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우타 해변의 비극… 침략자 라는 낙인 뒤의 진실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지중해와 대서양이 만나는 북아프리카 해안의 스페인령 세우타 해변이 최근 차가운 시신들과 절규로 물들었다. 모로코 접경 도시들에서 생존을 위해 2~5킬로미터가 넘는 바다로 뛰어들어 헤엄쳐 온 6만여 명의 이주민 가운데 최소 60명에서 90명이 넘는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 더운 여름, 세계 곳곳에서는 많은 사람이 수영장과 바다에서 가족들과 휴가와 놀이를 즐기고 있지만, 모로코에서 세우타로 건너온 사람들의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폭염 속에서 작은 튜브나 플라스틱 통, 스티로폼 조각에 매달린 아이까지 데리고 살기 위해 바다를 건너와 허우적대고 있는 이들은 절박하게 생존을 갈구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이 참혹한 비극 앞에서 미국과 유럽의 극우 정권과 정치 세력, 보수적 주류 언론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것을 인종주의적 혐오몰이 선동의 기회로 악용하기 바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국제 극우 세력은 바다를 건너온 이들을 침략자 로 낙인찍고 서구 문명에 대한 침략 이자 이슬람의 유럽 침공 이라며 시민들의 공포를 자극했다.
모로코에서 바다를 통해 세우타로 가려는 이주민들. [AP=연합뉴스]
하지만 세우타 해변에 도착해서 기진맥진해 쓰러진 모로코 청년들 중 누구도 고향을 떠나 수 킬로미터의 바다를 헤엄치다가 빠져 죽을 수 있는 위험천만한 선택을 좋아서 하지 않았다.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사람들을 침략자 나 범죄자 로 낙인찍고, 정치적 공격의 도구로 이용하며, 바다에까지 장벽을 세우려는 유럽 각국 정부와 권력자들이 진짜 침략자 들이다.
실제 현실은 정치인과 언론의 왜곡된 주장과 완전히 딴판이었다. 세우타에 진입했던 이주민의 거의 대부분은 스페인 본토나 유럽연합(EU) 내부로 진입하지 못했으며, 불과 이틀 사이에 배고픔과 대책없는 막막함, 스페인 군경의 즉각적인 강제 송환 통제 속에 다시 모로코로 돌아갔다. 스페인이나 유럽으로 이주가 허락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이것은 재앙과 절망을 피해 절박하게 희망을 찾아온 사람들의 이동이지 침략 이 아니었다. 지금 많은 주류 언론과 평론가들은 스페인 대법원의 해상으로 진입하는 이주민을 즉각 강제 송환할 수는 없다 는 판결이 SNS를 통해 과장되고 왜곡되면서 대규모 유입을 촉발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인과관계를 뒤집는 논리이다.
진짜 문제는 이주민들을 즉시 바다로 쫓아내는 불법적 강제 송환 정책이었고, 해당 판결은 이주민들에게 최소한의 인권을 보장하라는 원론적 판결이었을 뿐이다. 이러한 판결과 과장된 소문은 일시적 촉매제는 될 수 있어도 문제의 근본적 원인은 될 수 없다. 모로코 독재 왕정이 스페인을 압박하며 외교적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이주를 무기화했다 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모로코 독재 왕정의 폭압성과 교활함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이주민들은 국가 간 정치공작의 장기말 이나 수동적 도구가 아니다. 이런 논리는 이주민 강제 송환으로 대응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논리일뿐만 아니라, 모로코 정권이 이주민을 외교적 카드로 활용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준 장본인이 바로 스페인과 유럽연합이라는 것을 가리고 있다.
스페인 내무부는 아프리카 모로코에서 스페인령 북아프리카 자치도시 세우타로 무단 입국한 5~6만명 가운데 최소 4만 8300명이 자발적으로 모로코로 돌아갔다고 31일(현지시간) 밝혔다. 연합뉴스
무엇보다 이런 논리들은 생존을 찾아 이동한 사람들의 주체성을 삭제하고 비인간화한다. 갑자기 왜 6만 명이 바다를 건넜는지가 놀라운 일이 아니고, 고통과 절망 속에 있는 사람들의 필사적 이동을 어떻게 이토록 철저히 차단해 왔는지가 놀라운 일이다.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갔지만, 극우 세력이 가공해 낸 위험한 거짓 프레임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
따라서 우리는 왜 수많은 모로코 청년들과 가족들이 목숨을 걸고 바다에 몸을 던질 수밖에 없었는지 더 구조적이고 역사적인 원인을 파헤쳐야 한다. 지리적으로 세우타는 스페인 본토보다 모로코와 훨씬 가깝고 거의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땅이다. 모로코는 대부분의 중동·북아프리카 지역과 마찬가지로 프랑스와 스페인의 잔혹한 식민지배를 받았던 피해자였기 때문이다.
중동과 북아프리카가 절망의 땅이 된 것에 대해 유럽 제국주의의 책임은 결코 가볍지 않다. 이번 사태는 개인의 무모한 선택이 아니라, 국제 자본과 지배 엘리트가 강요한 구조의 산물임을 이해해야 한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 등 국제 금융 기구가 모로코에 강요한 외채 기반의 긴축 재정, 공공서비스 민영화, 시장 개방 정책은 민중의 삶을 파탄 냈다.
부와 수익은 소수 과두 지배층에 집중된 반면, 청년 실업률은 40% 가까이 폭등했고 의료와 교육 등 공공 인프라는 무너졌다. 더구나 북아프리카를 덮친 기후 변화와 수년간의 혹독한 가뭄은 모로코의 농촌 지역을 더욱 황폐화했다. 농업 생태계의 파탄과 독재 정권의 무능이 결합하여 청년층의 생계 수단이 소멸되었고, 이는 대규모 이주의 강력한 동력으로 작용했다.
신자유주의적 수탈과 기후 재앙이 결합한 사회적 위기가 모로코 민중의 삶을 벼랑 끝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많은 지역은 미국과 유럽 강대국들의 군사적 개입 속에서 전쟁과 내전으로 폭격과 학살이 그칠 날이 없었다. 결국 모로코 청년들에게 탈출로서의 이주는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유일한 길이었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스페인령 세우타의 임시 이민자센터 밖에 모로코에서 넘어온 이주민들이 모여 있다. [AP=연합뉴스]
비난받아야 할 것은 절망을 피해 탈출한 이주민들이 아니라, 바로 그 절망을 만든 책임자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절망에 빠진 사람들의 탈출구마저 봉쇄해 왔다. 유럽연합과 유럽 각국 정부는 지난 20여 년간 이주를 차단하고 봉쇄하는 요새 유럽(Fortress Europe) 정책을 추진해 왔다. 이 때문에 유럽을 향해 바다를 건너다 죽는 사람들이 속출하면서 지중해는 거대한 수중 공동묘지 가 됐다.
특히 유럽연합은 모로코 독재 왕정에 재정적 대가를 지불하면서 이민자들을 가로막고 탄압하는 국경 경비대 역할을 하도록 외주화했다. 동시에 모로코 독재 정권의 서사하라 강제 점령과 소수민족 탄압을 눈감아 줬다. 이 과정에서 유럽의 대자본들은 서사하라의 자원을 수탈하고 모로코 노동자들을 초과 착취하며 막대한 이윤을 챙기는 데에도 함께했다.
이처럼 유럽과 모로코 지배층의 공모 속에 국경은 이주민을 잔혹하게 규율하고 죽음으로 몰아넣는 폭력의 현장이 되었고, 그 뒤에는 극단적 불평등이 숨겨져 있다. 예컨대 모로코 이주민들이 스페인을 침공 하는 동안 모로코 왕자는 400만 달러짜리 요트를 타고 휴가를 즐기고 있었고, 스페인 국왕은 100만 유로짜리 요트를 타고 휴가와 경주를 즐길 예정이었다.
그나마 미등록 이주자 사면 등의 이민 정책에서 유럽의 다른 정부보다는 전향적이고 진보적이었던 스페인의 페드로 산체스 중도좌파 정부도 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물론 이러한 구조적 참상 앞에서 트럼프를 중심으로 한 국제 극우 세력이 취한 태도는 최악이면서 기만과 혐오의 극치였다. 이들이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에는 지독한 이중잣대가 작동하고 있다.
이들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침공해 무차별 학살을 저지르는 것은 자위권 행사 라고 두둔했다. 미국이 이란을 침공하고 폭격하는 것은 임박한 위협 제거 라고 포장했다. 반면 모로코 이주민들이 목숨을 걸고 생존할 길을 찾는 것은 서구에 대한 침략 이라고 주장했다. 부당한 제국주의 전쟁과 폭격, 학살에는 자위권 과 안보 라는 면죄부를 주면서, 그 전쟁과 수탈이 낳은 절박한 이주민들의 탈주에 침략 이라는 낙인을 찍는 것이 이들의 기만적 논리다.
심지어 트럼프는 세우타의 이민자들을 수십만 명의 침략자 라고 엄청나게 부풀려 언급했다. 공포와 혐오의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눈이 벌개진 트럼프에게 정확한 숫자는 어차피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트럼프는 리버럴 좌파의 정책이 서구를 파괴하고 있으며, 우리가 선거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미국에도 똑같은 침략이 일어날 것 이라고 선동했다.
3일(현지시간) 스페인령 세우타에서 이주민들이 적십자에서 나눠주는 음식을 받으려고 줄지어 서 있다.[로이터=연합뉴스]
다른 극우 정치인들도 스페인 좌파 정부의 무능력과 방관 속에 이주민들이 스페인을 침략했다 고 주장했다. 세우타로 들어왔던 이주민 중 스페인 본토로 이동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지만, 이들이 침략 이라는 표현을 고집한 이유는 명확하다. 이주민들을 침략자 로 규정해야만 그들에 대한 폭력, 총격, 구금, 인권 박탈, 강제 송환을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주민들을 불법화 하고 취약한 상태로 유지하면 초과 착취하기 쉬운 노동자로 길들이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미국과 유럽의 자본가들은 미등록 이주민들의 불안정한 신분을 악용하여 농업, 돌봄, 서비스업 등에서 저임금 노동을 강요하고 막대한 이윤을 올려 왔다. 결국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생존을 위해 바다를 건너는 가난한 이주민들이 아니다.
세우타 해변에서 벌어진 참극과 이를 둘러싼 국제적 혐오의 폭주는 결코 먼 유럽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 역시 지중해의 비극과 크게 다르지 않은 문제를 안고 있다. 한국도 글로벌 공급망에서 남반구의 자원과 노동력을 수탈하는 구조에 직간접적으로 얽혀 있다. 세계적인 기후 위기를 유발한 주요 배출국 중 하나이기도 하다.
따라서 경제적 불평등, 지정학적 불안정, 기후 재앙으로 발생하는 글로벌 이주의 구조와 비극에서 한국 사회도 책임이 있다. 한국 사회는 또한 저출생과 지방 소멸의 위기 속에서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에게 의존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이들의 인권과 노동권은 많은 부분 외면해 왔다.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들은 고용허가제 에 의해 이동의 자유가 가로막혀 있다.
사업장 변경의 자유가 제한된 채 불안정한 신분으로 살아가야 하는 구조 속에서, 이주노동자들은 지독한 폭염 속에서도 제대로 된 권리를 요구하거나 주장하지 못한다. 결국 가장 위험하고 열악한 현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이 지금의 기록적 폭염 속에서 열사병과 온열질환 등으로 가장 많이 목숨을 잃고 있는 서글픈 현실은 세우타 해변의 비극과 비슷하다.
그럼에도 최근 현대중공업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노동조합으로 조직화되기 시작하고 민주노총이 여기에 연대하고 있는 것은 중요한 희망의 신호다. 우리 사회도 이주민 배척과 가짜뉴스 에 맞서며 이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한 걸음 나아가야 한다. 세우타의 바닷물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더 나은 삶의 터전을 찾던 이들의 꿈은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전지윤 사회운동가·연구평론가 misotoleni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