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었던 나라와 함께 도로 찾으려 했던 우리말 [뉴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삶과 슬기가 고스란히 깃들어 있는 토박이말이 우리 삶에서 자꾸 멀어져 가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뜻을 모은 이들이 함께 모여, 토박이말의 참 맛과 멋을 제대로 알고 다함께 부려 쓰게 하자는 마음으로 사단법인 ‘토박이말바라기’를 열고 걸어온 지도 열 해가 넘었습니다.
우리말 가운데 가장 우리말다운 말이자 우리말의 노른자위, 참우리말인 토박이말을 살리고 북돋우는 일은 우리 삶의 뿌리를 가꾸는 일과 같습니다. 그동안 날마다 하나씩 ‘오늘 토박이말’이라는 이름으로 토박이말을 열심히 나누어 왔습니다. 하지만 워낙 오랫동안 우리 삶과 멀어져 있던 터라, 처음 만나는 토박이말을 낯설고 어렵게 느끼는 분들이 여전히 많았습니다. 토박이말을 자주 만나게 해서 우리 삶 속으로 다시 데려오는 일이 간대로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님을 몸소 깨닫곤 합니다.
요즘 들어 우리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까지 ‘문해력’이 떨어진다는 걱정의 소리가 많습니다. 저마다 온갖 해결책을 내놓고 있지만, 저는 가장 기본적이고 확실한 지름길에 대해 굳은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잃었던 나라를 되찾자마자 가장 먼저 했던 일 가운데 잃었던 말을 도로 찾으려 애썼던 그 시절, 옛날 배움책(교과서)에 담겼던 토박이말 바탕의 갈말(학술용어)을 다시 살려내는 것입니다. 누구나 알기 쉬운 말로 배움책을 만들어 가르치고 배울 때, 비로소 글을 읽고 이해하는 길도 시원하게 열릴 것입니다.
시민언론 민들레 식구들과 옛 배움책을 함께 살펴보며, 그 속에 살아 있는 토박이말과 갈말(학술용어)을 하나씩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나라를 되찾은 뒤 우리말도 함께 되찾으려 했던 선배들의 뜻이 배움책 곳곳에 담겨 있습니다. 저는 그분들의 노력이 오늘날 우리가 겪는 문해력 문제를 풀어 갈 소중한 밑거름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누구나 알기 쉬운 우리말로 갈말을 다듬고, 그것을 바탕으로 배움책을 만들고 가르치며 배우는 일이야말로 가장 튼튼한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글이 우리 말글살이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될 뿐 아니라, 앞으로 만들어 갈 배움책과 교육을 다시 생각해 보는 작은 디딤돌이 되기를 바랍니다.
[옛배움책_과학 6-1_맨뒤] 우리한글박물관 김상석 관장 도움
첫 번째로 함께 살펴볼 옛배움책은 ‘과학공부 6-1’이고 오늘 보여드릴 것은 맨 뒤쪽(판권지)입니다. 이 소중한 옛배움책은 ‘우리한글박물관’ 김상석 관장님의 도움으로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도움을 주신 김상석 관장님께 고맙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찍그림(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바로 ‘4284년’이라는 단기(檀紀) 표기입니다. 서기로 바꾸면 1951년, 6·25전쟁의 가슴 아픈 포화 속에서도 아이들의 배움을 이어가고자 만든 책입니다. 참고로 올해는 단기로 4359년이 됩니다. 해방과 더불어 우리 단기를 찾아 쓰다가 어느 순간 서기에 밀려 단기를 까맣게 잊고 살게 된 우리 모습을 보면, 우리 고유의 것을 잊고 살아가는 오늘날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씁쓸한 마음이 듭니다.
그리고 그 곁에는 오늘날 우리가 쓰는 한자말과는 전혀 다른, 정겨운 우리말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박음 , 펴냄 , 지은이 , 펴낸이 , 되박아 펴낸이 입니다.
오늘날 책에서는 대부분 인쇄 , 발행 , 저자 , 발행인 , 인쇄인 이라는 말을 씁니다. 여러분 어떠신가요? ‘인쇄’나 ‘발행’이라는 한자말보다 ‘박음’, ‘펴냄’이라는 말이 훨씬 직관적이고 가슴에 와닿지 않나요?
박음 은 글자를 박아 찍어 내는 모습을 떠올리게 하고, 펴냄 은 세상에 알리려 펴낸다 는 뜻이 숨김없이 들어있어 책을 펴내는 일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뜻을 풀이하지 않아도 말만 들어도 무엇을 하는 일인지 쉽게 어림할 수 있습니다. 반면 인쇄 와 발행 은 한자말이라 그 뜻을 따로 배워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나라를 되찾았던 그 시절에는 배움책부터 이렇게 누구나 쉽게 읽고 깨우칠 수 있는 우리말다운 말로 채우려 애썼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어쩌다 이 쉬운 토박이말들을 뒤로하고, 어려운 한자말과 외래어로 가득 찬 배움책을 아이들에게 쥐어주게 되었을까요?
말은 얼을 담는 그릇입니다. 아이들이 처음 만나는 배움책의 말은 더욱 그렇습니다. 누구나 쉽게 뜻을 헤아릴 수 있는 말을 쓰는 일은 단순히 말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 배우는 길을 더욱 넓히는 일입니다. 누구나 알기 쉬운 말로 글을 쓰고 배우는 것, 그것이야말로 문해력을 높이고 삶을 바로 세우는 가장 빠른 길입니다.
옛배움책 속에 묻혀 있던 이 보물 같은 토박이말들을 하나씩 꺼내어 보며, 앞으로 우리가 어떤 말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우리 삶을 채워가야 할지 함께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잊힌 말을 되살리는 일이 곧 우리말의 앞날을 살리는 일이라는 믿음으로, 시민언론 민들레 독자 여러분과 그 길을 함께 걷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박음 과 인쇄 , 펴냄 과 발행 가운데 어느 말이 더 쉽게 마음에 와닿으셨나요?
[한 줄 생각]
쉬운 말은 쉬운 생각을 낳고, 쉬운 생각은 더 많은 사람을 배움으로 이끕니다.
[토박이말 길잡이] 결지기 이창수
이창수 시민기자 maljig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