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슬러 영화④] 삶의 굴레에 맞선 부드러운 저항 [사회혁신] (편집자 주) 시민언론민들레는 서울국제휘슬러영화제를 공동주최합니다. 휘슬러영화제는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 침묵 당한 목소리를 스크린 위로 불러내는 영화제로, 2024년 첫걸음을 뗀 뒤 올해로 3회를 맞았습니다. 제3회 영화제는 23일부터 25일까지 사흘간 이화여대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열립니다. 올해는 약 260편이 출품된 가운데 18개 국 46편이 상영되고, 영화와 함께 4차례의 포럼도 마련됩니다. 슬로건은 너의 비밀을 말해봐 입니다. 민들레는 영화제의 의미를 독자와 함께 나누기 위해 영화제 기간까지 출품작 소개 글을 연재합니다.
엔카, 길은 시작된다(The Enka Road Begins) 공식 포스터. 2026.10.17. 서울국제휘슬러영화제 집행위원회
엔카, 길은 시작된다(The Enka Road Begins)|재키 우(Jacky Woo), 일본, 85분, 드라마
─영화 〈엔카, 길은 시작된다〉가 서울국제휘슬러영화제로 간 이유
세상의 비리와 부조리에 맞서 진실의 호루라기 를 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서울국제휘슬러영화제(SWFF). 올해로 3회를 맞이한 이 강렬한 저항의 영화제 상영작에 뜻밖의 영화 한 편이 이름을 올렸다. 평범한 주부의 일상과 가수 도전기를 그린 서정적인 정조의 일본 영화 〈엔카, 길은 시작된다〉다. 언뜻 영화제의 묵직한 고발성 모토와 어울리지 않아 고개를 갸우뚱할 수도 있겠으나 영화가 품은 내면을 들여다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거대한 권력에 대항하는 것만이 저항은 아니다. 매일의 일상을 버텨내며 비로소 나답게 사람답게 살고 싶다 고 목소리를 높이는 보통 사람의 발걸음이야말로, 우리 삶을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벽에 대한 가장 숭고한 저항이다.
재키 우 감독은 남편과 가게를 운영하며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만 보내던 평범한 중년 주부 료코(오카 미도리 분)의 지루하리만치 반복되는 보통의 삶을 결코 가볍게 다루지 않는다. 매일 가게에 나가 자리를 지키며 장사하고, 돌아와서는 밥하고 집안일하는 슴슴한 그녀의 하루는 감독의 시선을 통해 따뜻한 풍경으로 재탄생한다. 영화는 이 평범한 일상이야말로 인간 존엄의 백그라운드이자 뼈대임을 묵묵히 보여준다.
영화 엔카, 길은 시작된다(The Enka Road Begins) 중 한 장면. 2026.10.17. 서울국제휘슬러영화제
영화 엔카, 길은 시작된다(The Enka Road Begins) 중 한 장면. 2026.10.17. 서울국제휘슬러영화제
료코가 무대 위에서 토해내는 절창은 뇌리에 전율을 일으킨다. 절창은 가족을 위해 그리고 먹고살기 위해 묻어두었던 그녀만의 잃어버린 자아 를 세상에 드러내는 행위다. 누군가의 아내이자 엄마로 살아가며 자신의 이름을 잠시 잊었던 그녀, 그녀가 꿈을 찾아 사회적 편견과 차별 속에서 포기를 요구하는 현실에 타협하지 않고 용기를 내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해 내는 영화의 정조는 영화제의 정신과도 맞닿아 있다.
료코가 늦은 나이에 세상의 편견을 깨고 노래 경연 무대에 올라 사람들의 심금을 울릴 수 있었던 원동력 또한 화려한 무대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수십 년간 가족의 애환을 함께 소화하며 켜켜이 쌓아 올린 삶의 무게 그 자체다. 그녀의 목소리에 깊은 영혼의 울림을 실은 거름이 된 것이다.
익숙했던 삶과 잊고 있었던 꿈을 향해 나아가는 삶 사이에서 갈등은 누구나 한다. 그녀는 그 갈등에서 진정 소중한 것을 깨닫는다. 남편과의 사랑, 가족의 유대, 그리고 진실되게 살아갈 용기이다. 이는 매일을 성실하게 살아내는 보통의 존재들이야말로 삶이라는 가파른 언덕길(사카미치)을 가장 아름답게 정복하고 있는 위대한 주인공이라고 읽힌다. 우리가 진정으로 지켜야 할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 가슴 깊은 곳에 묵직한 여운을 남길 것이다.
글쓴이 김사이 시인. 2026.10.17.
일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재키 우(Jacky Woo) 감독은 인간의 소외, 가족애, 생명의 소중함을 따뜻하고 섬세한 시선으로 그려내는 휴먼 드라마의 장인 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해외 영화제에서 잇따라 수상하며 연출력을 인정받았다. 오는 25일 서울국제휘슬러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영화 〈엔카, 길은 시작된다〉도 휴먼 드라마의 맥을 잇고 있다. 가족의 유대와 인간적인 온기를 통해 절망보다는 용기로, 자극적 설정보다는 경계를 넘지 않는 휴먼 코미디로 정서적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며 완성도를 정점으로 끌어올렸다. 이 작품을 만날 관객들은 깨닫게 될 것이다. 가파른 삶의 언덕길을 묵묵히 버텨내고 마침내 내 안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당신의 일상이야말로, 그 어떤 투쟁보다 위대하고 아름다운 저항이라는 것을.
글/김사이(시인)
덧붙이는 글|휘슬러영화제는 시민의 힘으로 만들어가는 영화제입니다. 텀블벅에서 후원을 받고 있습니다. 침묵 당했던 목소리를 내는 영화에 관심 있는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 텀블벅 바로가기 링크 https://tumblbug.com/2026swff서울국제휘슬러영화제 집행위원회 swff20241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