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실수 …법원행정처, 법관 연임 재심사 사유 잘못 기재 [뉴스] 허용구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평범한 직장인에게 어느날 징계 사유를 통지해 놓고 며칠 뒤에 직장이나 상사가 다른 이유를 댔다면 그 징계 절차가 정당하다고 납득할 수 있겠는가?
더욱이 전국 법관들과 대법관들의 인사를 다루는 법원행정처가 이렇게 법관 연임 재심사 사유를 제시해 놓고 하루아침에 실수”라며 손바닥 뒤집듯하면 어느 누가 대법원과 사법부를 신뢰할 수 있겠는가? 지귀연 부장판사의 술자리 접대 의혹에 한없이 느긋하고 관대했던 조희대 대법원이 왜 이렇게 이재명 대통령 관련 사건들에는 유독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가에 대해서도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이 대통령이 성남시장으로 일하던 시절, 성남FC 후원금을 불법으로 조성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재판을 진행하다 ‘일일 직무대리’로 공판에 출석한 검사에게 퇴정을 명령했던 허용구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가 연임 재심사 사유를 통보받은 지 일주일남짓 만에 그 사유가 잘못됐다는 통지를 받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허 부장판사는 지난달 20일(23일로도 알려짐) 법관인사위원회가 자신을 법원조직법 제45조의2 제2항 제3호 ‘연임 적격 여부가 문제되는 판사’로 의결돼 연임 재심사를 진행하게 됐다는 처분 통지서를 받았다고 같은 달 28일 밝혔다. 제3호는 ‘판사로서의 품위를 유지하는 것이 현저히 곤란한 경우’를 뜻한다. 현저히 란 주관적이고 애매한 기준을 내세우는 점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허 판사는 오는 12월 3일 10년의 법관 임기가 만료되는데, 대법관이 아닌 법관의 임기는 10년으로 심사를 거쳐 연임할 수 있다.
법원행정처는 연임 재심사 사유로 권위적이고 고압적으로 소송을 진행하고 변호인을 질책하거나 당사자의 주장 및 증거신청을 잘 받아주지 않는다는 평 , 합의부를 권위적, 일방적으로 운영하고 동료 법관이나 직원들을 고압적으로 대한다는 평 등을 들었다고 했다. 이 밖에도 자기주장이 강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나 희생정신이 부족하고 업무 내외적으로 타인과 잘 소통하지 못함 , 복잡하고 어려운 사건에 대한 처리능력이 부족하고 기록 검토가 부족한 상태에서 합의에 임한다는 의견 등도 사유에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성남FC 후원금 의혹 사건과 관련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0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청에서 조사를 받은 뒤 귀가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지지자들이 모여 있다. 2023.1.10 [공동취재] 연합뉴스
허 부장판사는 수원지법 성남지원 형사1부 재판장으로 지난 2024년 11월 11일 이 대통령의 성남FC 후원금 의혹 사건 재판에 출석한 정모 검사에게 퇴정을 명령해 논란이 됐다. 계엄 선포 얼마 전, ‘윤석열 검찰’의 서슬이 시퍼런 시점이란 점에 유의했으면 한다. 당시 정 검사는 부산지검 소속이면서 서울중앙지검으로, 다시 성남지원으로 일일 직무대리 를 이중 발령받아 재판에 참여했다. 허 부장판사는 이를 검찰청법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정 검사가 단 한번 법정에 나왔는데 퇴정 명령을 내린 것도 아니었다. 3개월 가까이 여러 차례 경고했는데도 거듭 법정에 나와 어쩔 수 없이 퇴정 명령을 내린 것이었다.
대구지검 안동지청, 인천지검, 서울남부지검 등에서 검사로 일하다 2006년 판사로 전직한 허 부장판사가 후배 검사에게 이런 단호한 조치를 한 것은 물론, 윤석열 검찰 을 향해 반기를 든 것으로 칭찬 받아 마땅한 일이었다.
허 부장판사는 수사·기소권을 독점한 검사가 자신의 관할 구역을 마음대로 확대하지 못하도록, 부득이한 경우에만 직무대리 발령을 내게 한 게 검찰청법 취지 라며 이중 직무대리 발령이 법률상 가능하다 해도 그 요건은 엄격히 적용돼야 한다 고 지적했다. 검찰 측은 사건 내용이 복잡해 직무대리 발령을 할 부득이한 사유가 인정된다 고 항변했다. 허 판사는 이에 대해서도 사안이 복잡하면 하루짜리가 아닌, 법무장관에게 보고해 정식 파견을 보내야 한다 고 맞받았다.
검사들은 퇴정 명령에 반발해 집단 퇴정했고 나중에 재판부 기피신청서를 제출했지만 지난해 3월 대법원에서 최종 기각됐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취임한 뒤에 1호 지시로 내린 것이 공소 유지 목적의 직무대리 검사 발령 제한이었다. 수사와 기소를 엄격히 분리해야 한다는 것이 검찰 개혁의 요체였기에 당연한 조치였다.
정 장관의 지시 다음날인 지난해 7월 22일, 공판이 8개월 만에 재개됐다. 문제의 정 검사가 또 법정에 앉아 있었다. 허 부장판사는 정 검사가 스스로 빠져주시고 다른 검사들은 집단 퇴정하지 않아 주셨으면 좋겠다”고 당부했고, 다행히 그날 공판은 마무리됐다. 나중에 대장동 등 이 대통령 관련 모든 사건들과 함께 재판은 중단됐다.
이런 이력이 있는 허 부장판사는 지난달 28일 법원 내부망인 코트넷에 글을 올려 부당함을 호소했다. 그는 늘 원칙과 정의를 지키고 절제된 생활을 해왔기에 이런 평가를 받는다는 것이 다소 납득이 되지 않는다 며 만약 저에게 어떤 비위 행위나 품위 유지 의무 위반 행위가 있었다면 검사에게 퇴정 명령 등을 하는 저를 윤석열 정부 검찰이 가만히 놔두었겠나 라고 반발했다. 이어 법원행정처를 향해 법원 밖으로는 사법부 독립 을 외치면서 정작 법원 안에서는 법관의 명예와 자부심 을 무너뜨리고 법관(재판)의 독립 을 해치며 독립적으로 재판해야 하는 판사들을 압박하는 것은 아닌지 한번 되돌아볼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 고 했다.
허 판사의 글이 몇몇 매체에 보도됐다. 바로 그날 오후 법원행정처는 허 판사에게 전화를 걸어와 공문의 통보가 잘못됐다며 사유를 같은 법 같은 조항의 제2호 ‘근무성적이 현저히 불량해 판사로서 정상적인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경우’로 바로잡는다고 알렸다.
법원행정처는 허 판사에게 법관인사위원회에서는 분명히 제2호에 해당함을 이유로 연임 적격 여부가 문제되는 판사라고 의결했다”며 의결 내용을 통보하는 공문을 작성하는 과정에 실무진의 착오로 제3호에 해당하는 것처럼 기재됐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인사위가 의결 내용을 사후 변경한 것이 아니라 애초에 통보서를 작성하면서 법 조항을 잘못 옮겨 적었다는 것이다.
허 판사는 다음날 다시 코트넷에 글을 올려 판사직이 걸린 중대한 문제에서 의결 사유가 잘못(통지)됐다는 것이 단순한 실수일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특히 인사위가 열리기 전 자신에게 제시된 부정적 평가에 대해 두 차례 의견서를 냈지만, ‘근무성적이 현저히 불량하다’는 법정 사유에 해당한다는 설명은 듣지 못했다고 했다. 이어 법원행정처에 제2호로 판단한 구체적인 사유가 무엇인지, 그 판단의 근거 자료는 무엇인지, 객관적 기초 자료인 ‘10년치 사건 처리 등 통계 자료’는 보았는지 등을 알려주실 것을 요청드린다”고 했다.
인사위가 열리기 전 소명 기회를 준다고 해 그에 대해 두 차례나 소명을 했는데 정작 사유는 다른 것이었고, 허 판사에게는 엉뚱한 사유에 대해 소명하게 한 뒤 법관인사위는 의결한 셈이다. 절차의 흠결이 확인된 셈이다.
노경필 법원행정처장이 2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열린 긴급현안질의에서 법사위원 질의를 듣고 있다. 2026.9.28 연합뉴스
겹쳐 보이는 장면이 있다. 노경필 법원행정처장이 지난달 28일 국회 법제사법위 긴급현안 질의 도중 대법원장의 업무추진비 인원 부풀리기 의혹에 대해 참석 인원이 사실과 다르게 기재되었다 고 인정하면서 ”수치가 잘못 기재된 부분에 대해서는 죄송하다 며 ‘사과 아닌 사과’를 한 장면이다. 고개를 숙인 것은 맞은데 실무자의 단순 실수로 퉁 치고 넘어가려는 모습이다. 실수가 거듭되면 실력이 그것밖에 안된다는 판단으로 넘어간다.
법원행정처가 허 부장판사 연임 재심사와 관련해 제대로 해명해야 할 것은 성남FC 후원금 재판 때 검사 퇴정 명령이 직접적, 보복적 사유인지 여부, 검찰 출신이라 손쉽게 연임 심사에서 탈락시켜도 좋다는 판단이 작용했는지 여부다.
만약 허 부장판사가 연임 심사에서 탈락하면 소청 심사 및 법정 투쟁 과정에 이 두 가지 질문이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임병선 에디터 byeongseon1610@mindl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