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 탄소포집, EU ETS 차감 요건 충족…배출권 비용 절감 길 열려 [환경] 선박에서 포집한 CO₂를 건설 소재에 영구 고정하면 검증된 물량만큼 EU ETS 대상 배출량에서 차감할 수 있다. / 출처 = Unsplash
선박에서 포집한 탄소로 유럽연합(EU) 배출권 구매 비용을 줄일 수 있게 됐다.
싱가포르 해양탈탄소화센터(GCMD)는 22일(현지시각) 선박 탄소포집·저장(OCCS) 실증사업인 Project CAPTURED 가 EU 배출권거래제(ETS)의 배출량 차감 요건을 충족했다고 밝혔다.
GCMD는 싱가포르 해양항만청 주도로 설립된 비영리 기관이다. 해운 탈탄소 기술을 직접 실증하고, 그 결과를 국제해사기구(IMO)의 국제기준 논의에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포집한 CO₂, 건설 소재에 굳혀야 배출량 차감
이번 실증에 적용된 기준은 EU 위임규정 2024/2620의 ‘영구적 화학 결합’ 요건이다. EU가 OCCS를 별도로 승인하거나 새 규정을 만든 것은 아니다.
EU는 포집한 이산화탄소(CO₂)가 제품에 수백 년 이상 고정돼 대기로 다시 나오지 않아야 배출량 차감을 인정한다. 대상은 탄산염 골재와 시멘트 구성물, 콘크리트, 벽돌, 타일 등 건설 소재로 제한된다.
종이나 플라스틱처럼 폐기 과정에서 소각될 수 있는 제품은 제외된다. 제품에 넣은 탄소가 소각 과정에서 다시 배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Project CAPTURED는 탄산광물화 방식으로 이 요건을 맞췄다. 탄산광물화는 CO₂를 철강 생산 과정에서 나오는 돌·모래 형태의 부산물인 슬래그와 반응시켜 고체로 굳히는 기술이다.
슬래그에 들어 있는 칼슘과 마그네슘이 CO₂와 결합하면 탄산칼슘 같은 고체 탄산염이 만들어진다. 기체 상태의 CO₂를 돌과 비슷한 형태로 바꿔 골재와 콘크리트 등 건설 소재에 활용하는 방식이다.
실증에는 대만 해운사 에버그린이 운항하는 1만8000TEU급 컨테이너선이 투입됐다. 선박에서 포집한 CO₂는 다른 선박과 육상 운송수단을 거쳐 중국의 철강 슬래그 처리시설로 옮겨졌고, 현장에서 탄산칼슘 형태로 고정됐다.
선박 간 이송과 육상 운송 과정에서도 CO₂ 순도는 99.95% 이상을 유지했다. DNV가 검증한 생애주기평가 결과, OCCS의 포집률은 10.7%였다. 운송과 처리 과정에서 발생한 배출량까지 반영한 순 온실가스 감축률은 7.9%로 나타났다.
포집한 CO₂를 건설 소재로 만들었다고 배출량이 자동으로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포집량과 제품에 실제로 고정된 양을 측정하고, 검증을 거쳐 연간 배출량 보고서에 반영해야 한다.
검증된 영구 고정량은 선박의 EU ETS 대상 배출량에서 빠진다. 선사는 차감 후 배출량을 기준으로 배출권을 제출한다.
IMO도 탄산광물화 원칙적 지지…국제기준 반영은 남아
EU에서 배출량 차감 요건을 충족한 데 이어 국제해사기구(IMO)에서도 탄산광물화를 영구 저장 방식으로 인정하려는 논의가 한 단계 진전됐다.
GCMD는 지난 4월 열린 제84차 해양환경보호위원회(MEPC 84)에 선박에서 포집한 이산화탄소(CO₂)를 고체 탄산염으로 바꾸는 탄산광물화를 영구 저장 방식으로 인정해달라고 제안했다. GCMD는 22일 IMO가 이 제안에 원칙적으로 지지 의사를 밝혔다고 공개했다.
그동안 선박에서 포집한 CO₂는 해저 지층에 주입하는 지중 저장 방식이 주로 거론됐다. 탄산광물화가 국제기준에 포함되면 CO₂를 육상으로 옮겨 철강 생산 부산물인 슬래그와 반응시킨 뒤 건설 소재로 활용할 수 있다.
해저 저장시설이 없는 지역에서도 슬래그 처리시설이나 건설 소재 생산시설을 활용해 포집한 CO₂를 처리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다만 IMO가 탄산광물화를 공식 저장 방식으로 채택한 것은 아니다. MEPC 84에서는 OCCS 설비의 시험과 검사, 인증, 승인 기준을 논의했으며, 탄산광물화를 국제기준에 반영하려면 추가 심의를 거쳐야 한다.
향후 국제기준에는 선박의 포집 성능뿐 아니라 CO₂의 운송 경로와 최종 저장 방식, 실제 고정량을 확인하는 절차도 함께 담길 가능성이 있다.
국내 조선·해운업계도 해상 실증…국제기준 대응 나서
IMO가 OCCS 국제기준 마련에 나서면서 국내 조선·해운업계도 기술 실증과 기준 대응을 서두르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HMM, 파나시아, 한국선급과 함께 시간당 1톤, 하루 최대 24톤의 이산화탄소(CO₂)를 포집·액화·저장할 수 있는 OCCS를 개발했다. 2024년 7월 2200TEU급 컨테이너선 HMM 몽글라 호에 설비를 설치하고 해상 실증에 들어갔다.
한화오션도 선박 운항 중 발생하는 CO₂를 직접 포집하는 소형 OCCS를 개발하고 있다. 포집 설비를 가동할 때 추가로 발생하는 CO₂를 전체 포집량의 1~2% 미만으로 낮추는 데 초점을 맞췄다.
정부도 국제기준 대응에 들어갔다. 해양수산부는 지난 4월 부산에서 OCCS 국제기준 개발 협의체 를 출범시켰다. HMM과 삼성중공업, 한화오션, HD한국조선해양, 파나시아 등이 참여했다.
협의체는 국내 기업이 개발한 OCCS 기술과 안전기준을 IMO 논의에 반영하고, CO₂ 포집과 액화·저장, 선박 간 이송, 육상 운송 전 과정의 국제기준 마련에 대응할 예정이다.
Lynn Loo(린 루) GCMD 최고경영자(CEO)는 EU ETS 차감 인정으로 포집된 CO₂가 규제 준수 가치를 갖게 됐다 며 IMO의 탄산광물화 원칙적 지지는 선박을 떠난 CO₂를 어떻게 처리할지 방향을 명확히 하는 데 기여할 것 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