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로그인   회원가입   초대장  
모니터링&뉴스레터   페투미X사회혁신
페투미X사회혁신   서비스 소개   아카이브   이야기   이용 안내
페이지투미는 사회혁신분야의 새로운 정보를 일주일에 3번, 메일로 발송해드립니다.

link 세부 정보

정보 바로가기 : 전쟁 지지하려면 딴 후보 찍어라 에드워드 솔터

전쟁 지지하려면 딴 후보 찍어라 에드워드 솔터
[뉴스]
의사가 국회의원이 되는 일은 드물지 않다. 그런데 선거 전날 유권자들 면전에 대고 술값을 내려줄 사람 뽑고 싶으면 딴 사람 찍어라 고 쏘아붙이고도 이튿날 당선된 사람은 흔치 않다. 알프레드 솔터(Alfred Salter, 1873~1945)가 바로 그런 인물이다.   알프레드 솔터와 딸 조이스(위키피디아) 상류층 엘리트가 빈민가로 걸어 들어간 사연 솔터는 영국 런던 가이스 병원 의과대학에서 수석을 놓치지 않은 수재였다. 금메달을 두 개나 받았고, 소독 수술법의 선구자 조지프 리스터(Joseph Lister, 1827~1912)가 직접 스카우트 제의를 할 정도였으니, 그대로 갔으면 상류층 전용 진료실에서 여유롭게 살 팔자였다. 그런데 학생 시절 버몬지(Bermondsey) 빈민가를 드나들며 목격한 것이 그의 인생을 통째로 비틀어놓았다. 좋은 옷 입고 좋은 병원 가서 좋게 돈 버는 길을 걷어차고, 1898년 존 스콧 리지트(John Scott Lidgett, 1854~1953)가 세운 버몬지 정착촌으로 들어가 가난한 이웃을 진료하기 시작한 것이다. 진료비는 있으면 6펜스, 없으면 공짜였다. 하루 저녁에 60명을 진료한 날도 있었다니, 요즘 말로 하면 번아웃 이라는 단어조차 사치스럽게 느껴질 지경이다. 이곳에서 만난 여성 에이다 솔터(Ada Salter, 1866~1942)와 1900년 결혼했다. 두 사람은 딸 조이스(1902~1910)를 이웃 빈민가 아이들과 똑같이 키우기로 했다. 좋은 뜻이었지만 결과는 잔혹했다. 조이스는 성홍열에 세 차례 걸린 뒤 여덟 살에 세상을 떠났다. 부부는 슬픔을 삼키는 대신 오히려 더 깊이 빈민구제 활동에 뛰어들었다. 슬픔을 정치로 승화시킨 셈인데, 요즘이라면 멘탈 관리 상담부터 받으라고 등 떠밀렸을지도 모르겠다.   에이다 솔터(위키피디아) 표 대신 진실을 택한 선거 솔터는 자유당원이었다가 1908년 부부가 함께 갓 태어난 독립노동당 버몬지 지부를 세우며 좌파 진영으로 완전히 넘어갔다. 금주주의자에 평화주의자였던 그는 표를 구걸할 생각이 애초에 없었다. 1922년 총선 전날, 군인 출신에 술 좋아하는 유권자들 앞에서 대놓고 맥주값 내려줄 사람이나 군대 지지할 사람 뽑고 싶으면 다른 후보 찍어라 고 요구했다. 장내에 흐른 침묵은 1분쯤 이어지다가, 청중 전체가 일어나 박수를 쳤다. 다음 날 그는 버몬지 지역구 하원의원으로 당선됐다. 정치 컨설턴트가 봤으면 기절초풍할 선거전략인데, 결과만 놓고 보면 이보다 더 효과적인 홍보문구도 없었다. 같은 해 아내 에이다는 버몬지 구청장으로 선출되어 런던 최초의 여성 구청장, 영국최초의 노동당 소속 여성 구청장이 되었다. 부부가 나란히 지역정치를 접수한 셈이다. 에이다는 슬럼가를 허물고 나무 9000그루를 심는 미화 운동 을 벌였고, 훗날 런던 그린벨트 법제화에도 힘을 보탰다. 남편은 결핵 환자를 위한 옥외 요양시설을 만들고 공중목욕탕과 도서관을 지었다. 부부가 합쳐서 도시를 통째로 다시 설계한 꼴이다.   에이다는 나무를 심어 놀이터를 연다. 알프레드는 그녀의 왼쪽에 있다.(위키피디아) 청동상마저 도둑맞은 사나이 세월이 흘러 버몬지 강변에는 솔터 본인과 딸, 그리고 고양이까지 청동상이 세워졌다. 그런데 2011년, 솔터 동상이 사라졌다. 고철 시세를 노린 절도범의 짓으로 추정되는데, 평생 가난한 이들 편에 서 재산 한 푼 안 남긴 사람의 동상마저 돈 때문에 사라졌다는 사실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지역 주민들이 6만 파운드를 모아 3년 만에 새 동상을 세웠고, 이번엔 그동안 빠져 있던 아내 에이다의 동상까지 함께 세웠다. 늦었지만 제대로 된 복원이었다. 솔터는 말년까지 평화주의를 굽히지 않았다. 뮌헨 협정 이후 나치독일에 유화책을 써야 한다고 주장해 정치적 동료들에게도 외면 받았다. 시대를 잘못 읽은 고집이었을 수도 있고, 신념을 끝까지 지킨 우직함이었을 수도 있다. 다만 확실한 건, 그는 표를 얻으려고 신념을 굽힌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점이다.   버몬지에 있는 솔터의 동상(위키피디아) 오늘 한국에 솔터가 있다면 한국정치를 들여다보면 표를 얻으려 어떤 말이든 꾸며내는 이들이 넘쳐난다. 지역구 민원 해결사를 자처하며 선심성 공약을 쏟아내는 풍경은 낯설지 않다. 솔터의 선거 연설이 새삼스러운 건, 그가 유권자의 비위를 맞추는 대신 불편한 진실을 던졌고, 그럼에도 표를 받았다는 사실 때문이다. 정치가 원칙을 버리지 않고도 이길 수 있다는 증거인 셈이다. 또 하나 눈여겨볼 대목은 부부가 함께 만든 공공의료와 도시녹지 정책이다. 지방의료 공백, 필수의료 기피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한국 입장에서 보면, 돈보다 사람을 우선한 시골의사 한 명이 결국 한 도시의 보건체계를 바꿔놓았다는 이야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린벨트 역시 한국에서 개발논리에 밀려 자꾸 풀리는 처지인데, 100년 전 런던에서 그린벨트를 지켜낸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은 곱씹어볼 만하다. 정치인이 표보다 원칙을 앞세울 수 있는지, 그리고 그런 정치인을 유권자가 실제로 뽑아줄 수 있는지 등등 솔터 부부는 100년 전 런던 빈민가에서 질문을 던졌는데, 지금 한국사회에 던져도 전혀 낡지 않은 질문이다.   런던에 있는 에이다 솔터 정원(위키피디아)  김성수 시민기자 wadans@empas.com


최근 3주간 링크를 확인한 사용자 수

검색 키워드


주소 : (12096) 경기도 남양주시 순화궁로 418 현대그리너리캠퍼스 B-02-19호
전화: +82-70-8692-0392
Email: help@treeple.net

© 2016~2026. TreepleN Co.,Ltd. All Right Reserved. / System Updated

회사소개 / 서비스소개 / 문의하기 /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