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마항쟁 유공자 , 47년 만에 첫 호명 [뉴스] 2026년 10월 16일, 부산광역시청 대강당. 제47주년 부마민주항쟁 기념식에 참석한 이재명 대통령은 기념사의 첫머리에서 이렇게 인사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부산, 창원 시민 여러분, 그리고 부마민주항쟁 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 그리고 맺음말에서 다시 한 번,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삶을 바친 그 많은 분들의 숭고한 뜻을 다시 깊이 새기면서 다시 한번 부마민주항쟁 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께 깊은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라고 말했다. 첫인사와 마지막인사에 같은 호칭이 놓였다. 즉흥이 아니라 원고에 새겨진 공식 호칭이라는 뜻이다.
부마항쟁 47주년 기념식에 참석하여 아침이슬을 부르는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 송기인 신부와 정광민 이사장의 얼굴도 보인다.
그러나 지금 법이 정한 이들의 이름은 유공자 가 아니다.
2013년 제정된 「부마민주항쟁 관련자의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은 이들을 관련자 와 유족 으로 규정한다. 진상규명과 보상의 문을 연 것은 의미 있는 진전이었지만, 이름만은 관련자 로 남았다. 사건에 연루된 사람을 가리키는, 행정적이고 중립적인 표현이다. 예우의 언어가 아니다.
같은 민주화운동인 5·18은 사정이 달랐다. 5·18도 1995년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로 관련자 에서 출발했다. 그런데 2002년 「5·18광주민주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명칭이 민주유공자 로 격상됐다. 함께 민주주의를 향해 싸운 이들인데, 한쪽은 2002년에 공로자가 되었고 다른 쪽은 20년이 넘도록 관련자 로 남았다. 부산 민변의 변영철 변호사가 같은 민주화 공로자를 한쪽은 민주유공자로, 다른 쪽은 관련자로 부르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해 온 이유다. 실제로 다수의 부마항쟁 참여자들이 이 호칭에 불만을 표시해 왔다.
돌아보면 역대 대통령의 부마항쟁 기념사에 유공자 는 없었다. 1999년 부산민주공원 개원식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부마항쟁을 처음으로 항쟁 이라 명명하고 부산 시민 여러분 , 모든 민주 영령들 이라고만 불렀다. 부마사태 도 폭도 도 아닌 항쟁 이라는 이름을 국가가 처음 입에 올린 것 자체가 그 시절의 진전이었지만, 개별 참여자를 부를 제도적 호칭은 아직 없었다. 2004년 25주년 기념식 영상 메시지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부산시민 여러분, 그리고 경남도민 여러분 이라고 했다. 2019년 40주년 기념식에서 정부를 대표해 사과한 문재인 대통령은 피해자 , 유가족 , 항쟁의 주역 , 그리고 법률 용어인 관련자 예우 를 말했다. 정부가 인정한 이름은 끝까지 관련자 였다.
그 이름을 이재명 대통령이 처음으로 바꿔 부른 것이다.
물론 아직 결론이 난 것은 아니다. 그 호칭을 법적으로 뒷받침할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안」은 여전히 국회에 머물러 있다. 2025년 9월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이 지정됐고, 2026년 3월 30일 법제사법위원회를 찬성 10·반대 5로 통과했지만, 이후 여야 대치로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법안이 예우 대상으로 삼는 것은 유신 반대 투쟁과 6월 민주항쟁, 그리고 부마민주항쟁의 관련자와 유가족이다. 여당은 특별한 희생을 하신 분들이 아직 유공자로 예우받지 못하고 있다 며 처리를 요구하고, 야당은 유공자 의 개념이 모호하고 대상이 무한정 확장될 수 있다며 반대한다.
즉 법은 아직 관련자 인데, 대통령의 말이 먼저 유공자 로 건너간 셈이다. 민주유공자법의 통과를 염두에 둔 발언이라는 해석이 자연스러운 이유다. 어쩌면 그것이 이 기념사의 숨은 무게다. 법이 사람을 부르는 이름을 바꾸는 데 20여 년이 걸렸고, 그 이름을 대통령이 먼저 불러준 날이 47주년이었다는 것.
호칭은 사무적인 문제가 아니다. 무엇이라 부르는가가 그 사람을 어떻게 대우하는가를 정한다. 관련자 는 사건에 연루된 사람이고, 유공자 는 나라를 위해 공을 세운 사람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부마사태‘를 부마항쟁 으로 고쳐 부른 뒤에도 개개인의 명예회복은 오지 않았다는 기념사업회의 오랜 지적은, 이름을 바꾸는 일과 삶을 바꾸는 일이 다르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재명 대통령의 호명이 그 첫 번째 일이라면, 남은 것은 두 번째 일이다.
부마의 함성이 5월 광주로, 6월 항쟁으로, 촛불로, 그리고 12·3을 넘긴 빛의 혁명 으로 이어졌다고 기념사는 말했다. 그 계보의 맨 앞에 놓인 사람들이 이제 처음으로 유공자 라 불렸다. 그 이름이 법전에 새겨지고, 합당한 예우로 이어질 때, 47년의 시차는 비로소 닫힐 것이다.정광민 시민기자 vietho@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