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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아문센에 남극점 도착 34일 뒤진 스콧, 더 큰 발자국

아문센에 남극점 도착 34일 뒤진 스콧, 더 큰 발자국
[환경]
한 달 늦은 신사 영국 해군장교 로버트 팰컨 스콧(Robert Falcon Scott, 1868~1912)은 1868년 6월 6일 영국 데번포트에서 태어났다. 열세 살에 해군에 들어간 그는 1901~1904년 디스커버리호 탐험대를 이끌고 남극을 탐사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을 역사에 새긴 것은 1910년 출항한 테라 노바(Terra Nova)호 탐험대였다. 1912년 1월 17일, 스콧이 남극점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는 이미 노르웨이 깃발이 꽂혀 있었다. 로알 아문센(Roald Amundsen, 1872~1928)이 1911년 12월 14일 먼저 도착한 뒤였다. 34일 차이였다. 학교라면 지각 벌점으로 끝났겠지만 남극에서는 목숨으로 대가를 치렀다.   1905년의 스콧(위키피디아) 고생을 견딘 신사, 고생을 피한 탐험가 두 탐험대의 차이는 준비에서 드러났다. 스콧은 엔진으로 움직이는 동력썰매와 조랑말에 기대를 걸었지만, 동력썰매는 기름이 얼어서 고장 났고 조랑말은 추위와 눈에 취약했다. 결국 대원들이 직접 썰매를 끌어야 했다. 아문센은 개썰매와 스키를 활용하고, 극지환경에 익숙한 사람들의 지식과 경험을 배워 탐험에 적용했다. 한쪽은 고난을 견디는 것이 용기라고 여겼고, 다른 쪽은 불필요한 고난을 줄이는 것이 실력이라고 생각했다. 한쪽은 감동적인 비극을 남겼고, 다른 쪽은 남극점에 먼저 도착했다. 그렇다고 스콧을 무능한 지휘관으로만 몰아붙이는 것도 공정하지 않다. 영국의 탐험사 연구자 롤런드 헌트퍼드(Roland Huntford, 1927~2017)는 1979년 출간한 저서에서 스콧의 판단과 준비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반면 미국의 대기화학자 수전 솔로몬(Susan Solomon, 1956~ )은 귀환 길의 기상자료를 분석해 이례적인 추위와 악천후가 비극을 키웠다고 지적했다. 준비부족과 자연의 위협 가운데 어느 하나만으로 모든 책임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1882년의 해군 사관생도 스콧(위키피디아) 돌아오지 못한 길 귀환 길은 참혹했다. 에드거 에번스(Edgar Evans, 1876~1912)는 2월 17일 숨졌다. 로런스 오츠(Lawrence Oates, 1880~1912)는 동상으로 발이 심하게 상하자 3월 16일 천막을 나섰다. 그가 남긴 말은 유명하다. 잠깐 밖에 나갔다 오겠습니다. 시간이 좀 걸릴지도 모릅니다.” 동료들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는 마지막 선택이었다. 요즘 직장 말투로 옮기면 바람 좀 쐬고 오겠습니다”쯤 되겠지만, 돌아올 기약은 없었다. 스콧과 에드워드 윌슨(Edward Wilson, 1872~1912), 헨리 바워스(Henry Bowers, 1883~1912)는 계속 걸었지만, 식량 저장소를 약 18㎞ 앞둔 곳에서 눈보라에 갇혔다. 스콧의 마지막 일기는 1912년 3월 29일 날짜로 끝난다. 세 사람이 실제로 숨진 날은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다. 수색대가 이들의 천막과 시신을 발견한 것은 그해 11월 12일이었다. 스콧은 마지막 기록에서 자신들이 끝까지 버텼으며, 이제 더 나은 상황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썼다.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을 돌봐 달라고 당부했다. 죽음 앞에서도 기록을 남긴 그의 일기는 훗날 탐험의 성과와 실패를 함께 검토할 귀중한 자료가 됐다.   1900년 경의 스콧(위키피디아) 지고도 남긴 것들 영국은 스콧을 영웅으로 추앙했다. 1913년 세인트폴 대성당의 추모식에는 조지 5세(George V, 1865~1936)도 참석했다. 비극은 나라의 자부심을 북돋는 이야기로 거듭났다. 그러나 탐험대가 남긴 과학적 성과도 기억해야 한다. 귀환길에 스콧과 윌슨은 석탄과 고대 식물화석을 발견했다. 그 가운데 글로소프테리스(Glossopteris)라는 식물의 화석은 남극이 한때 다른 남반구 대륙들과 연결돼 있었음을 보여 주는 중요한 증거였다. 이는 알프레트 베게너(Alfred Wegener, 1880~1930)가 1912년 제안한 대륙이동설을 뒷받침하는 자료와도 맞닿아 있었다. 남극점 경쟁에서는 졌지만, 얼음 속에서 건져 올린 화석은 과학에 오래 남았다. 당장 쓸모없어 보이는 연구가 훗날 세상을 이해하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 탐험대원 앱슬리 체리개러드(Apsley Cherry-Garrard, 1886~1959)는 1911년 남극의 혹독한 겨울에 황제펭귄 알을 구하러 나섰다. 훗날 그는 그 경험을 『세계 최악의 여행』(The Worst Journey in the World, 1922)에 담았다. 알 몇 알을 얻기 위해 영하 50도의 어둠 속을 헤맸다니, 요즘 연구비 신청서라면 예상성과를 어떻게 적어야 심사위원을 설득할 수 있을까. 스콧의 아내 캐슬린 스콧(Kathleen Scott, 1878~1947)은 조각가였다. 아들 피터 스콧(Peter Scott, 1909~1989)은 자연보호에 힘썼고, 1961년 세계자연기금(WWF: World Wide Fund for Nature) 창립에 참여했다. 남극점에 도달하지 못한 아버지의 이름은 아들의 환경보호 활동과도 이어졌다.   디스커버리 탐험대 시절, 1902년 11월 2일 남쪽으로의 행군을 앞둔 섀클턴, 스콧, 윌슨 (위키피디아) 한국이 배울 것은 무엇인가 첫째, 기록을 남겨야 한다. 스콧의 일기가 없었다면 우리는 그의 판단과 실패, 동료들의 마지막 순간을 지금처럼 검토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큰 사고나 정책 실패가 발생할 때마다 기록이 없거나 폐기됐다는 논란이 반복된다. 기록은 권력자의 소유물이 아니라 국민의 재산이다. 남기지 않으면 책임을 따질 수도, 같은 잘못을 피할 수도 없다. 둘째, 체면보다 안전을 앞세워야 한다. 국가의 명예와 성과경쟁은 탐험을 재촉했다. 준비가 충분하지 않은데도 일정과 목표를 지키려 하면 현장의 위험은 커진다. 기한을 맞추고 실적을 내는 일이 중요하더라도 사람의 목숨보다 중요할 수는 없다. 개막식은 미룰 수 있어도 생명은 되돌릴 수 없다. 쿠팡 기업은 이를 명심해야 한다.  셋째, 희생을 기리는 일과 책임을 묻는 일을 구분해야 한다. 스콧의 죽음은 용기와 헌신의 이야기로 기억됐다. 그러나 영웅담이 지나치게 앞서면 잘못된 판단과 준비부족을 따지는 일이 늦어질 수 있다. 참사 뒤에 희생자를 추모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고 추모가 원인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대신해서는 안 된다. 넷째, 남의 지식과 기초과학을 존중해야 한다. 아문센은 자신이 모르는 것을 현장경험에서 배웠다. 우리도 현장 노동자, 지역 주민, 이주민의 지식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스콧의 화석처럼 기초연구의 가치는 수십 년 뒤에 드러날 수도 있다. 눈앞의 성과만 따지다가 연구개발 예산을 무리하게 줄이면, 미래의 발견을 가능하게 할 씨앗부터 잘라 내는 셈이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남극기지를 보자. 한국은 1986년 남극조약에 가입했고, 1988년 세종과학기지를 세웠다. 이어 2014년 2월 12일 남극 대륙의 테라노바 만에 장보고과학기지를 준공했다. 테라노바는 스콧이 남극탐험에 이용했던 배의 이름이기도 하다. 그 배의 이름이 붙은 바다에서 이제 한국연구자들이 기후와 빙하, 지질과 우주를 연구한다. 한때 남극탐험의 후발주자였던 우리가 국제과학연구에 참여하는 나라로 성장한 것이다. 스콧에게서 배울 것은 용감하게 죽는 법이 아니다. 덜 죽고, 더 배우고, 더 많은 기록을 남기는 법이다. 2등 자체가 부끄러운 것은 아니다. 실패를 미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원인을 밝혀 다음 실패를 줄이는 나라가 결국 앞서간다. 역사의 성적표는 결승선에 도착한 순서만으로 매겨지지 않는다. 무엇을 배워 다음 세대에 남겼는지가 더 중요하다.   캐슬린과 로버트 팰컨 스콧 부부(위키피디아)  김성수 시민기자 wadans@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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