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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박종철 고문치사 은폐 막고, 김근태 고문 침묵한 회색인

박종철 고문치사 은폐 막고, 김근태 고문 침묵한 회색인
[사람들]
2026년 여름, 영국에서 『반헌법행위자열전』 4권을 펼쳤다. 최환(崔桓, 1943~ ) 항목의 부제가 다른 인물들과 결이 달랐다. 국보위 경력의 5·6공 대표 공안검사,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진상 은폐 막아 민주화에 기여.” 부정적 평가만 가득한 다른 인물들과 달리, 긍정적 평가가 제목에 들어가 있다. 1987년 박종철 부검을 고수해 화장 요구를 물리친 것은 분명한 공로다. 그런데 같은 사람이 1985년 김근태(1947~2011) 고문사건에서는, 고문 흔적인 상처딱지를 두고 잘 보존하라 고만 지시했을 뿐 진상규명에는 나서지 않았다. 한 사람의 손에서 한 번은 진실이 지켜졌고, 한 번은 침묵이 선택됐다.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1943년 경북 구미 출생, 특수통 에서 공안통 으로 최환은 1943년 4월 20일 경북 구미에서 태어났다. 본적 충북 영동.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1966년 제6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70년대 부산지검과 서울지검에서 굵직한 경제사건을 다루는 특수통 검사로 명성을 쌓았다. 그런데 1980년 5월, 그의 인생을 바꾼 발령이 났다. 5·17내란 직후 신군부가 설치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 내무분과위원으로 파견된 것이다. 이후 그는 특수통 에서 공안통 으로 완전히 변신했다.    최환(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세계사 속의 동류, 선택적 양심 의 회색지대 영국에서 이 장면을 들여다보면 비슷한 유형이 떠오른다. 나치 독일에서 일부 관료들은 특정 사안에서는 인도적 판단을 내리면서도 체제 전체에는 충실히 협력했다. 역사학자들은 이를 선택적 저항 이라 부르며, 이것이 완전한 부역도, 완전한 저항도 아닌 회색지대를 만든다고 분석한다. 최환이 정확히 이 회색지대에 있다. 박종철 부검을 고수한 용기와, 김근태 사건에서 보인 침묵이 한 사람에게 공존한다.   최환(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1980년 국보위·삼청교육, 육법당 은 낮은 곳에도 있었다 최환의 반헌법 행위 첫 정점은 국보위 시절이다. 그는 5·17내란을 정당화하는 국가보위입법회의 정치관계법 특별위원회 전문위원으로도 활동하며 야당 정치인들을 묶는 정치관계법 개악에 참여했다. 또한 전주지검 부장검사 시절 삼청교육 심사에 직접 참여했다는 증언도 있다. 피해자 정정웅은 보호실에 끌려가 최환 검사가 본인에게 아픈 데가 있느냐? 하여 없다고 하니 저리 가라 고 했다고 증언했다. 6만여 명이 검거돼 3만 9742명이 삼청교육대로 보내진 그 구조 안에서, 검사들은 합법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했다. 책은 이를 육법당(육사+서울법대)은 높은 곳에서만이 아니라 낮은 데서도 구체적으로 있었다 고 평가한다.   80년 제5공화국 정권 창출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회정화라는 미명아래 삼청교육대 입소생들이 봉 체조를 받고 있다. 1988.10.5. 연합뉴스 DB 1985년 서울미문화원 사건, 국가보안법 적용의 길을 열다 서울지검 공안부장 최환은 1985년 서울미문화원 점거농성 사건에서 함운경(국민의힘 정치인), 김민석(전 국무총리) 등에게 징역 10년, 7년 등 중형을 구형했다. 피고인의 입에서 광주항쟁 관련 발언이 나오면 최환과 검사들이 흥분한 목소리로 재판부에 발언 중지를 요청 했다. 함운경은 훗날 이렇게 회고했다. 국보법 적용에 길을 연 사람이 최환이었다. 그 밑의 막내가 황교안이다. 강령도 없는 조직을 자의적으로 이적단체 로 규정한 이 사건이, 이후 국가보안법 무차별 적용의 전례가 됐다.   대학생들이 미국문화원 점거농성을 벌이고 있다. 1985.5.24. 연합뉴스 DB 1985년 김근태 고문사건, 알아서 하라 는 침묵 최환의 반헌법 행위 가운데 가장 무거운 것은 1985년 김근태 고문사건 은폐 가담이다. 김근태가 남영동에서 전기고문을 당한 발뒤꿈치 상처딱지를 변호인에게 전달하려다 교도관에게 빼앗겼을 때, 구치소 부소장이 최환에게 어떻게 처리할지 물었다. 최환의 대답은 알아서 하라 였다. 2018년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는 명확히 결론 내렸다. 사건을 송치받은 검사가 고문사실 여부에 대한 진위확인을 하지 않은 것은 공익의 대표자로서 사법적 통제라는 검사의 직무를 유기한 것 이라고. 최환이 지휘하는 서울지검 공안부는 김근태의 변호인 접견을 방해하고, 가족면회를 금지했으며, 고문당한 사실을 기록한 탄원서를 수사기록에서 누락시켰다. 안기부가 작성한 보고서를 표지만 갈아 그대로 베껴 유관기관에 배포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최환은 자신이 남영동 대책회의에 참석한 사실 자체를 부인했다. 1999년 고문기술자 이근안이 체포되고 나서야 박처원과 교도관들의 진술로 사실이 드러났다.   ‘민주화의 대부’로 통하는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30일 64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사진은 지난 1988년 6월 김천교도소 옥문을 나와 부인 인재근씨를 끌어안고 손 흔들어 인사하는 모습. 2011.12.30. 연합뉴스 DB 1987년 박종철 사건, 부검을 고수하다 그런데 같은 사람이 1987년 1월, 박종철(1965~1987) 고문치사 사건에서는 다른 선택을 했다. 시신을 화장하자는 경찰의 요구를 물리치고 부검을 고수해 사망 원인의 은폐 조작을 막았다. 이것이 책이 민주화에 크게 기여했다 고 평가하는 단 하나의 장면이다.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시위. 2000.7.14. 연합뉴스 DB 1996년, 전두환·노태우를 구속 기소하다 서울지검장이던 최환은 1996년 12·12군사반란 및 5·18내란 사건 재수사에서 전두환(1931~2021)과 노태우(1932~2021)를 구속기소했다. 검찰의 입장을 처벌불가 에서 구속수사 로 변경시킨 핵심 인물이었다. 그러나 검찰총장 후보 물망에 올랐다가 TK 후배 박순용(1945~2026)에게 밀려 1999년 검찰을 떠났다. 언론은 당시 용퇴 라고 미화했다.   최환 서울지검장이 ‘12.12 및 5.18 사건 특별수사부’를 설치한다고 발표하고 있다. 1995.12.10. 연합뉴스 영국에서 2026년을 생각한다 영국에서 선택적 저항 을 한 인물들에 대한 평가는 명확하다. 한 번의 옳은 선택이 다른 사건에서의 책임을 상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최환이 박종철 사건에서 보인 용기는 평가받아야 마땅하지만, 그것이 김근태 사건의 침묵과 서울미문화원 사건의 국가보안법 남용을 지워주지는 않는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1960~ )의 비상계엄 선포를 영국에서 생중계로 보며 나는 최환을 떠올렸다. 한 사람 안에서 진실을 지키는 용기와 진실을 외면하는 침묵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 그 복잡함을 단순화하지 않고 정직하게 마주하는 것이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현재 윤석열의 그날 밤  서강대교를 넘지 말라 고 해 내란을 막는 데 일조했다고 칭송을 듣던 대령이 2차종합특검의 수사를 받고 있다.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그리고 그 법정의 방청석에는 우리가 앉아 있다. 참고문헌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 2026, 『반헌법행위자열전 1~4』, 사회평론아카데미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김성수 시민기자 wadans@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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