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질서를 유지할 것인가, 새 질서를 창출할 것인가 [칼럼] 겸손은 힘들다 에 출연한 유시민 작가. 유튜브 갈무리
유시민 작가의 이재명 대통령 비판은 표면적으로는 민주진영 내부의 역사성과 코어 지지층에 대한 문제제기처럼 들린다. 유시민은 대통령이 모두의 대통령”과 포용·통합을 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그 과정이 기존 민주진영이 기대했던 증축”이 아니라 기존 집을 허물고 새로 짓는 재건축”처럼 보인다고 비판한다. 이 비유는 과거 abc론처럼 매우 직관적이고 강력하다.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면, 증축은 연속성의 정치이고, 재건축은 단절의 정치이다. 증축은 기존 지지층의 기억과 헌신 위에 새로운 층을 올리는 방식이고, 재건축은 기존 건물의 구조 자체를 바꾸는 방식이다. 따라서 이 논쟁은 단순한 인사 논란이나 정무적 오판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당이라는 정치공동체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둘러싼 권력투쟁의 문제이다.
그러나 이 논쟁을 유시민이 옳은가, 이재명이 옳은가”라는 도덕적 질문으로만 읽으면 현실정치의 핵심을 놓치게 된다. 유시민의 비판은 민주진영의 역사성을 방어하는 언어로 제시되지만, 현실정치학적으로 보면 그것 역시 권력의지의 표현이다. 여기서 권력의지란 단순한 사익이나 탐욕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정치적 기억, 지지층의 정체성, 상징자본, 개혁의 계보, 노무현·문재인 정부와의 연속성을 누가 해석하고 대표할 것인가를 둘러싼 의지이다. 역사성을 말하는 순간에도 정치는 작동한다. 기억은 순수한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권력배치를 둘러싼 자원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정치 역시 같은 방식으로 읽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민주당의 전통적 주류 내부에서 성장한 정치인이 아니라, 비주류의 경로를 통해 중앙권력에 도달한 정치인이다. 그래서 그의 정치적 에너지는 노무현처럼 기존 민주당의 계보를 그대로 상속하는 데서 나온 것이 아니라, 그 계보의 바깥 또는 가장자리에서 자신만의 생존 방식과 대중적 지지 기반을 구축하는 데서 나왔다. 그런 점에서 이재명 정치는 본질적으로 재구성의 정치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기존 민주진영의 상징자본을 활용해야 하지만, 동시에 그것에 완전히 종속될 수 없다. 그래서 집권 이후 그가 중도 확장, 실용, 포용, 모두의 대통령을 강조하는 것은 단순한 수사라기보다 자신의 권력 기반을 기존 민주진영의 내부 결속에서 국가 전체의 통치연합으로 확장하려는 시도이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주자인 이재명 전 대표가 유시민 작가, 도올 김용옥 선생과 새 정부의 과제 등을 주제로 대담한 영상이 15일 사람사는 세상 노무현 재단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됐다. 2025.4.15 [ 사람사는 세상 노무현 재단 유튜브 화면 캡처,
이때 유시민의 증축”론과 이재명의 재건축” 정치는 서로 다른 정치윤리를 대표하는 것처럼 보인다. 유시민의 입장은 역사적 연속성, 코어 지지층, 민주진영의 정체성, 개혁의 계보를 중시한다. 반면 이재명의 정치적 본능은 권력의 현실적 재배치, 통치연합의 확대, 김대중,노무현, 문재인, 이재명으로 이어지는 민주정부의 연속성이라는 기존 상징질서의 재편을 향한다. 하나는 기억의 정치이고, 다른 하나는 권력구성의 정치이다. 하나는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가”를 묻고, 다른 하나는 이제 무엇으로 통치할 것인가”를 묻는다. 두 질문은 모두 중요하지만 서로 충돌한다.
이 충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키아벨리의 사상을 직접적으로 떠올릴 필요가 있다. 마키아벨리는 정치에서 도덕적 선의보다 중요한 것은 권력을 실제로 획득하고 유지하며 질서를 만들어내는 능력이라고 보았다.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기존 질서를 단순히 계승하는 존재가 아니라, 필요하다면 그것을 해체하고 새로운 질서를 창출하는 창건자일 수 있다고 보았다. 이 관점에서 보면 이재명 대통령의 정치적 행보는 단순한 ‘마키아벨리즘’적 계산이 아니라, 새로운 정치 질서를 구성하려는 창건자의 문제의식으로 읽힌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재명 대통령이 때로는 특정 상징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공격하는 방식으로 정치적 재편을 시도한다는 점이다. 이른바 문조털래유”와 같은 상징은 단순한 언어유희나 감정적 표현이 아니라, 기존 민주진영 내부의 권위와 정통성을 재배열하기 위한 정치적 장치로 기능한다. 이러한 방식은 도덕적으로 불편함과 부정적 감정을 유발할 수 있다. 특히 기존 지지층의 기억과 정체성을 건드리는 방식이기 때문에, 그것은 단순한 비판을 넘어 상징적 해체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정치의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상징적 공격 역시 권력의지의 한 형태로 해석할 수 있다. 마키아벨리적 의미에서 새로운 질서를 창출하려는 정치인은 기존 질서를 지탱하던 상징과 권위를 약화시키거나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문조털래유”와 같은 표현은 바로 그 지점에서 등장한다. 그것은 기존 민주진영의 상징적 중심을 흔들고, 새로운 정치적 중심을 형성하려는 시도이다. 다시 말해, 이는 단순한 감정적 공격이 아니라 재건축 정치의 일부로서 작동하는 권력의 전략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기존 민주당의 역사적 정통성을 그대로 이어받는 대신, 그것을 재배열하고 재구성하려 한다. 이는 단순한 배신이나 단절이라기보다, 마키아벨리가 말한 ‘새로운 질서의 창출’이라는 정치적 과제에 가깝다. 기존의 지지층과 상징질서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안정적일 수 있지만, 동시에 새로운 권력 기반을 형성하는 데에는 한계를 가진다. 따라서 이 대통령은 기존 질서를 활용하면서도 그것에 얽매이지 않는 방식으로 자신의 통치 기반을 구축하려 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더 미드웨이에서 열린 샌프란시스코 AI 서밋 에서 샌프란 AI 선언 을 발표하고 있다. 2026.7.25, 연합뉴스
이런 점에서 모두의 대통령”이라는 구호는 단순한 통합의 수사가 아니라, 새로운 정치 질서를 정당화하는 언어로 읽힌다. 마키아벨리에게서 중요한 것은 군주가 어떻게 사랑받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안정적인 권력과 질서를 만들어내느냐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통합 노선 역시 기존 지지층의 감정적 충성에만 의존하지 않고, 더 넓은 통치연합을 구성하려는 시도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기존 민주진영 내부의 정체성 정치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유시민의 비판은 기존 질서의 연속성과 정당성을 강조하는 입장이다. 유 작가는 민주진영의 역사적 기억과 코어 지지층의 헌신을 정치의 중심에 두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마키아벨리의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입장은 안정성을 제공하는 동시에 새로운 권력 형성을 제약하는 요소가 될 수도 있다. 기존 질서를 지키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것이 새로운 정치적 현실에 대응하지 못할 경우 오히려 권력의 약화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코어 지지층”이라는 개념도 다시 해석할 필요가 있다. 코어 지지층은 단순한 지지 기반이 아니라, 기존 정치 질서의 정당성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이다. 그러나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특정 집단에 과도하게 의존할 경우 오히려 권력이 불안정해질 수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이재명 대통령이 코어 지지층을 넘어서는 통치연합을 모색하는 것은 단순한 배신이 아니라, 권력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도 읽힌다.
물론 이러한 재구성의 정치가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마키아벨리 역시 새로운 질서를 창출하는 군주가 가장 큰 위험에 노출된다고 보았다. 기존 질서를 지키려는 세력의 저항과, 아직 새로운 질서에 완전히 편입되지 않은 대중의 불확실성이 동시에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정치 역시 이러한 이중의 위험 속에 놓여 있다. 기존 지지층의 신뢰를 잃을 위험과, 새로운 지지 기반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할 위험이 동시에 존재한다.
따라서 이 논쟁의 핵심은 도덕적 옳고 그름이 아니라, 어떤 정치 질서가 실제로 형성될 것인가에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재건축 정치가 성공한다면, 그는 기존 민주당의 틀을 넘어서는 새로운 통치 질서를 구축한 정치인으로 평가될 것이다. 반대로 실패한다면, 그는 기존 지지층과 새로운 지지층 모두를 충분히 결집시키지 못한 채 정치적 기반을 약화시킨 사례로 남을 것이다.
유시민의 비판 역시 같은 맥락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그것이 단순한 내부 비판을 넘어, 새로운 정치 질서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필요한 견제와 균형의 역할을 한다면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기존 질서의 방어에만 머문다면, 변화하는 정치 현실 속에서 점차 영향력을 잃을 가능성도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느 한쪽의 도덕적 우위를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 어떻게 구성되고 작동하는지를 냉정하게 바라보는 일이다. 정치란 본질적으로 질서를 만들고 유지하는 행위이며, 그 과정에서 기존 질서와 새로운 질서 사이의 긴장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이재명 대통령의 정치와 유시민의 비판은 바로 이 긴장의 서로 다른 표현이다.
결론적으로 볼 때, 이번 논쟁은 증축과 재건축 중 무엇이 더 옳은가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기존 질서를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질서를 창출할 것인가라는 정치의 근본적인 질문이다. 마키아벨리가 보았듯이,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일은 언제나 위험하지만 동시에 정치의 핵심적인 과제이기도 하다.
민주주의의 성숙은 갈등이 사라질 때가 아니라, 이러한 갈등이 정치적 질서의 재구성으로 이어질 때 이루어진다. 유시민은 역사성의 이름으로 말하고, 이재명 대통령은 통합과 재구성의 이름으로 말한다. 중요한 것은 이 두 흐름이 충돌하는 과정에서 어떤 새로운 정치 질서가 형성되는가이다. 그 결과에 따라 증축과 재건축의 의미 역시 다시 정의될 것이다.정용주 서울천왕초교장 jyj@mindl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