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의지 꺾고 점령체제 굳히는 ‘무기로서의 성폭력’ [사회혁신] 2023년 12월 7일, 가자지구 북부 베이트라히야 해변가에서 이스라엘군에 억류된 팔레스타인 남성들. Ⓒ작가 미상(이스라엘군인 추정)
이번 주 월요일(7월 27일) 가자지구 중남부 도시 칸 유니스의 대형병원인 나세르 의료 복합단지 앞에 한 무리의 사람들을 태운 국제적십자사(ICRC) 버스가 멈췄다, 쇠약해져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해 걸음조차 떼기 어려운 한 무리의 사람들이 버스에서 내렸다. 이스라엘이 ‘불법 전투원’으로 기소나 재판도 없이 붙잡고 있다가 풀어준 60명이 바로 그들이다.
2023년 10월 7일 전쟁이 터진 뒤, 이스라엘은 그동안 모두 4차에 걸쳐 수감자들을 풀어줬다. 1차는 2023년 11월 일시 휴전 때 1500명, 2차는 2025년 1월 일시 휴전 때 900명, 3차는 2025년 10월 휴전 때 약 2000명이 풀려났다. 1~3차 석방을 통해 하마스가 붙잡고 있던 이스라엘과 인질 교환은 마무리됐고, 이번 7.27 석방은 4차에 해당한다.
10.7 하마스 기습 공격 뒤 벌어진 이스라엘의 반격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른바 ‘안보 관련 용의자’로 끌려갔었다. 인권 단체들은 그 숫자가 1만 7000명에서 2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이스라엘의 마구잡이 체포로 이스라엘 교도소와 군 수감시설은 당연히 초과밀 상태가 됐고, 인권 침해 논란을 불렀다. 아직도 이스라엘 감옥에는 미성년자 350명을 포함해 9300명이 갇혀 있다. 통계에 잡히지 않은 행불자, 실종자, 옥중 사망자는 여전히 논란거리다(연재 12 참조).
우리 아빠가 아니야. 아빠 어디 있어?”
이스라엘 감옥에 갇혔던 사람들이 자유의 몸으로 풀려나면, 기다리던 가족들은 서로를 얼싸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기 마련이다. 우리 한국인들도 지난날 군사정권을 겪었기에 그런 모습에 익숙하다. 독자분들이 가까이에서 지켜본다면 아마도 눈시울이 저절로 붉어지는 느낌을 받을 듯하다. 상봉의 기쁨도 잠시, 가족들은 사랑하는 이의 야윈 모습을 보고 가슴 아파한다.
풀려난 사람들의 특징은 한결같이 정상인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스라엘 수감시설에서 일상적으로 겪은 폭력, 학대, 고문, 굶주림, 굴욕이 그들의 몸에 배어 있다. 야위고, 몸에 멍이 들고, 꽉 조인 수갑 때문에 손목에는 깊은 흉터가 남은 모습들이다. 어떤 아이들은 호송버스에서 내려 다가오는 아빠를 보고도 엄마에게 우리 아빠가 아니야. 아빠 어디 있어?”라고 묻는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유혈분쟁의 강도가 높을 때는 넘쳐나는 재소자들로 감옥 사정은 더욱 열악해진다. 이스라엘 감방에 1년쯤 갇혀 지내다 보면 시력도 버리고 위장도 나빠져, 건강했던 사람조차 폐인이 되어 나간다. 가자지구 취재 때 함께 다녔던 한 팔레스타인 운전기사는 1차 인티파다(intifada, 저항·봉기, 1987-1993) 때 2년 동안 갇혀 지냈는데,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면서, 이스라엘 감옥을 ‘땅 위의 지옥’이자 ‘신이 버린 땅’이라고 표현했다. 이스라엘 점령자들에게 팔레스타인 죄수는 그저 ‘두 발 달린 짐승’일 뿐이다.](김재명, 『눈물의 땅 팔레스타인』, 미지북스, 2021년, 169쪽).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억압에 맞선 대규모 저항·봉기를 인티파다(intifada)라 부른다. 위에 옮긴 글은 팔레스타인에서 제2차 인티파다(2000~2005)가 한창이던 2001년 가자지구 현지 취재기다. 지인의 소개로 통역 겸 운전기사로 만난 30대 중반의 마흐무드는 알고 보니 ‘책가방 끈’이 짧지 않았다. 그곳 명문대학으로 꼽히는 이슬람대학 영문과 출신이다. 대학을 나와도 번듯한 직장을 갖기 어려운 게 가자지구의 ‘해묵은’ 현실이다.
마흐무드는 1988년 가을 어느날 이스라엘군에게 돌을 던졌다가 그때 막 초록색 깃발을 올린 하마스(Hamas)의 조직원으로 찍혔다고 한다(하마스는 1987년 창립). 2년 동안 감옥에서 그야말로 엄청난 고생을 했다. 자고 나면 감방에서 깨어나지 못한 사람이 시신으로 실려 나가곤 했다. 그는 감옥에서 살아남아 생지옥을 벗어난 것만 해도 다행으로 여긴다”며 ‘알함둘릴라 알라 살라미티’(내가 무사히 살아 돌아와서 신께 감사드린다)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이스라엘 감옥에서의 인권침해를 고발한 알자지라 다큐 필름 어둠 속으로(Into the Darkness) Ⓒ알자지라 화면 캡쳐
축구선수였던 17살 학생, 6개월 뒤 시신으로
2023년 10월 이후로 상황이 훨씬 더 나빠졌다. 먹거리는 질이 떨어져 동물조차 고개를 돌릴듯한 수준이고 양도 적어졌다. 고문과 학대, 수면 박탈은 일상적이 됐다. 그러다 보니 운동으로 단련된 건강했던 10대 젊은이가 감옥에 들어간 지 몇 달 만에 숨지는 일도 벌어졌다. 지난 7월 2일 알자지라 방송에서 내보낸 37분 짜리 다큐 필름 어둠 속으로(Into the Darkness) 에 그런 사연이 담겼다. 서안지구 실와드에 살던 고등학교 3학년생인 왈리드 아흐메드(Walid Ahmed, 17세)의 어이없는 죽음 얘기다.
https://www.aljazeera.com/video/fault-lines/2026/7/2/into-the-darkness
왈리드의 아버지는 아들이 어른 5명 몫의 일을 하며 나를 도와줬다”고 말할 만큼 아들은 몸이 튼튼했다고 한다. 영상 배경 화면에는 축구선수로 받은 트로피와 기념패가 보인다. 이스라엘군에게 돌을 던졌다는 혐의로 한밤중에 집에서 붙잡혀 간 아들은 딱 6개월만에 이스라엘 북부 메기도(Megido) 교도소에서 숨졌다. 영양 실조로 아들이 죽었다”는 교도소 쪽의 설명을 듣고 충격을 받은 아버지는 카메라를 향해 묻는다. 도대체 이게 정상인가요?”
아버지는 아들의 시신을 이스라엘 의사에게 넘겨 죽음의 원인을 밝혀보려 했다. 의사의 소견을 담은 검시서에는 ‘근육량이 거의 없고, 관자놀이가 푹 꺼졌고, 극심한 영양실조에 탈수 증상, 폐 손상’으로 적혀 있다. 동영상을 보면, 왈리드를 죽음으로 이끈 요인이 영양 실조 때문만은 아니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관자놀이 푹 꺼짐’과 ‘폐 손상’은 숨겨진 고문과 학대가 되풀이됐음을 말해준다.
분기별 온라인 간행물인 《중동 보고서(Middle East Report)》 를 발행하는 미국의 독립 미디어 ‘중동 연구 및 정보 프로젝트(MERIP)’가 풀려난 죄수들의 모습을 그린 대목을 보면, 건강했던 사람이 수감생활을 거치며 전혀 딴 사람처럼 바뀌었다.
[모아자즈 오바야트(37세)는 9개월간의 구금 끝에 2024년 7월에 풀려났다. 온라인에 유포된 영상에는 한때 근육질의 보디빌더였던 오바야트가 너무 허약해져서 다른 사람 도움 없이는 감옥 밖으로 걸어 나갈 수조차 없는 모습이 담겨 있다. 그의 오른팔과 다리는 마비되었거나 부러진 것처럼 보이고, 얼굴에는 굶주림의 흔적이 뚜렷했다. 그는 카메라를 향해 상황이 극도로 심각하다. 우리는 매일 죽어가고 있다 고 말했다. 오바야트가 치료를 위해 이송된 병원에서 촬영된 또 다른 영상에서 그는 이스라엘 감옥은 관타나모와 같다. 살인, 구타, 굶주림이 일상적이다. 많은 수감자들이 만성 질환, 매우 심각한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다. 그들의 상황은 극도로 열악하다. 그들에게는 오직 신(알라)만이 있을 뿐이다. 라고 말한다.]
(https://www.merip.org/2024/09/israel-is-waging-war-on-palestinian-prisoners/)
베첼렘 보고서, 이스라엘 감옥은 고문 수용소”
2023년 10월 전쟁이 터진 뒤 이스라엘 인권단체인 베첼렘(B’Tselem)은 감옥에서 풀려난 사람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성폭력을 비롯한 끔찍한 인권침해를 고발하는 보고서와 성명서들을 여러 편 냈다. 그 가운데 ▲2024년 8월, 55명의 증언을 담은 , ▲2026년 1월, 21명의 증언을 담은 을 빼놓을 수 없다. 이 두 보고서에 증언한 이들 대부분은 기소나 재판 없이 무작정 수감시설에 갇혀 있다가 풀려났다. 의 머리글을 보자.
[다양한 증언에 따르면, (이스라엘) 군인이나 교도관들이 팔레스타인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추가적인 처벌 수단으로 다양한 정도의 성폭력을 거듭 되풀이해서 저질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증인들은 알몸인 수감자들의 생식기 및 기타 신체 부위를 때린 사례, 금속 도구나 곤봉을 사용하여 생식기에 통증을 일으킨 사례, 알몸인 수감자들을 촬영한 사례, 음경을 움켜쥔 사례, 그리고 모욕과 굴욕을 주기 위해 온몸을 만지고 더듬은 사례 등을 진술했다. 또한 증언들을 통해 교도관들이나 군인들이 저지른 집단 성폭력 및 폭행 사례들도 드러났다.]
(https://www.btselem.org/sites/default/files/publications/202408_welcome_to_hell_eng.pdf)
117쪽 분량의 위 보고서엔 이스라엘 수감시설에 갇힌 사람들이 겪은 모진 고통을 생생하게 기록하면서 ‘이스라엘 감옥은 고문 수용소’라 못 박았다, 보고서에 실린 증언들은 장소만 다를 뿐 고문 방식은 닮았다. 그렇기에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수감자들에게 일정한 폭력 패턴을 보여준다”는 말을 듣는다.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이 집단 성고문 관련 증언이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볼 수 없었다”
‘하마스 조직원’이란 혐의를 쓰고 붙들린 A.H(가명)가 겪은 악몽을 보자. 20대 초반의 A.H는 일찍 결혼해 아내와 어린 아들을 둔 평범한 시민이었다. 그는 2023년 네게브 사막에 있는 크치오트(Ktzi ot) 군 수감시설에 갇혔다. 그곳 수용동 입구에는 히브리어와 아랍어로 지옥에 온 것을 환영한다 라는 표지판이 걸려 있다.
A.H는 크치오트 경비대원들로부터 당근으로 항문을 쑤시는 끔찍한 성폭행을 당했다. 그곳에 함께 있던 다른 군인들은 말리기는커녕 갖고 있던 휴대폰으로 그 모습을 촬영했다. 몸무게가 절반 가까이 줄어드는 엄청난 고생을 한 끝에 A.H는 2024년 4월 15일 풀려났다. 그 사흘 뒤 인권단체 베첼렘의 현장 연구원에게 털어놓은 눈물 어린 증언을 들어보자.
”경비원들이 우리에게 달려들었다. 뺨을 때리고, 얼굴에 침을 뱉었다. 그 가운데 한 명은 당근을 내 항문에 꽂아 넣으려 했다. 그러는 동안 몇몇은 휴대폰으로 촬영했다. 나는 고통과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질렀다. 그 짓은 약 3분 동안 이어졌다. 감방으로 돌아왔을 때 우리는 여전히 충격에 빠져 조용히 울었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볼 수 없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내게 무슨 일이 있었나?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야한 옷 입은 여군, 수감자 앞에서 춤춰
A.H의 고난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어느 날엔 한 경비대원이 감방으로 와서 펜치로 그의 고환을 꽉 움켜쥐었다. A.H는 감옥 전체가 흔들릴 정도로 비명을 질렀고, 잠시 정신을 잃었다. 누군가 그에게 물을 뿌리자 정신을 차렸다(현장 녹취를 맡았던 베첼렘 활동가에 따르면, A.H는 이런 증언을 하면서 울음을 터뜨리며 잠시 말을 잃었다). 경비원들의 성폭력은 여러 다른 형태로 되풀이됐다.
몸에 딱 달라붙는 옷을 입은 여군 네 명과 장교 한 명이 감방으로 들어와 시끄러운 음악을 틀었다. 여군은 음란하고 뻔뻔스럽게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들은 소리를 지르고 우리를 조롱했고, 곧이어 몇몇 경비대원들도 함께 춤을 췄다. 장교는 감방 문간에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며 휴대폰으로 촬영했다. 나는 너무 무서웠다. 그들이 곧 감방을 습격해 우릴 때릴 거라고 짐작했다.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몸에 꽉 끼는 야한 옷을 입고 음란한 춤을 추는 이스라엘 여군이라니...아부 그라이브 감옥에서 담배를 입에 문 채로 벌거벗은 이리크 포로의 성기를 두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기념사진’을 남긴 미 여군 린디 잉글랜드 일병의 야릇한 얼굴 표정이 떠오른다. 위 수감자 A.H도 이스라엘 감옥 상황이 관타나모나 아부그라이브보다 더 끔찍할지도 모른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너에게 일어난 일은 이스라엘의 수치야
경비대원들 대부분은 얼굴을 가리는 마스크도 쓰지 않았다. 어느 날 한 경비대원이 A.H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 얼굴을 기억해 둬. 그래야 나를 잊지 않을 거야. 하지만 그곳이 인간이길 포기한 사이코패스 경비병들로만 득실거리진 않은 듯하다. 풀려나기 하루 전에 A.H는 한 병사로부터 기억에 남을만한 얘길 들었다.
평소 우리 수감자들에게 잘 대해주고 단 한 번도 우릴 때린 적이 없던 경비병 가운데 한 명이 감방문으로 와서 내게 말했다. 너에게 일어난 일은 이스라엘의 수치야. 우리 이스라엘은 비열한 나라야.”
(https://www.btselem.org/sites/default/files/publications/202408_welcome_to_hell_eng.pdf)
수감자 A.H는 몸무게가 절반 가까이 줄었다(125kg→65kg). 풀려날 때 한 담당자는 그의 파일을 보더니 ”그 사람이 아니군 이라 말할 정도로 여위었다. 풀려난 뒤로도 A.H는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수감자들의 비명 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큰 소리만 들어도 너무 무섭고 개 공포증도 생겼다. 당근으로 성폭행을 당한 악몽도 그를 괴롭혔다. 이가 나기 시작한 아들에게 아내가 당근을 씹으라고 주자, A.H는 바로 뺏어서 던져버렸다.
2023년 10월 7일 하마스 기습 공격 뒤 이스라엘은 마구잡이로 민간인들을 붙잡아 가두었고 인권침해 논란을 불렀다 ⒸWAFA
”성고문 받은 모욕감에 정신을 잃었다
베첼렘이 풀려난 이들의 증언을 모아 2026년 1월에 펴낸 머리글을 보면, 이스라엘 감옥의 반인권적 행태가 수그러들기는커녕 더욱 심한 생지옥을 연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업데이트된 정보에 따르면, 이스라엘 감옥은 여전히 팔레스타인인들을 위한 고문 수용소 네트워크로 기능하고 있으며, 조직적인 학대는 이전보다 훨씬 더 널리 행해지고 있다. 여기에는 신체적, 정신적 학대, 비인간적인 환경, 고의적인 기아 유발, 의료 서비스 거부 등이 포함되며,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숨졌다. 감옥이 고문 수용소 네트워크로 바뀐 것은 팔레스타인 사회를 파괴하고 공동체를 해체하려는 이스라엘 정권의 조직적인 공격의 일환이다.](https://www.btselem.org/sites/default/files/publications/202601_living_hell_eng.pdf)
타메르 카르무트(41)는 가자지구 베이트 라히야 출신으로 다섯 자녀를 두었고, 2001년에 다리를 다친 장애인이다. 2023년 전쟁이 터지기 전만 해도 카말 아드완 병원 서쪽에 있던 가족 소유 건물의 작은 아파트에서 (그의 표현을 빌면) ‘소박하지만 비교적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하지만 네게브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스데 테이만(Sde Teiman) 군 수감시설에 들어가자마자 그곳 군인들부터 성고문을 당했다.
”군인들은 내 머리를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그 충격으로 왼쪽 귀에서 피가 났다. 그 뒤로 왼쪽 귀의 청력이 손상되었고, 지금도 양쪽 귀에서 이명이 들린다. 군인들은 옷을 벗기고 마당에 엎드리라고 명령했다. 그렇게 두 시간 동안 추위와 쏟아지는 빗속에 내버려 두었다. 그 시간 내내 군인들은 나를 무자비하게 구타했다. 구타가 멈췄을 때, 주변에 다른 수감자들은 아무도 없고 나 혼자라는 것을 깨달았다.
전화로 인터뷰하던 베첼렘 연구원에 따르면, 그때 증언자 카르무트는 말을 멈추었다. 그러다 전화기 너머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연구원은 5분 동안 그를 진정시키려 애썼다. 그러자 그는 군인들이 나에게 부끄러운 짓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연구원은 그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지는 증언을 들어보자.
고문을 당하는 동안, 한 병사가 나를 강간했다. 그는 나무 막대기를 내 항문에 꽂아 넣고 약 1분간 그대로 둔 다음 빼냈다. 그러고는 더 세게 다시 쑤셔 넣었고, 나는 목청껏 비명을 질렀다. 1분 뒤, 그는 막대기를 다시 빼내고 내게 입을 벌리라고 한 다음, 막대기를 입에 넣고 핥도록 강요했다. 그 모욕감이 너무나 심해서 몇 분 동안 나는 정신을 잃었다.”
카르무트는 다행히 풀려났지만 가족들과 함께 살 집이 없다. 그가 살던 작은 아파트는 공습으로 무너졌다. 그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감옥에서 겪은 구타와 성고문의 후유증이다, 극심한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항문에 심한 통증이 있다. 밖에 나가 있거나 의자에 앉아 있을 때 피가 나는 게 힘들다.
감옥에 갇힌 아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팔레스타인 어머니. ⒸMahmoud Nasser/APA
이 창녀 자식아, 여동생과 아내도 강간할 거야!
무함마드 카데르(36)는 가자지구 북부의 이즈베트 베이트 하눈 출신이다. 아내인 간호사 사이에 다섯 자녀를 둔 택시기사다. 천식이 있어서 정기적으로 약을 복용해 온 카데르도 성고문의 피해자다. 스데 테이만 군 기지의 심문요원은 펜치로 그의 오른쪽 검지 손톱과 왼쪽 중지 손톱을 뽑아냈다. 너무 고통을 느낀 그는 크게 비명을 지르며 울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그의 손에 수갑을 채워 심문실 한가운데에 쇠사슬로 매달았다. 이른바 샤바흐(shabach)로, 두 팔이 어깨 뒤로 올라간 채 묶여 있는 고통스러운 자세다.
샤바흐는 이라크 아부 그라이브 감옥에서 미군들이 저질렀던 비인도적 행위의 하나로 악명이 높다. 그렇게 샤바흐로 몇 시간을 보내면 몸에 피가 통하지 않고 근육이 마비돼 불구가 될 수도 있는 위험한 자세다. 고난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틀 뒤, 군인들은 쇠사슬를 이용해 그를 또 다시 샤바흐 자세로 묶고는 딜도(dildo, 인조 성기)로 성고문을 했다.
그들은 딜도를 가져와 엉덩이 밑에 놓고는 나를 붙잡은 채 쇠사슬을 천천히 내리기 시작했다. 딜도가 항문에 들어갈 때까지 말이다. 그것은 내가 겪어본 가장 잔혹하고 끔찍한 고문이었다. 비명을 지르며 울었다. 그들이 나를 성고문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 일이 벌어지자 나는 죽고 싶었다. 차라리 죽는 게 나았을 것이다.
끔찍한 성고문의 후유증 탓일까, 카데르에게 뇌졸중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를 도와준 유일한 사람들은 함께 고생하던 수감자들이었다. 감방 동료들은 그를 화장실에 데려가 씻겨주었다. 우연히도 그곳에서 카데르는 친동생을 만났다. 처음에는 서로 알아보지 못했다. 둘 다 모진 폭행과 고문으로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진 탓이었다. 형제는 껴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얼마 뒤 카데르는 풀려났지만 동생은 아직 감옥에 남아 있다.
이스라엘군에 붙잡히기 전까지는 건강했던 카데르였다. 감옥에서 12개월을 보내면서 몸과 마음에 커다란 상처를 입었다. 육체적 통증에 시달리고 불면증과 불안감에 휩싸여 지낸다. 특히 성고문의 끔찍한 기억이 그를 괴롭힌다. 지금은 휠체어를 타야 거동이 가능하다. 살던 집은 공습으로 무너져 바닷가 근처 학교 건물에서 어렵게 지내고 있다.
같은 수감자끼리 성고문 강요
팔레스타인 예방보안국 소속 장교였던 JM(가명)도 성폭력의 희생자다, 2024년 2월 14일 자정 무렵, 이스라엘 군인들이 그의 집에 들이닥쳤다. 이스라엘 군인들은 ”숨겨둔 무기를 내놓으라 며 매우 거칠게 행동했다. JM의 아내는 충격을 받아 기절했다. 아무런 무기가 없었는데도 JM은 크치오트 교도소로 끌려갔다. 2025년 10월 30일 풀려나기 전까지 1년 8개월 동안 그는 모욕적인 상황을 잇달아 겪었다.
그들은 나를 수색실로 끌고 가면서 ‘개자식’이라고 욕하고 고환을 포함한 여러 부위를 마구 때렸다. 수색실에 들어가자 옷을 모두 벗으라고 명령했다. 그 방에는 여군들도 있었다. 여군 한 명이 내 고환을 여러 번 만졌고, 다른 신체 부위도 더듬었다. 눈가리개를 하고 있었지만, 여군의 손길을 느꼈다. 옆에서 그녀가 말하는 소리도 들었다. 단순한 수색이 아니었다. 명백한 성희롱이었다. 여군은 내 고환과 음경을 잡고 ‘널 강간할 거야’라고 말했다. 누군가 내 고환을 꽉 쥐었고, 나는 고통스러워 비명을 질렀다. 죽고 싶을 만큼 굴욕적이었다.”
(https://www.btselem.org/sites/default/files/publications/202601_living_hell_eng.pdf)
JM은 이런 충격적인 일화를 전한다. 이스라엘 경비원들의 인권 의식이 바닥을 쳤음을 말해주는 사례다. 어느 날 JM은 감방에서 젊은 남자 수감자들을 만났다. 그들이 말해주기를, 경비병들이 감방에 들이닥쳤는데, 한 명에게는 속옷을 벗고 허리를 숙이라고 명령했다고 했다. 그리고 다른 한 명에게는 당근을 주며 감방 동료를 강간하도록 강요했다고 한다. 경비병들의 협박에 못 이겨 그는 여러 차례 ‘당근 강간’을 저질렀다고 했다. 또 다른 젊은이는 독방으로 이송되는 도중 간수들에게 성폭행 당했다고도 했다. 그 말을 들으면서 JM은 스스로에게 물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이게 어떻게 끝날까? 내가 살아남아 감옥에서 나갈 수 있을까? 이건 그저 악몽이 아닐까?
풀려난 사람들에겐 PTSD의 P가 없다
우리는 지금껏 베첼렘 보고서의 증언들을 살펴봤다. 보고서는 결론적으로, 이스라엘 감옥(민간 교도소, 군사기지)들은 ‘수감자들을 학대하는 수용소 네트워크’이자 ‘고문 수용소’나 다름없다고 거듭 비판한다. 팔레스타인 수감자들을 상대로 ‘다양한 형태의 성폭력’이 저질러졌고, 아울러 ‘의도적으로 가혹하고 끊임없는 고통을 안겼다’는 점에서다. 이스라엘은 그런 성폭력을 무기 삼아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저항의지를 꺾고 점령 체제를 굳히려는 모습이다.
증언자들이 감옥에서 겪었던 가혹한 체험들은 여전히 고통스러운 끔찍한 기억으로 남았다. 전쟁을 겪은 사람들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고통받는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 감옥에서 풀려난 이들을 포함해 가자지구 주민들에겐 PTSD의 P(post, 이후)가 없다. 베트남전쟁이 끝나고 미국으로 돌아온 뒤에 느낀 참전군인의 심리적 불안 증상과는 다른 차원의 ‘현재진행형 고통’을 겪는 중이다. 이미 2년 넘게 엄청난 군사적 공격을 겪은 데다, 휴전 약속을 어기고 공습과 살육의 만행이 이어지고 있다. 무너진 집 주변에 서성거리며 오늘 하루 굶지 않고 지내야 하는 생존의 문제도 보통 심각한 게 아니다.
가자지구를 에워싸듯 3분의 2을 점령하고 있는 이스라엘군의 압박, 공중을 낮게 날아다니며 소음을 내는 드론의 위협, 언제 날아들지 모르는 죽음의 공포...이런 위협들을 늘 가까이 대하면서 가자지구 사람들은 우리가 아는 PTSD가 아니라 ‘지속적 외상 스트레스 장애(continuous traumatic stress disorder, CTSD)로 고통을 받는다. 폭력이나 재난 같은 위험이 줄곧 이어지는 상황에서의 심리적 반응이다. 우리 인간의 뇌가 위기 상황(이 글에선 감옥)에서 벗어나더라도 쉴 틈을 주지 않고(휴전 없이) 자나 깨나 드론이 날아다니는 죽음의 현장 한가운데서, 더구나 오늘 하루 끼니 걱정을 하는 생존의 문제로 시달린다면, 누구라도 CTSD를 비껴갈 수 없을 듯하다.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정치학 박사)
가뜩이나 읽기 불편한 내용을 담은 글이 또 길어졌다. 다음 주엔 네게브 사막 한복판에 자리잡은 스데 테이만 수용소에서 벌어진 집단 성폭행을 둘러싼 여러 논란과 문제점을 살펴보려 한다. 이 엽기적인 사건은 ▲내부자 고발, ▲‘애국자들’의 석방을 외치는 극우 시위대의 난동, ▲이를 둘러싼 정치권의 공방과 이중잣대 등 으로 참으로 어지럽고 지저분하게 펼쳐졌다. 21세기 전범국가 이스라엘의 민낯을 보는 것이나 다름없다. (계속)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 kimsphot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