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은 정말로 길을 잃은 것일까?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노무현재단 이사장 시설 유시민 작가가 서울 마포구 연세대학교 김대중 도서관에서 열린 김대중 전집 30권 출판기념회 에 참석해 자리하고 있다. 2019.8.13. 연합뉴스 자료사진
당정 협력이 곧 대통령의 당 장악?
민주당은 지금 어디로 가는가?” 집권 여당을 향해 던질 수 있는 당연한 질문이다. 권력을 가진 정당일수록 더 엄격한 감시를 받아야 하고, 대통령과 여당의 관계가 적절한지, 당내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국민의 목소리가 국정에 반영되고 있는지 끊임없이 점검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유시민 작가의 문제 제기에서 한 가지는 분명히 해야 한다. 비판을 경청하는 것과 그 비판의 결론까지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지난달 30일 박철 시민기자의 글 민주당, 정체성과 진로 잃고 있는 것 아닌가 는 유시민의 발언을 근거로 이재명 대통령과 민주당의 현재를 ‘절대권력’, ‘사당화’, ‘하부 집행조직’, ‘민주주의 사망 단계’, 심지어 ‘정치적 신교 집단’이라고까지 규정한다. 정말 그렇게까지 말할 만한 구체적인 근거가 있는지 묻고 싶다. 당정 협력이 곧 대통령의 당 장악이라는 말인가?
집권 여당과 대통령이 긴밀하게 움직이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대통령은 행정부를 이끌고, 여당은 국회에서 정부의 국정과제를 뒷받침한다. 정부가 추진하는 법안을 여당이 입법 과정에서 지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정치 과정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대통령이 당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하거나 의원들의 자율적인 판단을 억압한다면 당연히 비판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 사실을 입증하지 않은 채 당정 협력 자체를 ‘하부 집행조직’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다. ‘대통령과 여당이 가깝다’는 것과 ‘대통령이 여당을 지배한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정치적 영향력이 존재한다는 것과 모든 의사결정을 대통령이 좌우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정치적 의혹과 정치적 사실은 구분해야 한다.
‘명픽’이라는 표현이 정치권에서 회자된다는 사실만으로 대통령을 ‘절대권력자’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어떤 의사결정이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이뤄졌는지, 누가 어떤 압력을 받았는지, 당의 공식적인 의사결정 절차가 어떻게 무력화됐는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정치적 의혹과 정치적 사실은 구분해야 한다.
박철 시민기자의 글에서 가장 강한 표현은 ‘사당화’인데 민주당이 대통령 개인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사당이 됐다는 말인가? 사당화는 단순히 대통령의 당내 영향력이 강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정당의 제도와 의사결정 구조가 특정 개인에게 종속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묻고 싶다. 어떤 제도가 무너졌는가? 어떤 절차가 무력화됐는가? 어떤 의원의 반대 의견이 어떤 방식으로 봉쇄됐는가? 당원들의 의사표현이 어떻게 제한됐는가? 이런 물음에 대한 구체적인 사실이 제시돼야 ‘사당화’라는 결론이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구체적 사실을 제시하지 못하면서 ‘사당화’라고 부른다면 그것은 프레임에 가깝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주자인 이재명 전 대표가 유시민 작가, 도올 김용옥 선생과 새 정부의 과제 등을 주제로 대담한 영상이 15일 사람사는 세상 노무현 재단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됐다. 2025.4.15 [ 사람사는 세상 노무현 재단 유튜브 화면 캡처,
비판의 자유가 있다면 반론의 자유도 있어야 한다.
정당의 민주주의가 충분한지 따져보는 것과 민주주의가 이미 죽었다고 선언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그런데 박 시민기자의 칼럼은 민주당 내부에서 유시민의 발언에 반발하는 목소리를 두고 ‘자정 능력을 완전히 상실한 집단’의 모습이라고 규정하는데 그 의견에 동의하기가 어렵다. 유시민의 발언에 반대할 자유 역시 민주주의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유시민이 비판했다고 해서 민주당 구성원들이 반드시 그 비판에 동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유시민의 주장에 반론을 제기하고, 다른 해석을 내놓고, 이재명 정부의 국정운영을 옹호하는 것 역시 정치적 표현의 자유이기 때문이다. 물론 비판자를 ‘내부 총질’로 몰아세우거나 인신공격하는 행태는 경계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유시민을 비판하는 모든 사람을 권력에 맹종하는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 역시 경계해야 한다.
박 시민기자는 민주당 내부의 비판자를 ‘수박’이나 ‘배신자’라고 낙인 찍는 행태를 강하게 비판한다. 그 문제의식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정치적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를 배신자로 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은 것처럼 민주당을 ‘정치적 신교 집단’이라고 낙인 찍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상대방에게 낙인을 찍는 정치가 잘못이라면, 그 원칙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돼야 한다.
유시민 작가의 발언이 갖는 정치적 무게를 무시할 수는 없다. 오랜 기간 진보·개혁 진영에서 중요한 목소리를 냈고, 많은 시민들에게 영향을 미쳐 온 인물인 만큼 그의 비판은 충분히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그의 주장도 검증받아야 한다. 유명한 사람이 말했다고 해서 사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도 비판받아야 하고, 민주당도 비판받아야 한다. 동시에 유시민의 주장도 비판받아야 한다. 유시민을 비판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권력의 하수인이 되는 것도 아니고, 유시민을 지지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민주주의의 수호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누가 말했는지가 아니라 무슨 근거로 말했는가를 봐야 한다.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당 대표 경선에 나선 김민석 전 총리, 정청래 전 당 대표, 송영길 전 당 대표가 지난 달 30일 첫 TV 토론회를 앞두고 손을 맞잡고 있다. 2026.7.30 연합뉴스
민주주의를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상대를 악마화하지 않는 것
박 시민기자는 민주당이 김대중과 노무현이 남긴 ‘포용의 유산’을 버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김대중과 노무현의 민주주의 정신과 정치적 유산은 우리 사회에서 충분히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 하지만 그들의 이름을 현재의 정치적 논쟁에서 특정 세력을 공격하는 무기로 사용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김대중 정부에도 갈등이 있었고, 노무현 정부에도 격렬한 정치적 충돌이 있었다. 당내 이견도 있었고 정책을 둘러싼 논쟁도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시기의 민주주의를 ‘사망 단계’라고 규정하지는 않는다. 민주주의는 갈등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서로 다른 의견이 충돌하고, 토론하고, 타협하고, 때로는 표결을 통해 결론을 내리는 과정 자체가 민주주의다.
민주당이 김대중과 노무현의 정신을 계승하려면 과거의 이름을 반복해서 소환하기보다 현재 국민의 삶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답해야 한다. 정치의 성적표는 권력관계만으로 매겨지지 않는다. 박 시민기자 칼럼의 또 다른 아쉬움은 정치의 모든 문제를 ‘권력 집중’이라는 하나의 프레임으로 설명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국민의 삶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노동자에게 정치는 임금과 노동시간이고, 청년에게 정치는 일자리와 주거, 자영업자에게 정치는 매출과 임대료와 생존의 문제이며, 노인에게 정치는 연금과 돌봄의 문제이고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게 정치는 교육과 보육의 문제다. 국민은 대통령과 여당 사이에 누가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는지만 바라보며 살아가지 않는다. 내 삶이 좋아지고 있는지, 내 가족의 삶이 나아지고 있는지 미래를 기대할 수 있는지가 정치에 대한 가장 현실적인 평가 기준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민주당을 평가할 때도 물어야 한다. 노동자의 삶은 개선되고 있는지. 산업재해를 줄이고 안전한 일터를 만드는 데 성과를 내고 있는지, 취약 노동자를 제대로 보호하고 있는지, 청년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지, 주거 불안을 줄이고 있는지, 저출생과 고령화라는 국가적 위기에 실질적인 해법을 제시하고 있는지에 대한 답이 정부와 여당의 진짜 성적표다.
민주당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국민이다.
민주당에 필요한 것은 ‘몰락 선언’이 아니라 쇄신이다. 대통령과 당 사이에 건강한 긴장 관계를 위해서는 당내에서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정책에 대한 반론을 억압해서도 안 되고 국민과 당원의 목소리를 더 많이 들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당의 의사결정 구조도 고쳐야 한다.
민주당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특정 칼럼의 선언도, 특정 정치인의 평가도 아니다. 결국 국민이다. 비판은 권력을 무너뜨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세우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것은 아닌지 감시해야 하고, 당이 대통령의 거수기로 전락하지 않도록 견제해야 한다.
‘절대권력’이라고 말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어떤 권한이 어떻게 집중됐는지 보여줘야 하고 ‘사당화’라고 규정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어떤 제도가 어떻게 무너졌는지 밝혀야 하며 ‘민주주의 사망’이라고 선언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어떤 민주적 절차가 사라졌는지 증명해야 한다.
민주당이 정말 길을 잃었는지는 아직 아무도 단정할 수 없다. 정부와 여당이 앞으로 무엇을 하는지, 국민의 삶을 얼마나 개선하는지, 비판을 얼마나 수용하는지에 따라 국민이 판단할 문제다. 잘하면 평가받고 잘못하면 심판받는다. 그것이 민주주의다. 그 누구도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비판의 성역을 만들 수는 없다. 민주주의는 권력자에게만 엄격한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말하는 모두에게 같은 잣대를 요구해야 한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최소한의 원칙이다.정숙 시민기자 suk75050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