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로그인   회원가입   초대장  
모니터링&뉴스레터   페투미X사회혁신
페투미X사회혁신   서비스 소개   아카이브   이야기   이용 안내
페이지투미는 사회혁신분야의 새로운 정보를 일주일에 3번, 메일로 발송해드립니다.

link 세부 정보

정보 바로가기 : 김지하 사형 정찰제 구형 …판결문, 공소장 오타도 베껴

김지하 사형 정찰제 구형 …판결문, 공소장 오타도 베껴
[사회혁신]
2026년 봄, 영국에서 『반헌법행위자열전』 4권을 펼쳤다. 최명부(崔明夫, 1941~2004) 항목에서 가장 충격적인 표현은 정찰제 판결 이었다. 1974년 민청학련·인혁당재건위 사건에서 중앙정보부가 정한 형량대로 검찰이 구형하고 법원에서는 그대로 형량을 선고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정찰제 판결 이란 말까지 등장했다. 심지어 공소장에 있는 오자(誤字)가 그대로 판결문에 나오기도 했다. 검찰관, 검사, 법원이 같은 오타까지 베껴 쓰는 그 시스템 안에서, 최명부는 1975년 4월 9일 8명의 사형을 만들어낸 공소장의 작성자였다.   최명부(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1941년 경기 파주 출생, 화려한 사법시험 동기들 최명부는 1941년 5월 23일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났다. 1963년 서울법대를 졸업하던 해 제16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했다. 동기로는 서익원(1940~1999), 송상현, 현홍주, 신건, 김도언 등이 있다. 1965년부터 3년간 수도경비사령부 군법회의 검찰관을 지냈는데, 이 군법회의 경력이 1974년 비상군법회의 검찰관으로 파견되는 발판이 됐다. 세계사 속의 동류, 정찰제 정의 의 집행자들 영국에서 이 장면을 들여다보면 비슷한 구조가 떠오른다. 소련 대숙청 시기, 모스크바에서 내려온 처형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지방법원들이 거의 동일한 판결문을 찍어내듯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정의가 미리 정해진 숫자를 채우는 행정절차로 전락한 것이다. 최명부가 참여한 정찰제 판결 시스템이 정확히 같은 구조다. 차이가 있다면 소련은 숫자였고, 한국은 오자(誤字)와 토씨까지 같은 문장이었다.   최명부(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1974년 민청학련·인혁당재건위, 8명의 사형, 18시간만의 집행 최명부의 반헌법 행위에 정점은 1974년 비상보통군법회의 검찰관으로서 민청학련·인혁당재건위 사건을 담당한 것이다. 그는 문호철(1937~1978), 송종의, 이규명(1934~1988), 강철선, 백광현과 함께 수사 및 공소장 작성, 기소, 공판을 맡았다. 1975년 4월 8일 대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된 8명에 대해, 18시간 만에 사형이 집행됐다. 국제법학자협회는 이 날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 로 선포했다. 최명부의 가혹함을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목사 정상복은 최명부에게 군법회의에서 일한 사람이니 까불지 말라 는 말을 들었고, 법정진술을 번복하자 따로 남겨 협박당한 후 밤늦게 구치소로 돌려보내졌다. 또 다른 피해자 나병식은 물고문을 당했다고 호소했지만, 최명부의 반응은 그놈들, 나쁜 놈들이구만 이라는 무심한 한마디뿐이었다. 2007년, 사형된 8명에 대해 검찰의 항소포기로 무죄가 확정됐다.   최명부(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1974년 진두현 사건, 2명 사형 집행 그리고 51년 만의 무죄 같은 해 최명부는 이재권, 정경식, 김영수와 함께 재일거류민단 부단장 진두현 간첩조작사건을 담당했다. 진두현, 박기래, 김태열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박기래는 전기고문, 물고문, 비행기고문을 당했다고 증언했다. 강을성은 1976년, 김태열은 1982년 실제로 사형이 집행됐다. 변호인 이병린은 보복으로 간통혐의 구속을 당했고, 한승헌 변호사도 구속됐다. 2023년 박기래, 2024년 이동현, 2025년 진두현·박석주까지 모두 무죄가 확정됐다. 진두현 사건은 51년 만에 완전히 뒤집혔다.   고 진두현 선생(유족 제공) 1975년 김지하 「고행-1974」, 공소장 변경으로 사형이 가능하게 만들다 최명부 반헌법 행위 가운데 가장 상징적인 것은 1975년 시인 김지하(1941~2022)의 「고행-1974」 필화사건이다. 인혁당재건위 사건이 조작됐다고 폭로한 옥중 수기를 반공법위반으로 기소한 최명부는, 4월 말 공소장에 재범자 특별가중처벌 조항 을 추가해 최고 사형까지 가능하도록 변경했다. 인혁당 8명이 처형된 지 3주도 안 된 시점이었다. 김지하는 이를 법정에 칼이 서 있다 고 표현했다. 죽음의 공포 속에서 그가 한 양심선언이 국제적 반향을 일으켰고, 이는 1991년 분신 정국에서 그가 했던 죽음의 굿판 발언의 씨앗이 됐다. 1990년 재판시효 만료로 면소 판결을 받았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투옥됐던 시인 김지하씨가 재심을 통해 39년만에 누명을 벗고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는 대통령 긴급조치 제4호 위반, 국가보안법, 내란선동 등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아 7년여간 옥살이를 한 김씨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2013.1.4. 연합뉴스 영국에서 2026년을 생각한다 영국에서 소련식 정찰제 정의 는 가장 위험한 사법 부패로 평가된다. 정의가 행정절차로 전락하는 순간, 사형은 더 이상 신중한 판단이 아니라 컨베이어 벨트 위에 있게 된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1960~ )의 비상계엄 선포를 영국에서 생중계로 보며 나는 최명부가 만든 정찰제 판결 을 떠올렸다. 정의가 미리 정해진 답을 받아 적는 절차로 변질될 때, 그 끝이 어디인지를 8명의 죽음이 증언한다.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그리고 그 법정의 방청석에는 우리가 앉아 있다. 참고문헌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 2026, 『반헌법행위자열전 1~4』, 사회평론아카데미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김성수 시민기자 wadans@empas.com


최근 3주간 링크를 확인한 사용자 수

검색 키워드


주소 : (12096) 경기도 남양주시 순화궁로 418 현대그리너리캠퍼스 B-02-19호
전화: +82-70-8692-0392
Email: help@treeple.net

© 2016~2026. TreepleN Co.,Ltd. All Right Reserved. / System Updated

회사소개 / 서비스소개 / 문의하기 /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