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노동조합, 조직 밖 노동자의 삶과 연대하라 [노동] 필자는 지난 2000년,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한국사회 노동문제를 조사·연구하게 되었다. 당시는 1997년 IMF 경제위기 여파로 임시·일용직이 전체 노동자의 50%를 넘는 상황이었기에 한국 노동사회에서 최대 이슈는 비정규노동 문제였다. 당연히 필자 또한 비정규노동 문제를 접하면서 노동문제에 대한 조사·연구 경험을 쌓기 시작했다. 사무직종에서 주로 활용하는 기간제·계약직 노동자 문제에서부터 시작해 1998년 제정된 파견법에 따른 파견노동자 문제, 그리고 제조업에서 지금도 만연하고 있는 사내하청 노동자 문제 등이 핵심이었다.
‘위험의 외주화’로 인한 사고 지속되는 비정규 노동의 문제
특히 사내하청 노동자 문제는 파견법상의 불법파견 문제와 직결되면서 정규직 중심의 제조업 대공장 노동조합에는 핵심 현안이었다. 사내하청 노동자가 제조업에서 금지된 파견노동자로 간주될 경우, 파견법에서 금지한 불법파견이 되면서 파견노동자를 사용사업주와 고용관계를 맺은 노동자로 간주하는 의제(擬制) 조항 때문이었다. 사내하청 노동자가 불법파견 노동자라면 현대차는 1만 명이 넘는 사내하청 노동자를 직접고용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전체 정규직 종업원(당시 4만 8천여 명)의 고용을 확실히 보장하는 대신 전체 정규직 노동자 대비 사내하청 노동자의 비율을 16.9% 선에서 허용한다는 ‘완전고용보장합의’를 체결한 현대차 노동조합 또한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노동조합이 불법을 인정·조장한 셈일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용인함으로써 ‘연대’라는 노동운동의 대의이자 가치를 배반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지금, 한국 노동사회의 최대 현안은 플랫폼, 프리랜서 그리고 가짜 3.3 노동자 문제이다. 비정규‘노동’을 넘어서 아예 ‘노동’이라는 단어 자체가 지워진 노동자이다. 모두가 ‘사업주’ ‘사장’이라는 말을 쓰는 노동자로서 고용관계가 은폐된 노동자이다. 필자가 지난 칼럼에서 썼던 ‘일하는 사람 기본법’, ‘근로자 추정제’ 문제, 그리고 ‘K-노동회의소’ 설치 방안 등, 고용노동부의 핵심 현안 정책과 사업 또한 이들 노동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7일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열린 중대재해 사고조사 과정 및 결과 정보공개청구 유가족 기자회견에서 HL만도 평택공장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승모 씨의 유족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관련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6.9.7
폭염의 기세가 달아오르던 지난 7월 22일, 28살 청년 노동자인 김승모 씨가 기계 점검 중 설비가 작동하면서 기계에 끼어 사망했다. 이 노동자는 HL만도 평택공장에서 일하는 사내하청 노동자였다.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산재로 사망한 김용균 씨도 20대 청년 노동자이자 사내하청 노동자였다. 2025년 동일 발전소에서 산재로 사망한 김충현 씨 또한 사내하청 노동자였다. 며칠 전 시화공단 노동자 산업안전 실태 조사 과정에서 필자가 만난 50대 노동자 또한 일용파견 노동자였다. 일명 ‘업체’ 소속으로, 출근한 지 사흘 만에 300㎏가량의 쇠파이프가 떨어지면서 다리가 분쇄 골절되었다. 2021년 평택항에서 용역회사 지시에 따라 컨테이너 바닥에 있는 이물질 청소 작업을 하다가 사망한 이선호 씨 또한 20대 청년노동자이자 일용파견 노동자였다. 2026년 들어서만 현대중공업에서 5명의 이주노동자·사내하청 노동자가 산재로 사망했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플랫폼, 프리랜서 노동자 문제가 이슈가 되고 있지만, 그리고 산재사망사고 감소를 제1의 노동정책 과제로 제시하고 있지만 여전히 ‘위험의 외주화’라는 간접고용 비정규 노동자 고유의 문제는 풀리지 않은 채 지속되고 있음을 드러낸다.
2년을 4년으로 늘린다고 ‘하퀴벌레’가 사라지겠는가
그람시(Gramsci)는 『옥중수고』에서 ‘낡은 것은 죽어 가는데도 새로운 것은 아직 탄생하지 않았다는 사실 속에 위기가 존재한다’고 했지만 한국 노동사회에서는 정반대이다. 낡은 것이 죽지도 않았는데, 아니 죽을 조짐도 없는데 새로운 문제가 켜켜이 쌓여만 가고 있기에 위기이다. 정부의 보수적인 노동정책과 대한민국 사법부의 노동문제 경시(輕視)가 제도적 배경이자 원인일 것이다. 필자는 보수우익 정당이 집권한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기보다 오히려 상대적으로 리버럴한 민주당계(系) 정치세력이 집권했을 때, 한국 노동사회에는 더 큰 옹이를 남겼다고 본다.
노무현 정부가 2004년 가을 비정규법 초안을 공개했을 때, 시민사회·노동계는 반대했다. 필자 또한 국회 앞 천막농성에 참여하면서 반대했다. 근로기준법에 비정규직 사용사유제를 도입하지 않은 채, 비정규직만을 대상으로 하는 별도의 특별법을 만든다면 오히려 노동 내 분화와 계층화는 심해질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특히 기간제 노동자, 파견노동자의 2년 사용기간 제한이 문제였다. 왜 2년이 지나야만 기간제가 ‘기간의 정함이 없는’ 노동자가 되거나 파견노동자가 사용사업체에 직접고용 되어야 하는지, 정책 당국자 누구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거나 안 했다. ‘무기(無期)계약직’이라는 형용모순의 ‘중(中)규직’을 양산하거나 1년 11개월짜리 노동자가 양산될 것이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법 제정은 강행되었고, 지금도 문제가 되고 있다.
이재명 정부 들어서 기간제법에 규정된 기간제 노동자 사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자는 주장과 메가특구법의 노동특례 조항 역시 이러한 문제의 연장선에 있다. 노동자 입장에서 왜 4년이어야 되는지, 왜 파견허용이 확대되어야 하는지는 누구도 설명하지 않은 채, ‘2년은 너무 짧다’는 자본의 애로사항 얘기와 반도체산업 국제경쟁에서 속도전의 필요성 얘기만 흘러나오고 있을 뿐이다. 상식적으로 자본이 2년 넘게 한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다면 그 노동자가 하는 일은 자본에게는 상시·고정적인 일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것이 국내외 노동 관련 규범에 부합한다. 결국 무기계약직이 양산되었고, 정규직-무기계약직-기간제와 간접고용 비정규직이라는 노동 내 위계는 공고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고용상의 지위를 넘어서 신분상의 지위로 굳어졌다. ‘하퀴벌레(하청 바퀴벌레)’ ‘무기충(無期蟲)’이라는 정규직 노동자의 비정규직 노동자 혐오 표현은 이미 신분상의 지위가 콘크리트처럼 공고화되었음을 드러낸다.
12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열린 노동자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비정규직 철폐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발언을 듣고 있다. 2026.9.12
노동의 위기 앞에서 ‘결과에 대한 투쟁’만 할 것인가
하지만 이 모든 상황이 권력과 자본으로부터만 비롯된 문제일까? 필자는 이전에 기고했던 ‘한국 노동사회에 드리워진 파시즘적 징후들’ 기사를 통해 한국 노동조합의 이중적이면서 모순적인 실태를 언급한 바 있다. 사실 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양날의 검과 같은 속성을 지닌 노동조합의 숙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조직(organization)에는 안과 밖을 가르는 경계가 존재하며 위기에 직면했을 때, 조직은 조직 구성원의 이해를 우선시할 수밖에 없다. 이는 노동조합이라고 다르지 않다. 특히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 시에 더 두드러진다. 원래부터 노동조합은 외부 자극에 결과적·수동적으로 반응하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마르크스가 노동조합의 투쟁을 ‘결과에 대한 투쟁’으로 언급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국 위기 앞에서 조합원의 이해가 우선하면서 한국 사회 노동문제는 누적되어 왔다.
외부 자극과 충격이 완화되면 노동조합이 노동사회의 구조적 문제 해결에 나설 여지가 커진다. IMF 경제위기가 완화된 뒤 노동조합이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용안정과 처우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도 이러한 맥락이었다. 하지만 근원적인 문제 해결에는 여전히 소극적이었고 현재도 그렇다. 정규직 중심의 노동조합이 적극적으로 조직화에 나서는 것이 핵심이자 문제 해결의 열쇠였지만 노동조합 규약을 개정해 비정규직 노동자를 조직하자는 상급 단위 노동조합의 요구는 일선 현장에서 무시됐다. 총연맹의 비정규 노동자 조직화를 위한 기금 모금은 목표액에 턱없이 미달했으며 ‘1사 1조직’ 원칙하에 사내하청 노동자를 조직했던 기아차 지부는 결국 사내하청 노동자 조직을 정규직 지부에서 축출하기도 했다. 플랫폼, 프리랜서 노동자를 조직해야 한다는 주장에 어느 노동조합 간부는 ‘사업주를 지금 왜 조직해?’라고 반문하며 장기간 소송에 따른 현실적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공제회 같은 대안적 조직화 모델·경로를 모색하는 데 적극적인 것도 아니다. 결국 한국사회 노동조합은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역량은 둘째 치고 의지라도 있는지 필자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기로에 선 노동조합, 그 선택은 연대의 확장이어야
지난 15일,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메가특구법과 관련한 원 포인트 사회적 대화를 양대 노총에 제안했다. 양대 노총 중 민주노총은 사회적 대화에 불참 중이다. 과연 민주노총을 포함한 양대 노총의 선택은 무엇일까. 메가특구법의 반노동 조항 문제에도 불구하고 교섭에 참여해 문제점은 문제점대로 논의하고 개선하되 전체 노동자의 바닥을 끌어올리는 의제를 던지는 사회적 대화와 교섭이 필요하다. 무엇이 됐든, 한국 노동사회의 노동문제를 조금이라도 해결하려는 의지와 결과가 요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임기근 국무조정실장(앞줄 왼쪽부터),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 더불어민주당 김주영 의원 및 참석자들이 1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공무직위원회 출범식에서 슬로건을 들고 기념 촬영하고 있다. 2026.9.18
위기에 위기가 중첩되는 현재의 경로를 어떻게든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한국 사회 노동조합에게 절실하다. 기로에 선 한국의 노동조합은 어느 경로를 선택할까. 노동조합의 존재 이유는 이미 조직된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조직 밖 노동자의 권리를 자신의 과제로 끌어안고, 모든 노동자의 삶의 바닥을 함께 끌어올리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지금 한국의 노동조합이 기로에서 선택해야 할 길은 바로 그 연대의 확장이다.
손정순 노동판 ksjso2@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