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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만물엔 영혼이 있다? 믿음 아닌 태도의 문제

만물엔 영혼이 있다? 믿음 아닌 태도의 문제
[칼럼]
11월 5일, 뉴질랜드의 케이프 팔리서(Cape Palliser)에서 대규모 고래 떼가 밤사이 좌초된 가운데, 한 학교 단체가 프로젝트 조나(Project Jonah) 직원들을 도와 좌초된 들쇠고래를 돌보고 있다.. 2026.11.5.  AFP 연합뉴스 내가 사는 지역의 동료 기후활동가들과 함께 데님(Denim. 인디고[청색] 염료로 염색한 실과 흰색실을 능직[twill]으로 엮어 만든 질긴 면직물) 리폼 작업을 시작했다. 중고 옷을 거래하는 장터마다 데님 의류가 많은데 그만큼 남녀노소 즐겨 입고 잘 안 닳기 때문이다. 한국 성인은 평균 4~7벌의 데님 의류를 갖고 있다고 한다. 데님은 다른 의류와 비교해 탄소 배출량이 유독 많다. 두껍고 튼튼하게 만들기 위해 많은 양의 목화 원사를 사용하는데 이 과정에서 대량의 살충제, 비료, 물이 소모된다. 데님 특유의 푸른색(인디고)을 내려면 원사를 수십 번 염색조에 담갔다 빼야 해서 가열과 건조에 엄청난 전력과 화석연료가 필요하다. 새 청바지를 부드럽게 만들고 자연스러운 물빠짐 효과를 내는 스톤워싱은 탄소배출을 급격히 끌어올리는 주범이다. 게다가 데님 산업은 세계적으로 가장 분업화된 공급망을 갖고 있어서 목화 재배, 방적, 제직, 염색 및 봉제 등이 모두 다른 곳에서 이뤄지므로 완제품이 나오기까지 수만 킬로미터를 이동한다. 따라서 청바지 한 벌의 전과정 탄소배출량은 15~33 킬로그램 CO₂e(이산화탄소 환산량)이며, 이는 자동차로 100 킬로미터를 주행할 때 나오는 탄소량과 맞먹는다.   데님 의류 가장 좋은 방법은 데님 의류를 오래 입는 것이다. 오래 입으라고 튼튼하게 만든 광부의 작업복이기도 하다. 현실은 다르다. 닳거나 해져서 못 입기도 하지만 대개는 싫증이 나거나 유행이 바뀌어서 옷장에 처박아두고 새 데님을 사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의 리폼 작업은 비교적 상태가 좋은 중고 데님에다 상괭이, 수달, 하늘다람쥐, 저어새 같은 멸종위기 동물의 모습을 패치로 만들어 붙이거나 수놓아서 닳은 곳을 보강하면서 디자인도 바꿔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다. 중고 데님도 멸종위기 동물도 꿋꿋이 살아남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브랜드명을 ‘꾸꾸시’로 지었고, 데님 리폼을 ‘사물 돌봄’이라고 부른다. 사물을 돌본다고? 재사용, 재활용(recycling), 새활용(upcycling) 등 기존 제품을 다시 쓰는 일을 일컬어 자원순환이라고 한다. 원료로 제품을 만들었다가 사용한 뒤 쓰레기를 만드는, ‘요람에서 무덤으로’ 가는 선형경제가 아니라 폐기물이 다시 원료가 되도록 ‘요람에서 요람으로’ 가는 순환경제의 일환이다. 그런데 자원순환에서 자원(resource)은 인간 중심, 경제 중심 용어이다. 인간이 살아가고 생산하는 데 도움이 되는 모든 유용한 요소(원료, 에너지, 노동력, 기술)를 뜻한다. 우리가 기후위기와 기후정의, 멸종을 걱정하면서 중고 데님을 고치는 일을 자원순환이라고 부를 때는 뭔가 부족함이 느껴진다. 우리 주변에서 우리의 생활과 생존을 돕고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은 자원이기보다 사물이다.  『존재와 시간』 마르틴 하이데거, 까치, 2025. 사물(Thing)을 철학적으로 정의한 마르틴 하이데거는 인간이 별다른 의식 없이 손에 쥐고 편리하게 사용하는 ‘도구로서의 사물’이 고장 나서 제대로 기능하지 않을 때 우리 몸의 연장처럼 자연스러웠던 상태를 벗어나 낯설게 눈에 들어오는 ‘존재로서의 사물’이 된다고 하였다. 망치질하는 동안 망치 자체는 물론 그것의 구조나 재질 따위에 대해서는 아무런 지식도 적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용할 수 없게 된 도구는 그것의 손안에 있음(도구성)을 잃고 단지 눈앞에 존재하는 물건으로 드러난다.”(『존재와 시간』) 사물을 쓸모로만 보지 않고 독립적인 존재로 다시 볼 때 사물은 ‘진리’를 드러내는 매개체라는 게 하이데거의 주장이다. 사물은 각자의 고유한 형식을 통해 실재와 우리를 연결하기 때문이다. 사물을 온전히 사람(person)처럼 대하는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동화에 나오는 어린이들은 동식물처럼 생명이 있는 존재만이 아니라 주전자, 빗자루와도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눈다. 조선 후기 수필인 「조침문(弔針文)」의 저자 유씨 부인은 27년간 쓰던 바늘이 부러지자 조문의 형식으로 슬픔을 표현한다. 아깝다 바늘이여, 어여쁘다 바늘이여, 굳세고 곧기는 만고의 충절이라 … 네 비록 물건이나 무심치 아니하면 후세에 다시 만나 평생 동거지정을 다시 이어….” 이렇듯 사물을 인격화하는 것은 어린이의 미숙함이나 과학기술이 발전하지 않았던 전근대의 유산일까? 단지 의인화하는 수사법의 일종일까? 만물에 영이 있다고 믿었던 원시 종교의 잔존물, 즉 철 지난 애니미즘일까?                                                     『애니미즘과 현대세계』 유기쁨, 눌민, 2023 신 애니미즘 기후위기가 촉발한 일군의 포스트휴머니즘 담론 중에는 ‘신 애니미즘’도 있다. 생태종교학자 유기쁨 박사의 책 『애니미즘과 현대세계』(눌민, 2023)은 우리를 새로운 애니미즘의 세계로 안내하는 좋은 입문서이다. 그는 자신의 경험에 바탕을 두고 논의를 시작한다. 책이 나오던 시점에서 8년 전 한반도 남쪽의 작은 시골 마을로 이주한 그는 닭을 키우고 정원을 가꾸는 가운데 동물과 식물이 얼마나 치열하게 자신의 생을 이어가고, 이를 위해 지능을 발휘하거나 환경을 능동적으로 활용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인간만이 이 세계라는 무대를 활보하는 배우라 상상하고 나머지는 무대장치나 일종의 배경 혹은 소품으로 여기는” 주류적 세계관의 오류를 절감했다.    『원시문화』 에드워드 버넷 타일러, 한국연구재단, 1871 저자는 자신이 번역했던 에드워드 버넷 타일러의 책 『원시 문화: 신화, 철학, 종교, 언어, 기술 그리고 관습의 발달에 관한 연구』(1871)에 대한 비판적 독해(1부)를 시작으로 새로운 애니미즘의 경향(2부), 로봇·AI 등 하이테크놀로지 시대의 생명성(3부)으로 나아간다. 타일러는 애니미즘을 ‘(땅에 밀접하게 깃들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 발견되는) 동물의 영혼, 식물의 영혼, 물체의 영혼에 대한 믿음’으로 정의하면서 인간과 비인간, 서구와 비서구, ‘문명’과 ‘야만’ 사이의 차이와 위계에 주목했다. 이에 비해 신 애니미즘은 오히려 두 가지 항을 가로지르는 공통점과 소통 가능성을 찾아낸다. 최근 AI에 흠뻑 빠진 이들에게는 AI의 인격성을 유추할 수 있는 3부에 관심이 가겠지만, 저자는 인간과 기계를 너무 쉽게 융합하는 경향(트랜스휴머니즘)을 경계했다. 그러다 보니 이 책의 핵심은 2부 ‘우리의 애니미즘: 무엇이 우리와 그들을 연결하는가’가 되었다. 애니미즘, 기후위기 속의 대안적 자연관 원시문화의 잔존물이 아닌 세계와 인간 연결방식 저자에 따르면 애니미즘은 기후생태문제가 점점 심각해지는 가운데 일종의 대안적 자연관으로서 다시 호명되기 시작했다. 애니미즘을 비인간에게도 인간과 같은 영혼이 있다고 믿는 전근대 원시 문화의 잔존물이 아니라 세계와 인간이 연결되는 풍부하고 다채로운 방식들 가운데 하나로 자리매김한다. 신 애니미즘에서 중요한 용어가 ‘사람(person)’이다. 흔히 사람과 인간(man)을 동의어로 여기지만 사람은 서구에서도 인간 이외의 다른 종을 가리키는 맥락에서 종종 사용되며(그레이엄 하비), 우리말 사전 역시 ‘어떤 지역이나 시기에 태어나거나 살고 있거나 살았던 자’(사람의 옛말 ’사ᄅᆞᆷ‘은 어간은 ’살다‘이다)로 설명한다. 인도네시아어 오랑우탄이 ’숲(우탄)의 사람(오랑)‘인 것처럼 우리는 인간사람일 뿐이다. 근대 서구적 인간관 개인이 있어야 관계 형성” 애니미즘 인간관 관계가 먼저 있고 나서 사람” 사실 인간이 무엇인지에 대한 규정도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달라진다. 현대인들에게 보편적 상식처럼 널리 용인되는 생각, 곧 신체적 경계로 구분되며 그 안에 마음, 정신, 영혼이 담겨 있는 불가분의 개인적 정체성을 강조하는 인간관은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근대 서구적 맥락에서 형성되고 널리 통용된 개념”이다. 서구적 사람다움의 핵심 속성은 개인성과 불가분성”인데 이는 개인성이 있고 나서야 관계가 형성되는 것”으로 본다. (p.168~169) 그러나 애니미즘 세계의 인간관은 전혀 다르다. 관계가 있어야 사람이며, 관계를 맺기 위해 사람으로 본다. 지역 생태계로부터 자신의 생계에 필요한 것들을 직접적으로 얻는 많은 이들은 비인간 환경에 대해 관계적 태도로 임하며, 환경 속의 다른 존재들을 소통 가능한 주체들로 대한다.” 타자를 알기 위해 타자를 사람으로 여기는 것”이다. (p.178~179) 다문화주의 아닌 다자연주의 지금 우리는 마트에서 말끔하게 비닐 포장된 고기를 사 먹지만 사냥을 해본 이들은 동물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 우리는 동물을 발견하고 동물을 바라보지만, 동물도 우리를 발견하고 우리를 바라본다.” 안다는 것은 항상 그리고 어디에서나 (상대방에게) 알려지는 것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 동물의 시점에서 우리 인간이 어떻게 보일 것인가를 생각해본다는 것은 동물을 자기 시점을 가진 존재로 인정한다는 뜻이기도 하다.”(p.209~210) 이는 브라질 인류학자 비베이루스 지 까스뜨루가 말하는 ‘관점주의(perspectivism)’와도 맥을 함께한다. 서구 근대의 존재론(자연주의)은 인간과 동물이 신체적으로는 연속적이지만(구성 원자가 같다) 정신적으로는 비연속적이라고 본다. 반면 아마존 원주민 등에서 나타나는 애니미즘은 인간과 동물이 같은 영혼과 내면성을 가졌으면서도(정신적 연속성) 겉모습과 신체적 특징이 다르기에(신체적 비연속성) 인간과는 다른 관점으로 세계를 바라본다는 것이다. 까스뜨루는 이 세계가 인간의 관점 외에도 다양한 관점이 교차하는 장이며, 물질세계는 동일하지만 문화가 다르다는 다문화주의가 아니라 복수의 물질세계가 존재한다는 다자연주의를 지지한다. 관점을 바꿔 비인간 세계에 감응하는 과정 다시 책으로 돌아가면 저자는 애니미즘을 인간이 숲에 대해-동물에 대해, 나무에 대해, 혹은 세계에 대해-어떻게 사유하느냐가 아니라 숲이-동물이, 나무가, 혹은 세계가-어떻게 생각하느냐를 묻는 일”(p.213)이라고 말한다. 그는 신 애니미즘의 주요 이론가인 팀 잉골드를 인용해 애니미즘을 (만물에 영혼이 있다는) 믿음의 한 형태 혹은 세계에 대해 생각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여기는 대신, 매 순간 달라지는 영원한 흐름 속에 있는 환경에서 고도의 감수성과 반응성으로 다른 살아있는 존재들을 민감하게 알아차리는 방식”(p.321)으로 여길 것을 권유한다. 이는 인간의 관점을 덧씌우는 해묵은 의인화가 아니라 관점을 바꿔 예민하게 사고함으로써 비인간 세계에 감응하는 과정이다. 애니미즘을 멸시나 신비의 눈으로 바라보는 대신 비인간 존재들과 관계 맺는 삶의 방식으로 받아들일 때 오늘날 기후생태위기를 불러온 인간 대 자연의 이분법을 넘어설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애니미즘과 사물 돌봄 애니미즘이라는 존재론은 자연을 터전으로 살아가던 사람들의 세계에서 출현했다. 그들은 생계를 위해 동물과 식물을 직접 접촉하고 사냥, 채취하는 과정에서 대상을 잘 알기 위해 그들을 사람으로 여기고 눈을 맞추며 소통하고자 했다. 이는 비인간 존재에 대한 예의인 동시에 인간 자신의 삶을 영위하는 실용적 방식이기도 했다. 오늘날 신 애니미즘이 부상하는 이유 역시 인간이 생물학적 힘을 넘어 지질학적 힘으로 작용하는 ‘인류세’를 맞아, 인간이 지배할 수는 있지만 통제할 수는 없는 자연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더 잘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동식물은 물론 사물에도 영혼이 있다는 건 ‘믿음’의 문제가 아니라 비인간 존재를 사람으로 대접하는 ‘태도’의 문제이다. 사물 돌봄은 비인간 존재와 눈을 맞추는 일 한윤정 녹색연합 공동대표 애니미즘이 관계적 존재론이라고 강조한다. 내가 있고 네가 있는 게 아니라 네가 있어서 내가 있다. 너의 관점에서 본다면 내가 있기에 네가 있을 것이다. 사물 돌봄 역시 관계적 존재론을 떠나서는 성립되지 않는다. 사물을 돌보기 위해서는, 즉 중고 데님을 수선하기 위해서는 상대를 잘 알아야 한다. 데님은 수시로 올이 풀리거나 비틀어짐으로써 바늘의 움직임에 저항하기도 하지만 바느질이 끝나면 스스로 매끈한 모습으로 변신하기도 한다(바느질할 때보다 나중에 보면 훨씬 근사하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시인 나태주) 모든 돌봄이 그렇듯 사물 돌봄도 돌봄의 상대인 비인간 존재와 눈을 맞추는 일임을 신 애니미즘을 통해 배우게 되었다.한윤정 녹색연합 공동대표 yunjeong_han@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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