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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무서운 건 바이러스일까, 그로 인한 사회적 변질일까

무서운 건 바이러스일까, 그로 인한 사회적 변질일까
[사회혁신]
프랑스의 쥘리아 뒤쿠르노는 세계에서 가장 불편하고 끔찍한, 심지어 혐오스러운 영화를 만드는 것으로 유명한 감독이다. 그녀의 관심은 주로 인간 신체의 변형이나 기이한 결합에 있다. 이전 세대 감독 중에도 같은 경향의 감독이 한 명 있었는데 캐나다의 데이비드 크로넨버그가 바로 그런 인물이었다. ((1986)에서는 사람이 파리의 유전자와 섞인다. (1983)에서는 인간의 뱃속에서 TV가 튀어나온다) 크로넨버그의 뒤를 잇는 뒤쿠르노의 전작 (2021)은 어릴 적 교통사고로 머릿속에 티타늄이 박혀 있는 여자가 점점 성적으로 일탈하더니(당연히 섹스신의 수위가 높다) 나중에는 자동차와 섹스를 하고,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임신까지 하는 데다, 결국 ‘자동차 아이’를 낳는다는 이야기다. 너무 나가는 것 같고 선을 한참 넘는 것 같은 서사의 영화지만 뒤쿠르노의 영화들은 이상하게도 세상에 대한 ‘메타포’를 가득 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2016년 작인 는 식인 습성에 관한 이야기였다. 충격적일 만큼 어두웠다.   사람을 석고처럼 굳게 만드는 바이러스, 어디에서 왔을까 이번 신작 는 이상 바이러스에 관한 이야기다. 혈액을 매개로 감염된다. 몸에 각질이 생긴다. 처음에 아토피 같은 것으로 보이다가 점점 더 딱딱하게 되고 결국 몸이 굳고 움직일 수 없게 된다. 마치 대리석과 인간이 서로 섞이게 된 듯한 느낌을 준다. 실제로 영화 속 감염자들이 죽을 때는 거의 석상처럼 보인다. 이 바이러스는 코로나19처럼 바로 죽지도 않는다. 영화 속에 나오는 감염자는 아이가 5살 때부터 13살이 넘을 때까지 거의 10년을 앓는다. 에서 나오는 신체 이상 증후군은 코로나19보다 AIDS에 더 가까워 보인다. 마침 시대 배경도 1980~1990년대이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따위’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대신 붉은 바람이 나온다. 무슬림들이 주인공이다. 초기 북아프리카계 이민자들이 프랑스 사회에서 한참 주목받고 있던 때다. 사회적 소외와 억압, 이른바 ‘타자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때였다. 이 두 가지가 영화 에서 중요한 키워드다. 뒤쿠르노 영화의 또 다른 특징 중의 하나는 스토리의 시간과 캐릭터를 뒤섞는다는 것이다. ‘이때의 이 인물이 저 때는 저 인물’로 나온다. 에서는 바로 그 점이 극단적으로 표출된다. 그래서 영화가 다소 어렵게 읽힌다. 철학적이거나 종교적으로 그렇다는 얘기가 아니다. 선형적인 이야기 구조와 동일화된 캐릭터에 익숙해져 있는 (그래서 그것을 흔히들 ‘컨티뉴이티’라고 부르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뒤쿠르노는 영화를 실로 낯선 방식으로 풀어나가기 때문이다. 당장 연기를 하는 배우들이 시나리오 전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는 결코 대중영화가 아니다. 이야기를 어떻게 전개 시키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무엇을 얘기하려는 것인가가 더, ‘훨씬 더’, 중요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팔뚝에 문신 새기다 감염된 13살 소녀와 삼촌 이야기는 알파란 이름을 지닌 소녀(멜리사 보로스)의 5살과 13살 때 얘기를 오가고 뒤섞는다. 13살 소녀는 아드리앵(루아이 엘 엠로시)이라는 남자아이를 좋아하고 이 두 청소년은 종종 일탈을 즐기는데 당연히 약물과 알코올이 난무하는 곳에서다. 어느 날 알파는 팔뚝에 A라는 글자(자신의 이름 알파에서 딴 A)를 새긴다. 80년대는 문신 기술이 섬세하지 않을 때였다. 무엇보다 시술 장비의 위생 상태가 지금보다는 훨씬 불량하던 때였다. 게다가 알파는 비전문가에게(친구나 파티에 온 남자 누군가에게), 약에 취한 채 조악하게 글자를 새긴다. 알파는 당장 감염된다. 알파에게는 이미 감염자인 외삼촌 아민(타하르 라힘)이 있다. 기억은 못 하지만 알파는 5살 때 아민의 팔뚝에 난 바이러스 증상에 사인펜으로 선을 긋고 마치 별자리처럼 그림을 그리며 놀기도 했다. 알파는 삼촌 아민과 따뜻한 유년기를 보냈지만 거의 그때를 기억하지 못한다. 영화는 5살 때의 알파 얘기를 영화 중간중간 불쑥 끼어들게 한다. 아민 삼촌 캐릭터 역시 이상한 방식으로 알파의 일상에 나타난다. 알파가 병원에 진단을 받으러 대기실에 앉아 있을 때 아이들에게 호모라고 놀림과 무시를 당하는 담임선생이 감염자 친구를 데리고 들어온다(마치 에이즈 커플처럼). 이때의 감염자 친구는 얼굴의 반이 이미 석고상처럼 변했는데 그게 바로 아민처럼 보인다. 1인 2역 같은 기법이 아니다. 인물의 관계와 시간 자체를 뒤섞는다. 이를 굳이 현실적으로 해석하자면 다른 공간, 다른 시간대에 있는 사람들이 이미지가 비슷하거나 심지어 동일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얘기처럼 보인다. 실제로 우리는 살아가면서 그 같은 ‘비현실의 현실감’을 강하게 느낄 때가 있다. 인물의 동일성보다 이미지의 동일성 때문이다. 이 부분이 영화 를 보면서 난독증을 호소하게 하는 부분이다.   인간이 분열되고 바이러스와 뒤섞일 때 진짜 무서운 것은? 알파의 엄마이자 아민의 누나(골쉬프테 파라하니, 그녀가 할리우드 근육질 스타 크리스 헴스워스와 같이 나온 넷플릭스 액션영화 는 대중적으로 꽤 인기가 높았다)는 의사다. 이 부분도 그렇다. 엄마는 때론 엄마였다가 때론 의사’만’이기도 하다. 엄마 캐릭터는 엄마와 병원 의사 이미지를 줄곧 오간다. 엄마는 무슬림인 자신의 엄마(알파의 할머니)가 절대적으로 여기는 것처럼 붉은 바람과 물의 신성함을 믿는다. 알파는 아민이 마약 주사를 맞고 쓰러져서 흉부 압박을 가할 때는 물이 피를 맑게 한다는 미신 따위 필요 없다며 엄마에게 저리 가라고 소리를 지른다. 그러나 정작 아민이 붉은 바람이 갖는 신성을 모독하는 이야기를 하자 알파는 반대로 불같이 화를 낸다. 영화 속에서 엄마란 존재 역시 몇 개의 여성으로 분열된 듯 보인다. 는 바이러스의 공포와 그로 인한 육체적 변형, 그보다 더 무서운 정신적 ‘변질’에 대해 얘기한다. 1980년대의 에이즈와 2020년대의 코로나19를 뒤섞고 여기에 이상 바이러스와 인간의 결합이 누적됐을 때 생기는 파괴된 이미지를 얹힌다. 영화는 난독증을 호소하는 서사구조로 관객들을 몰아넣지만 결국 사람들은 집단 감염 자체가 아니라 감염 여부에 대한 공포가 집단화될 때 더 큰 문제가 된다는 점을 인식하게 한다. 에이즈에 대한 트라우마는 코로나19 때 재현되거나 그 기억 속에서 별개의 이미지로 공포스럽게 재현됐던 셈이다.   ‘다른 것’에 대한 차별과 대상화로 감염된 인간 사회 영화 는 감염 공포와 같은 차별의식, 대상화, 타자화가 오랜 기간 사회적으로 누적되면서 인간 사회가 어떻게 변질해 왔는지를 표현하려 애쓴 영화이다. 그럼에도 쥘리아 뒤쿠르노의 파격적인 비주얼과 영상을 원했던 사람들에게 이번 는 지독하게 일상적이다. 인물 간에 섹스가 없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인데다 가족이라는 설정 때문이다. 뒤쿠르노의 관심이 가족주의로 옮겨 온 듯한 느낌마저 든다. 그래서인지 영화에 대한 호불호가 대중적으로 크게 갈릴 것으로 보인다. 감염 공포가 만연한다는 건 일종의 낙인 효과와 관련이 있다. 알파가 새기는 A는 주홍글씨를 말하고 그건 사회적 차별의 시작을 의미한다. 알파는 시작이라는 뜻의 라틴어다. 는 결국 현대사회의 계급적, 종교적, 사회적 차별에 대해 얘기하는 영화이다. 그 심각성이 얼마나 깊어졌는지를 드러내면서 시작점에 대한 기억을 살피되 그 기억이 시간을 경유하면서 다른 감염 공포와 섞인 후, 그것이 또 얼마나 이상하게 변질되고 비인간적이 되는지 보여주는 작품이다. 북아프리카계, 무슬림들을 캐릭터로 내세워 사회적 타자화, 대상화의 문제를 경고하는 얘기이기도 하다. 다른 인종의 캐릭터는 담임선생이 거의 유일한데 그는 게이다. 결국 이 인물도 (학생들에게조차) 소외되고 차별받는우 사람이다. 병원 대기실에서 만나는 백인 여자는 ‘난 어차피 죽을 목숨’이라고 얘기한다. 차별의 주체가 객체로 바뀌고 변질됐음을 보여준다.   영화에 시비 걸지 말고 그 너머를 봐야 하지 않나 요즈음 한국 사회가 한 영화를 두고 수준 낮은 공격과 논쟁에 몰두할 때 프랑스 사회는 사회적 공포의 심연과 본질을 보여주려 애쓴다. 사람들이 진짜로 무서워하고 경계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려는 셈이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 ‘아니어서’ 오히려 영화 너머를 보여 줄 수 있는 것이다. 영화가 영화에만 머물면 도약이 없다. 사람들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 영화는 실제 정치와 사회, 기억의 역사를 늘 영화적으로 소환하고 변질시킨다. 그 깊이를 알게 되면 정치와 역사와 사회가 새롭게 보인다. 가 바로 그런 영화다. 지난 9월 30일 개봉했다. 흥행 성적은 극히 저조하다. 낮은 수준의 영화적 논쟁에 휩싸인 사회일수록 같은 영화는 성공하기 힘들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 점이 더 공포스럽다. (모든 사진 수입사 찬란 제공)오동진 ohdjin1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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