젤렌 BfV 국장은 독일 민주주의가 내외부로부터 사실상 영구적인 공격 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BfV가 확인한 우익 극단주의자 중 5600명이 폭력 성향을 가진 것으로 추정되었다. 기관은 극우 세력 증가의 주된 원인이 2025년 당원 수가 7만 명으로 증가한 AfD의 성장 때문이라고 밝혔다. AfD는 지난해 9월 연방 선거에서 2위를 차지하며, 630석 의회 중 20.8%의 득표율로 152석을 기록했다.
극우 단체들은 점점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 집중하고 있으며, 지난해 역대 기록적인 인원을 기록한 극우 음악 공연에서 새로운 회원을 모집하고 있다고 BfV 보고서는 전했다.
AfD는 지난해 우익 극단주의 단체로 지정되었으나, 당이 BfV의 움직임에 법원에 이의를 제기한 후 2월에 해당 분류가 중단되었고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당시 독일 외무부는 미국 국무장관 마르코 루비오가 이 조치를 위장한 폭정 이라고 부르고, JD 밴스 미국 부통령이 베를린 장벽이 재건 중이라고 말한 후 이 결정을 옹호했다.
BfV는 여전히 이 정당을 의심되는 극단주의 조직 으로 분류하고 있으며, 최신 보고서에서는 당원 수가 증가하는 것을 보면 AfD 내 극단주의 성향의 인물층도 그에 따라 확대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 밝혔다. 보고서는 우익 극단주의 및 음모론 내러티브—예를 들어 인구 교환 ( population exchange)이나 위대한 교체 (Great Replacement) 같은 것들이 AfD와 우파 내 다른 단체들에 의해 자주 받아들여진다 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또한 제국 시민 (Reichsbürger)과 자치 (Selbstverwalter, self-administrator) 그룹에서 약 2만 6000명의 극우 세력도 확인했다. 이들 단체는 연방공화국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의 헌법, 법률, 권한을 거부하며, 음모론 이데올로기와 반유대주의 서사를 자주 퍼뜨린다 고 보고서는 전했다.
보고서는 이어 지난해 좌파 극단주의에 연루된 인원이 4200명 증가해 4만 2200명에 이르렀다고 언급했다. 우익 극단주의자로 의심되는 이들과 경찰관들에 대한 폭력이 크게 증가했다고 전했다. 또 이슬람주의 또는 이슬람주의 테러 에 연루된 인원 수도 2만 8645명으로 소폭 증가했다고 헌법수호청은 지적했다.임병선 에디터 byeongseon1610@mindl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