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진 아이들 의 기록, 끝나지 않은 고통 [사람들] 이득신 작가의 신간 『그곳에 아이는 없었다』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어두운 이면에서 아동들에게 자행된 국가폭력과 인권 유린의 실상을 고발한다. 고아수용시설이라는 격리된 공간 속에서 ‘보호’라는 허울 아래 존재 자체가 지워진 아이들의 이야기를 심층 인터뷰로 복원해 낸 기록이다.
민들레에 연재 중인 글들을 보완해 묶어낸 이 책의 부제인 ‘사라진 기록, 조작된 풍경’은 존재하면서 존재하지 않았던 아이들의 실상이자 우리 사회에 대해 던지는 날카로운 질문이다. 1960~90년대, 부모가 버젓이 존재함에도 왜 아이들은 ‘고아’가 되어야만 했을까? 왜 국가가 최우선으로 보호해야 할 아동들이 오히려 폭력과 착취의 대상이 되었어야 했을까? 그리고 왜 그 시설 안에서 벌어진 참혹한 일들은 수십 년 동안 세상 밖으로 터져 나오지 못하고 은폐되었을까? 저자는 이 질문들의 실체에 다가가기 위해 흩어져 있던 피해자들의 기억을 한 자 한 자 모아 시대의 기록으로 직조해 냈다.
책이 파헤치는 아동복지의 이면은 추악하기 짝이 없다. 고아원과 아동보호시설의 운영은 겉보기에는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복지’의 탈을 쓰고 있었으나, 실상은 철저한 ‘사업’이자 이권 다툼이었다. 그 카르텔의 고리 속에서 아이들은 보호와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철저히 ‘거래’와 착취의 대상이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유독 해외입양이 성행했던 이유 역시 이같은 현실에서 적잖게 비롯됐다. 1985년 아시안게임을 앞둔 시점,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깨끗한 도시 미관을 보여줘야 한다는 명목 아래 부랑아 단속이 전방위적으로 상시화되었다. 당시 입양기관과 아동보호시설은 돈벌이에 혈안이 되어 해외입양에 팔을 걷어붙였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아이들이 국외로 송출되었다. 이 시기 해외입양 아동 수는 1만 명에 육박할 정도로 치솟았다.
상당수는 ‘만들어진 고아’였다는 사실이 특히 충격적이다. 일선 경찰과 공무원들은 치적과 단속 실적을 채우기 위해 연고가 확실히 있는 아이들의 서류까지 교묘하게 조작해 부랑아로 둔갑시켰다. 당시의 인사 고과 제도가 그같은 인권 유린을 부추겼다. 일반적인 범죄인 도둑을 잡으면 고과 점수가 1점에 불과했던 반면, 노숙인이나 부랑아를 단속해 넘기면 2~3점의 고과를 얻을 수 있었다는 기록은 국가폭력이 단순한 실수가 아닌, 거대한 ‘시스템’이자 ‘제도’였음을 명백히 증명한다.
아이들을 넘겨받은 시설은 불법 감금 상태에서 노동력을 착취했고, 정부가 지급하는 지원금과 후원금을 착복했다.
책은 선감학원 등 대표적인 수용시설 내부의 풍경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관리자들은 대부분 공무원들이거나 원장 등 고위직의 친인척들이었다. 시설이 고립된 섬이나 지역 사회와 결탁해 거대한 통제망을 형성했다. 주변 20~30가구의 섬마을 주민들까지 선감학원 직원들과 한통로가 되어, 악몽 같은 시설을 탈출하려는 아이들을 발견하면 다시 붙잡아 시설로 돌려보냈다. 아이들에게 섬은 거대한 감옥이었고, 섬의 어른들 전체가 방조자이자 공모자였다.
견디기 힘든 중노동과 만성적인 배고픔, 탈진이 겹치면서 아이들은 극한의 상황으로 내몰렸다. 책에 등장하는 한 피해자의 증언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중노동과 배고픔과 탈진이 겹치면서 눈앞이 흐려지던 어느 날, 죽고 싶은 마음에 흙이며 나뭇가지 등을 마구 움켜쥐어 입에 넣었어요. 결국 병원으로 실려 갔습니다. 죽으려던 시도는 실패로 끝났고, 대신 배에는 또 다른 수술 자국이 흉측하게 남았습니다.
이토록 모진 고통을 뚫고 기적적으로 시설을 걸어 나왔다 하더라도, 그들에게 사회는 또 다른 감옥이었다. 오랜 시설 생활로 인해 사회성에 치명상을 입은 이들 중 상당수는 일정한 직장을 구하지 못한 채 쪽방촌을 전전하다 노숙인이 되었다. 오랜 빈곤과 고립감에 지쳐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경우도 적지 않았고, 연락이 끊긴 채 홀로 세상을 떠나 뒤늦게 고독사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배고픔이라는 물리적 고통은 끝났을지언정, 그들이 겪어야 했던 삶의 추위와 고립은 영원히 끝나지 않은 현재진행형이었다.
고아들의 핏값과 노동력으로 재산을 축적한 운영자들이 세운 은화복지재단 같은 시설들이 오늘날에도 이름과 형태만 바꾼 채 여전히 ‘복지’라는 이름으로 건재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은 이 책이 고발하는 것이 참혹했던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말해준다. 원장과 후원자들의 이름은 화려한 연혁 속에 대를 이어 남았지만, 정작 그곳에 살았던 아이들의 목소리는 철저히 지워졌다. 복지가 시설의 존립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는 동안, 아이들은 주체가 아닌 객체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이 책의 저자 이득신 작가는 시민기자로서 대리기사들의 고단한 삶을 연재해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2025)을 펴낸 바 있는 실천적 기록자다. 2019년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그는, 개인적으로는 생후 80일 된 아이를 입양해 대학생으로 키워낸 아버지이기도 하다. 입양한 아들의 삶을 깊이 성찰하던 그는, 아동복지 시설 피해자들의 삶에 눈을 돌리게 되었고 수많은 이들을 만나 그들의 숨겨진 목소리를 채록했고, 그들을 객체가 아닌 주체로 세우고자 했다.
고아원과 아동보호시설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이들, 평생 자신의 과거를 주위의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숨겨야만 했던 사람들, 가족에게조차 시설에서의 상처를 침묵으로 덮어두어야 했던 이들,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악몽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들을 저자는 만났다. 그 과정에서 저자는 세 번 울었다고 고백한다.
인터뷰를 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그들의 이야기를 정리해 기사로 쓰면서 또 한 번 울었고, 다시 책으로 엮는 과정에서 울었다.
한 사람의 조심스러운 고백이 또 다른 이의 잊힌 기억을 불러일으켰고, 한 시설의 증언이 다른 시설 생존자들의 울부짖음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흩어져 떠돌던 파편 같은 기억들이 하나 둘 모여 비로소 한 시대의 진실한 기록이 되었다. 이 책은 단순히 과거의 추악한 상처를 헤집기 위해 쓰인 것이 아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처럼 반인륜적인 일이 국가의 방관 아래 가능했는지를 묻고 또 묻기 위해 쓰였다. 무엇보다, 긴 세월 침묵을 강요당했던 살아남은 사람들이 이제라도 온전한 자신의 이름으로, 자신의 역사를 직접 말할 수 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이 담겨 있다.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 소장은 추천사에서 이 책의 사회적 의미를 다음과 같이 짚어낸다.
단지 과거의 고아들을 불쌍히 여기는 일이 아니다.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오늘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고 있는지 돌아보는 일이다.
저자는 이 책이 거대한 진실의 완결된 최종 기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오랫동안 땅속에 묻혀 있던 기억의 조각들을 세상 밖으로 당당히 꺼내놓는 ‘작은 시작’이라고 말한다. 용기를 내어 자신의 가장 아픈 삶을 내어준 모든 인터뷰이들에게 감사를 바치는 저자의 말은 독자들에게 건네는 요청이기도 하다.
당신들이 들려준 이야기는 더 이상 당신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제 그것은 우리가 함께 기억해야 할 역사가 되었다.
피해자들은 오늘날 국가와 사회를 향해 엄중한 책임을 묻고 있다. 긴 시간 동안 외면당하고 방치되었던 이들의 아픔을 진정으로 위로하기 위해서는, 형식적 사과를 넘어선 국가 차원의 진상 규명과 치유, 그리고 명예 회복 조치가 무엇보다 절실하다.
또한 이들은 이제는 공급자 중심의 ‘시설 지원’ 정책에서 벗어나 근본적인 ‘원가정 보호’에 주력해야 하며, 시설 중심의 보호 체계를 끝내고 조속히 ‘탈시설’ 정책과 자립 지원 안전망을 전면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이 피해자들의 외침에 국가와 사회가 이제는 명확하게 응답해야 할 때다.
책의 제목인 『그곳에 아이는 없었다』는 단순히 보호시설 내부에 정작 돌봄을 받아야 할 아이가 없었다는 물리적 사실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말은 곧, 우리 사회가 그 아이들을 인간으로 대접하지 않았고, 더 나아가 이 사회의 정당한 구성원으로 품어주지 않아 이 사회 전체에 아이들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들을 지워버렸다는 뼈아픈 역설을 담고 있다. 그들의 존재를 지워버린 차가운 사회가 이제라도 그들을 인간으로서 되살려야 하며, 늦었지만 그들의 정당한 자리를 마련해줘야 한다는 준엄한 과제를 이 책은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이명재 에디터 promes65@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