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k 세부 정보
후지모리 정부 우경화에 힘 보태는 한국 방위산업[뉴스]
페루군 특수부대원들이 행진하는 모습. 세계 2위 코카인 생산국인 페루에 대해 미국의 마약 밀매 근절 압력이 높아지면서 군부의 영향력이 더욱 커지는 추세다. (위키피디아)
뉴욕 퀸즈에서 페루 이민자들과 대화하던 중에 코레아 부에노(Corea Bueno) 라는 말이 자주 튀어나왔다. 한국이 좋다는 뜻이다. 페루와 한국이 어떤 면에서 그들에게 엄지를 치켜세우게 하는지 직감으로는 알기 어려웠다.
후지모리 정부는 극우로 통한다. 이재명 정부는 세계 여러 곳에서 좌파 정부로 간주된다. 최근 나타나는 페루를 포함한 남미의 우경화를 말하는 블루 타이드 (푸른 물결) 속에서 한국은 왜 유독 좋은 나라로 꼽히는가?
답을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페루 이민자 다수는 후지모리 정부에 막연한 희망을 걸고 있었다. 자본주의, 더 구체적으로는 창의적이고 역동적인 페루인의 사업 마인드가 효과도 알 수 없는 좌파 정부의 사회보장 확대 정책에 눌려 있었다고 믿었다. 마치 병 속의 지니 와 같은 창업가 정신을 페루 사회에서 꿈틀대고 춤추게 하려면 최우선 과제는 치안 확보다.
세계 2위의 코카인 생산국 페루에서는 마약 밀매 갱단과 이를 저지하려는 공권력의 충돌 와중에 적지 않은 민간인들이 희생되고 있다. 한 어린 희생자의 관이 집을 나서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 갈무리)
페루의 치안 문제는 페루가 콜롬비아에 이어 세계 2위의 코카인 생산국이란 사정에서 비롯된다. 페루산 코카인은 세계 생산량의 약 25%를 차지하며, 그 대부분이 미국과 서방세계로 반입된다. 불법 마약 생산과 유통에 대한 정확한 통계를 기대하기 어렵지만, 페루 국내총생산(GDP)의 4~5%가 코카인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코카인으로 벌어들인 검은 돈은 세탁 과정을 거쳐 페루의 부동산 등 합법 산업으로 유입된다. 코카인 머니 로 운영되는 합법적 기업들도 세금을 내니 국가도 마약산업에 의존한다. 논리를 확대하면 군비에도 마약의 검은돈은 섞여 있다.
이 정도 규모의 부가 창출되는 산업이 평화롭게 유지될 수는 없다. 갱단에 의한 폭력이 만연한다. 2025년 한 해 페루에서는 2213건의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매일 6명이 살해된 셈이다. 대다수는 마약 밀매와 관련된 것으로, 이 중 80%가 총기 관련 사건이었다. 총잡이가 법이던 과거 미국 서부 무법지대를 떠올리게 한다. 같은 해 납치 사건은 1000~1400건으로 추산된다. 마약 밀매 조직 간의 세력 다툼으로 납치가 흔한 일이 됐다.
페루는 이 같은 치안 문제와 관련해 최근 정책 방향을 바꾸었다. 군대가 나서야 한다는 공감대가 우익 정권의 등장과 함께 확고해졌다. 페루 군은 국가의 안전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과거 반정부 무장세력과 전쟁을 벌이면서 인권을 탄압하고 민간인을 살상했다. 후지모리 정부를 지원하는 미국은 더 이상 군의 어두운 과거를 문제 삼지 말라고 한다. 마약 퇴치가 경찰력만으로는 될 수 없다는 생각을 반영한다.
페루는 코카 잎 재배를 막기 위한 군과 경찰의 작전을 증강할 계획이어서 애꿎은 민간인의 피해가 늘어날 것으로 우려된다. (Editora Perú / Creative Commons / Center for Latin American & Latino Studies)
마약 밀매 조직과 싸우려면 정부가 퇴치 작전을 수행할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안데스 산맥 깊은 곳에서 만들어져 아마존의 산길과 물길, 또 항공 수송로를 따라 나라 밖으로 옮기는 코카인 밀매 조직은 국제적이어서 국제 테러 조직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페루 정부는 마약 문제를 치안을 넘어 안보 문제로 인식한다.
실제로 페루의 마약 조직은 과거 반군과 손을 잡았다. 한때 마오쩌둥 사상을 신봉하며 페루 정부를 전복시켜, 역사적으로 천대받으며 생존을 위협받아 온 농민들을 해방시키겠다던 극좌 무장단체 센데로 루미노소 (빛나는 길)는 대놓고 마약 조직을 보호해 왔다. 이념 색채는 옅어지고 규모도 줄었지만 폭력성은 그대로다. 코카인 밀매의 최대 시장인 미국이 마약 조직과의 전쟁을 요구하는 상황에 군이 이제 작전권을 가질 수밖에 없다. 아버지 후지모리 정권이 저지른 인권 유린과 살상 행위의 악몽이 재연되지 않을까 우려를 갖게 된다.
후지모리 대통령은 안보와 치안 문제가 비상사태 선포를 요구한다며, 뒤늦은 대응 이 아닌 적시 예방 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비유하면 범죄가 의심될 때 일단 체포하고 사실 확인은 나중에 하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취임식에서 주요 군 인사들과 걸어 나오는 후지모리. 2026.7.28 AFP 연합뉴스
어두운 과거로 점철된 페루 군이 한국의 도움을 받아 이미지를 쇄신해 가고 있다. 작전 능력 못지않게 권위도 중요하다는 인식에서다. 헐고 구겨진 유니폼을 새것으로 갈아 입고 최신 무기를 갖추어야 령이 선다는 논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국 방산업계가 페루 군대의 얼굴에 화장을 해주고 어깨에 뽕 을 넣어주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한국과 페루 사이 군사 및 방위산업 협력은 매력적이다. 가격 경쟁력, 기술 이전 등도 강점이지만, 한국은 미국과 중국, 유럽의 방산 선진국들과 달리 다른 나라를 침략하거나 지배한 역사적 경험이 없다. 한국은 페루에 일종의 클린 파워 (Clean Power)다. 인터뷰하는 이들이 한국이 좋다며 엄지를 치켜 세운 이유다. 하지만 한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은 페루 군대가 마약 생산과 밀매 퇴치를 위해 민간을 상대로 강도 높은 작전을 펴고 피해자가 늘어나면, 한국의 클린 파워 이미지가 유지될지 알 수가 없다.
HD현대중공업이 페루 해군과 공동 개발 협약을 맺은 1500톤급 차세대 디젤-전기 추진 공격 잠수함(HDS-MGP 개념 모델). 페루군의 무기체계 현대화와 증강은 군의 영향력 증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HD현대중공업 제공)
한국 기업과 합작으로 건조할 페루의 잠수함, 또 페루 육군이 도입하는 전차와 장갑차가 마약 밀매 퇴치에 직접 투입되지는 않을 것이다. 후지모리 정부는 무기 체계를 현대화하고 증강해 군대의 존재를 더욱 부각시키려 한다. 한때 남미의 최대 구조적 취약점으로 여겨졌던 정치화된 군대, 쿠데타 망령에 시달리는 군부가 치안과 안보 도전에서 조국을 지켜낼 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한국이 이 과정에 간접적으로 힘을 보태고 있다.
한국이 페루와 군사 및 방산 협력을 늘려가며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이슈가 있다. 한국은 군사 독재의 폐해를 깊이 경험한 나라여서 더 민감해야 한다. 페루 군대는 과거에 대한 반성이 없는 집단으로 여겨진다. 지난해 군부는 과거 저지른 인권 탄압과 반정부 인사 납치, 고문, 살해에 대해 포괄적 사면을 받았다. 과거사를 정리하지 않고, 표백제로 세탁한 셈이다. 국가가 문제 삼지 않겠다는 이슈에 대해 반성하거나 방지책을 고민할 필요는 없다는 태도다. 역사를 모르면 되풀이한다는 경구가 페루에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
페루 육군은 한국의 K2 전차 54대와 차륜형 장갑차 141대 등 모두 195대를 도입할 계획이다. 사진은 지난 5월 28일 경기 포천시 승진과학화훈련장에서 열린 2026 합동화력훈련에 참가한 K2 전차가 120㎜ 활강포를 발사하는 순간. 2026.5.28 [사진공동취재단] 연합뉴스 자료사진
인권 침해와 탄압, 또 시민 살상 행위에 대한 기억을 지운 페루 군대는 다시 강압적인 대민 작전을 펴야 할 상황이다. 치안 유지와 사회 안정, 나아가 국가 번영을 위해 군이 더 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미국과 페루 사이에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후지모리 취임식에 크리스토퍼 랜다우(Christopher Landau) 국무부 부장관을 단장으로 하는 축하 사절단을 파견했다. 미국의 남미 정책과 관련해 트럼프의 의중을 꿰뚫는 것으로 인정을 받는 랜다우의 파견에 대해 국무부는 미국의 페루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며 양국 파트너십의 견고함을 강조 하는 의미라며, 트럼프 행정부는 후지모리 대통령과 협력하여 미국과 페루, 그리고 서반구 전체에 안보와 번영을 가져오기를 기대 한다고 했다.
현 후지모리 대통령의 아버지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페루 대통령 재임 당시 게릴라 소탕 작전으로 희생된 피해자들의 사진 판을 들고 행진하는 유가족들. 한국과 페루의 방산 협력은 과거 독재 정권의 도구였던 군부에 영향력을 실어주는 결과를 초래할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연합뉴스)
랜다우의 선물 보따리가 듬직했다. 후지모리 취임에 맞추어 미국이 발표한 팩트 시트 에 따르면 페루가 마약 밀매 퇴치에 적극 나서고 이를 위한 미국의 개입을 수용할 경우 돌아올 반대급부가 다채로웠다. 미국은 무역과 개발 사절단을 파견하고, 신흥 기술 분야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9월 리마에서 AI 정상회의를 개최하며, 광업 분야 협력 강화를 위한 핵심광물 실무그룹 을 만들고, 페루 광업 부문 재처리 공장 설립을 지원하며, 페루의 가공 기술과 정제 능력을 향상시키고 핵심광물 공급망을 강화할 것이라고 했다.
그 밖에도 우주 분야와 관련된 장밋빛 반대급부도 내놓았다. 미국은 과학, 교육 및 글로벌 우주산업 발전을 촉진해 온 수십 년간의 성공적인 협력을 더욱 확대해 나갈 것 이라며 미국과 페루의 번영과 안보를 강화하는 민간, 상업 및 국방 관련 우주 협력을 확대해 나가기를 기대한다 고 했다.
남미 마약 카르텔로부터 미국을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3월 7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 도랄에 있는 자신의 골프 리조트로 여러 나라 정상들을 불러들여 미주의 방패 행사를 열었다. 남미 국가들은 방패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군부의 활동 영역을 보장해야 한다. 마약 밀매 퇴치를 이유로 인권 탄압이 자행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2026.3.7 AP 연합뉴스
트럼프의 키워드는 안보와 번영 , 또는 치안과 번영 이다. 이 두 개념 중 방점은 물론 안보이다. 교량에 비유하자면 안보는 교각이고 번영은 상판이다. 당연히 교각이 상판의 크기와 형태를 정한다. 이 안보와 번영을 연결해주는 고리가 군대이다. 페루 군부는 기술력이 뛰어난 한국에 기대를 걸고 의지하는 형국이다.
트럼프 행정부 안에서 마약 생산과 밀매 퇴치를 위해 남미 국가들의 군대가 나서야 한다고 가장 강력하게 주장하는 인물은 스티븐 밀러 백악관 부비서실장 겸 국토안보보좌관이다. 지난 5월 그는 남미 정상들이 모인 자리에서 마약 조직들은 오직 군사력으로만 격퇴할 수 있다 고 못 박았다.
스티븐 밀러 백악관 부비서실장 겸 국토안보보좌관이 지난 5월 26일(현지시간) 워싱턴의 아이젠하워 오피스 빌딩에서 공화당 주 법무부 장관들과 사기 근절 대책에 관한 라운드 테이블 회의를 갖고 있다. 트럼프의 반이민 정책을 고안한 것으로 알려진 그는 남미의 마약 카르텔과 싸우기위해 군대가 전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2026.5.26 EPA 연합뉴스
밀러 보좌관은 마약 카르텔들에 대해 알카에다와 이슬람국가(IS) 대하듯 그만큼 잔혹하고 무자비하게 다뤄져야 한다 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 실세 중에 실세로 통한다. 한국 정부와 페루 군부의 밀접한 협력 관계가 트럼프 내지 밀러의 초강경 입장을 거드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한다.
미국이 바라는 대로 페루 정부는 마약 퇴치와 관련한 군부의 역할 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페루 군부는 1980년부터 2000년까지 반군 퇴치 작전을 수행하면서 심각한 인권 탄압을 저지르고 인명을 살상했다. 약 7만 명이 사망하고 2만 명이 실종됐다. 이 중 50%는 페루 군과 경찰의 소행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앞서 밝힌 대로 페루 정부는 이들을 사면해 책임을 묻지 않기로 했다.
디나 볼루아르테 전 대통령은 이 법을 통해 페루 정부와 의회는 테러와의 전쟁에서 군, 경찰, 자위대원들이 치른 희생을 인정 한다며 의심받지 말았어야 할 이들의 존엄성을 이제 되돌려드리는 것 이라고 했다. 워싱턴 소재 페루 전문가는 반군 퇴치 명분으로 공권력이 저지른 과거의 만행에 대한 사면은 페루를 베네수엘라와 니카라과 수준의 국제적 왕따 국가 (pariah state)로 전락시켰다고 비난했다.
치안 유지에 투입될 페루 합동군사령부 소속 페루 무장군(Fuerzas Armadas del Perú). 번영을 위해서는 치안이 필수적이며, 이를 위해 전쟁을 목적으로 훈련된 군이 동원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우려를 낳고 있다. (국제앰네스티 홈페이지 갈무리)
2025년 시행된 일괄 사면도 모자라, 올해 페루 의회는 군인 또는 경찰관이 임무 수행 중 저지른 범행(인권 침해와 탄압을 암시한다)에 대한 재판 권한을 군사법원으로 이관했다. 인권과 관련된 피의자는 민간 법원이 아닌 자신에게 익숙한 군대의 재판을 받는 것이다.
국제앰네스티 페루 지부는 이런 변화의 위험성을 지적하며 사법부의 독립성과 인권 침해 피해자들의 정의 실현 접근권을 심각하게 위협한다 고 비난했다. 유엔 인권최고대표도 유엔의 규정은 물론 국제법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이것이 한국 정부로부터 무력 수단을 구매하고 있는 페루 군부의 현주소이다.
페루 군대의 역할 확대는 이미 예고됐다. 후지모리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국민 안전과 관련해서 국가 비상사태 전선 을 선포할 계획이라며 이 기간 군이 치안 및 국내 통제에 대한 지휘권을 한시적으로 맡게 될 것 이라고 했다. 과거 페루 군부의 영향력이 진정한 의미에서 한시적 이었던 때는 없었다.
마약 사범들이 수용돼 있는 페루 형무소. 수용 능력을 넘어섰고, 인권의 사각지대로 통한다. 후지모리는 형무소를 추가로 건설하고, 페루 군부가 교정 업무를 관리하도록 하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형무소가 포로수용소가 될 것이라는 우려와 비난이 있다. (© ICRC / M. García Burgos)
그녀는 또 비상사태에 대해 뒤늦은 대응 이 아닌 적시 예방의 시대 를 열겠다고 했다. 이는 의회의 통제 기능을 의식하지 않고 행정부 권한을 최대화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이 적시 예방은 물론 군사적 처방이다. 영국 BBC 방송은 후지모리가 그녀의 아버지 시절 군이 맡았던 역할을 연상시키는 발언 을 했다고 평했다.
한 예로 후지모리는 새로운 형무소 9개를 신축할 계획인데, 형무소의 운영과 관리를 군에 맡기겠다고 밝혔다. 민간 교정 시스템의 군사화는 형무소를 포로수용소로 전락시킬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이것이 한국이 K-방산의 라틴아메리카 진출 파트너이자 교두보로 삼으려는 페루 군부의 현주소이다. 이 군부가 트럼프에 의해 다시 안보와 번영 을 위한 필수 도구로 등장했다. 페루 군부와의 방산 협력과 군부의 인권 침해 가능성은 별개라는 사고가 한국과 페루의 밀착을 돕고 있다.
페루의 마약 퇴치를 위한 군의 역할 확대가 우려되는 이유는 코카인 생산이 페루의 민간 농업 인력과 하나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생계를 위협받는 안데스 농민들에게는 대체할 농산물이 없다. 코카 잎 외에는 시장이 형성되어 있지 않다. 재배하는 일이 불법이 아닌 코카 잎을 불태우거나 밭을 파괴할 경우, 마약 퇴치 작전은 신제국주의로 규정되며 농민들의 반발을 불러올 것이다.
안데스 산중에서 재배한 코카 잎을 햇볕에 말리는 페루의 한 농부. 코카인 생산을 막겠다고 코카 잎 재배를 막으면 농민들은 생업에 위협을 받는다. 마약 중독에 쩔쩔 매는 미국의 문제를 페루 농부의 문제로 덮어씌운다는 비난이 있다. (AP=VOA 웹사이트)
농업과 광업이 주요 산업인 단순한 페루의 경제 구조 속에서 빈곤의 사슬에 얽매인 농민들은 유일한 생계 수단으로 오랫동안 코카 잎을 재배해 왔다. 불법이 아니다. 마약 퇴치 작전은 결국 농민들의 생계 수단을 파괴하는 미국의 횡포가 된다. 미국이 자국 내 마약 사용자 문제를 관리하지 못한 채 코카 잎 재배 농민들만 징벌한다는 반발이 강하다. 미국 내 문제를 페루 문제로 치환시켰다는 주장이 있다. 코카 잎과의 전쟁은 전형적인 양키 만행 으로 여겨진다. 반미주의가 코카 밭에서 자라는 것이다.
페루 군부는 늘 미국의 지원을 받았다. 코카인이 미국의 이익에 반했기 때문이다. 마약 중독으로 미국 사회를 병들게 하고, 미국을 제국주의자로 인식하게 하며, 특히 반정부 무장세력의 자금원이 되었기 때문에 미국은 페루 군대의 강경 대응을 지원했던 것이다.
이제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인권 탄압의 상징이었던 아버지 후지모리의 딸이 이끄는 우익 정권의 등장에 힘입어 군대의 전면 부상을 기대하고 있다. 이에 부응해 후지모리는 다시 군대에 치안 책임을 부여하고 군대에 대한 민간의 통제를 약화시키려 하고 있다.
페루 대통령 취임 축하 특사단의 단장인 더불어민주당 민홍철(왼쪽) 의원이 지난달 27일(현지시간) 후지모리 대통령에게 양국 우호 협력 관계를 한층 발전시키겠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하고 있다. 2026.7.28 외교부 제공 연합뉴스 자료사진
후지모리 취임식에 참석한 한국의 축하 특사단은 남미 최대 방산 협력 파트너인 페루와의 국방·안보 분야 협력을 심화해 나가고자 하는 의지 를 담은 대통령 친서를 전달했다. 대한민국을 2030년까지 세계 4대 방위산업 강국(G4)으로 올려놓겠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목표가 페루의 실정을 냉철하게 바라보아야 할 정부의 시야를 흐리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페루와 관련해 미국과 한국이야말로 동반자이다. 미국은 헬리콥터와 같은 마약 퇴치 작전에 필요한 전술적 장비를 제공하고 있다. 한국은 전략적 무기를 팔고 공동 제작해 군대의 기능과 존재감을 확장하고 있다. 페루의 군사력 증강 협력과 지원에서 미국이 미시라면 한국은 거시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31일 경주에서 열린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테레사 메라 고메스 페루 통상관광부 장관과 반갑게 손을 맞잡고 있다. 한국산 무기의 수출로 페루와 한국의 관계가 더욱 긴밀해졌음을 보여준다. 2025.10.31 연합뉴스 자료사진
뉴욕 퀸즈의 페루 이민자들을 상대로 한 취재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머리에 떠오른 단어가 있었다. 스페인 단어 마치스모(Machismo) 이다. 요즘 유행어로 상남자 라고 할 수 있다. 마치스모 또는 마초주의 정책은 겉으로 강한 분위기를 진하게 연출해 상대를 압도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이런 비유도 가능하다. 조직폭력배의 전신 혹은 반신 문신과 같다. 이들에게 문신은 이른바 연장 (무기)을 꺼내 보이기 전에 상대에게 공포를 심으려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다.
군에 의지해 강력한 치안 정책을 펴겠다고 예고한 후지모리에 대한 많은 페루 시민들의 우려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반후지모리 시위대의 모습. (AP=VOA 홈페이지)
큰 기대와 떠들썩한 축하 분위기 속에 두 나라 국기를 휘날리며 페루에 진출하는 한국의 방위산업 역시, 페루 군대의 몸에 새겨지는 문신이 될 수 있다. 한국산으로 증강된 무기로 업그레이드된 페루 군대가 과거처럼 안보 없이 번영 없다 는 구호를 외치며 인권 탄압의 길로 들어선다면, 이에 대한 대응책은 무엇인지 묻고 싶다. 무기와 인권은 별개, 또는 내정 간섭 안한다며 딴 데로 눈길을 돌릴 것인가? 이미 판 잠수함과 전차, 장갑차를 물리자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이길주 뉴욕통신원 kiljyi@gmail.com
최근 3주간 링크를 확인한 사용자 수
검색 키워드
키워드 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