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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구름 마을 짓는 사람들…머물지 않는 접속 공동체

구름 마을 짓는 사람들…머물지 않는 접속 공동체
[사람들]
[일러두기] 2026년 6월 19일부터 21일까지, 순천에서 ‘아류(亞流) 포럼 2026’이 열렸다. ‘비주류’라 불려 온 것들이 만드는 아시아의 새로운 흐름”이 주제였고, 형식은 ‘한일 생태문명전환 게더링’이었다. 글쓴이는 3일간 일본에서 참여한 이들과 동행했다. 그들이 실천해 온 장면들은 그야말로 ‘생태문명전환’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했다. ‘썩는 돈’이라는 공감 화폐, 리더가 없는 공동체 마을, 숲자본주의, 대안학교를 지원하는 회사…. 지금의 현대 사회와는 맞물릴 것 같지 않은 이러한 개념들이 이번 아류 포럼에서 울려 퍼졌다. 5회에 걸쳐서 포럼을 소개한다. 맑은 하늘에 마을 하나가 붕 떠 있는 그림. 이 그림이 첫 파워포인트(PPT) 화면에 떴을 때 참가자들은 와~” 하면서 천공의 성 라퓨타(天空の城ラピュタ)”(미야자키 하야오, 1986)를 떠올렸다. 딱 그런 그림이었다. 하늘을 나는 성 라퓨타! ‘라퓨타’는 걸리버 여행기에 나온다. 붕 뜬 마을 공동체 부유가! 부유가는 리더 없는 공동체다. 그림은 이렇다. 우주목(宇宙木)이랄까? 아주 큰 나무 하나가 마을 꼭대기에서 뿌리줄기를 내려 마을 전체를 붙들고 있다. 달리 말하면, 집집들은 나무 뿌리줄기에 기대어 숲을 이루고 있는 꼴이다. 큰 나무와 집과 숲이 한 생태계다. 나무 아래에는 풍차 탑 두 개가 돈다. 집들이 비탈을 타고 매달려 있고, 다리와 계단과 작은 가게들이 이리저리 얽혀 있다. 흰 구름이 마을 아래를 떠다닌다. 어디선가 날아온 비행선에 한 여성이 앉아 있다. 땅에 발붙이지 않은 마을. 그렇다고 텅 빈 어딘가로 사라지지 않는 마을. 그런데 그림 속 마을은 낯설지 않다. 왜 그럴까? 그림은 동화 같기도 하고, 게임 속 세계 같기도 한데… 어쩌면 아주 오래전 우리가 잃어버린 ‘미래 마을’이 아닐까? 그림1) 부유가(浮遊街)를 보여주는 그림이다. 사카이 유키는 이 그림을 부유가를 설명하는 첫 장면으로 보여주었다. PPT: 사카이 유키(ⓒ) 마을 이름은 부유가(浮遊街)다. 일본어로는 ‘후유가이’. 한자를 풀면 ‘떠다니는 거리’다. 부유(浮遊)는 붕 떠다닌다”라는 뜻. 그야말로 붕 뜬 마을이 부유가다. 안정되지 않고, 정착하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상태랄까! 그런데 부유가를 제안한 당사자이자, 이날 발표를 한 사카이 유키(酒井友樹)는 바로 이 ‘붕 뜸’을 새로운 공동체의 조건으로 삼았다. 땅에 깊이 박혀야만 마을이 되는 건 아니라는 듯이. 평생을 걸고 이주해야만 대안적 삶이 시작되는 건 아니라는 듯이. 부유가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삶은 한곳에만 묶이지 않아도 돼!” 나에겐 아직 다른 내가 남아 있어!” 나는 아류(亞流) 포럼 2026”에서 사카이 유키의 발표를 들으며, 다른 생각을 꿍꿍했다. 이것은 에코빌리지 이야기인가? 지역화폐 이야기인가? 청년마을 이야기인가? 게임인가? 축제인가? 숙박 플랫폼인가? 작은 장사꾼들의 시장인가? 어느 하나로 잡히지 않았다. 부유가는 마을과 거리, 현실과 판타지, 노동과 놀이, 경제와 자기표현(예술가들이 적지 않았다), 산속 생활과 온라인 플랫폼을 한데 섞어 놓은 기묘한 공동체였다.   그림2) 아류 포럼 2026”에 참여한 일본인 참석자들이다. 맨 오른쪽이 ‘부유가’ 창설을 주도한 사카이 유키다. 아래 맨 왼쪽 안경 쓴이가 글쓴이고, 그 옆 가운데 인물이 1회차에 소개한 ‘유모 통화 시스템’ 대표 타케이 코조다. 글쓴이 뒤 인물은 후지이 요시히로(숲자본주의 주창자), 그 옆 왼쪽 댕기머리(로쿠차 마유)와 노란 셔츠를 입은 인물(사에키 류조)은 영화 ‘로맨틱한 금전감각’의 공동 배우이자 감독이다. 맨 뒤, 머리가 긴 인물은 세도하라 히로유키다. 히로유키는, 우리에겐 ‘대안학교’로 익숙한 개념이긴 한데, 그는 ‘중립학교’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사실 정확히 말하면, 부유가는 실패한 유토피아 위에 세운 ‘가벼운 유토피아’였다(그 이야기는 아래 ‘사이하테’에서 이어진다). 여기서 ‘가벼운’은 ‘얄팍한’을 뜻하지 않는다. 음, 쉽게 말하면 ‘삶 전체를 걸지 않아도 된다’라는 뜻에 가깝다. 무거운 결심 없이도 ‘들어가 어울릴 수 있다’는 뜻이다. 또 정착하는 부담, 관계에서 오는 피로, 생계 걱정의 압박, 공동체 윤리를 지키는 엄숙함을 조금 ‘덜어냈다’는 뜻이기도 하다. 부유가는 완전한 이주를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주말에 친구 만나듯, 축제에 가듯, 게임에 접속하듯, 또 하나의 삶에 접속하라고 말한다. ‘사이하테’라는 오래된 불 부유가를 이해하려면 먼저 ‘사이하테(SAIHATE)’를 알아야 한다. 구마모토현 우키시 삼각정(三角町) 산속에 있던 사이하테는 2011년 ‘동일본대지진’ 이후 태어났다. 수도, 전기, 가스, 정치, 경제가 멈춰도 웃으며 살 수 있는 터전. 그것이 출발점이었다. 그곳의 규칙은 사실상 하나였다. 네 마음대로 하세요.” 일본어로 오스키니 도조.” 규칙도 없고, 리더도 없고, 누구나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가는 마을. 네 마음대로 하세요.”라니, 얼마나 매혹적인 말인가! 얼마나 위험한 말인가! 사이하테는 한때 일본 에코빌리지 문화의 상징이었다. 퍼머컬처, 어스백 하우스, 공동 주거, 축제, 워크숍, 아이들, 바다를 바라보는 언덕, 밤의 불빛. 그곳으로 자본주의와 경쟁 사회에 지친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미래가 불안한 청년들, 도시 생활에 지친 사람들, 다른 인간관계를 꿈꾸는 사람들, 사회 바깥에서 새로운 삶을 실험해 보고 싶은 사람들이 찾아 들었다. 사카이 유키 역시 그곳에서 오랫동안 공동체 매니저로 살았다.   그림3) 사이하테 주민들로 결성된 클럽 공연 장면이다(住民達らによって結成された三角アフリカンクラブのパフォーマンス。ドネーションヘアカットや民族衣装の販売など、サイハテ村らしいユニークな出店も. 사진: photo by kojiro (사진 출처는 https://yadokari.net/magazine/81121/)   그림4) 사이하테는 2011년부터 2023년까지 12년간 지속되었다. 2023년 11월 11일에 문을 닫았다. PPT: 사카이 유키(ⓒ) 하지만 아름다운 말은 ‘현실’이라는 무게를 오래 견디지 못했다. 네 마음대로 하세요”는 어떤 사람에겐 자유였지만, 어떤 사람에겐 책임을 피하는 말이 되었다. 규칙이 없으니 합의가 어려웠고, 리더가 없으니 결정이 늦어졌다. 하고 싶은 일을 하자는 말은 때때로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로 바뀌었다.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보이지 않는 노동은 누군가의 어깨에 쌓였다. 모두가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압박도 피로가 되었다. 사카이 유키는 그 시절을 꽤 솔직하게 고백했다. 순수한 이상을 가진 좋은 사람들이 모이면 좋은 공동체가 될 것이라는 아름다운 이야기에 동경을 품었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마음대로 하세요”를 온전히 체화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돈이 없어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했고, 규칙이 없어서 오히려 실행이 어려웠으며, 좋은 사람으로만 살아야 하는 피로감이 사람들을 떠나게 했다. 이 말은 ‘대안공동체’에 대한 매우 중요한 증언이다. 선의는 공동체의 출발점일 수 있지만, 선의만으로 공동체는 지속되지 않는다. 사랑은 필요하지만, 사랑만으로는 집이 지어지지 않는다. 자유는 필요하지만, 자유만으로 밥이 차려지지 않는다. 이상은 필요하지만, 이상만으로 운영비가 마련되지 않는다. 사이하테는 바로 그 어려운 사실을 온몸으로 통과한 공동체였다. 2023년 11월 11일, 사이하테는 12년의 역사를 마감했다. 그런데 그 끝은 폐쇄가 아니었다. 사카이 유키는 그 토지를 매입하고, 실패를 새로운 설계의 재료로 삼았다. 사이하테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다른 형태로 옮겨붙었다. 그 불씨가 ‘부유가’다.   그림5) 부유가 마을 안내 지도다. PPT: 사카이 유키(ⓒ)   그림6) 부유가를 원하는 사람들은 평범한 삶을 유지하면서 다른 삶의 가능성을 경험하고 싶은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사카이 유키는 ‘접속공동체’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하드 모드’가 아닌, 대안 마을 사카이 유키가 방향을 크게 바꾸게 된 계기는 한 장면이었다. 어느 자리에서 그는 사이하테에 관심 있는 30명에게 물었다. 실제로 에코빌리지에 살고 싶은 사람이 있느냐고. 손을 든 사람은 단 한 명이었다. 그 순간 그는 깨달았다고 한다. 사람들은 모두 에코빌리지에 살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대다수는 도심의 평범한 삶을 유지하고 싶어 했다.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도 원했고, 번듯한 집도 원했다. 다만, 다른 삶의 가능성을 가끔 경험하고 싶어 했을 뿐이다. 이 깨달음은 부유가의 핵심을 이룬다. 현대인에게 필요한 것은 사이하테처럼 그 땅에 깊이 뿌리박고 살아야 하는 ‘하드 모드’ 공간이 아니라는 것. (※하드 모드Hard Mods: 서브컬쳐에서 비롯된 ‘모드족’의 한 부류다. 1960년대 초중반에 나타났다. 1960년대 후반 모드족 일부가 ‘히피’로 흡수되었다. 사카이 유키가 내건 마음대로 하세요.”라는 말도 히피 모드에 가깝다. 하드 모드는 모드족이 갖는 기본 에토스ethos를 견지한다. 거칠고 반항아적인 모드족의 에토스를. 히피 모드는 그런 측면에서 좀 더 유연하고 자유롭다고 보면 된다.)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주말에 친구와 놀러 가듯 가볍게 방문할 수 있는 곳. 이상적인 사회, 나의 존재 방식, 타인과의 관계성을 경험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대안 도시. 사카이 유키는 그것을 ‘부유가’라고 불렀다. 나는 부유가는 말이 ‘아주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짊어지고 산다. 집값, 생계, 가족, 직장, 성과, 관계, 노후, 불안…. 그런데 대안을 바라는 삶마저 모든 것을 버리고 와야 한다”라고 요구한다면, 그것은 또 무거운 명령일 수밖에 없다. 부유가는 이 명령을 바꾼다. 전부 버리지 않아도 된다. 잠시 접속해도 된다. 네 삶을 완전히 갈아엎지 않아도 네 안의 다른 가능성을 꺼낼 수 있다. 이것이 부유가의 목소리다. 그래서 사실 부유가는 ‘마을(里)’보다는 ‘거리(街)’에 가깝다. 마을은 정주를 전제한다. 함께 오래 살아야 한다. 관계가 깊고, 의무도 깊다. 반면, 거리는 오고 가는 ‘오감(往來)’을 허용한다. 걷고, 들르고, 사고, 팔고, 머물고, 떠나고, 다시 온다. 사카이 유키가 주민 주체의 마을 만들기”에서 회원제의 거리 만들기”로 방향을 바꾼 것은 그런 맥락이다. 공동체 운영체제를 바꾼 것이다. ‘정주공동체’에서 ‘접속공동체’로. 혈연·지연 마을에서 선택과 참여가 일어나는 거리로.   그림7) 부유가는 회원제다. 이곳에선 농부, 요리사, 목수, 기술자, 음악가, 예술가, 히피, 크리에이터로 살 수 있다. 실제로 부유가를 제안한 사카이 유키는 이런 다양한 주체들이 접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PPT: 사카이 유키(ⓒ) 판타지가 현실이 될 때 부유가 이미지는 기이하다. 공중에 뜬 마을이지 않은가. 사카이 유키가 보여준 이미지들은 캐릭터 카드, 퀘스트(Quest: 간단한 노동과 미션) 게시판, 만화 설명서, 직업군 선택 화면, 코인 시스템 등이다. 대안공동체 자료에서 흔히 보는 소박한 밭 사진이나 자연 풍경만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애니메이션, RPG 게임, 판타지 세계관 문법이 전면에 나온다. 처음엔 이런 감각이 좀 가벼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이것이야말로 부유가의 핵심 전략이라는 생각이 든다. 부유가는 대안경제를 윤리로 설명하지 않는다. 공동체를 도덕 교과서처럼 제시하지도 않는다. 그 대신 묻는다. 당신은 어떤 거리의 사람이 되고 싶은가. 농부인가. 요리사인가. 목수인가. 기술자인가. 음악가인가. 예술가인가. 히피인가. 크리에이터인가. 마치 게임에서 캐릭터를 고르듯, 사람들에게 자기 역할을 꿍꿍하게 만든다. 이 꿍꿍하는 상상은 허황된 장식이 아니다. 현실을 움직이는 형식이다. 사이하테에서 부유가로 넘어왔지만, 그 감각이 충돌하는 것은 아니다. 부유가를 검색하면 볼 수 있는 이미지들: 침실의 나무 침대, 벽화가 그려진 건물, 어스백 하우스, 캠프파이어, 사우나, 언덕 아래 바다, 사카이 유키의 웃는 얼굴 등은 매우 실제적이다. 그 실제 위에 판타지 도시와 퀘스트 카드와 만화 서사가 덧입혀진다. 현실이 판타지를 흉내 낸 게 아니다. 판타지가 ‘현실’ 설계도가 된 것이다. 부유가는 ‘문화기획’ 차원에서도 매우 흥미롭다! 수많은 ‘대안운동’들의 목표는 옳지만, 그 내용이 너무 무거울 때가 많다. 윤리적이지만 피곤하기도 하고, 또 아주 중요한 의제인데 재미는 정말 없다. 부유가는 이런 약점을 알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대안 문법을 바꿨다. 윤리를 놀이로, 노동을 퀘스트로, 경제를 코인으로, 공동체를 세계관으로 번역했다. 부유가는 결코 ‘착하게 살자’고 설교하지 않는다. ‘한번 해보자’라고 유혹할 뿐이다.   그림8) 부유가는 마을 일거리를 게임 임무처럼 제시한다. 누군가에게는 잡일일 수 있는 일이, 부유가에서는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임무가 된다. 수행하면 코인을 얻고, 그 코인으로 거리 안에서 먹고, 자고, 놀고, 배운다. PPT: 사카이 유키(ⓒ) 노동이 ‘퀘스트’가 되는 순간 부유가에는 퀘스트가 있다. 퀘스트라니, 게임 용어 아닌가(퀘스트quest는 온라인 게임에서 이용자가 수행해야 하는 임무를 말한다)! 그렇다. 부유가는 마을 일거리를 게임 임무처럼 제시한다. 광장의 풀을 베어 달라. 사우나 오두막을 만들자. 장작을 패며 근력운동을 하자. 누군가에게는 잡일일 수 있는 일이, 부유가에서는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임무가 된다. 수행하면 코인(‘Uii’가 부유가의 지역화폐다)을 얻고, 그 코인으로 거리 안에서 먹고, 자고, 놀고, 배운다. 중요한 것은 이 퀘스트가 노동을 숨기는 장치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노동을 보이게 만드는 장치다. 공동체 유지에는 늘 노동이 필요하다. 청소, 수리, 요리, 안내, 농사, 장작, 돌봄, 기록, 공연, 운영…. 그런데 이런 노동은 자주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의 선의와 희생으로 처리될 때가 적지 않다. 그러다 보니 지친 사람이 먼저 떠난다. 사이하테가 겪은 피로도 여기에 있었을 것이다. 부유가는 노동을 게시판에 올린다. 이름을 붙인다. 보상을 붙인다. 참여자가 내가 이 거리의 일부를 만들었다”는 감각을 얻게 한다. 이때 노동은 임금노동도 아니고 순수 자원봉사도 아니다. 공동체를 DIY하는 일이다. 내 시간이 거리 풍경으로 남는 일이다. 자기표현으로서의 노동이다. 여기서 사카이 유키의 경제관이 드러난다. 그는 사이하테에 경제 시스템이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자기표현의 난이도가 높아졌다고 말했다. 물물교환이나 매번의 대화로 상품과 서비스를 주고받는 방식은 따뜻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의사소통 비용이 너무 컸다’라는 것이다. 내 물건의 가치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내 재능에 값을 붙여도 되는가. 친한 사람에게 돈을 받아도 되는가. 이런 부담 때문에 사람들은 자기표현을 멈춘다. 그래서 그는 경제 시스템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경제를 자기표현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도구로 보게 되었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경제의 본질은 모든 이가 본령을 발휘할 수 있도록 관계를 디자인하는 것”이다. 돈은 그 관계를 매끄럽게 이어주는 윤활유가 될 수 있다. 문제는 돈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어떤 돈이 어떤 관계를 만드는가다.   그림9) 부유가를 이루는 다양한 주제들을 그림을 그렸다. PPT: 사카이 유키(ⓒ) ‘썩는 돈’이 만드는 순환 부유가 자체 통화는 ‘Uii’다. 앞글 1회차에 소개한 ‘유모(eumo)’ 시스템을 활용하는 커뮤니티 통화다. 그래서 3개월이 지나면 가치가 소멸한다. 이른바 ‘썩는 돈’이다. 그렇지만 여기서 썩는 돈은 추상적인 화폐 실험에 머물지 않는다. 실제 부유가 운영 시스템으로 들어간다. 회원은 연회비를 내고, 그 일부를 ‘Uii 코인’으로 돌려받아 부유가 안에서 쓴다. 온라인 플랫폼에 자기 상품과 서비스를 올릴 수 있고, 도움이 필요한 일은 퀘스트로 요청할 수 있다. 사우나, 숙박시설, 음식점, 온라인 스토어, 회원들의 작은 장사도 이 코인으로 연결된다. 중요한 점은 Uii를 다시 엔화로 바꿀 수 없다는 점이다. 한 번 발행된 코인은 바깥으로 빠져나가지 않고 공동체 내부에서만 돈다. 사카이 유키는 돈의 위대한 발명이 ‘보존 가능성’이라고 말한다. 저축이 가능하기 때문에 거대한 투자가 가능하지만, 동시에 그 때문에 빈부격차가 벌어지고, 불경기에는 사람들이 돈을 움켜쥐어서 시장에 돈이 돌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유가는 그 보존성을 일부러 흔든다. 모으면 손해이고, 써야 살아나는 돈. 안에서 돌고, 안에서 썩고, 다시 안에서 거름이 되는 돈. 이것이 Uii의 핵심이다. 그렇다고 사카이 유키가 모든 돈을 썩는 돈으로 바꾸자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그는 돈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세상의 모든 돈이 썩는 돈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다만, 이런 실험적 메커니즘이 지역사회와 회원을 풍요롭게 하고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다면, 기존 화폐와 경제 시스템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태도가 중요하다. 부유가는 반자본주의 선언이 아니다. 자본주의를 비판하면서도 그 작동 원리를 배워 자기 방식으로 다시 조립하는 실험이다. 3개월 유효기간이 임박한 Uii는 사라지지 않는다. 운영진의 온라인 스토어를 거쳐 다시 순환한다. 시장에 풀린 통화는 언젠가 오피셜로 돌아오고, 유효기간이 리셋된 뒤 거리 발전, 인건비, 공공사업으로 재투입된다. 돈이 돈을 낳는 구조가 아니라, 돈이 일을 낳고 일이 관계를 낳는 구조다. 이 점에서 부유가는 순환경제의 실험이라 할 수 있다.   그림 10) 11) 부유가에 처음 간 이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부유가를 체험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만화다. 퀘스트, 지역통화(썩는 돈), 기프트(기부)에 대한 이야기를 엿볼 수 있다. PPT: 사카이 유키(ⓒ) 힘없는 사랑, 사랑 없는 힘 부유가가 흥미로운 까닭은 히피 문화와 자본주의를 서로의 적으로만 보지 않는 데 있다. 사이하테는 히피 문화의 이상을 품었다. 자유, 사랑, 자율, 공동체, 자연, 자급. 그러나 그것은 지속 가능한 힘을 충분히 갖추지 못했다. 반대로 자본주의는 힘이 있다. 조직, 투자, 확장, 설계, 보상, 효율, 시장. 그러나 사랑이 비어 있다. 사람을 살리는 방향을 잃으면 그 힘은 쉽게 폭력이 된다. 사카이 유키는 두 세계를 이분법으로 나누지 않았다. 그는 자본주의와 적대하기보다 자본주의로부터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상반되는 대상의 좋은 점을 명확히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말 가운데 가장 오래 남는 문장은 이것이다. 히피 문화가 ‘사랑’에, 자본주의가 ‘힘’에 무게를 둔다면, 힘없는 사랑은 무력하고 사랑 없는 힘은 허무”하다는 말. 그래서 앞으로 중요한 것은 두 세계의 강점을 아우프헤벤, 곧 변증법적으로 지양하는 시도라는 것이다. (※ 아우프헤벤Aufheben: 이 독일어는 ‘폐기하다/치우다’, ‘보관하다/넣어두다’, ‘고양(高揚)하다/끌어올리다’ 등의 여러 뜻을 가진다. 헤겔은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철학 개념이 이 ‘아우프헤벤’이라는 단어가 가진 뜻과 모두 일치한다면서 즐겁게 이 개념을 착안했다고 한다.) 나는 힘없는 사랑은 무력하고 사랑 없는 힘은 허무”하다는 말에서 부유가의 정치성을 본다. 이 말은 혁명 구호가 아니다. 그러나 조용히 문명 전환의 문법을 바꾼다. 사랑에 운영을 붙이고, 자유에 구조를 붙이고, 경제에 관계를 붙이고, 화폐에 유효기간을 붙이고, 노동에 퀘스트를 붙이고, 마을에 세계관을 붙였으니까. 이 붙임의 기술이 부유가다. 따로 떨어져 있던 것들을 다시 연결하는 기술. 이것이야말로 ‘아류 포럼’이 지향하는 철학이리라! 늘어나는 빈집과 구름 위 공동체 그렇다면 부유가는 한국 사회에 무엇을 묻는가? 빈집이 늘고 있다. 폐교도 늘고 있다. 사라지는 면 소재지가 있다. 청년이 떠난 골목이 있다. 행정 보조금으로 시작했다가 보조금이 끝나면 멈추는 공동체 사업이 많다. 지역화폐는 있지만 지역 관계를 새롭게 엮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청년 마을은 있지만 청년의 삶 전체를 품지 못하고, 문화도시는 있지만 시민의 자기표현보다 행정의 ‘성과표’에 갇혀 있다. 부유가를 잘 살펴봐야 하는 까닭이다. 구마모토의 산속, 사이하테의 역사, 유모 통화 시스템, 사카이 유키라는 기획자의 경험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 질문을 던져야 한다. 왜 우리는 대안공동체를 늘 무겁게만 상상하는가? 왜 지역정책은 시민의 욕망을 놀이와 경제로 번역하지 못하는가? 왜 청년에게는 정착 아니면 이탈이라는 두 선택지만 주어지는가? 왜 빈집은 부동산으로만 보이고, 폐교는 행정재산으로만 보이며, 골목은 개발 대상으로만 보이는가? 부유가는 다른 상상력을 요구한다. 빈집을 숙박권으로 바꾸고, 폐교를 퀘스트 게시판으로 바꾸고, 지역화폐를 자기표현의 코인으로 바꾸고, 청년들의 재능을 직업 프레임으로 바꾸고, 축제를 관계 인구의 통로로 바꾸고, 작은 장사를 도시 자치의 세포로 바꾸는 상상력. 행정이 다 해주는 마을이 아니라, 시민이 접속하고 수행하고 벌고 쓰고 다시 돌아오는 거리. 돈이 빠져나가는 지역이 아니라, 돈이 안에서 썩어 거름이 되는 지역. 그것이 우리에게도 필요한 질문이지 않은가!   12) 글쓴이는 글 맨 앞에서 이런 질문을 던졌다. 어쩌면 아주 오래전 우리가 잃어버린 ‘미래 마을’이 아닐까?”라고. 사카이 유키도 부유가를 미래사회의 실험장”이라고 생각한다. PPT: 사카이 유키(ⓒ) 아직 끝나지 않은 실험 물론 부유가에도 위험은 있을 것이다. ‘게임방식’은 참여를 쉽게 하지만 공동체의 깊이를 얕게 만들 수 있다. 회원제는 피로를 줄이지만 새로운 배제를 만들 수 있다. 코인은 순환을 만들지만 플랫폼 운영자의 권한을 키울 수 있다. 판타지 세계관은 매혹적이지만 실제 노동의 고단함을 가릴 수도 있다. 그렇지만 부유가는 우리가 정교하게 관찰해야 할 미래형 공동체 모델인 것은 분명하다. 나는 부유가에서 중요한 가능성을 엿본다. 그것은 대안이 반드시 엄숙해야 한다는 생각을 깨뜨린다. 대안은 예쁠 수 있다. 재미있을 수 있다. 게임 같을 수 있다. 숙박이 될 수 있고, 축제가 될 수 있고, 만화가 될 수 있고, 작은 장사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바로 그 가벼움 때문에 더 많은 사람이 들어와 자기 삶의 일부를 바꿔볼 수 있지 않을까? 사카이 유키는 앞으로 기술이 발전하면서 개인이 자유롭게 커뮤니티를 만드는 사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커뮤니티는 취미나 이데올로기만으로 갈라지는 것이 아니라, 경제 시스템까지 포함해 디자인될 것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그는 이 세상을 더 흥미롭게 만들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과 함께 부유가를 만들어 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가 남긴 말이 오래 남는다. 세상을 더 정의롭게 만들자, 더 평등하게 만들자, 더 생태적으로 만들자, 물론 모두 필요하다. 그런데 사카이 유키는 여기에 하나를 덧붙인다. 더 흥미롭게 만들자!” 흥미로움은 가벼운 말 같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사람은 흥미로운 곳으로 간다. 다시 가고 싶은 곳으로 간다. 자기 안의 다른 가능성이 열리는 곳으로 간다. 부유가는 바로 그 흥미의 힘으로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중이다. 구름 위에 마을/거리를 짓는 사람들. 그들은 허공에 집을 짓는 몽상가가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무거워진 현실을 조금 들어 올려, 다시 연결하려는 실험가들이었다. 사이하테 실패는 땅에 묻히지 않았다. 그것은 부유가라는 떠 있는 거리로 다시 솟아올랐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땅의 어느 산속, 어느 바닷가, 어느 폐교, 어느 빈집, 어느 오래된 골목에도 이런 구름 한 조각이 필요하지 않을까? 삶 전체를 버리지 않아도 접속할 수 있는 곳, 돈이 쌓이지 않고 도는 곳, 노동이 의무만이 아니라 퀘스트가 되는 곳, 방문자가 손님에 머물지 않고 거리가 되는 곳, 또 하나의 마을, 또 하나의 관계, 또 하나의 나를 즐기는 곳. 부유가는 이제 시작되었기에 아직 완성된 답이 아니다. 그렇지만 매우 좋은 질문이다. 그리고 이 좋은 질문은 이미 세계를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   13) 사카이 유키(坂井勇貴, 1984~) 부유가(浮遊街, Floating City Uii) 일본의 차세대 공동체 혁신을 이끌고 있는 사카이 유키(坂井勇貴)가 제안하고 만든 대안 마을 프로젝트다. 사카이 유키(坂井勇貴) 1984년 일본 나가노현에서 태어났다. 20세 무렵 히피 문화를 접했고, 대안적 삶에 눈떴다. 그는 17년 넘게 공동체 마을 만들기에 헌신한 베테랑 기획자다. 구마모토현에 창설한 전설적인 에코빌리지였던 ‘사이하테(SAIHATE)’에서 약 10~12년간 핵심 공동체 매니저로 활동하며 실무 노하우를 쌓았다. 자본주의 대안을 모색하며 구축한 프로젝트(‘돈이 사라진 모형 정원’)로 2022년 일본 사회과제 해결형 프로젝트 아워드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소셜 임팩트 크리에이터로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그는 합동회사 Uii, 사단법인 타다의 하코니와(タダの箱庭) 대표이자, 부유가 발기인(대표)이다. 부유가 전사(浮遊街 前史), 사이하테 부유가를 이해하려면 그 전신인 ‘사이하테(SAIHATE)’를 알아야 한다. 사이하테(2011~2023)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국가 인프라가 멈춰도 웃으며 살 수 있는 터전”을 목표로 만들어졌다. 네 마음대로 하세요(お好きにどうぞ)”라는 자율 규칙으로 운영되었고 일본 에코 빌리지 문화의 상징이 되었다. 규칙과 리더가 없는 이상적 자율성은 역설적으로 주민 간의 가치관 충돌, 경제적 궁핍, 운영 관리의 부재라는 한계를 낳았다. 결국 2023년 11월 11일, 12주년을 끝으로 개방형 마을인 사이하테는 문을 닫았다. 사카이 유키는 사이하테 실패를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으로 삼았다. 실패 원인을 철저히 분석하여, ‘적절한 입장 제한(회원제)과 가상 경제 게임 시스템’을 도입한 완전히 새로운 진화형 도시 ‘부유가’를 설계했다. 사이하테 대지를 매입한 뒤 재출발한 것이다. 구마모토현 우키시 삼각정(三角町) 산속에 위치한 약 1만 평 규모의 독립된 자연환경이 그곳이다. 부유가 핵심 개념과 철학 근심 어린 세상에서 떠오른 세상으로”라는 슬로건을 바탕으로, 1,000명의 동료가 모여 자급자족과 소상공인을 결합해 살아가는 대안 도시를 지향한다. 그래서 부유가는 생계를 유지하고 돈을 벌기 위해서만 일하는 삶에 회의를 느낀 사람들”, 일상과 직장을 유지하면서도 제2의 고향이나 느슨한 연대감을 갖고 싶은 현대인”을 타깃으로 한다. 구마모토현의 실제 대지(리얼)와 온라인 디지털 플랫폼(가상)을 융합하여, 전 세계 어디서든 소속감을 느끼고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14) 부유가는 현재 현실이다. 이 그림처럼 붕 뜬 마을도 도시도 거리도 아니다. 이 그림은 부유가를 사는 사람들의 마음이다. PPT: 사카이 유키(ⓒ) 부유가 운영 시스템 ① 제한된 진입 장벽: 패스(Pass) 기반 회원제 과거, 사이하테가 ‘아무나 올 수 있는 개방형’이어서 겪었던 갈등을 보완하고자 회원제(멤버십) 시스템을 도입했다. 특정한 재능을 가졌거나 가치관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한정된 ‘패스’를 획득해 ‘마을 사람’이라는 자격을 얻어야만 공동체에 깊게 참여할 수 있다. ② 게임 소프트웨어 같은 도시: 퀘스트(Quest) 제도 마을 사람들은 부유가 내부에서 제공되는 ‘퀘스트(간단한 노동과 미션)’를 수행한다. 예를 들어 농사를 짓거나, 목공으로 건물을 짓거나, 마을 청소를 하는 등의 활동이 퀘스트가 된다. 이를 통해 참가자들은 자연스럽게 대안적 생존 기술(퍼머컬처, 인테리어 등)을 배우고, 마을 풍경을 직접 바꾸는 주체적인 성취감을 얻는다. ③ 경제 실험의 핵심: 지역 통화 Uii(썩는 돈) 자본주의 가장 큰 폐해인 ‘돈의 독점과 축적’을 막기 위해, 부유가 내에서는 ‘Uii’라는 독자적인 지역 화폐를 사용한다. 이 화폐는 일본의 지속 가능한 모바일 통화 플랫폼인 ‘유모(eumo)’ 시스템에 가맹되어 운영된다. 시간이 지나면 가치가 줄어들거나 소멸하는 일명 ‘썩는 돈’ 개념을 차용했다. 쌓아두면 손해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돈을 움켜쥐지 않고 공동체 안에서 끊임없이 유통시킨다. 마을 사람들은 퀘스트로 번 ‘Uii’ 코인을 활용해 마을 내에 자신만의 작은 가게를 열 수 있다. 자신이 구운 과자, 마사지, 라이브 공연, 커피 드립, 타로 상담 등 개인이 좋아하는 재능을 주고받으며 자립 경제 순환을 만들어낸다. 주요 행사 부유가에는 카페, 레스토랑, 숙박시설, 라이브 스테이지 등이 갖춰져 있다. 오전 10시부터 밤 12시까지 연중무휴 형태로 공간이 운영된다. 매년 봄(골든위크 시즌 등)에는 부유가를 외부에 전면 개방하고 음악, 토크쇼, 먹거리 소상공인 장터를 여는 대규모 축제인 ‘부유제(浮遊祭)’를 개최하여 대안적 삶의 가능성을 대중에게 전파하고 있다.김종길 시민기자, 다석철학연구자 gjg6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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