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버린 AI’ 슈퍼카 아닌 국민차로 만들어야 [뉴스] 딥시크 로고와 중국 오성홍기 [로이터연합뉴스 자료사진]
슈퍼카만으로 도로를 채울 수 없다
세계의 모든 운전자가 포르쉐를 타지는 않는다. 포르쉐보다 느리더라도 값이 합리적이고 고장이 적으며 부품을 쉽게 구할 수 있는 차가 세계의 도로를 채운다. 인공지능도 곧 그렇게 될 것이다. 미국은 이미 AI의 슈퍼카를 만들고 있고 그 성능은 실제로 놀랍다. 한국이 뒤늦게 같은 경주에서 최고 속도 기록을 노릴 이유는 많지 않다. 우리가 만들어야 할 것은 세계인이 매일 부담 없이 사용하는 AI의 쏘나타다.
국민차는 최고 속도 기록보다 가격과 내구성, 유지비와 정비성을 앞세운 차다. 한국이 노려야 할 자리도 그렇다.
질문에 답하던 기계가 일을 시작했다
지난 2년 사이 AI의 쓰임새가 달라졌다. 한두 문장 물어보고 답을 받는 도구였던 것이 이제는 코드베이스를 통째로 읽고, 파일을 고치고, 테스트를 돌리고, 실패하면 원인을 찾아 다시 시도하는 작업자가 됐다. 이 과정에서 쓰는 토큰의 양은 이전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같은 수준의 성능을 기준으로 보면 토큰 단가는 대체로 내려가는 추세다. 그런데 기업이 감당하는 총비용은 오히려 커질 수 있다. AI가 답변기에서 작업자로 바뀌면서 업무 하나에 소비하는 토큰과 연산량이 크게 늘기 때문이다.
2026년 7월 공식 API(컴퓨터나 컴퓨터 프로그램 사이의 연결 언어) 정가로 보면 미국의 일부 고성능 모델은 출력 100만 토큰당 25달러에서 50달러를 받는다. 딥시크의 V4 플래시는 같은 기준으로 0.28달러다. 물론 미국 기업에도 출력 5달러에서 6달러짜리 저가 모델이 있고, 토큰 가격만으로 성능과 안정성까지 비교할 수도 없다. 이 숫자가 보여주는 것은 프런티어 모델을 반복 업무에 그대로 투입할 때 비용 격차가 얼마나 커질 수 있는가다. 모든 업무에 최상위 모델이 필요한 것은 아니며, 일상 업무의 상당 부분은 그보다 싼 모델로 처리할 수 있다.
다만 진짜 기준은 토큰 단가가 아니라 업무 하나를 끝내는 데 드는 총비용이다. 싼 모델이 여러 번 실패하고, 사람이 손을 대야 하고, 결국 비싼 모델로 다시 보내야 한다면 낮은 정가는 계산서의 첫 줄일 뿐이다.
량원펑 딥시크 창업자(앞줄 오른쪽) [CGTN 갈무리 연합뉴스]
딥시크가 실제로 증명한 것
딥시크의 창업자 량원펑은 2024년 여름 중국 경제매체 36Kr 산하 암용(暗涌) 과의 인터뷰에서 가격을 내린 이유를 설명한 적이 있다. 사용자를 빼앗는 것이 주된 목적은 아니었고, 차세대 구조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원가가 내려간 만큼 값을 내렸으며, API와 AI를 누구나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보조금도 폭리도 취하지 않고 원가보다 조금 위에서 가격을 잡는다는 원칙도 함께 밝혔다.
낮은 가격은 그에게 목표이면서 동시에 기술의 결과였다. 출혈 경쟁으로 잠시 싸게 팔 수는 있어도 그 가격을 오래 유지하려면 먼저 싸게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딥시크는 모델이 답을 만드는 동안 중간 정보를 저장해 두는 공간을 구조 설계로 이전 자사 모델보다 90퍼센트 넘게 줄였다. 추론에 필요한 메모리를 덜 쓰니 더 빠르고 싸게 서비스할 여지가 생긴다. 널리 알려진 약 558만 달러라는 학습비도 회사의 총개발비가 아니라 공개된 GPU 사용시간을 대여료로 환산한 값이다. 기술보고서에도 선행 연구와 실험 비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명시돼 있다.
량원펑이 남긴 말 중 한국이 새겨야 할 것은 따로 있다. 그는 중국이 무임승차자에 머물지 말고 기술 발전의 기여자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왜 라마 구조를 가져다 쓰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는 응용이 목적이라면 그 편이 합리적이지만 자신들이 가려는 곳은 다르다고 답했다. 중국과 미국의 진짜 격차는 1, 2년이 아니라 독창과 모방의 차이라는 말도 같은 자리에서 나왔다.
한국에서 자주 들리는 처방 가운데 하나는 검증된 해외 오픈웨이트 모델을 가져와 한국어와 산업 데이터로 다듬자는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필요하고 실제로 효과도 있다. 다만 외국 기업이 다음 모델을 공개하지 않거나 라이선스를 바꾸면, 이미 받아둔 모델은 계속 쓸 수 있어도 차세대 개발과 고도화에서 뒤처질 수 있다.
미국의 통제와 중국의 통제 사이
지난 6월 앤트로픽은 페이블 5를 공개하고 미토스 5를 소수의 검증된 파트너에게 제한적으로 제공하기 시작했다. 사흘 뒤인 6월 12일 미국 정부가 수출통제 지시를 내렸다. 국가안보 권한을 근거로 미국 안팎을 불문하고 외국 국적자의 접근을 차단하라는 내용이었고, 회사에 소속된 외국 국적 직원까지 대상이었다. 지시가 즉시 효력을 갖는 데다 이용자의 국적을 실시간으로 가려낼 방법이 없었던 회사는 모든 고객의 접근을 차단하는 쪽을 택했다.
페이블 5를 마음껏 써보려고 세금까지 220달러가 드는 최상위 요금제를 서둘러 결제한 사람 중에는 필자도 있었다. 결제한 지 사흘 만이었다. 외국 국적자를 겨냥한 지시였으니 한국 이용자도 벗어날 수 없었다. 차단을 실행한 것은 회사였지만, 한국에서 그 모델을 쓸 수 없게 만든 결정은 워싱턴에서 내려졌다. 국내에서 그 모델을 업무에 도입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이재명 대통령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가 24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더 미드웨이에서 샌프란시스코 AI 서밋에서 기념 촬영 후 악수하고 있다. 왼쪽부터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 이재명 대통령, 혹 탄 브로드컴 최고경영자, 최태원 SK 회장.2026.7.25 연합뉴스
통제는 18일 뒤인 6월 30일 해제됐다. 페이블 5는 다음 날 전 세계 이용자에게 다시 제공됐지만, 미토스 5는 정부 승인을 받은 일부 미국 조직에만 접근이 복구됐다. 회사는 미국 안팎의 더 많은 파트너가 이용할 수 있도록 정부와 계속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우리는 남의 결정이 우리에게 유리하게 나기를 기다리는 위치에 있었다.
그렇다고 미국 정부만 비난할 일은 아니다. 오히려 눈여겨볼 대목은 그 결정이 미국 안에서도 깔끔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앤트로픽의 설명에 따르면 정부 서한에는 국가안보 우려의 구체적 내용이 담기지 않았다. 회사는 지시를 따르면서도 공개적으로 이의를 제기했고, 이후 정부 및 관련 기업들과 함께 근거가 된 보고서를 검토했다. 회사는 문제가 된 취약점 탐지가 다른 여러 모델에서도 재현된다는 점을 확인했고, 해당 행동을 차단하는 분류기도 새로 학습시켰다. 이런 검토와 대응이 이어지는 동안 정부는 통제를 해제했다.
여기서 확인되는 것은 미국식 절차의 투명성이라기보다 이의를 제기할 통로가 열려 있다는 점이다. 지시를 내린 주체와 법적 성격이 드러났고, 기업이 공개적으로 반대 의견을 냈으며, 18일 만에 통제가 해제됐다. 앤트로픽은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 협력 기업들과 안전장치 우회 사례를 평가할 공통 기준을 만들고, 미국 정부와도 사전 평가와 정보 공유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앞으로 프런티어 모델의 배포 조건에 영향을 미칠 규범이 미국 정부와 주요 기업 사이에서 만들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 자리에 들어설 수 있는 것은 정부와 마주 앉을 체급을 갖춘 기업들뿐이다. 그 통로에 한국은 서 있지 않았다.
미국의 중소 기술기업들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 폴리티코 보도에 따르면 프로톤과 와이콤비네이터 등 약 200개 기업이 참여한 리틀 테크 협회는 7월 22일 중국산 오픈웨이트 모델에 대한 포괄적 접근 차단에 반대했다. 값싼 공개 모델을 막으면 위험이 사라지기보다 스타트업이 소수 프런티어 기업의 API에 더 의존하게 된다는 이유였다.
이들이 요구한 것은 두 가지였다. 세계 최고 수준의 자국산 오픈웨이트 모델을 갖는 것, 그리고 이미 세상에 나와 있는 모델에 개발자들이 계속 접근할 수 있게 하는 것. 남의 공개 모델을 오늘 쓰는 일과 우리 기술의 토대를 남에게 맡기는 일은 다르다. 한국에도 그 두 가지가 함께 필요하다.
중국 쪽 사정은 성격이 다르다. 한국 정부 부처들은 지난해 2월 딥시크 접속을 잇달아 제한했다. 그해 4월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조사에서는 딥시크가 개인정보의 국외 이전에 필요한 동의나 고지 없이 기기와 네트워크 정보 등을 중국과 미국의 사업자에게 이전했고, 이용자가 입력한 프롬프트도 베이징의 한 기업에 전송한 사실이 확인됐다.
둘은 같은 종류의 일이 아니다. 하나는 정부의 수출통제이고 다른 하나는 기업의 개인정보 처리 문제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용자가 서비스의 핵심 조건을 통제하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결이 같다. 그러니 중국산이라 믿을 수 없다는 결론으로 건너뛰면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친다. 기업이든 관공서든 외부 AI를 들일 때 실제로 확인해야 할 것은 네 가지다. 공급자를 바꿀 수 있는가. 서비스가 끊겨도 하던 일을 계속할 수 있는가. 조건이 바뀌었을 때 이유를 묻고 다툴 수 있는가. 우리 데이터가 어디로 가는지 확인할 수 있는가.
위험의 성격도 다르다. 한쪽에서는 기업이 정부에 공개적으로 이의를 제기하고 협의하는 과정을 밖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다른 쪽에서는 어떤 데이터가 누구에게 넘어갔는지가 우리 정부의 조사 뒤에야 드러났다.
중국 기업이 운영하는 서비스에 접속해 쓰는 것과 공개된 중국산 모델을 내려받아 한국 서버에서 돌리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다. 자체 설치는 데이터가 국경을 넘는 문제를 크게 줄인다. 물론 공개된 가중치만으로 학습데이터의 구성과 모든 편향, 숨은 취약점을 완전히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AI 주권은 국산화가 아니라 비지배다
이용자는 서비스를 쓸 수 있지만 조건을 정하지는 못한다. 값이 올라도, 기능이 사라져도, 나라 사이가 틀어져도 기다리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주인의 선의가 거두어지는 순간 사라지는 자유는 자유가 아니다. 소유가 아니라 대여다. 정치철학은 이 상태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공화주의는 자유를 상대의 선의에 맡겨진 상태와 구별한다. 지금 간섭받지 않더라도 상대가 마음만 먹으면 조건을 바꿀 수 있고 이용자가 그 관계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면, 충분히 자유롭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관점을 받아들이면 소버린 AI라는 말의 뜻이 달라진다. 태극기를 단 모델을 하나 갖는 일이 아니라, 외국 기업이든 국내 기업이든 누군가의 일방적 결정에 국민과 기업이 매이지 않도록 할 힘을 갖추는 일이 된다. AI 주권의 반대말은 외산 AI가 아니라 선택권 없는 종속이다.
그래서 칼끝은 안쪽으로도 향해야 한다. 접근 제한이 결과적으로 가장 큰 사업자의 지위를 더 강화할 수 있다는 우려는 미국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세금과 공적 자원이 들어간 모델의 조건을 특정 기업이 홀로 정한다면, 바뀌는 것은 상대의 국적뿐이다.
수천 번 실패할 수 있는가
이를테면 작은 스타트업의 개발자는 코딩 에이전트를 돌릴 때마다 사용량을 살핀다. 막힌 문제를 열 번, 스무 번 다시 풀게 하고 싶어도 청구서가 마음에 걸린다. 반면 자체 서버를 충분히 확보한 회사의 개발자는 이미 확보한 연산자원 안에서 같은 문제를 더 오래 반복해서 돌릴 수 있다. 두 개발자의 실력보다 감당할 수 있는 실패 횟수가 결과를 가를 수 있다.
AI 시대의 불평등은 누가 더 좋은 답변을 한 번 받느냐보다, 누가 비용 걱정 없이 수백 번 또는 수천 번 실패하고 다시 시도할 수 있느냐에서 벌어진다. 코딩과 연구에서 승부를 가르는 것은 한 번의 정답이 아니라 반복 비용이다. 이 격차는 모델의 성능표에 나타나지 않는다. 자동차가 부자의 장난감에서 대중의 이동수단으로 바뀌면서 사람들이 사는 곳과 일하는 곳의 지도가 달라졌듯, AI도 같은 길을 갈 것이다.
국민차의 조건
한국이 벤치마크 순위 경쟁에 매달릴 이유는 없다. 그러나 순위를 좇지 않는 것과 연구 최전선에서 물러나는 것은 다르다. 저비용 모델은 프런티어 연구의 반대편에 놓인 상품이 아니라 그 연구에서 나온 구조와 학습법을 작은 모델에 옮긴 결과다. 딥시크가 그것을 보여준다. 그러니 우리가 노릴 것은 성능의 포기가 아니라, 같은 체급에서 세계 최고와 겨루면서 작업 하나에 드는 비용을 낮추는 일이다. 그렇게 만든 개방형 범용 모델 위에 제조와 의료, 법률, 교육용 전문 AI를 쌓는 순서여야 한다.
지금 우리가 그 수준에 있다는 말은 아니다. 정부 사업의 목표부터가 최근 6개월 안에 나온 글로벌 모델 대비 95퍼센트 이상의 성능이고, 아직 따라가는 처지라는 것을 정부도 숨기지 않는다. 다만 그 거리는 노선을 바꿀 이유가 아니라 좁혀야 할 간격이다.
한국이 만들 AI는 GPT나 클로드의 모조품도, 성능을 포기한 값싼 모델도 되어서는 안 된다. 같은 체급에서 충분히 좋은 성능을 내면서, 업무 하나를 끝내는 비용이 낮고, 오래 안정적으로 쓸 수 있으며, 공급자를 바꿔도 하던 일이 멈추지 않는 범용 모델이어야 한다. 이것이 AI의 국민차다. 조건은 셋으로 나뉜다.
첫째, 싸게 일해야 한다. 기준은 토큰 단가가 아니라 업무 하나를 끝내는 데 드는 총비용이다. 몇 번 실패하는지, 사람이 얼마나 손을 대야 하는지, 결국 비싼 모델로 넘기는 비율이 얼마인지가 모두 들어간다.
둘째, 오래 믿고 쓸 수 있어야 한다. 자동차의 고장이 적고 정비가 쉽다는 말은 AI에서 결과가 안정적이고 운영이 끊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같은 업무를 맡겼을 때 성공률이 들쭉날쭉하지 않아야 하고, 버전이 올라갔다고 어제까지 돌아가던 사내 시스템이 멈추지 않아야 한다. 장애가 나면 대응이 오고 보안 문제가 발견되면 패치가 와야 한다. 정비성은 문서와 기술지원, 그리고 결과가 왜 그렇게 나왔는지 되짚을 수 있는 기록에서 나온다. 부품을 쉽게 구한다는 말은 표준 도구와 붙는다는 뜻이다. 특정 회사의 개발 환경에서만 돌아가는 모델은 값이 아무리 싸도 국민차가 아니다. 이 조건은 성능표에 실리지 않지만 실무에서 모델을 고르는 기준은 대개 여기에 있다.
셋째, 주인이 바뀌어도 멈추지 않아야 한다. 가중치를 공개해 상업적 이용과 파인튜닝을 허용하고, 기업과 대학과 공공기관이 자기 서버에 설치할 수 있어야 하며, 공급자를 갈아타기 쉬운 표준을 써야 한다. 이용자가 맡긴 데이터가 모델을 다시 학습시키는 데 쓰이지 않는다는 보증이 있어야 하고, 외부 기관이 성능과 안전성을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 기업과 관공서가 도입을 저울질할 때 빠뜨릴 수 없는 두 질문이다. 공개라는 사실만으로도, 국산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이 조건은 채워지지 않는다. 그 라이선스가 실제로 무엇을 허용하는지, 받은 사람이 정말 자기 서버에서 돌리고 뜯어보고 갈아탈 수 있는지까지 봐야 한다. 앞의 두 조건을 다 갖춘 모델이라도 공급자가 마음대로 조건을 바꿀 수 있다면 국민차가 될 수 없다. 비지배는 국민차의 세 번째 조건이다. 이 세 조건은 한국어와 주요 아시아 언어에서도 충족돼야 한다.
한국이 시도해볼 만한 자리가 하나 더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메모리 반도체에서 쌓은 역량은 모델과 하드웨어를 함께 최적화하는 전략의 기반이 될 수 있다. 같은 계열의 소형 모델을 함께 개발해 휴대전화와 자동차, 공장 설비에 넣고 인터넷 연결 없이 추론하도록 설계하면 외부 API 비용과 통신 지연을 줄이고, 이용자의 데이터가 외부 서버로 전송되는 것도 막을 수 있다.
18일(현지시간) 중국 상하이의 2026 세계인공지능대회(WAIC) 행사장. 중국 스타트업 문샷 의 인공지능(AI) 모델 키미 K3 홍보 부스에서 관람객들이 이벤트에 참여하고 있다. 2026.7.20 상하이 연합뉴스
그러나 메모리를 잘 만드는 것과 AI 반도체를 개발자가 바로 가져다 쓸 수 있게 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칩이 아무리 좋아도 그 위에서 모델을 돌리게 해주는 소프트웨어가 받쳐주지 않으면 쓰이지 않는다. 정부가 올여름 국산 AI반도체 기술지원센터를 연 것도 도입을 검토한 기업들이 성능 검증과 도입 뒤 최적화를 어려움으로 꼽았기 때문이다. 모델과 하드웨어를 함께 설계하려면 그 틈부터 메워야 한다.
지속 가능한 낮은 가격은 효율 공학이 뒷받침해야 한다. 자체 설치 역시 언제나 더 경제적이지는 않다. 이용량이 적은 조직에는 외부 API가 오히려 저렴하고, 이 전략의 일차 대상은 AI를 대량으로 반복 사용하는 기업과 공공기관이다.
어려운 문제만 외부 프런티어 모델에 넘기는 방식도 현실적이다. 그렇게 하면 가장 까다로운 작업에서는 여전히 외부에 기댄다. 대신 매일 쏟아지는 사내 코드와 문서를 조직 내부의 통제 아래 둘 수 있다. 그런데 가장 어려운 작업은 대개 가장 중요한 작업이기도 하다. 바깥에 보내는 일감이 줄어도, 가장 중요한 일을 남의 모델에 기댄다는 사정은 그대로 남는다.
세금이 들어간 모델은 누구의 것인가
정부는 GPU와 데이터, 인재를 지원하는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사업을 2027년까지 이어간다. 정부가 대는 GPU는 2025년 1차 추가경정예산에서 나왔다. 2025년 8월 다섯 팀으로 출발해 6개월마다 단계평가로 지원 대상을 추리는 구조다. 지난 1월 1차 평가에서 LG AI연구원이 벤치마크와 전문가 평가, 사용자 평가를 합산해 90.2점으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고, 네이버클라우드는 일부 인코더에 외부 공개 모델의 학습된 가중치를 갱신할 수 없게 고정된 형태로 가져다 쓴 점이 독자성 기준에 걸려 제외됐다.
눈여겨볼 것은 탈락 그 자체보다 정부가 이때 내놓은 정의다. 공모 안내서는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을 해외 모델을 미세조정해 만든 파생형이 아니라 설계부터 사전학습까지 수행한 국산 모델, 곧 타사 모델에 대한 라이선싱 이슈가 없는 것으로 규정했다. 브리핑은 여기서 더 나갔다. 언제든 스스로 개발하고 고도화할 수 있어야 하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주체적으로 모델의 운영과 이용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하고, 오픈소스를 활용하더라도 외부의 통제와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차의 세 번째 조건과 같은 말이다.
차관은 같은 자리에서 기업들이 만들어낸 성과가 개별 기업의 소유물이 되어서는 안 되고 국내 AI 서비스 기업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오픈소스로 기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빈말은 아니다. 공모 단계에서 정부는 국내 기여계획을 제시하게 해 선정평가에 반영했고, 참여기업 규모와 오픈소스 수준에 따라 매칭 비율을 차등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거기까지다. 기여하겠다는 약속과 이용자가 실제로 쥐는 권리는 같지 않다. 상업적 이용과 재배포, 독립적 검증처럼 완성된 모델을 받아 쓰는 쪽이 무엇을 보장받는지에 대한 최소선은 공개된 기준에서 드러나지 않는다. 개발하는 쪽이 외부 통제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면, 그 모델을 받아 쓰는 쪽은 어떤가. 모델을 개발한 기업이 외국 기술기업으로부터 자유롭다고 해서, 그 모델을 사용하는 기업과 대학까지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세 모델이 이용자에게 주는 권리는 같지 않다. SK텔레콤의 에이닷엑스 케이원은 아파치 2.0으로 공개돼 공급자가 따로 붙인 제한이 없다. 업스테이지의 솔라 오픈 2와 LG AI연구원의 K-엑사원은 자체 라이선스를 쓰는데, 파생 모델의 이름을 자사 브랜드로 시작하게 하고 라이선스 사본을 함께 배포하게 하는 정도는 메타의 라마에도 있는 조항이라 유별나지 않다.
눈에 걸리는 것은 다른 조항이다. K-엑사원은 상업적 이용과 수정, 파생 모델 제작을 허용하고 모델이나 파생 모델이 생성한 출력물의 소유권도 주장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모델을 역으로 분석해 바탕에 깔린 아이디어와 알고리즘, 구조를 알아내려는 시도를 금지한다. 라마에도 금지 항목은 있다. 다만 그쪽이 막는 것은 안전장치를 일부러 무력화하는 오용이다. 모델을 악용하지 말라는 것과 모델의 구조를 분석하지 말라는 것은 다르다. 뒤의 금지는 국민차의 조건으로 꼽은 독립적 검증과 정면으로 부딪힌다. 검증의 상당 부분은 출력만 보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편향이 어디서 비롯되는지, 취약점이 구조의 어느 층에 있는지까지 확인하려면 그 너머를 들여다봐야 한다. 역설계 금지는 그 깊은 검증의 범위를 회사가 허용한 선 안으로 좁힌다.
답은 정부가 이미 갖고 있다. 외부의 통제와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울 것. 이 기준을 개발 단계만이 아니라 이용 단계까지 적용하면 된다. 개방에 대가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한번 공개한 가중치는 안전 문제가 뒤늦게 확인돼도 걷어들일 수 없다. 그럼에도 공적 자원이 들어간 모델에서 개방을 기본값으로 두어야 하는 이유는, 그 반대편에 놓인 것이 검증받지 않은 권력이기 때문이다. 상업적 이용의 보장, 독립적 검증의 보장, 그리고 예측 가능한 종료 요건 정도가 최소 기준이 될 수 있다.
모델 가중치는 여러 사람이 복사해도 줄지 않는다. 반면 GPU의 연산시간과 전력은 한쪽에서 쓰면 다른 쪽에서 쓸 수 없는 한정된 자원이다. 공공이 연산자원을 대고 연구기관이 모델과 기술보고서를 공개하며 기업이 그 위에서 경쟁하고 대학과 시민사회가 편향과 안전성을 검증하는 구조라면, 국가가 다 하는 방식도 한 회사가 독점하는 방식도 아닌 세 번째 길이 열린다.
양원펑은 중국이 무임승차자에 머물지 말고 기술 발전의 기여자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한국이 설 자리도 거기다. 세계가 가져다 쓸 수 있는 개방형 모델을 내놓는 일은 남을 위한 선행이 아니라, 우리가 남의 결정에 매이지 않는 방법이기도 하다. 개방은 정부에 덧붙여 요구할 조건이 아니라 국민차를 국민차이게 하는 세 번째 축이다.
최고속도보다 시동키
자동차 비유를 끝까지 밀고 가면 이렇게 된다. 모델은 자동차이고, 공개된 가중치와 기술보고서는 정비 매뉴얼이며, 자체 설치는 시동키를 내가 쥐는 일이다. 공급자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은 다른 차로 갈아탈 자유이고, 개방형 표준은 도로 규격이며, 외부 기관의 검증은 차량검사에 해당한다. 정비할 수 없는 차를 온전히 내 차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다만 시동키를 쥐는 것과 엔진 오일을 직접 가는 것은 다르다. 주권은 모두가 자기 서버를 갖추는 데 있지 않고, 조건을 협상할 수 있는 위치에 서는 데 있다.
현대차도 처음부터 지금의 평가를 받지는 않았다. 가격 경쟁력으로 출발했지만 품질과 보증, 정비망을 쌓으며 세계시장에서 자리를 넓혔고 이제는 제네시스로 고급차 시장까지 겨룬다. 싸고 튼튼하다는 평가는 천장이 아니라 다음 단계로 올라가는 발판이 될 수 있다. 기술주권은 가장 뛰어난 기계를 소유하는 능력이 아니라, 어떤 기계의 주인에게도 예속되지 않을 능력이다.정승호 시민기자 jeong.seungho@hoasen.edu.v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