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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정치적 괴롭힘 은 집회와 시위의 자유에서 배제해야

정치적 괴롭힘 은 집회와 시위의 자유에서 배제해야
[뉴스]
정치적 반대자를 집요하게 따라다니고, 집 앞에 몰려가고, 확성기로 증오에 기반한 공격적 언사를 외쳐대고, 범죄자나 간첩이라고 낙인찍고, 반복적으로 모욕하는 행위를 우리는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집회나 시위라고 부르면 되는 것일까. 표현의 자유라고 부르면 되는 것일까. 집회와 시위 또는 표현의 자유라는 헌법적 권리를 악용한 괴롭힘이라고 규정해야 하지 않을까. 이 질문은 단순한 용어의 정립 문제가 아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집회와 시위, 표현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하는 최고 수준의 기본권이다. 권력자를 비판할 수 있어야 하고, 대통령을 욕할 수도 있어야 한다. 매우 거칠고 불편하게 들리는 정치적 주장이라 할지라도 원칙적으로 표현될 자유를 누린다. 그러나 여기에서 반드시 법리적으로 구별해야 할 지점이 있다. 집회나 시위를 할 권리, 의견을 표현할 권리와 타인을 괴롭힐 권리는 동일한 차원의 권리인가? 집회와 시위는 공동의 의사를 형성하고 이를 대중에게 표현하기 위해 모이는 행위다. 반면 괴롭힘은 특정인을 고의로 표적 삼아 반복적으로 압박하고, 위협하고, 모욕하며, 일상적 생활의 평온을 파괴하는 행위다. 둘은 외형상 유사해 보일 수 있다. 사람들이 모인다. 구호를 외친다. 확성기를 사용한다. 현수막을 건다. 정치적 주장을 한다. 그러나 행위의 목적과 대상, 방식과 결과를 법익 침해의 관점에서 종합하면 전혀 다른 행위다. 예컨대 광장에서 정부의 대북정책을 규탄한다”고 외치는 것과, 전 대통령의 사저를 찾아가 장기간 반복적으로 OOO은 간첩이다”라고 외치는 것은 단순히 정치적 표현이라는 하나의 범주로 묶일 수 없다. 전자는 정책에 대한 공적 비판이다. 후자는 특정 개인을 대상으로 삼은 인격권 침해이자 반복적인 폭력적 행위다. 특히 행위의 장소가 주거지가 될 때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주거지는 공론장이 형성되는 정치적 광장이 아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사생활의 비밀·평온이 보호받아야 하는 최후의 사적 공간이기 때문이다. 헌법상 표현의 자유 역시 타인의 권리나 명예, 사회도덕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한계를 지니지 않는가? 따라서 민주주의는 두 가지 자유를 균형 있게 보장해야 할 것이다. 집회할 자유와 집회에 시달리지 않을 자유. 정치적으로 표현할 자유와 괴롭힘에 방치되지 않을 자유.   4일 서울 성북구에 있는 영화 암살자(들)의 주연 배우 유해진 자택 앞에서 보수단체 회원들이 제작사와 배우를 규탄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2026.10.4 연합뉴스 후자를 완전히 새로운 기본권으로 창설할 필요는 없다. 주거의 평온, 인격권, 명예권, 신체의 안전 등은 이미 헌법과 민·형법이 두텁게 보호하는 법익이다. 핵심은 집회와 시위의 자유, 표현의 자유가 다른 모든 기본권을 무력화하는 만능의 절대적 권리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판결 어디에 평화적 집회와 시위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는 것을 넘어 반복적으로 자행되는 폭력적인 언행이나 집단적 위력으로 타인에게 의견을 강요하거나 일상의 삶을 침해하는 행위까지 보호한다고 하고 있는가? 현행 집시법 또한 주최자의 질서유지 의무를 명시하며 신고 범위를 현저히 벗어나거나 타인에게 직접적인 위험을 초래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지 않는가? 현 시점에서 우리가 던져야 할 문제 제기는 이것이다. 이 행위는 진정으로 헌법이 보호하는 집회 또는 시위인가, 표현의 자유인가? 아니면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참칭하고 표현의 자유를 빙자한 괴롭힘인가?” 민주주의가 집회와 시위의 자유, 표현의 자유라는 본질을 지켜내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이 둘을 엄격히 구별해야 한다. 정치적 반대자를 간첩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자유는 어디까지 보호되어야 하는가 정치적 논쟁은 진실 여부를 다투는 순간 더욱 복잡해진다. 우리 사회는 특정 정치인을 향해 벌써 수년 전부터 이렇게 외치는 주장이 난무하고 있다. OOO는 간첩이다.” 이 주장에 불편해하는 쪽에서는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이나 처벌 필요성을 주장한다. 주장자는 객관적 정황과 판단 근거가 있다고 반박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지점에서 논쟁은 수렁 같은 진실과 허위의 공방으로 빠져든다. 하지만 여기에서 법치주의적 질문을 하나 더 던져야 한다. 설령 주장하는 사람에게 나름의 정황이나 근거가 있다 한들, 그것이 그 주장을 전달하는 모든 행위 방식을 정당화하는가? 집회와 시위의 자유,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기존의 프레임만으로는 이 문제를 풀 수 없다. 특정 정책이나 정치적 행보를 평가하는 것과, 특정 개인에게 범죄적 정체성을 규정하여 사회적으로 매장하는 것은 전혀 다른 법적 성격을 갖는다. 대북정책이 편향되었다.” 북한에 지나치게 우호적이었다.” 국가안보상 중대한 실책이 있다.” 이러한 표현은 정치적 비판과 검증의 영역에서 폭넓게 보호받아야 한다. 그러나, 저 사람은 간첩이다”라는 단정적 규정은 특정 개인을 공공의 적이자 형사처벌 대상인 범죄자로 낙인찍는 행위다. 나아가 이 표현이 빨갱이는 죽여도 된다” 같은 선동적 구호와 결합하고, 특정인의 집 앞에서 장기간 반복된다면 이는 비판의 영역을 넘어 집단적 공포와 압박을 창출하는 수단으로 기능한다. 여기서 핵심은 ‘간첩’ 같은 특정 단어 자체를 금지하자는 것이 아니다. 간첩 혐의에 대해 수사를 촉구할 자유는 있다고 보아야 한다. 정부의 대북정책을 강하게 규탄할 자유는 당연히 보장된다고 보아야 한다. 수사나 재판 과정을 보도하고 정당한 논평을 할 자유도 당연하다. 공인의 행위에 간첩죄 성립 가능성이 있다고 학술적으로 주장할 자유에 대해서는 그 어떤 반론도 제기되기 어렵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보호하는 것은 정치적 주장을 공론장에서 펼칠 자유이지, 그 주장을 무기 삼아 특정인의 사적 생활공간을 지속적으로 포위하고 위협할 자유까지는 아니다. 법치국가에서 주장의 근거와 행위의 정당성은 철저히 분리되어야 되지 않는가? 설혹, 아무리 객관적 사실이나 근거에 기반한 주장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타인의 주거 평온을 파괴하고 인격권을 침해하는 방식으로 행사될 권리로 변모하지는 않는다. 주장의 정당성이 행위의 위법성까지 조각해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근거의 존재가 모든 행위 수단과 방식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일본 우익세력이 도쿄 도심에서 욱일기 등과 함께 혐한 시위를 열었다. 2018.12.9 연합뉴스 이 명제는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와 시위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헌법적 권리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건강하게 작동하도록 만드는 한계 설정이다. 집회와 시위의 자유, 표현의 자유가 타인의 일상을 점거하고 지속적인 공포와 굴욕을 강요할 자유를 포함한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정치적 괴롭힘의 법리로 풀자 이 문제를 풀어가는 데 있어 성희롱 관련 법리는 매우 유용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성희롱의 법리는 단순히 개별 발언이나 행위만을 떼어놓고 보지 않는다. 행위자에게 성희롱 의도가 있었는가?”라는 주관적 요소에만 의존하지도 않는다. 어떤 맥락과 상황에서 이루어졌는가? 당사자 간의 관계와 지위는 어떠한가? 행위가 단발성인가, 지속적·반복적인가? 그 행위로 인해 피해자에게 어떠한 적대적·굴욕적 환경이 조성되었는가? 단편적 언행이 아닌 행위와 환경 전체의 종합적 양태를 판단한다. 물론 성희롱과 집회와 시위, 표현의 자유는 보호법익과 적용의 메커니즘이 다르다. 그러나 개별 행위가 만들어내는 전체적 환경과 위력의 구조를 평가한다는 법리적 사고방식은 매우 유효하다. 인터넷 게시판에 ○○는 간첩이다”라고 단발성 글을 올린 행위와, 수십 명이 특정인의 집 앞으로 몰려가 매일 같은 구호를 외치고, 확성기로 이름을 부르며, 간첩이라 단정하고, 주민들의 일상 공간에서 모욕과 위협을 수개월간 지속하는 행위를 동일한 법적 기준(단순 명예훼손이나 표현의 자유)으로 다루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오늘 우리 사회에 난무하는 집회와 시위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악용한 집단적 행위에 대해 정치적 괴롭힘(Political Harassment)이라는 법적·사회적 분석 개념을 제안한다. 더욱 정치한 개념 정립은 법조계와 법학계에서 향후에 논의해야겠지만, 정치적 괴롭힘은 다음과 같은 7가지 정도의 객관적 요소를 종합적으로 형량하여 판단할 수 있다. 특정성: 불특정 다수나 정책이 아닌 특정 개인 및 그 가족을 직접 겨냥하는가. 반복성: 단발성 집회·시위인가, 지속적이고 계획적인 반복 행위인가. 집단성: 개인의 의사표현인가, 다수가 조직적·위력적으로 수행하는가. 장소성: 광장·의회·관공서 등 공적 장소인가, 주거지·학교 등 사적 평온이 보호되어야 할 장소인가. 위압성: 고성능 확성기, 집단적 포위, 추적, 물리적 접근 등 위력을 동원하는가. 환경적 효과: 대상자의 공간을 지속적인 공포, 굴욕, 정신적 고통의 환경으로 탈바꿈시키는가. 지속성: 일회적 해프닝인가, 중단 없이 장기간 계속되는가. 정치적 괴롭힘은 단순한 ‘거친 언사’가 아니다. 특정인을 정치적 적대 환경에 가두어 인격적으로 파멸시키려는 집단적 위력 행사다. 이 개념의 강력함은 간첩 이나 매국노 같은 특정 표현을 사전 검열하거나 금지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표현의 내용이 아닌 행위의 맥락, 수단, 지속성, 그리고 파괴적 효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함으로써 헌법적 권리를 제한하지 않고도 타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상호 조화시킬 수 있다. 민주주의의 자기방어를 위해 헌법적 권리를 참칭한 정치적 괴롭힘을 즉각 중단시켜야 한다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민주주의는 과연 어디까지 집회와 시위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하는가. 불편하고 위협적인 언행까지 무제한 허용해야 한다는 교조적 방임론은 답이 될 수 없다. 그렇다고 위험해 보이는 정치적 주장은 사전 통제해야 한다는 권력주의적 통제론 역시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민주주의의 참된 가치는 그 정교한 경계선 위에 존재한다. 자유로운 정치적 의사 표현은 민주주의의 피와 산소다. 그러나 그 자유가 타인의 삶을 추적하고, 포위하며, 인격적으로 파멸시키는 집단적 위력으로 변질되는 순간, 그것은 표현이 아니라 폭력이다. 집회와 시위가 아니라 범죄행위이다. 특히 특정인을 ‘간첩’, ‘국가의 적’, ‘처단 대상’ 등으로 낙인찍어 일상 공간을 지속적으로 침해하는 행위는 헌법적 권리를 참칭한 명백한 범죄이다. 정치적 괴롭힘 죄라는 명문의 죄목이 없다든가, 집회 신고를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같은 논리는 형법과 행정법을 형식적으로 해석하여 정치적 괴롭힘을 당하는 피해자들을 외면하는 정부의 직무 유기다. 특정인이 예컨대 ‘간첩’이라는 주장 자체를 법으로 금지하자는 것이 아니다. 공적 범죄 혐의에 대한 고발과 수사 촉구를 막자는 것도 아니다. 정당한 정치적 비판과 대립을 억압하자는 뜻은 더더욱 아니다. 다만, 정치적 낙인과 집단적인 위협적 행위를 통해 타인의 사적 일상을 침해하는 행위까지 집회와 시위의 자유 또는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보호하지는 말자는 뜻이다. 지금 당장 입법 공백을 핑계 대며 새로운 처벌법을 제정할 필요는 없다. 우선은 현행법의 틀 내에서 국가 공권력이 제 역할을 다하면 된다. 형법상 범죄 행위는 타협 없이 처벌하고, 집시법상 소음과 위력 행위는 엄격히 제한하며, 법적 요건을 갖춘 해산 대상 집회는 지체없이 해산하고, 피해자의 주거 평온을 보호하기 위한 법원 가처분과 경찰 신변보호 조치를 즉시 작동시켜야 한다. 향후 이러한 현행법 적용 과정에서 미진한 사각지대가 발견된다면 그때 신중히 입법적 보완을 논의해도 늦지 않다. 민주주의는 모든 형태의 파괴적 행위까지 방임하는 무기력한 체제가 아니다. 민주주의는 집회와 시위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최대로 보장하되, 헌법적 권리를 참칭하여 타인의 자유와 일상을 파괴하는 행위는 제어할 수 있는 법적 체계로 작동해야 한다.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특정한 정치적 주장이 옳으냐 그르냐가 아니다. 저들이 행사하는 권리는 과연 헌법이 보호하는 집회·시위의 자유, 표현의 자유인가, 아니면 그 자유를 참칭한 정치적 괴롭힘인가?” 만약 후자라면, 국가와 법은 헌법적 권리를 참칭한 정치적 괴롭힘을 즉각 중단시키고 엄정한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는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위축시키기 위함이 아니다. 오히려 참된 표현의 자유를 괴롭힘의 도구로 악용되는 오염으로부터 구출하고 지켜내기 위함이다. 집회와 시위의 자유,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숭고한 권리이지, 타인에 대한 정치적 괴롭힘을 용인하는 면허증이 아니다.권영태 시민기자 ilovetor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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