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담보서 녹색채권 ‘찬밥’…헤어컷 8.7%, 평균의 2배 [환경] 한국은행 담보체계에서 녹색채권은 전체 담보자산보다 높은 헤어컷을 적용받는 반면, 회사채·공공기관채 담보의 절반 이상은 화석연료·고배출 채권이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출처 = 한국은행 인스타그램
한국은행 담보시장에서 녹색채권이 일반채권보다 불리한 평가를 받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녹색전환연구소와 포지티브머니는 10일 공동 보고서를 통해 2025년 녹색채권의 평균 헤어컷이 8.7%로, 전체 담보자산 평균 4.3%의 2배를 넘었다고 밝혔다.
친환경 자금조달 수단인 녹색채권이 한국은행 담보체계에서는 전체 평균보다 더 높은 할인율을 적용받고 있다는 의미다.
녹색채권 담보가치 더 깎였다…전체 평균의 2배
은행은 일시적으로 자금이 부족하거나 결제 과정에서 담보가 필요할 때 한국은행에 보유 채권을 맡긴다. 한국은행은 가격 하락이나 처분 손실에 대비해 채권 시장가치의 일부를 깎아 담보로 인정하는데, 이를 ‘헤어컷’이라고 한다.
2025년 녹색채권의 평균 헤어컷은 8.7%로 전체 담보자산 평균 4.3%의 두 배를 넘었다. 100만원짜리 담보를 단순 비교하면 전체 평균 기준으로는 95만7000원의 가치가 인정되는 반면, 녹색채권은 91만3000원에 그친다. 녹색채권에 적용되는 담보 할인폭이 더 크다는 뜻이다.
격차는 최근 들어 커졌다. 2022년에는 전체 담보자산 평균과 녹색채권의 헤어컷이 모두 3.9%였지만, 녹색채권 헤어컷은 2023년 6.7%, 2025년 8.7%로 높아졌다. 보고서는 이런 차이가 녹색채권의 담보 활용 유인을 떨어뜨리고, 결과적으로 채권 수요와 기업의 자금조달 여건에도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담보 문 넓혔더니 고탄소 53.1%…녹색은 1.9%
한국은행은 코로나19와 2023년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를 거치며 금융기관의 유동성 확보를 돕기 위해 적격담보 범위를 넓혔다. 특히 2023년에는 공공기관채와 은행채, 우량 회사채 등을 자금조정대출 적격담보에 추가했다.
한국은행은 금융위기를 거치며 적격담보 범위를 국채 중심에서 은행채·회사채·공공기관채까지 단계적으로 확대해왔다. 출처: 녹색전환연구소·포지티브머니, 「중립의 역설: 한국은행 담보체계의 탄소 편향과 개선 방안」.
이에 따라 회사채와 공공기관채의 담보 인정액은 2020년부터 2025년까지 4.5배 늘었다. 하지만 2025년 말 해당 담보의 53.1%는 화석연료·고배출 업종 채권이었고, 녹색·지속가능채권은 1.9%에 그쳤다. 녹색·지속가능채권 비중은 2021년 4.1%에서 오히려 절반 이하로 낮아졌다.
편중은 전력·가스 공기업 채권에서 두드러졌다. 전력·가스·수도·폐기물 업종은 국내 총부가가치의 2.6%를 차지하지만, 2023~2025년 회사채·공공기관채 담보에서는 21.0%를 차지했다. 2025년 한전채 비중만 13.2%였고, 가스공사채까지 합치면 약 18%였다.
보고서는 이 같은 편중이 한국은행의 담보 기준과 국내 에너지 산업 구조가 맞물린 결과라고 분석했다. 한국은행은 기후요인이 아니라 채권 종류와 신용등급, 잔존만기를 기준으로 담보가치를 정하는데, 이 과정에서 신용도가 높은 공공기관채가 유리한 위치를 차지한다. 여기에 한전과 가스공사 등 에너지 공기업의 화석연료 의존도가 높아 국내 에너지 산업의 탄소집약적 구조가 담보시장에도 반영됐다는 설명이다. 2024년 한전과 발전자회사들의 화석연료 발전 비중은 63.4%로 국내 전체 발전의 56.9%보다 높았다.
금융회사 발행 채권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났다. 보고서는 금융배출량과 화석연료 금융 비중 등을 기준으로 금융기관을 분류한 결과, 2019~2025년 한국은행에 담보로 맡겨진 금융기관 발행 채권의 73.0%가 고탄소 금융기관 채권이었다고 밝혔다. 녹색채권 비중은 1.2%였다.
2025년 말 한국은행의 회사채·공공기관채 담보 가운데 화석연료·고배출 채권은 53.1%를 차지한 반면, 녹색·지속가능채권은 1.9%에 그쳤다. 출처: 녹색전환연구소·포지티브머니, 「중립의 역설: 한국은행 담보 체계의 탄소 편향과 개선 방안」
녹색채권 72.8% 적격”…실제 활용은 2.4%
녹색채권이 한국은행 담보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활용이 낮았던 것은 아니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회 서면 답변에서 2025년 말 국내 녹색채권의 72.8%가 한국은행 적격담보 요건을 충족한다고 밝혔다. 상당수 녹색채권이 제도상 담보로 들어올 수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실제 활용률이었다. 2025년 비녹색채권 발행잔액 가운데 한국은행 담보로 인정된 비율은 5.8%였지만 녹색채권은 2.4%에 그쳤다. 담보로 쓸 수 있는 채권은 많았지만 실제로 들어온 비율은 비녹색채권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보고서는 한국은행의 담보평가 기준에서 기후·환경 요인이 빠져 있는 점을 원인으로 짚었다. 담보 인정 여부와 헤어컷은 채권 종류와 신용등급, 잔존만기 등을 기준으로 정한다. 녹색채권이라고 별도 혜택을 주지 않고, 고탄소 채권이라고 추가 불이익을 주는 구조도 아니다. 보고서는 이런 ‘탄소무차별적’ 기준이 시장에 이미 자리 잡은 고탄소 자산의 우위를 그대로 담보시장에 옮길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해외 중앙은행은 이미 기후요인을 담보정책에 반영하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지속가능연계채권을 적격담보로 인정하고, 기후리스크가 높은 기업채의 담보가치를 추가로 깎는 ‘기후 팩터’를 도입했다. 영란은행도 석탄 관련 기업 채권을 담보에서 제외하고 기업채에 전환위험을 반영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인민은행은 녹색금융채를 정책대출 담보에서 우대해왔다.
보고서는 한국은행도 녹색채권을 담보체계의 별도 범주로 명시하고, 기후·환경 영향을 적격성과 헤어컷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녹색채권에는 우대 기준을 두고, 고탄소 자산에는 추가 할인율을 적용하는 방식이다. 담보 자산의 기후·환경 정보를 정기적으로 공개하는 방안도 권고했다.
최기원 녹색전환연구소 경제전환팀장은 구조적으로 녹색을 홀대하고 화석연료를 우대하는 양상이 실증적으로 드러난 만큼 담보체계 개선을 위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