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신 인질로 잡고 냉동…고문 증거 지운 ‘죽음의 정치’ [뉴스] 2024년 3월 국제적십자사를 거쳐 송환된 팔레스타인인 시신들. 푸른색 플라스틱 봉투에 일련번호만 매겨져 있고 시신의 이름이 없기에 유족들의 아픔을 더 했다. ⒸAFP
아들을 (이스라엘군) 병영 근처에서 발견했어요. 배에 총을 맞았더군요. 그렇게 세상을 떠난 아들을 데리고 갈 수가 없었어요. 이스라엘군 탱크들이 바로 앞에 있었거든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아들의 죽음뿐 아니라 그를 두고 떠나야 했던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담겨 있었다. 그녀는 흐느끼며 말했다. 사랑하는 내 아들아, 널 길거리에 홀로 남겨두고 떠나야만 했어.”
(https://www.instagram.com/reel/DHjDd8zqAKl/)
위에 옮긴 글은 2025년 4월, 가자지구 남부 도시 라파에서 이스라엘군에게 강제로 쫓겨난 수만 명의 팔레스타인 주민들 가운데 한 어머니의 가슴 아픈 이야기다. 총검을 앞세운 이스라엘군의 살벌한 분위기에 눌려 아들의 주검을 거두지 못하고 서둘러 떠나야 했던 어머니의 회한 섞인 절규는 사회관계망(인스타그램)을 타고 널리 퍼졌고, 비슷한 상황을 겪은 이들을 포함해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렸다.
2023년 10월 7일 전쟁이 터진 뒤 수십만 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냈다(2026년 9월 26일 현재 사망자 7만 4016명). 문제는 적지 않은 이들이 생전의 고인을 기억하고 애도하는 절차를 거쳐 정중하게 장례를 치를 기회마저 빼앗겼다는 점이다. 유엔에서도 지적했듯이 집단학살(genocide)이라는 끔찍한 전쟁범죄의 희생자가 된 것도 가슴 칠 일인데, 숨진 사람을 무덤에 제대로 묻기조차 힘들어진 것이 오늘의 가자지구 상황이다.
왜 죽은 이의 마지막 길을 막는가
이스라엘은 오래 전부터 팔레스타인인 시신을 잡아두고 매장 및 장례를 막아서는 정책을 펴왔다. 이와 관련해 이스라엘 군인들로부터 ‘순교자’(희생자) 시신을 지키려 했던 일화들은 한둘이 아니다. 관련된 사례 하나. 1988년 7월, 이스라엘군은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던 니달 푸아드 라바디(Nidal Fouad Rabadi, 당시 17세)를 총으로 쏴 죽였다. 학생인 라바디가 무장을 했거나 이스라엘군에게 위협적인 행동을 한 것도 아니었다. 라바디는 제1차 인티파다(intifada, 저항 봉기, 1987-1993) 기간 동안 예루살렘에서 피살된 최초의 팔레스타인인이다.
이스라엘 군인들은 라바디가 사망 선고를 받은 병원을 포위하고 유족들로부터 시신을 탈취해 가져가려 했다. 그러나 라바디의 친구들이 재빨리 움직여 시신을 먼저 빼냈다. 이스라엘군의 봉쇄선과 순찰대를 피해 여러 집들을 거쳐, 집 지붕들을 넘어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던 모스크(이슬람사원) 안으로 시신을 데려왔다.
다음날 수천 명의 사람들이 행진을 하는 가운데 대규모 장례식이 치러졌다. 반이스라엘 구호가 넘쳐났다. 여기서 이스라엘군이 라바디의 시신을 탈취하려 했던 이유가 드러난다. 장례식이 반이스라엘 저항의지를 다지는 정치적 공간으로 거듭나는 상황을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지난날 제국주의 시절에 강대국들은 피지배자들의 시신을 압류해 모독·조롱하는 야만을 저질렀다. 알제리를 식민지로 다스리던 프랑스의 경우를 보자. 1838년에서 1865년 사이에 프랑스 지배자들은 알제리 저항군 병사들의 목을 베어 두개골을 전리품으로 보관했다. 알제리의 전설적 저항군 지도자 셰이크 부지안(Sheikh Bouzian)도 1849년 총살당한 뒤 참수돼 (몸통은 버려지고) 두개골만이 보관 전시되는 모욕을 겪었다,
위의 야만적 사례로 미루어, 프랑스인들이 자주 입에 올리는 1789년 프랑스 혁명정신(자유, 평등, 박애)는 백인인 프랑스인들에게만 선택적으로 적용되는 가치라는 비판을 받을 만하다. 파리 박물관에 있던 24명의 두개골이 조국으로 돌아간 때는 알제리가 독립(1962)되고도 한참 뒤인 2020년이었다. 알제리 독립 58주년 기념일에 지난날 독립투사들의 유골들은 수도 알제리의 엘 알리아 공동묘지 순교자 구역에 안장됐다.
(https://www.france24.com/en/20200703-france-returns-skulls-of-algerians-who-fought-colonisation)
2024년 1월 17일, 가자지구 남부 칸 유니스 공동묘지에서 이스라엘군이 시신들을 탈취해 간 뒤 팔레스타인 주민이 훼손된 무덤들을 살펴보고 있다. ⒸAhmed Zakot/Reuters
무덤 2000기 파헤쳐, 시신 모독·훼손은 전쟁범죄”
(지난주 글에서 짧게 다루었듯이) 이스라엘군은 심지어 가자지구의 공동묘지 묘석를 부수고 시신을 탈취해가는 야만을 저질렀다. 2024년 1월 17일 가자지구 중남부 칸 유니스에서는 이스라엘군이 묘지를 파헤쳐 시신을 옮기는 모습이 목격됐다. 칸 유니스뿐 아니다. 가자 북쪽 자발리아 지역의 알팔루자, 가자시티 동쪽의 알투파, 그리고 셰이크 이즐린 지역의 묘지들도 훼손됐다.
CNN 위성사진 분석에 따르면, 적어도 16곳의 공동묘지가 피해를 입었다. 일부 공동묘지에서는 커다란 바퀴 흔적들이 남겨졌다. 중장비 차량이나 탱크가 무덤터를 지나갔다는 증거다. 가자지구 미디어청(GMO)이 2024년 8월 5일에 발표한 추산으로는 이스라엘이 가져간 시신은 2000구에 이른다. 이스라엘군 대변인은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기습공격 뒤 가자지구로 끌려갔다가 숨진 인질들의 유해를 찾기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이스라엘에도 사랑하는 가족의 유골이라도 되찾겠다며 애를 태우며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 과정이 논란이 됐다.
그 무렵 CNN에 출연한 팔레스타인 출신의 인권변호사 무나 하다드(Muna Haddad, 런던 퀸 메리 대학교 법학대학원)를 비롯한 법률 전문가들은 묘지와 같은 민간 시설물을 고의로 파괴하는 것은 (해당 시설이 ‘군사적 목표물’이 되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국제법을 위반하는 것이며, 무덤을 파헤친 이스라엘의 행위는 국제형사재판소(ICC)의 법적 근거인 로마규정(Roma Statute)에 따라 개인의 존엄성을 모독하는 행위 라는 전쟁범죄에 해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https://edition.cnn.com/2024/01/20/middleeast/israel-gaza-cemeteries-desecrated-investigation-intl-cmd/index.html)
이스라엘군이 (유대인 인질 사망자를 찾기 위해) 가자지구의 묘지를 파헤쳤다는 사실만으로 곧바로 전쟁범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ICC 로마규정 제8조(전쟁범죄)는 관련 조항들이 있다. 제8조 제2항은 국제적 무력충돌에서 ‘개인의 존엄성에 대한 모욕적 행위(outrages upon personal dignity)를 전쟁범죄로 규정한다. 국제적십자위원회(ICRC)를 비롯한 국제사회의 해석으로는 이 조항이 죽은 사람의 시신을 훼손하는 행위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풀이한다. 즉 살아 있는 사람뿐 아니라 사망자의 시신에 대한 훼손·모독도 전쟁범죄라는 것이다.
불도저에 시신 담으며 ‘쓰레기 수거’라 조롱
이스라엘이 국제적십자사를 통해 여러 차례에 걸쳐 가자지구로 돌려보낸 유골은 모두 합쳐 930구에 지나지 않는다. 그 시신들 대부분이 부패 정도가 심하거나 백골 상태였다. 문제는 신원을 확인할 표식조차 없이 보내졌다는 데 있다. 이를테면 2025년 9월 25일 이스라엘은 시신 88구를 실은 트럭을 칸 유니스에 있는 나세르 병원으로 보냈다. 시신들을 푸른색 플라스틱 봉투에 싸서 숫자만 휘갈겨 쓴 채였다.
이런 송환 방식은 팔레스타인이 2025년 2월 휴전 기간에 이스라엘 인질 사망자 4명의 관을 흰색 수의로 감싸고 예의를 차려 송환했던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무엇보다 누구의 유해(유골)인지 확인이 불가능했다. 그 시신들이 가자지구 무덤에서 탈취해 간 2000구의 일부인지, 전부터 보관하고 있던 시신들인지도 알기 어려웠다. 가자지구 법의학 담당자 아흐마드 두헤이르의 말을 들어보자.
이스라엘은 시신들을 송환하면서 그들이 누구인지에 대한 정보나 시신이 옮겨진 장소 등에 관한 정보를 팔레스타인 쪽에 알려주지 않았다. 일부 시신은 겨울옷을 입고 있어서 지난 겨울에 납치되거나 살해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들이 전투 중 숨진 사람인지, 구금됐다가 숨진 사람인지조차 불분명하다.”
(https://www.aa.com.tr/en/middle-east/israel-transfers-remains-of-over-80-dead-palestinians/3296631?utm_source=chatgpt.com)
가자지구 보건당국은 국제적십자위원회(ICRC)를 통해 이스라엘로부터 시신들의 신원 정보를 얻어내려 했지만 이스라엘은 묵살했다. 어쩔 수 없이 집단 장례식을 치른 뒤 시신들은 집단 매장지에 그냥 묻혔다. 시신을 탈취당했다고 여기는 유가족들의 아픔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졸지에 가족의 무덤이 파헤쳐져 시신을 도둑맞은 이들의 입장에선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고, 그 아픔은 보상받을 길 없다. 그렇다면 무덤을 파헤쳐 탈취해간 뒤 돌려주지 않은 나머지 시신들은? (지난주 살펴본) 옥중 사망자들과 마찬가지로 ‘시신 인질’ 상태로 남았다.
그 무렵 이스라엘 병사들의 사회관계망(SNS)에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유해를 조롱하고, 심지어 시신을 훼손하는 영상들이 올라와 많은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도록 만들었다. 한 영상에서는 불도저가 시신 여러 구를 퍼 올리는 동안 이스라엘 여군의 노랫소리가 들린다. 그녀의 히브리어 가사는 이러했다. (우린) 더러운 쓰레기통을 수거하러 온다, 모든 쓰레기가 쏟아져 나와야 한다.”
또 다른 영상에서는 경쾌한 댄스 음악과 조롱하는 뜻이 담긴 자막과 함께 불도저가 시신들을 싣고 이동하는 모습이 담겼다. 이 영상들을 누가 언제 찍었는지 확인할 수 없지만, 이스라엘군의 도덕성이 바닥에 떨어진 수준임을 그대로 보여준다(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2024년 9월 24일 미국 뉴욕 UN총회 연설에서 이스라엘군이 ‘세계에서 가장 도덕적인 군대’라고 우겼다). 논란이 되자 문제의 동영상은 슬그머니 사라졌다.
(https://www.middleeastmonitor.com/20240331-tractor-bulldozing-bodies-while-a-woman-singing-in-hebrew-rubbish-needs-to-spill-out/)
신원이 확인된 유대인 인질 유해는 단 1구
1977년 제1추가의정서는 사망한 사람들의 유해는 존중(respect)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제34조). 또한 제네바협약·국제인도법에 따르면, 사망자를 존중해야 하고 유해를 반환할 의무가 있다(ICRC의 국제인도법 관습규칙 114). 관습규칙 113은 사망자가 약탈·훼손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못 박고 있다.
정리하자면,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저지른 유해 탈취 행위도 ’사망한 유대인 인질의 신원 확인‘과 같은 뚜렷한 목적이 있는 경우에는 국제법에서도 제한적으로 허용된다. 논란의 핵심은 ‘발굴’(팔레스타인의 시각에선 ‘탈취’)이 아니라 그 이후에 어떤 조치를 취했는가다. ▲필요한 범위를 넘어서 시신을 훼손·모독했는지, ▲가져간 유해를 어떻게 처리했는지, ▲팔레스타인 유가족에게 제대로 반환했는지 등의 문제에 이르면, 이스라엘은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유족의 동의 없이 이뤄진 묘지 훼손, 시신 탈취, 무단 반출을 놓고 국제사회에선 전쟁범죄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런 논란 끝에 이스라엘이 유전자(DNA) 분석과 법의학 감식 등으로 신원을 확인한 유대인 인질은 단 1명에 그쳤다. 물론 1구의 시신이라도 확인해 가족 품에 돌려주려는 노력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볼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국제법이 규정하는 합당한 마무리 절차(시신 처리와 반환)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고, 따라서 전쟁범죄를 저질렀다는 비판을 받는다.
2026년 8월 26일, 이스라엘 감옥에서 숨진 이들의 송환을 요구하며 열린 군중집회(서안지구 남부 헤브론)에서 아들의 사진을 들고 슬픔에 잠긴 어머니. ⒸMamoun Wazwaz/APA
‘시신 인질’을 붙잡고 있는 까닭
현재 이스라엘이 인질로 억류하고 있는 시신의 규모는 정확히 알기 어렵다. 다만 진보성향 언론 하레츠(Haaretz)가 익명의 안보 관계자 2명으로부터 약 1700구의 팔레스타인 시신을 보관중”이라 들었다고 보도한 바 있다. 2026년 8월 11일 하레츠 기사에 따르면, 시신 대다수는 2023년 10월 전쟁이 터진 뒤 피살된 가자지구 출신들이다. 하지만 일부는 하마스 대원이 아닌 민간인 희생자들이고, 이스라엘 시민권을 지닌 아랍계 시신도 13구 포함돼 있다.
다비드 지니(David Zini)는 2025년 10월 이스라엘 정보기관 신베트의 수장에 오른 극우 강경 성향의 인물이다. 하레츠에 따르면, 그는 앞으로 언젠가 있을 포로·인질 교환에 이용할 가능성을 내다보고 보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스라엘 군부도 같은 생각이라고 알려진다.
(https://www.haaretz.com/israel-news/israel-security/2026-08-11/ty-article/.premium/shin-bet-chief-urges-israel-to-hold-1-700-palestinian-bodies-as-bargaining-chips/0000019f-ed52-d569-a5ff-fd76ca7f0000)
이스라엘이 시신을 유가족 품으로 돌려주지 않고 ‘인질’로 삼으려는 속사정을 살펴보면, 크게 네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전쟁범죄 증거 은폐다. 제대로 된 부검을 거쳐 고인의 사망 경위에 대한 진실을 밝혀내는 것을 막으려는 뜻에서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죽으면 24~48시간 안에 부검을 해야 사인을 제대로 가려낼 수 있다고 한다. 이스라엘은 시신들을 장기간 냉동 보관하거나 ‘숫자의 무덤’에 집단 매장함으로써 고문사 증거를 없애 왔다.
2025년 11월 이스라엘 인권의사회(PHR)가 펴낸 보고서 ‘이스라엘에 구금된 팔레스타인인들의 죽음(Death of Palestinians in Israeli Custody)’에 나오는 사례 하나를 보자. 2024년 12월 크치오트(Ktziot) 교도소에서 갇혀 있던 가자지구 출신의 A.M(42세)이 숨졌다. 그의 시신은 한 달 내내 냉동 상태로 보관되어 있다가 (가족과 변호사의 요청으로) 뒤늦게 부검을 한다고 이스라엘 국립법의학연구소로 옮겨졌다. 하지만 A.M이 무엇 때문에 숨을 거두었는지를 부검으로 밝혀내지 못했다. 국립법의학연구소는 사망 직후 시신을 이송하지 않고 장기간 냉동했기에 사망 원인을 규명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부검의 증거적 가치가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https://www.phr.org.il/wp-content/uploads/2025/11/6538_Death_custody_Paper_Eng.pdf)
둘째, 협상 카드‘로서의 시신 활용이다. ’인질‘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온다. 이스라엘은 자국민 인질과 군인의 유해를 하마스로부터 되돌려받기 위한 맞교환용 협상 카드 로 팔레스타인 옥중 사망자의 시신을 보관하고 있음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지금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유대인 인질이나 시신은 없다. 2025년 10월 마지막 인질 교환과 시신 반환으로 251명의 유대인이 모두 이스라엘로 돌아갔다. 그렇다면 앞으로 언젠가 있을 포로교환 협상이나 다른 정치협상을 위한 ’보험용’으로 시신들을 비축해 놓겠다는 얘기나 다름없다.
셋째, 심리적 처벌과 저항 억제 노림수다. 사랑하는 가족, 존경하는 ’순교자(martyr)‘의 유해를 돌려받지 못한다는 것은 유가족들은 물론 그가 속했던 정치집단(하마스 등)에게 심리적 고통을 주기 마련이다. 또한 팔레스타인 투사들에게 언젠가 붙잡혀 감옥에 갇혀 죽더라도 고향 땅에 묻히지 못한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함으로써 적의 사기를 꺾겠다는 것이다. 유가족들이 고인을 떠나보내는 마지막 길을 막아서는 비정한 조치는 연좌제 성격의 집단적 처벌 이나 다름없다는 비판을 받는다.
2000년 11월 10일 가자지구 북부 가자시티에서 열린 하마스대원의 장례식. 반이스라엘 투쟁 구호와 더불어 비장감이 넘쳐났다. Ⓒ김재명
장례식에서 울려 퍼지는 반이스라엘 구호
넷째, 이스라엘은 시신을 넘겨주었을 경우 팔레스타인 쪽에서 이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상황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가자지구에서 하마스의 주요 간부든 하급 대원이든 누군가가 이스라엘군에 맞서다 숨지면 그를 ’순교자‘로 기리는 대규모 장례식이 열리기 마련이다. 서안지구에서 시위를 하다가 이스라엘군이 쏜 총알에 맞아 죽은 보통사람도 ’순교자‘로 추앙받곤 한다.
팔레스타인 현지 취재과정에서 대규모 장례 행렬들을 여럿 마주쳤다.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가장 위대하시다)”, 우리는 언제나 이긴다”, 약속은 약속, 순교자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겠다”.....팔레스타인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에서 치러진 장례식들에서 들은 구호들이다.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비유가 마땅할지 모르겠으나,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상징이 된 연세대학생 이한열 열사의 장례식만큼이나 비장감이 넘쳤다. 많은 이들이 울부짖고 고함치며 이스라엘에 대한 복수를 다짐했다.
일부 청장년들은 하늘에 대고 권총 또는 카빈총을 마구 쏴댔다. 오랫동안 눌려 살아온 이들의 마음 속에 쌓인 분노와 좌절의 표출로 여겨졌다. 이스라엘군에게 죽었다고 모두 엄청난 크기의 장례식이 치러지는 것은 아니다. 관련 내용을 필자의 현지 취재기록에서 옮겨본다.
[가자 중부 지역에 자리한 엘 부레이 난민수용소 부근에서 길을 걷던 두 모녀(40대 초반의 엄마와 12세 소녀)가 총에 맞아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으로 달려갔다. 가난한 동네여서인지 장례식은 너무나 조촐했다. 유족들은 상복을 입지 않았고, 조화(弔花)도 없었다. 유족들이 눈물을 보이지 않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거듭된 죽음이 그들에겐 일상적인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지는 모습이었다. 난민촌에서 3킬로미터쯤 떨어진 묘지까지 가는 길에 팔레스타인 소년 무하마드(15세)를 태우고 갔다. 이 소년은 초등학교를 중퇴하고 길에서 토마토 등 과일을 파는 노점상 아버지를 돕고 있다고 했다. 그는 나의 통역에게 이슬람 전사가 되어 이스라엘군을 죽이는 게 나의 꿈”이라며 작은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김재명, 『눈물의 땅 팔레스타인』, 미지북스, 2021. 102쪽).
장례식은 조촐했지만 어린 소년의 얼굴에선 반이스라엘 정서가 물씬 묻어났다. 이스라엘이 감옥에서 숨진 시신을 가족 품에 넘겨주길 꺼리는 배경을 짐작할 수 있다. 팔레스타인의 장례식은 새삼 점령자인 이스라엘에 대한 저항의지를 북돋우기 마련이다. 알라후 아크바르” 구호가 울려 퍼지는 장례 행렬에서 ’반이스라엘 세력‘이 결집하는 모습을 이스라엘은 결코 바라지 않는다.
꽁꽁 얼은 아들에게 어찌 작별인사를 하랴?”
이스라엘은 어쩌다 시신을 돌려주기도 한다. 그럴 경우 까다로운 조건을 내세운다. ▲사인을 밝히려는 부검을 하지 않고 ▲장례식은 한밤중인 자정 이후에 치르고, ▲이스라엘이 지정한 묘역에 묻고, ▲10명에서 20명 이내의 가족 친지만 모여 하관식을 치른다는 조건들을 유족이 받아들일 경우 시신을 돌려주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돌려받은 시신 가운데는 냉동 상태인 경우가 많다. 군 기지의 시신보관용 냉동실, 또는 아부 카비르 법의학 연구소(공식명칭은 L.그린버그 국립법의학연구소, 이스라엘의 텔아비브에 위치한 국립 부검기관)의 냉동고에 있던 시신이 삼엄한 경비 아래 건네지면, 유족들은 사랑하는 가족이 왜 죽었는지를 꼼꼼하게 살펴볼 수 없다. 냉동 상태라 기술적으로도 부검이 불가능하고, 약속대로 한밤중에 서둘러 매장해야만 한다. 드물지만 냉동 시신을 받은 유가족이 장례를 거부한 사례도 있다. 15살 아들의 냉동시신을 받았던 한 팔레스타인 아버지의 절규를 들어보자.
[2016년, 15살 된 아들이 이스라엘 정착촌에서 일으킨 것으로 추정되는 공격으로 사망한 지 몇 달 뒤, 칼레드 마나스라는 이스라엘 경찰의 엄격한 통제에 따라 소수의 가족만 모아 한밤중에 장례식을 치르기로 했다. 장례식 당일 밤, 가족 모두가 모이고 이스라엘 구급차가 도착했을 때, 마나스라는 아들의 시신이 꽁꽁 얼어붙은 채 돌아온 것을 봤다. ‘얼음덩어리처럼’ 굳어버린 아들의 끔찍한 모습에 그는 견딜 수 없었고, 시신이 ‘미끄러져 산산조각이 날까 봐’ 두려웠다. 그는 고통스러운 결정 끝에 장례식을 거부하며 어떻게 아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입맞춤을 할 수 있겠는가? 라고 외쳤다.]
https://www.maannews.net/news/836238.html
이스라엘판 ‘죽음의 정치’
감옥에서 숨진 이들은 보안이 철저하게 강조되는 비밀 공동묘지에 묻혔거나 이스라엘군 병원 냉동고에 보관 중이다. 이스라엘은 그런 특수시설들을 적어도 4곳 이상 운용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보안을 위해 겉엔 고인의 이름이 적혀 있지 않고 번호로만 돼 있다. 이른바 ‘숫자의 묘지(cemeteries of numbers)’다. 이렇듯 팔레스타인인의 시신을 통제하는 것은 대규모 장례식과 같은 정치적 동원을 피하면서 민중의 집단적 저항을 누르는 효과를 낳는다. 이른바 이스라엘판(版) ‘죽음의 정치’다.
팔레스타인 출신의 인권변호사 무나 하다드는 2025년 영국에서 발행되는 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는 죽음조차도 이스라엘의 폭력에서 벗어나는 길이 아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이 글에서 하다드는 이스라엘이 시신을 인질로 붙잡고 있는 상황이 팔레스타인 공동체에 미치는 부정적 결과를 짚었다. 오늘 글의 결론 삼아 옮겨본다.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정치학 박사)
[한 국가가 유족을 처벌하는 수단으로 시신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함으로써, 유족들은 가족이나 친척이 살해되었는지 여부뿐만 아니라 어디에, 어떤 조건으로 어디에 매장되었는지, 심지어 매장되었는지조차도 확신할 수 없게 된다. 유족에게 고인을 매장하고 애도할 권리를 박탈하는 것은 더 넓은 의미에서 보면, 팔레스타인 민족공동체를 위축시키고 사람들이 (지배 국가에) 저항하지 못하도록 막으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Journal of Palestine Studies. 2025년, Vol 54, Issue 3)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 kimsphot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