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 샤리프, 닥터 지바고 로 각인된 사막의 이방인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배우가 있다. 태어난 나라, 태어난 말, 태어난 얼굴 안에 갇혀 평생을 사는 배우와, 그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아무나 될 수 있었던 배우. 오마 샤리프(Omar Sharif, 1932~2015)는 후자였다. 이집트 사람이면서 러시아 시인도 되었고, 기독교인으로 태어났으면서 이슬람교로 개종했으며, 아랍어로 시작해 여섯 개 언어를 굴리며 살았다. 국적과 종교와 언어, 인간을 가르는 세 가지 담장을 그는 마치 카드 패를 섞듯 가볍게 넘나들었다.
1963년의 샤리프(위키피디아)
알렉산드리아 목재상의 아들
1932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목재상 아버지 밑에서 미셸 데미트리 샬후브(Michel Demitri Chalhoub)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레바논·시리아계 기독교 집안이니, 지금 기준으로 보면 이집트에서도 소수자였던 셈이다. 카이로 대학에서 수학과 물리학을 전공했으니 원래대로라면 목재 장부나 들여다보며 살았을 사람이다. 그런데 스물두 살 되던 해인 1954년, 영화감독 유세프 샤힌(Youssef Chahine)이 그를 데뷔작에 캐스팅하면서 인생이 완전히 틀어졌다. 상대역은 당시 이집트 최고 여배우 파텐 하마마(Faten Hamama, 1931~2015). 목재상 아들이 은막의 여왕 곁에 서게 된 것이다.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 (1962)에서 호흡을 맞춘 오마 샤리프(오른쪽)와 앤서니 퀸(위키피디아)
사랑을 위해 종교를 바꾼 남자
파텐 하마마와 샬후브, 두 사람은 영화에 함께 출연한 이듬해인 1955년 결혼했다. 그런데 하마마는 무슬림이었고 샬후브는 기독교인이었다. 그는 고민 없이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이름도 오마 샤리프로 바꿨다. 지금 어디선가는 이 결정 하나로 신문 사회면을 장식하고, 가족모임에서 몇 년째 냉전이 이어질 법한 일이다. 그런데 샤리프는 이걸 무슨 대단한 신념의 전향처럼 굴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 곁에 있기 위해 이름과 신앙을 바꾸는 일이, 그에게는 여권 갱신 정도의 절차였던 모양이다. 정체성이라는 게 목숨 걸고 지켜야 할 요새가 아니라, 필요하면 갈아 입는 외투일 수도 있다는 걸 그는 몸으로 보여줬다.
영화 닥터 지바고 (1965)에서 제랄딘 채플린(찰리 채플린의 딸)과 함께(위키피디아)
나세르의 그늘을 벗어나 세계로
문제는 이집트가 그를 가만 두지 않았다는 데 있다. 당시 대통령 가말 압델 나세르(Gamal Abdel Nasser, 1918~1970)의 통치 아래, 이집트 국민은 해외 출국조차 쉽지 않았다. 세계적인 배우가 되고 싶은 사람에게 이보다 답답한 감옥이 없었다. 결국 샤리프는 유럽으로 사실상 자진 망명하는 길을 택했고, 이 선택이 결과적으로 아내 하마마와의 결별로도 이어졌다.
1962년 데이비드 린(David Lean, 1908~1991) 감독의 에서 피터 오툴(Peter O Toole, 1932~2013)의 상대역으로 국제적으로 이름을 알렸고, 1965년 에서는 러시아 시인 유리 지바고를 연기해 세계적인 스타가 됐다. 이집트인이 영국 영화에서 러시아인을 연기해 갈채를 받는다는 것, 지금 생각해도 묘한 조합이다. 국경을 넘어야 살아남는 사람과, 국경을 넘지 못하게 막는 권력의 대결에서, 결국 살아남은 쪽은 국경을 가볍게 여긴 배우 쪽이었다.
1962년의 나세르(위키피디아)
지바고, 그리고 카드 게임의 달인
샤리프의 또 다른 얼굴은 브리지 카드 게임의 세계 최정상급 선수였다는 점이다. 신문에 카드 칼럼을 연재하고, 자신의 이름을 내건 게임까지 만들었다. 상대 패를 읽고, 침묵 속에서 신호를 주고받고, 무모하게 베팅하지 않되 결정적일 때는 과감히 승부를 거는 것. 돌이켜 보면 그의 인생 자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노년에는 알츠하이머로 고생하다 2015년 카이로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3. 정작 그가 가장 사랑한다던 브리지조차 만년에는 손을 뗐다고 하니, 그 많던 열정 중 무엇 하나 끝까지 붙들지 않고 놓아준 것도 그다운 마무리였다.
1967년 네덜란드에서 컨트랙트 브리지 게임을 하는 샤리프(위키피디아)
한국에 던지는 질문
오마 샤리프의 삶이 한국에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지 않다. 하나는 정체성에 관한 것이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하나의 국적, 하나의 언어, 하나의 혈통을 정상으로 놓고 그 바깥은 의심의 눈으로 본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사랑받은 배우는 정체성을 여러 개 겹쳐 입고도 누구보다 자기다웠다. 다문화 가정 아이들, 탈북민, 이주노동자를 향한 우리사회의 시선을 돌아보게 만드는 대목이다.
둘은 국가권력과 개인자유의 문제다. 나세르 정권이 국민의 출국을 막았듯, 지난 2024년 12월 3일 이 땅에서도 권력자인 윤석열 한 사람이 모든 국민의 자유를 하룻밤 사이에 옭아매려 한 적이 있다. 샤리프는 결국 그 담장을 넘어 자신의 삶을 찾았지만, 담장 자체를 세운 권력은 역사에서 초라하게 퇴장했다. 국경이든 계엄이든, 개인의 자유를 가로막으려는 시도는 결국 실패로 끝난다는 사실을, 사막을 건너온 이 배우의 일생이 다시 한 번 일러준다.
사망 석 달 전인 2015년 4월의 샤리프(위키피디아)
김성수 시민기자 wadans@empa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