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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007 시리즈 이언 플레밍… 세련된 스파이 판타지 창작

007 시리즈 이언 플레밍… 세련된 스파이 판타지 창작
[뉴스]
이언 플레밍(Ian Lancaster Fleming, 1908~1964)은 007 제임스 본드 시리즈를 쓴 영국 소설가다. 부유한 은행가 집안에서 태어나 이튼과 샌드허스트를 거쳤지만 정작 공부에는 별 뜻이 없었다. 이튼에서는 아침 조회에 지각하기로 유명했고, 샌드허스트 졸업 후 외무고시에도 떨어졌다. 결국 모스크바 특파원, 증권브로커를 전전하며 이렇다 할 성과 없이 30대를 맞았다. 본인 표현으로도 세상에서 가장 형편없는 증권맨 중 하나 였다고 하니, 요즘 식으로 말하면 취업준비생 시절이 꽤 길었던 셈이다. 인생의 전환점은 1939년에 찾아왔다. 해군정보국장 존 고드프리(John Henry Godfrey, 1888~1970) 제독의 개인 보좌관으로 발탁된 것이다. 학벌도 실무 경험도 변변찮던 남자가 하필 영국첩보전의 심장부, 런던해군본부 39호실에 앉게 된 것이다. 고드프리는 유능하지만 까다롭기로 악명 높은 인물이었는데, 이상하게도 플레밍과는 죽이 잘 맞았다. 인생이란 참 알 수 없다.   1958년 경의 플레밍(위키피디아) 낚시로 적을 속인다는 남자들 플레밍이 고드프리 밑에서 한 일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이른바 송어 비망록 이다. 낚시로 물고기를 속이듯 적을 속이자는 취지의 이 문서는 고드프리의 이름으로 발표됐지만, 실제로는 플레밍의 문체와 발상이 짙게 배어 있어 오늘날까지도 플레밍이 실질적 저자라는 게 정설이다. 이 문서에는 무려 54가지 기만작전 아이디어가 담겨 있었는데, 그중 28번 항목이 압권이다. 시체에 가짜문서를 심어 적이 줍게 하자 는 제안이었다. 이 황당한 아이디어는 훗날 진짜로 실행된다. 1943년, 법률가 출신 정보장교 이웬 몬테규(Ewen Montagu, 1901~1985)와 공군장교 찰스 촐먼들리가 이를 발전시켜 민스미트 작전 을 감행했다. 쥐약을 먹고 죽은 부랑자의 시신에 가짜 해병장교 신분과 위조서류를 심어 스페인 해안에 떠내려 보낸 것이다. 서류에는 연합군이 이탈리아 서쪽 지중해에 있는 큰 섬 사르데냐(Sardinia)와 그리스를 침공할 것처럼 꾸민 거짓 정보가 담겨 있었다. 독일군은 감쪽같이 속았고, 실제 목표였던 시칠리아 상륙작전은 예상보다 수월하게 성공했다. 윈스턴 처칠(1874~1965) 총리가 직접 이 작전을 승인했다.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이야기가 실제로 벌어진 셈이니, 나중에 플레밍이 스파이 소설을 쓰겠다고 나섰을 때 주변에서 또 무슨 시체 이야기냐 며 웃었을 법도 하다.   이웬 몬테규(위키피디아) 지루한 이름 하나가 만든 신화 전쟁이 끝난 뒤 플레밍은 신문사 해외담당 임원으로 일하며 자메이카에 별장을 짓고 겨울마다 그곳에서 지냈다. 본인은 그 집을 골든아이 라 불렀는데, 전쟁 중 자신이 입안했던 지브롤터 방어계획의 암호명에서 따온 이름이었다. 1952년, 약혼녀 앤 차티리스와의 결혼을 앞두고 초조함과 무료함을 못 이겨 타자기를 두드린 게 첫 소설 『카지노 로얄』이다. 약혼녀가 그림을 그리는 동안 플레밍은 매일 아침 소설을 썼고, 두 사람의 결혼식에는 절친한 극작가 노엘 코워드(Noël Coward, 1899~1973)가 증인으로 참석했다. 주인공 이름은 플레밍이 즐겨 읽던 조류도감 『서인도 제도의 새들』의 저자, 실존 조류학자 제임스 본드(James Bond, 1900~1989)에게서 그대로 따왔다. 열혈 탐조가였던 플레밍은 가장 평범하고 밋밋한 이름 , 무미건조하고 단조로운 이름 을 원했다고 밝혔다. 정작 진짜 제임스 본드는 이 우연을 별로 반기지 않았고, 1964년 자메이카에서 두 사람이 실제로 만났을 때는 당신 책은 안 읽는다, 내 아내만 읽는다 고 시큰둥하게 답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소설은 처음엔 미국에서 큰 반응이 없다가, 1961년 존 F. 케네디(John F. Kennedy, 1917~1963) 대통령이 잡지 인터뷰에서 애독서로 꼽으면서 폭발적으로 팔리기 시작했다. 플레밍은 1953년부터 1966년까지 열두 편의 장편과 두 권의 단편집을 남겼고, 어린이용 동화 『치티치티 뱅뱅』도 썼다. 그의 소설은 전 세계에서 1억 부 넘게 팔렸고, 2008년 더 타임스는 그를 1945년 이후 영국의 위대한 작가 50인 중 14위에 올렸다. 정치인 한 마디에 판매고가 뒤집히는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1974년 필라델피아 자연과학 아카데미에서 촬영된 조류학자 제임스 본드(위키피디아) 스파이는 어떻게 멋있어졌나? 플레밍의 007은 단순한 오락물이 아니었다. 스파이를 세련되고 매력적인 존재로 그려내며, 국가 정보기관과 정보요원의 이미지를 대중문화 속에서 통째로 탈바꿈시켰다. 실제로는 도청, 매수, 협박, 암살 모의로 얼룩진 정보기관의 세계를, 턱시도와 마티니와 애스턴 마틴(Aston Martin), 즉 영국의 고급 스포츠카로 포장한 것이다. 냉전기 서방 세계는 이 판타지를 마음껏 소비했고, 정보기관은 그 덕에 실제보다 훨씬 근사한 이미지를 얻었다. 심지어 플레밍 본인이 상상 속에서 만든 소품과 장비들이 훗날 실제 정보기관의 연구방향에 영향을 줬다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였으니, 허구가 현실을 견인한 드문 사례라 할 만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플레밍이 근무했던 해군 정보국이 들어 있던 해군성 건물(위키피디아) 한국에 던지는 질문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픽션 속에서는 국가권력의 은밀한 폭력이 매력과 낭만으로 소비되지만, 현실에서 그 권력이 실제로 작동할 때는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한국은 이 간극을 뼈저리게 알고 있는 나라다. 2024년 12월 3일 밤, 군과 정보기관이 동원된 계엄 선포가 실패로 끝난 뒤에도, 여전히 일부에서는 그날의 군인들과 정보라인 인사들을 국가를 지키려 한 결단력 있는 인물들 로 미화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007이 스크린 안에서나 멋있는 이유는, 그것이 어디까지나 허구이기 때문이다. 현실의 군홧발과 정보기관 문건은 국민의 삶을 짓밟을 수 있는 진짜 무기다. 플레밍이 첩보의 세계를 오락으로 소비할 수 있었던 것도, 영국이 그 시절 이미 문민통제가 확고한 사회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여유였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정보기관과 군의 은밀한 힘은, 민주적 통제 밖으로 한 발짝만 벗어나도 소설이 아니라 국민의 삶을 위협하는 현실이 된다. 007을 보며 낭만을 느끼는 것과, 실제 권력기관의 탈선을 낭만화 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한국사회가 지난 2024년 겨울의 계엄사태를 되짚으며 반드시 구분해야 할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윌트셔주 세븐햄프턴에 있는 플레밍의 무덤과 기념비(위키피디아)  김성수 시민기자 wadans@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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