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서스펜스를 품다 [뉴스] 임미성 재즈가수
일반적으로 우리에게 ‘긴장’이나 ‘공포’로 해석되는 ‘서스펜스(Suspense)’의 원뜻은 ‘허공에 매달림’이다. 여기서 매달림은 다름 아닌 ‘지연’이다. 서스펜스 영화에서는 흔히 스릴러의 긴장감으로 다가오지만 원래의 의미처럼 일부러 시간을 지연시키며 결과가 아닌 과정에 의미를 두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빠른 길로 갈 수 있는데도 풍경을 감상하기 위해 느릿느릿 에둘러 길을 돌아가는 것이다. 마치 재즈에서 해결을 미루는 화음이나 멜로디를 늘이는 즉흥 연주로 과정 자체가 음악이 되는 것처럼.
우연성 넓힐수록 풍부해지는 시와 재즈의 선율
이처럼 과정을 즐기는 서스펜스는 결말에 다다르기 전 ‘우연성’에 마음을 여는 작업이기도 한다. 제1차 세계대전 후 다다(Dada)운동에서 시인인 트리스탕 차라(Trisan Tzara)는 놀라운 시도를 선보인다. 신문을 잘게 잘라 상자에 넣고 거기에서 무작위로 뽑아낸 단어를 배열하여 시를 지은 것이다. 필자 역시 몇 년 전 갤러리 공연에서 관객이 불러준 단어로 즉흥시를 만들어 스캣으로 연주했는데 관객들의 반응이 무척이나 뜨거웠다.
필자의 갤러리 공연.
상자에서 단어를 뽑아 시를 만들고, 객석에서 관객들이 선택한 단어로 시와 스캣을 만든 원동력은 우연성을 열어놓았다는 데에 있다. 시와 재즈는 리듬의 세계이기 때문에 우연성을 넓힐수록 시는 깊어지고, 선율은 풍부해진다. 그러나 우연성을 추구하는 재즈에서도 글 전체를 꿰뚫는 핵심적인 모티브로 불리는 ‘붉은 실’이 중요하다. ‘붉은 실’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목적 달성에 치중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서스펜스다.
은유(metaphor)의 어원이 ‘옮겨 나르다’이고, 의미가 다른 곳으로 옮겨지는 도중의 상태가 서스펜스(Suspense)의 뜻인 ‘매달림’임을 상기한다면 작가들의 은유 속에서도 서스펜스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문학비평가인 스탠리 피시(Stanley Fish)의 책 『문장의 일』에서 그는 배관공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꽉 막힌 글을 보면 어떻게 시원하게 뚫을 것인지 평생 고민해 왔다고 말하고 있는데, 막힌 문장 뚫는 작업을 배관에 멋지게 비유하고 있다. 그 뚫림은 막힌 곳에서 오래 머물며 매달린 뒤에야 마침내 찾아온다.
도착 미루며 지연을 즐기는 서스펜스적 대화
얼마 전 사람들과 모인 자리에서 한 교수님이 재즈는 어떻게 해야 쉽게 다가갈 수 있어요?”라는 질문을 주셨는데 나는 대답 대신 이렇게 질문을 되돌려 드렸다. 아무런 선입견 없이 그냥 ‘이게 뭘까?’ 하고 궁금해 하는 게 재즈와 친해지는 방법이 아닐까요?” 그러자 어느 분이 그럼 불교에서 말하는 화두, ‘이뭐꼬(이 뭣고?)’와 같은 거네요?” 하며 다른 분들과 함께 박수를 쳐 주셨다.
내가 질문에 답을 바로 건네지 않고 함께 길을 돌아가는 대화를 택한 것은 지연의 과정이 필요한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그분이 떠올린 화두 역시 답을 건네는 대신 질문을 품고 가는 방식이니, 그날의 대화는 이미 서스펜스를 지니고 있었던 셈이다. 대화의 서스펜스적 요소라 할 수 있는 뜸 들이기, 돌려 말하기, 침묵과 말 줄임, ‘은유로 표현하기’는 모두 결론이라는 도착을 미루며 지연 자체를 즐기는 데에 있지 않을까?
긴장을 지연시켜 공포를 연출한 히치콕
총성 그 자체엔 공포가 없다. 공포는 오직 그것을 기다리는 시간 속에 있다.” 이것은 스릴러의 거장 히치콕의 널리 알려진 명언이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1954)은 창밖 이웃집을 몰래 훔쳐보는 주인공 제프리의 상상과 현실을 헷갈리게 하는 전개로 엔딩까지 긴장이 고조되는 작품이다. 다른 영화 (1958)은 주인공의 고소공포증을 카메라 기법으로 극대화하고 있다. 현대 공포 영화의 시작을 알린 (1960)는 현악기의 선율만으로도 극강의 공포를 자아내고 있으며 영화 (1963)에서는 새의 날갯짓과 울음소리만으로도 긴장과 공포를 불러 일으킨다. 히치콕의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잔혹함 대신 멈추지 않는 긴장감이다. ‘폭탄이 설치된 사실을 보여주고 폭발 직전까지 관객의 조바심을 극대화하는 것’이 바로 그가 제시한 서스펜스다. 위험을 미리 알고 기다리는 긴장, 그의 공포는 사건이 아니라 기다림에 있다.
히치콕
인생에서 지루한 부분을 모두 잘라낸 것이 드라마(극)”라는 히치콕의 말을 입증하듯 그의 영화는 긴장과 연상의 연속이다. 침묵과 기다림 속에 공포가 서서히 퍼져 나온다. 그러나 이러한 극강의 공포 속에서도 그가 의도한 것은 ‘유익한 충격’이었다. 히치콕은 문명의 과보호 속에 자라나는 현대인의 무감각을 제거하고 싶었다고 한다. 어쩌면 더 이상 놀라지도 감탄하지도 않는 이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싶었던 것이리라. 히치콕적(Hitchcockian)인 연출기법(보이지 않는 것을 관객이 연상하는 동안 긴장이 이어지는)은 지금까지도 마틴 스콜세지 등 많은 현대 거장 감독들에게도 깊은 영향을 주고 있다.
의도한 것을 보여주지 않고, 연상하게 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스릴러 영화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에 적용되는 중요한 원리가 아닌가. 감탄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현대인은 이제 기다림마저 내려놓을지 모른다. 히치콕이 초점을 둔 것이 이 기다림이었다. 관객은 공포가 끝나기를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더 오래 기다리게 하기 위해, 이전에 없던 연출기법으로 고도의 긴장과 공포를 조성했다. 그는 관객이 위험을 미리 알고 있으면서도 긴장이 지연되는 상태가 ‘공포’임을 알았다. 히치콕의 영화가 스릴러의 교과서로 활용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해결되지 않고 떠있는 듯한 울림의 ‘서스펜디드 코드’
재즈는 과정의 지연, 결코 서두르지 않는 결말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서스펜스를 품고 있다. 허비 행콕의 「Maiden Voyage」(1965)는 서스펜디드 코드(sus코드)가 중심인데 이 코드는 해결되지 않고 떠 있는 듯한 울림을 내고 있다. 참고로 서스펜디드 코드는 서스펜스와 같은 어원이다. 재즈 피아니스트인 아마드 자말의 「Poinciana」(1958)는 최면을 건 듯 반복되는 리듬 위에 피아노 선율을 얹어 이제까지의 전통적인 연주 방식에서 벗어난 여백과 침묵으로 강렬함을 증폭시킨다. 그가 보여주는 것은 침묵 속에서 연상되는 기대감과 긴장이다.
아마드 자말
색소폰 연주자인 웨인 쇼터의 「Footprints」(1966)는 어두운 단조의 블루스로 낮게 깔린 분위기가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제목이 시사하고 있는 것은 ‘단순한 발자국’이 아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문화적 뿌리(아프리카의 전통과 서구 유럽 음악의 만남)에 대한 메시지가 내재되어 있는 서사시다. 전통과 혁신의 앙상블, 간결함 속에 펼쳐지는 역동적 에너지 속에서도 해결을 서두르지 않는 시작이 긴장을 만든다.
재즈의 의도된 지연, 긴장의 연속은 경이로움 되찾기 위한 것
앞서 언급한 것처럼 서두르지 않는 결말과 지속되는 긴장, 직접 말하지 않고 연상으로 이어가는 힘이 ‘재즈의 서스펜스’를 이룬다. 히치콕의 연출 기법처럼 관객이 연주를 들으며 연상하는 동안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긴장이 이어지는 것이다.
침묵은 기다림을 요구한다. 기다림은 때로 긴장과 기대감으로 머문다. 그러다 다시 침묵과 함께 기다림이 시작된다. 예상한 것과 예상치 못한 것 사이에서 과정은 지연되고, 목적 달성은 요원해진다. 시간이 흐른 뒤 끝이 다가오는 순간, 이 모든 것을 꿰는 ‘붉은 실’을 찾아야 한다. 서스펜스의 본질인 의도된 지연, 긴장의 연속은 결국 경이로움을 되찾기 위함이다. 이것이 재즈가 서스펜스를 품은 이유다. 그렇다면 자주 감탄하고 놀라거나, 기꺼이 기다릴 수 있을 때, 일상의 무기력과 무감각도 떨쳐 낼 수 있지 않을까?임미성 laelld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