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질서 수호·실질적 생활 개선…룰라의 2중 과제 [사회혁신] 브라질 시민은 룰라에게 다시 권한을 맡겼다. 2026년 10월 25일 대통령선거 결선투표에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Luiz Inácio Lula da Silva, 1945~) 대통령은 51.79%를 얻어 네 번째 당선에 성공했다. 앞선 글에서 살펴보았듯, 보우소나루 계열의 재집권은 저지되었지만 그들을 떠받친 조직과 이해관계는 남았다. 이제 물어야 할 것은 다시 선택받은 정부가 그 권한으로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가이다. (브라질 고등선거법원, 2026.10.26.)
룰라 정부는 고용과 소득에서 성과를 냈다. 결선 이전에는 노동시간을 줄이고 주당 이틀의 유급휴일을 보장하는 헌법 개정도 이루어졌다. 생활 개선을 요구한 시민에게 제도적 변화로 응답한 성과다. 그러나 생활비와 빚의 부담, 범죄의 위협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로 남았다. 높은 이자 비용은 정책 재원을 압박했고, 의회와의 협상은 개혁의 내용을 바꾸었다. 금융·사법기관을 둘러싼 의혹과 연금제도의 감독 실패는 국가가 시민의 돈과 권리를 제대로 지키는지 묻게 했다.
선거 결과만으로 각 정책이 승리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단정할 수는 없다. 시민은 헌정질서에 대한 태도와 정부의 성과, 자신의 생활과 앞으로의 기대를 함께 판단한다. 재선은 통치할 권한을 다시 부여하지만, 개별 정책과 의혹에 대한 검증을 끝내지는 않는다. 정부에는 성과를 이어가고,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풀며, 확인된 잘못을 고칠 책임이 남는다.
극우의 헌정파괴와 민주정부의 정책적 한계를 같은 무게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 차이를 이유로 현 정부의 책임을 덮을 수도 없다. 시민이 맡긴 권한은 헌정질서를 지키는 동시에 생활과 권리를 개선하라는 요구를 담고 있다.
2026년 10월 16일 브라질 의회에서 열린 노동시간 단축 헌법 개정 공포식에 참석한 룰라 대통령과 의회 지도부. 개정안은 임금 삭감 없이 주당 유급휴일을 이틀로 늘리고 최대 노동시간을 단계적으로 40시간까지 줄이도록 했다.(사진: Kayo Magalhães/Câmara dos Deputados.)
■ 고용과 소득은 나아졌지만, 어떤 불안이 남았는가
브라질은 남미 최대 경제국이다. 경제 전체의 크기는 한국보다 크지만, 1인당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한국의 약 30%다. 환율과 물가 차이가 있으므로 이를 생활수준의 차이로 그대로 읽을 수는 없다. 다만 경제의 덩치와 시민 한 사람의 살림은 다르다. 소득이 어떻게 분배되고 생활에 필요한 서비스가 얼마나 제공되는지를 함께 보아야 한다. (IMF, 『세계경제전망』, 2026.4.; 세계은행, 세계개발지표)
소득의 불평등도 오랜 문제다. 성장의 과실이 고르게 돌아가지 않는 구조를 한 정부의 임기 안에 바꾸기는 어렵다. 그만큼 정부가 누구의 부담을 먼저 줄이고 어떤 보호를 강화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시민도 무엇이 나아졌고 어떤 변화가 지체되는지 알아야 정부를 평가할 수 있다. (세계은행, 「브라질 지니계수」, 2026.10.10. 확인)
출처: 세계은행, 세계개발지표의 GDP·1인당 GDP 계열; 브라질 지리통계원(IBGE), 국내총생산 발표(2026.3.3.), 연간 고용통계(2026.1.30.), 소비자물가 발표(2026.1.9.); 브라질 중앙은행(BCB), 재정통계 (2026.9.30.). 주: 금액은 미국 달러 기준이다. 부채비율은 한 해의 명목 경제 규모와 비교한 빚의 크기다. 이자와 적자는 통합 공공부문 기준으로, 총부채와 포괄 범위가 다르다.
고용과 소득의 개선은 뚜렷하다. 2025년 연평균 실업률은 보우소나루 정부 마지막 해인 2022년보다 4.0%포인트 낮아졌다. 취업자의 평균 근로소득도 물가 변동을 고려한 실질 기준으로 전년보다 5.7% 늘었다. 일자리가 늘고 구매력도 나아졌다. 생활의 불안이 남았다고 해서 이러한 성과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 (IBGE, 2026.1.30.)
출처: 세계은행, 세계개발지표의 GDP·1인당 GDP 계열; IBGE, 연간 고용통계(2026.1.30.) 및 소비자물가지수 과거 계열; 브라질 중앙은행, 「재정통계」(2026.1.30.); 브라질 재무부, 거시경제 전망자료 (2026.2.).주: 임기 전체 평균이 아닌 두 연도의 비교다. 코로나19와 이후 회복 등 서로 다른 여건을 고려해야 하므로 차이를 모두 정부 정책의 효과로 해석할 수는 없다. 달러 표시 금액은 환율 변동의 영향을 받는다.
생활 개선은 소득의 증가만을 뜻하지 않는다. 얼마나 오래 일하고 얼마나 쉴 수 있는지도 중요하다. 브라질 의회는 결선 이전인 10월 16일, ‘6일 근무·1일 휴무’ 체제를 폐지하는 헌법 개정을 공포했다. 임금 삭감 없이 주당 유급휴일을 이틀로 늘리고, 주당 최대 노동시간을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단계적으로 줄이는 내용이다. 공포 두 달 뒤에는 주당 이틀의 휴식과 42시간제가 적용되고, 그로부터 1년 뒤 40시간제로 전환하도록 했다. (브라질 하원, 2026.10.16.; 브라질 상원, 헌법개정안 221/2019 처리 기록)
이 변화는 대통령과 의회만의 성과가 아니다. ‘노동 너머의 삶’을 뜻하는 비다 알렝 두 트라발류(Vida Além do Trabalho, VAT) 운동은 장시간 노동에 대한 당사자들의 경험을 모아 노동시간 단축을 공적 의제로 확산했다. 시민의 요구와 의원들의 입법 활동, 정부의 지지가 결합해 제도의 변화로 이어졌다. 시민은 정책을 기다리는 수혜자에 머물지 않고 변화를 이끌었다. (아젠시아 브라질, 「비다 알렝 두 트라발류 운동으로 노동자들을 모은 전직 판매원」, 2026.10.19.)
하루의 휴식이 더 생긴다는 것은 가족과 보내고 건강을 돌보며 공부할 시간이 늘어난다는 뜻이다. 돌봄과 가사노동을 함께 감당하는 사람에게는 더욱 절실한 변화다. 다만 자영업자와 독립적으로 일하는 사람에게 같은 혜택이 자동으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고용관계가 있어도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자에게는 실효성 있는 감독과 구제가 필요하다. 법에 담긴 권리가 실제 휴식으로 이어져야 한다. (브라질 하원, 2026.10.16.; 『폴랴 지 상파울루』, 2026.10.16.)
이 정책이 역전승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는 따로 검증해야 한다. 입법이 완료되었다고 생활의 변화까지 실현된 것도 아니다. 시행 과정에서 임금과 휴식이 보장되는지, 줄어든 노동시간의 부담이 업무 강도나 다른 불이익으로 전가되지 않는지 살펴야 한다. 재선 이후 정부가 책임져야 할 일에는 이미 만든 제도를 제대로 작동시키는 과제도 포함된다.
고용과 노동권의 진전과 별개로 생활비와 빚의 부담은 남았다. 물가상승률이 낮아진다는 것은 가격이 더 천천히 오른다는 뜻이지, 식료품값과 집세가 예전 수준으로 돌아간다는 뜻은 아니다. 일부 품목의 가격이 내려가더라도 오랜 기간 누적된 상승분은 살림을 압박할 수 있다. 시민은 장을 보고 집세를 낸 뒤 얼마가 남는지로 형편을 판단한다. (로이터, 2026.9.26.)
빚도 쓸 돈을 줄였다. 중앙은행 자료를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2026년 6월 주택담보대출을 제외한 가계의 원리금 상환 부담은 소득의 26.6%로 사상 최고 수준이었다. 소득 100 가운데 약 27을 빚 갚는 데 쓰는 셈이다. 모든 가구가 이만큼 상환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소득이 늘어도 생활에 쓸 여유가 부족할 수 있는 이유를 보여준다. 대출을 쉽게 받게 하는 것과 빚의 부담을 낮추는 것은 다른 과제다. (로이터, 2026.8.28.)
정부도 이자 부담에서 자유롭지 않다. 브라질은 1980년대 외채위기 속에서 채무 재조정을 거듭했고, 1987년에는 외국 상업은행에 대한 중장기 외채의 이자 지급유예를 선언했다. 오늘의 재정 상황을 당시 위기와 동일시할 수는 없다. 다만 부채와 이자의 부담이 현 정부에서 처음 생긴 문제는 아니다. (IMF, 『침묵의 혁명: IMF 1979~1989』, 2001, 제10장)
빚의 크기만으로 그 부담을 판단할 수도 없다. 적용되는 금리와 만기, 채무의 구성에 따라 같은 규모의 빚도 다른 비용을 낳는다. 다음 표는 국가별 부채와 이자 비용을 구분해 보여준다.
출처: 부채비율은 IMF, 재정점검보고서 통계부록 표 A7(2026.4.) 및 브라질 국가보고서 (2026.7.). G7 이자 비용은 OECD, 경제전망 제119호의 캐나다 재무부 재수록 자료(2026.6.). 브라질 이자 비용은 중앙은행 재정통계 (2026.9.30.).주: 브라질과 G7의 이자 비용은 기준 기간과 포괄 범위가 다르므로 정확한 배수 비교를 위한 수치가 아니다. G7은 이자수입을 차감하기 전 비용이다. 표 1·2의 브라질 부채는 국내 정의, 이 표의 부채는 IMF 정의여서 수치가 다르다.
브라질 중앙은행 통계에서 2026년 8월까지 최근 12개월의 전체 재정적자는 GDP의 약 9.5%였지만, 이자 비용을 빼면 약 0.6%였다. 이자의 무게가 크다는 뜻이다. 표의 8.86%는 채무에 적용되는 금리가 아니라 해당 기간의 이자 비용을 명목 GDP와 비교한 값이다. (브라질 중앙은행, 「재정통계」, 2026.9.30.)
이자 부담이 클수록 기존 서비스를 유지하면서 새로운 투자를 늘리기 어렵다. 연금과 공무원 보수 등 계속 부담해야 할 비용도 있다. 교육과 의료, 미래 산업과 범죄 예방에 더 투자하려면 세입 확대와 지출 조정, 추가 차입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 IMF도 부채비율을 낮춰 필요한 투자에 쓸 여력을 확보하되 사회지출은 보호하라고 권고했다. (IMF, 브라질 연례협의 결과 발표, 2026.7.23.)
제약이 크다고 정부의 책임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재정의 부담이 모든 시민에게 같은 방식으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다. 누구에게 세금을 더 걷고 누구의 보호를 유지할지는 정부와 의회의 선택이다. 시민에게 필요한 것은 어려움에 대한 설명과 함께 그 어려움을 줄일 정책이다.
■ 범죄를 막을 국가는 어디에서 실패하는가
생활을 위협하는 것은 물가와 이자만이 아니다. 브라질 일부 지역에서 범죄조직은 주민의 이동과 생업, 생활서비스까지 통제한다. 살인율이 낮아져도 무장조직의 허락 없이 장사하거나 다른 업체의 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렵다면 안전을 체감하기 힘들다.
제1수도사령부(Primeiro Comando da Capital, PCC)와 코만두 베르멜류(Comando Vermelho, CV)는 교도소에서 형성되어 마약 거래와 지역 지배권을 둘러싼 거대 범죄망으로 성장했다. 리우데자네이루의 민병대에는 전·현직 경찰관 등 국가기관과 연결된 인사들이 참여한다. 이들은 보호를 내세워 돈을 거두고 가스·교통·인터넷 공급까지 장악한다. 주민은 범죄집단뿐 아니라 그들과 연결된 공권력도 두려워해야 한다. (인사이트 크라임, PCC·CV 조직 소개, 2026.10.10. 확인; 영국 내무부, 「브라질 조직범죄집단 현지조사 보고서」, 2024.12.)
교도소에서는 같은 구조가 재생산된다. 과밀과 폭력 속에서 국가가 안전을 지키지 못하면 수감자는 갱단의 보호에 의존한다. 갱단은 이를 조직원 모집과 외부 범죄 지휘에 이용한다. 범죄를 끊어야 할 시설이 조직을 키우는 통로가 된다. 수감자를 늘리는 것만으로 범죄조직을 약화시키기 어려운 이유다. (브루킹스연구소, 「브라질 조직범죄의 국제화」, 2024.1.24.; 세계은행, 『라틴아메리카·카리브 경제보고서』, 2025.4.)
수사에서도 한계가 드러난다. 시민단체 소우 다 파스(Sou da Paz)가 자료를 확보한 16개 주와 연방구에서, 2023년 고의 살인사건 중 이듬해까지 규명된 비율은 36%였다. 열 건 중 네 건에도 못 미쳤다. 자료가 불완전한 10개 지역은 제외되었다. 또한 용의자를 확인해 형사기소한 사건을 기준으로 삼았으므로 유죄판결률이나 처벌률은 아니다. 처벌의 강도를 논하기에 앞서 범인을 찾고 증거를 확보하는 단계부터 제대로 작동하는지 물어야 한다. (소우 다 파스, 「불처벌은 어디에 있는가」 제8판 관련 발표, 2025.10.6.)
범죄의 영향은 마약에 그치지 않는다. 브라질 공공안전포럼(Fórum Brasileiro de Segurança Pública, FBSP)은 범죄조직이 연료·주류·담배·금 등 합법 경제와 맞닿은 시장으로 활동을 넓히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들은 탈세와 자금세탁, 감독의 허점을 이용한다. 경찰과 세무당국, 금융감독기관이 따로 움직여서는 돈줄을 끊기 어렵다. (FBSP, 『상품을 추적하라: 브라질의 상품 추적과 조직범죄 대응』, 2025)
보고서가 이들 시장과 코카인 거래, 휴대전화 절도·온라인 사기 등을 합쳐 제시한 추정 규모는 3,481억 헤알이다. 2022년 브라질 GDP와 비교하면 약 3.4%이며, 같은 해 달러 기준 경제 규모에 적용하면 약 660억 달러에 맞먹는다. 다만 서로 다른 연도의 자료와 일부 피해액 추산을 합친 값이므로, 이를 갱단의 순이익이나 현재의 확정된 범죄수익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 범죄와 관련된 시장·피해 규모를 가늠하는 비교치다. (FBSP, 같은 보고서, 6·58쪽; IBGE, 2024.11.6.; GDP 대비 비율과 달러 환산 규모는 필자 계산)
브라질에서 특히 경계해야 할 것은 거대한 경제적 기반과 주민의 일상을 지배하는 힘이 결합한다는 점이다. 주민은 돈을 빼앗길 뿐 아니라 무엇을 사고 어디에서 일하며 누구에게 도움을 청할지도 제한받는다. 치안은 생명과 재산을 넘어 시민이 자신의 생활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치안의 개선에는 수사와 교도소 관리, 자금세탁 차단과 주민 보호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 높은 이자 부담은 이런 투자에도 제약이 된다. 그러나 돈을 더 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국가기관과 범죄집단의 유착을 끊고, 주민이 보복을 두려워하지 않고 신고할 수 있어야 한다. 재원 확보와 국가기관의 개혁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브라질의 일상적인 경찰 업무는 주정부가 주로 맡는다. 치안의 변화를 대통령 개인의 공과로만 돌릴 수는 없지만, 여러 주와 국경을 넘는 범죄망에 대한 연방정부의 조정 책임은 남는다. 룰라 정부는 2026년 5월 ‘조직범죄에 맞서는 브라질’ 프로그램을 출범시켰다. 범죄조직의 자금 차단, 무기 밀매 대응, 살인 수사의 질적 개선, 교도소 보안 강화를 주요 과제로 삼았다. (브라질 대통령령 제12,966호, 2026.5.12.; 브라질 국가사법위원회, 2026.5.12.)
대책의 출범은 성과의 입증이 아니다. 살인사건의 규명이 늘었는지, 범죄수익을 차단했는지, 공권력의 유착에 책임을 물었는지 확인해야 한다. 신고자와 주민이 보복으로부터 보호받는지도 중요하다. 정부가 무엇을 발표했는지와 시민이 얼마나 안전해졌는지는 구분해 평가해야 한다.
플라비우 보우소나루(Flávio Bolsonaro, 1981~)는 선거에서 강경한 처벌과 대형 교도소 건설을 앞세웠다. 당장의 보호를 원하는 시민에게 호소력 있는 약속이었다. 그가 패배했다고 안전에 대한 요구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재선에 성공한 정부는 범죄조직을 제압하면서 경찰의 자의적 폭력도 통제하고, 수사·기소·주민 보호가 작동하는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 (로이터, 2026.10.1.)
2026년 5월 12일 브라질리아에서 열린 ‘조직범죄에 맞서는 브라질’ 프로그램 출범식에서 서명한 문서를 들어보이는 룰라 대통령. 브라질 정부는 범죄조직의 자금 차단과 무기 밀매 대응, 살인 수사와 교도소 보안 강화를 추진했다.(사진: Marcelo Camargo/Agência Brasil.)
■ 개혁을 바꾼 타협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경제와 치안의 구조를 바꾸려면 법과 예산, 여러 기관의 협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대통령의 당선이 의회 다수의 확보를 뜻하지는 않는다. 브라질에서는 여러 정당과의 협력이 통치의 중요한 조건이다.
이러한 ‘연립 대통령제’가 반드시 정책혼선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정당 지도부의 권한과 협상 방식에 따라 안정적인 협력도 가능하다. 노동시간 단축처럼 협상을 통해 권리를 확대할 수도 있다. 따라서 타협의 성립 자체를 성과나 실패로 판정해서는 안 된다. 무엇을 지켰고 무엇을 양보했으며, 그 결과 누구의 권리와 부담이 달라졌는지를 살펴야 한다. (리몽지·피게이레두, 「연립 대통령제의 제도적 기반」, 『루아 노바』 제44호, 1998)
룰라는 2022년 대선에서 과거 경쟁자였던 제라우두 아우키민(Geraldo Alckmin, 1952~)을 부통령 후보로 선택했다. 정권교체를 위한 연합이었지만, 공동의 선거 목표가 환경·재정·사회정책의 합의까지 보장하지는 않았다. (로이터, 2022.5.7.)
환경 인허가 법안은 개혁을 둘러싼 힘의 차이를 보여준다. 2025년 8월 룰라는 절차를 완화하는 법안 일부를 수용하면서 63개 조항에는 거부권을 행사했다. 환경단체들은 수용된 내용도 환경 통제를 약화시킨다고 비판했다. 이어 11월 의회가 거부권을 상당 부분 뒤집자 정부는 사법적 대응을 검토했다. 정부가 받아들인 완화와 의회가 되살린 완화를 구분해야 책임을 정확히 물을 수 있다. (로이터, 2025.8.8.; 브라질 상원, 2025.11.27.; 아젠시아 브라질, 2025.11.28.)
의회의 선택은 생활비에도 영향을 주었다. 2025년 6월 의회는 해상풍력 법안에 삽입된 일부 조항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을 뒤집었다. 로이터는 이 조항들이 향후 전기요금에 부담을 줄 수 있다고 보도했다. 시민의 지출에는 정부의 물가정책뿐 아니라 입법부의 결정도 반영된다. (로이터, 2025.6.17.)
대통령에게는 수용한 조항의 이유를, 의회에는 거부권을 뒤집은 근거를 물어야 한다. 정부가 좌절된 개혁을 다시 추진할 대안을 마련했는지도 판단해야 한다. ‘의회 때문에 어렵다’는 설명으로 책임을 마칠 수는 없다. 반대로 의회가 결정한 모든 결과를 대통령의 의지로 설명해서도 안 된다.
선택의 근거와 검토한 대안이 공개되어야 시민도 타협의 필요성과 결과를 판단할 수 있다. 공개만으로 충분하지는 않다. 환경 보호와 생활의 안정처럼 당초 지키려던 목적이 얼마나 남았는지까지 평가해야 한다. 선거에서 이길 연합을 만드는 일과 집권 뒤 약속한 변화를 지속하는 일은 서로 다른 과제를 요구한다.
■ 의혹을 밝히고 피해를 고치는 정부인가
공적 기관의 공정성을 검증하는 일도 생활 개선과 분리할 수 없다. 감독이 실패하면 시민의 돈과 권리가 직접적인 피해를 입는다. 의혹을 독립적으로 밝히고, 피해를 회복하며, 같은 잘못을 막을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이 기준은 정치적 유불리와 관계없이 적용되어야 한다.
마스터 은행(Banco Master) 금융사기 수사에서는 정치권과 법조계에 지급된 돈이 논란이 되었다. 로이터가 확인한 자료에는 여러 정치적 배경의 인사와 법률사무소가 등장했다. 수령자들은 적법한 서비스의 대가라고 해명했다. 지급 사실만으로 뇌물이나 부당한 영향력 행사를 단정할 수는 없다. 계약의 실체와 업무 내용, 감독·정책 결정과의 관계를 조사해야 한다. (로이터, 2026.4.9.)
알레샨드리 지 모라이스(Alexandre de Moraes, 1968~) 대법관과 은행의 관계, 그의 부인이 운영하는 법률사무소의 계약도 의혹의 대상이 되었다. 플라비우는 아버지를 소재로 한 영화 제작비와 관련해 부패·돈세탁 의혹으로 수사받았다. 두 사람을 둘러싼 의혹의 내용과 절차는 다르며, 각각 위법행위를 부인했다. 확인된 거래와 수사 중인 의혹, 입증된 범죄를 구분해야 한다. (로이터, 2026.9.11.; 9.15.)
모라이스가 보우소나루의 쿠데타 모의 사건 재판을 이끈 공로도 검증의 예외를 허용하지 않는다. 그를 둘러싼 의혹이 룰라 대통령의 범죄를 입증하거나 보우소나루의 헌정파괴 책임을 지우는 것도 아니다. 각자의 행위에 각자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사법기관의 의혹을 대통령이 지휘해 결론 낼 수는 없다. 정부에 물을 책임과 독립된 수사·사법기관에 물을 책임은 구분해야 한다. 정부는 법적 권한 안에서 자료 제공과 조사에 협조하고 부당한 개입을 피해야 한다. 감독기관과 사법기관은 결정의 근거를 밝히고 이해충돌의 가능성을 검증받아야 한다. 정치적 공격에 이용된다는 이유로 의혹을 덮어서도, 의혹이 있다는 이유로 범죄를 확정해서도 안 된다.
연금 부정공제 사건에서는 행정부의 책임이 더 직접적이다. 국가사회보장원(Instituto Nacional do Seguro Social, INSS)이 지급하는 연금에서 수급자의 동의 없이 단체 회비 등이 빠져나간 의혹이 드러났고, 2025년 5월 담당 장관이 사임했다. 조사 대상 기간은 두 정부에 걸쳐 있었다. 룰라 정부에서 처음 시작되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집권 뒤에도 피해를 막지 못한 책임은 남는다. (AP통신, 2025.5.2.)
정부와 관계기관은 부당 공제액의 전액 환급을 추진하는 합의를 체결했고 대법원은 이를 승인했다. 정부가 피해 회복에 나선 점은 평가해야 한다. 다만 환급 절차를 마련했다고 피해 회복이 끝난 것은 아니다. 누락되거나 지연된 환급은 없는지, 동의 없는 공제를 허용한 감독 체계는 고쳐졌는지까지 확인해야 한다. (로이터, 2025.7.3.)
은행 사건에서는 독립적인 사실 규명이, 연금 사건에서는 피해 회복과 감독 체계의 개선이 필요하다. 재선으로 이 책임이 소멸하지는 않는다. 잘못이 확인되면 책임을 가리고 제도를 고치는 것이 다시 권한을 맡은 정부의 의무다.
다시 맡겨진 권한은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가
룰라 정부의 성과와 한계는 함께 보아야 한다. 고용과 실질소득은 개선되었고, 노동시간 단축은 법적 권리로 구체화되었다. 그러나 생활비와 빚의 부담, 범죄조직의 지배, 감독 실패는 남았다. 성과를 인정하면서 더 나은 정책을 요구하는 것은 모순이 아니다.
재선은 지난 임기의 모든 선택에 대한 승인이 아니다. 정부는 이미 만든 노동권을 실제로 보장하고, 가계부채 부담을 줄이며, 범죄조직과 공권력의 유착을 끊어야 한다. 금융·연금 감독의 허점도 막아야 한다. 개혁의 명칭보다 누구의 권리가 강화되고 누구의 부담이 줄었는지가 판단의 기준이다.
높은 이자 비용과 의회의 저항은 실제 제약이다. 정부는 무엇을 시도했고 어디에서 막혔으며 어떤 대안을 추진할 것인지 밝혀야 한다. 성과를 낸 정책은 제대로 시행하고, 부작용이 확인된 정책은 고치며, 남은 과제에는 일정과 책임 주체를 제시해야 한다. 어려움을 설명하는 일과 그 어려움을 줄이는 일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한국의 출발 조건은 다르다. 표 3의 일반정부 총부채 비율은 브라질보다 낮다. 정부는 반도체 호황 등에 힘입어 2027년 국세수입을 584.4조 원으로 편성했다. 2026년 추경예산보다 약 168.9조 원 늘어난 규모다. 이미 걷힌 초과세수가 아니라 다음 해의 수입 전망이다. 전망이 실현되는지와 함께, 늘어난 재원 중 얼마를 지속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도 따져야 한다. (재정경제부, 「2027년 국세수입 예산안」, 2026.9.1.)
재정 여력이 넓다고 좋은 정책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미래 산업과 교육, 주거와 돌봄 가운데 무엇을 먼저 할 것인가. 호황이 꺾일 때를 대비해 얼마를 남기고 채무 부담을 얼마나 줄일 것인가. 선택마다 혜택을 받는 사람과 미뤄지는 과제가 달라진다. 정부는 그 근거와 대안을 밝히고 결과에 책임져야 한다.
브라질은 제약된 재원 속에서 누구의 부담을 먼저 줄일지 결정해야 한다. 한국은 넓어질 수 있는 재정 여력을 누구의 생활과 어떤 미래를 위해 사용할지 결정해야 한다. 조건은 다르지만 시민이 맡긴 권한으로 우선순위를 정하고 그 결과에 책임져야 한다는 점은 같다.
한국 시민은 계엄과 헌정파괴에 맞서 탄핵과 정권교체를 이루었다. 새 정부에 맡긴 과제는 헌정파괴의 책임을 묻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권력기관의 개혁과 생활의 개선이 뒤따라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당선 직후 약속한 ‘억강부약의 대동세상’도 강자의 특권을 줄이고 약자의 삶을 보호하는 정책으로 증명되어야 한다. (이재명, 당선 후 대국민 연설, 2025.6.4.)
룰라의 재선은 민주정부가 다시 일할 기회를 얻은 결과다. 재선 이후의 평가는 약속한 변화를 얼마나 실현하느냐에 달려 있다. 시민의 생활을 개선하고 잘못을 고치는 일은 극우의 위협에 대응하는 데도 필요하지만, 그 위협과 무관하게 정부가 수행해야 할 책임이다. 선거에서 받은 권한은 그 책임을 실행할 권한이다.
다음 글에서는 이러한 국내의 불만과 갈등 속에서 극우세력이 해외의 우호 세력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살펴본다. 국제행사와 인맥, 정치적 지원과 외국 정부의 압력이 국내 정치에서 어떤 힘으로 작동하는지 추적한다.
※ 외국어 자료의 한글 제목은 필자가 옮긴 것이다. 이자 비용은 발생주의 통계로 실제 현금 지급액과 다를 수 있으며, 브라질 중앙은행 통계에는 외환스와프 손익 등이 반영된다. 범죄경제의 약 660억 달러는 GDP 대비 비율에 2022년 달러 기준 GDP를 적용한 규모로, 헤알화 추정액을 특정 시점의 환율로 직접 환산한 금액은 아니다.이병권 인문연구가 lbkwon2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