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정권 쟁취 여전사 C. 팽크허스트 말 안 먹히면 행동 [사람들] 기다리라는 말에 지친 사람들
역사는 종종 위대한 남성들의 이야기 로 포장된다. 하지만 조금만 먼지를 털어 보면 그 뒤편에는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리라는 거냐? 며 책상을 뒤엎던 여성들이 있다. 그 가운데 가장 불같은 인물이 바로 영국의 크리스타벨 팽크허스트(Christabel Pankhurst, 1880~1958)다.
그는 예의 바른 청원보다 소란스러운 행동이 훨씬 빨리 세상을 움직인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세상이 조용한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시끄럽게 만들어 귀를 열게 하면 된다는 발상이었다. 오늘날 기준으로도 논란이 될 만큼 과감했고, 당시 기준으로는 거의 사회 전체를 뒤흔드는 폭풍이었다.
크리스타벨은 맨체스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리처드 팽크허스트(Richard Pankhurst, 1834~1898)는 여성의 권리 확대를 주장한 변호사였고, 어머니 에멀린 팽크허스트(Emmeline Pankhurst, 1858~1928)는 세계 여성운동사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었다. 흔히 집안이 운동권이었다 고 하면 농담처럼 들리지만, 이 집안은 정말 그랬다. 식탁에서 밥보다 권리 이야기가 더 많이 올라왔을지도 모른다.
1910년경의 팽크허스트(위키피디아)
말보다 행동이 세상을 흔든다
1903년 에멀린은 여성사회정치연합을 만들었고, 크리스타벨은 사실상 전략가가 되었다. 당시 영국 의회는 여성에게 참정권을 주겠다는 약속을 수없이 했다. 그러나 결과는 늘 다음에 , 조금만 더 , 때가 아니다 였다.
정치인들의 검토 하겠다 는 말이 얼마나 오래 갈 수 있는지는 지금도 잘 알려져 있다. 어떤 약속은 숙성기간이 김치보다 길고, 어떤 개혁은 화석이 될 때까지 검토만 한다. 그래서 크리스타벨은 더는 기다리지 않았다.
그는 말보다 행동 을 외쳤다. 연설을 방해하고, 시위를 벌이고, 정부건물을 향해 돌을 던지는 과격한 행동도 마다하지 않았다. 체포는 일상이었고 감옥도 여러 차례 드나들었다. 정부는 투옥으로 운동을 꺾으려 했다. 그러나 여성들은 감옥에서 단식으로 맞섰다. 그러자 당국은 강제로 음식을 먹이는 잔혹한 방법까지 사용했다. 국제사회는 큰 충격을 받았다.
1913년에는 이른바 고양이와 쥐 법 이라 불린 법률이 시행되었다. 단식으로 건강이 악화된 여성을 일단 석방했다가 회복되면 다시 체포하는 방식이었다. 이름은 귀엽지만 내용은 전혀 귀엽지 않았다. 고양이는 놀고 있었지만 쥐는 목숨이 오갔다.
1911년 런던 워털루 역에서의 에멀린 팽크허스트(왼쪽부터), 크리스타벨, 실비아(위키피디아)
논란 속에서도 역사를 바꾸다
크리스타벨은 경찰의 체포를 피해 프랑스로 건너가 운동을 계속 지휘했다. 직접 현장에 없으면서도 조직을 움직이는 능력은 놀라울 정도였다. 물론 그의 방식은 비판도 받았다.
온건한 여성운동가 밀리센트 포셋(Millicent Fawcett, 1847~1929)은 지나치게 과격한 행동이 오히려 역효과를 낸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영국 사회에서도 크리스타벨을 위험한 선동가로 보는 시선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역사는 종종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만약 그들이 끝까지 예의를 차렸다면 여성 참정권은 그렇게 빨리 주어졌을까.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이 시작되자 크리스타벨은 독일과의 전쟁 지원으로 방향을 바꿨다. 여성들의 국가 기여를 통해 시민권을 인정받아야 한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 결과 1918년 영국은 일정한 재산기준을 갖춘 30세 이상 여성에게 처음으로 선거권을 부여했다. 이어 1928년에는 남성과 같은 조건인 21세 이상 모든 여성에게 참정권이 확대되었다.
에멀린은 완전한 평등을 눈앞에 두고 세상을 떠났지만, 크리스타벨은 그 결실을 지켜볼 수 있었다.
1908년 12월 22일 감옥에서 풀려나는 크리스타벨 팽크허스트를 위한 환영 행사를 준비하고 있는 샬럿 마시, 도로시 래드클리프, 엘사 가이(위키피디아)
민주주의는 저절로 자라지 않는다
후대에서는 그의 평가가 엇갈린다. 어떤 이는 민주주의를 앞당긴 혁명가라고 부른다. 다른 이는 지나친 대립으로 사회갈등을 키웠다고 말한다. 둘 다 틀리지 않을 수 있다. 민주주의는 꽃길만 걸어서 만들어진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세상을 바꾸는 사람은 흔히 왜 이렇게 시끄럽냐? 는 비난을 먼저 받고, 수십 년 뒤에는 교과서에서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는 한 줄로 정리된다. 역사란 참 이상한 편집기술이다.
그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은 여성 참정권만이 아니다. 정치는 허락받는 일이 아니라 시민이 요구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다.
권력은 스스로 권한을 내줄 만큼 친절하지 않다. 시민이 끈질기게 요구할 때 비로소 조금씩 움직인다. 민주주의는 자동판매기가 아니라 근육과 비슷하다. 쓰지 않으면 약해지고, 계속 써야 유지된다.
1905~1910년경의 팽크허스트(위키피디아)
오늘 한국이 배워야 할 것
오늘 한국이 여기서 얻을 시사점은 적지 않다. 한국은 법과 제도 면에서 여성의 정치참여가 크게 확대되었지만, 지방의회와 국회, 기업의 의사결정 구조, 학계와 공공기관의 지도부를 보면 여전히 갈 길이 남아 있다. 숫자가 늘었다고 곧바로 문화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법은 하루 만에 바꿀 수 있지만 인식은 한 세대가 걸리기도 한다.
또 하나 생각할 점은 갈등을 다루는 방식이다. 오늘 한국사회는 성별, 세대, 지역, 이념을 둘러싼 갈등이 첨예하다. 서로를 설득하기보다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는 일이 잦다. 크리스타벨의 삶은 사회 변화를 위해 때로는 강한 행동이 필요할 수 있음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운동이 사회적 공감과 연결되지 못하면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는 사실도 함께 보여준다.
그래서 한국은 그의 용기와 집념은 배우되, 갈등을 키우기보다 제도 개선과 사회적 대화를 함께 이어가는 지혜를 고민해야 한다. 권리를 요구하는 목소리와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함께 갈 때 민주주의는 더 단단해진다.
크리스타벨 팽크허스트는 세상을 조용히 바꾸려 하지 않았다. 그는 문을 두드리다 열리지 않으면 흔들었고, 흔들어도 열리지 않으면 사회 전체가 그 문을 바라보게 만들었다. 덕분에 영국 여성들은 투표소로 걸어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는 이런 질문 하나를 남긴다.
지금 한국에서 아직도 언젠가 를 기다리고 있는 권리는 무엇인가?
역사는 늘 그 질문을 외면한 쪽보다 불편하더라도 정면으로 마주한 쪽에 서 왔다.
1905~1912년의 애니 케니와 크리스타벨 팽크허스트(위키피디아)
김성수 시민기자 wadans@empa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