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 아닙니까 [칼럼] 내란에 대한 가장 무서운 경고는 다시는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다시 하면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른다”는 확신이다. 그 확신이 흐려지는 순간, 지우고 싶은 역사는 다시 반복된다.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 아닙니까.”
전두환의 말로 각색된 이 영화 대사는 우리 현대사의 가장 끔찍한 기억을 압축한다. 권력을 찬탈한 자에게 중요한 것은 죄의 이름이 아니라 성공과 실패뿐이었다.
12·12 군사반란과 5·18을 거치며 신군부가 권력을 장악했고, 그 핵심에 섰던 전두환·노태우·정호용·이희성·황영시는 훗날 법정에 섰다.
법원은 내란과 반란의 책임을 인정해 1심에서 전두환에게 사형, 노태우에게 징역 22년 6개월을 선고했다.그러나 항소심에서 형량은 크게 낮아졌고, 결국 특별사면까지 이어졌다.
그들은 역사의 심판을 받았지만 형기를 오래 치르지 않았고, 전두환은 90세, 노태우는 88세, 정호용은 94세, 이희성과 황영시도 90대까지 살았다.
12·12와 내란으로 권력을 잡은 이들이 법정에서 중형을 선고받고도 남은 생애를 부귀영화와 천수로 마감한 역사는 오늘의 우리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그들에게 대한민국의 법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오늘 다시 그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12·3 비상계엄에 가담한 여인형·이진우·박안수·곽종근·문상호 등 5명의 전직 군 지휘관에게 1심 법원이 징역 18년, 15년, 10년, 9년, 12년을 선고했다.
국회와 선거관리위원회 등에 병력을 투입하고 정치인 체포조를 운영한 행위를 내란 중요임무 종사로 판단한 재판부는 내란죄가 어떤 범죄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중대하다”고 밝혔다.
그런데 중대하다며 내놓은 숫자를 나란히 비교해 놓으면 어이없는 장면이 펼쳐진다.
특검이 구형한 형량은 각각 30년, 30년, 25년, 20년, 20년이었다. 평균 25년이다.
법원이 선고한 형량은 평균 12년 10개월쯤이 된다. 평균으로 보면 구형량의 절반남짓이 줄어든 것이다.
물론 법원은 법률과 증거에 따라 형을 정한다. 검찰의 구형은 판결이 아니다. 형량이 낮아졌다는 사실만으로 판결이 잘못됐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그러나 국민의 법감정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선고다.
내란이라는 헌정질서 파괴 범죄를 사법부는 과연 얼마나 엄중하게 바라보고 있으며, 그 책임을 얼마나 무겁게 묻고 있는걸까.
이것은 과거의 먼 이야기도 아니다.
1979년 군부가 총을 들고 권력을 빼앗았고, 이듬해 광주에서 무고한 시민을 학살했으며, 2024년 다시 군 병력이 국회와 선관위로 향했다. 시대는 달라졌지만 군을 정치에 동원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국민이 느끼는 충격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래서 다시 과거의 판결을 돌아보게 된다.
신군부 핵심 인사들은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항소심에서 형량이 줄었고, 특별사면으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사회로 돌아왔다. 법률적으로는 하나의 사법 절차가 끝난 것에 불과했다.
내란은 단순한 형사범죄가 아니다. 국민의 주권과 헌정질서를 정면으로 뒤흔들고 국가의 민주적 통치체계를 무너뜨리는, 가장 중대한 범죄다.
오늘 판결을 보면서 사법부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만약 12·12 군사반란을 획책했던 전두환과 노태우에게 1심의 사형과 징역 22년 6개월이 감형 없이 그대로 집행됐더라면, 12·3 비상계엄에 군이 그처럼 쉽게 동조할 수 있었을까.
판결은 한 사건을 끝내지만, 판결이 남기는 메시지는 다음 세대의 행동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내란을 저지른 자에게 어떤 책임을 물었는가는 훗날 또 다른 내란을 꿈꾸는 이들에게 하나의 신호가 될 수 있다.
12·3 그날 밤을 국민은 아직 기억한다.
국회로 향했던 군인들.
선관위로 향했던 병력.
체포 대상이 거론되고, 군이 헌법기관을 장악하려 했던 그 밤을.
역사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복수가 아니다. 그러나 사법부의 늦은 정의가 내란에 이렇듯 관대해서는 안 된다. 법의 형평과 국민의 법감정 사이에 너무 큰 간극이 생기면 법에 대한 신뢰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내란을 저지른 자들에게 베푸는 사법적 자비는 또다시 역사적 죄를 반복하게 만들 수 있다.
내란에 대한 가장 무서운 경고는 다시는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다시 하면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른다”는 확신이다. 그 확신이 흐려지는 순간, 지우고 싶은 역사는 다시 반복된다.홍순구 시민기자 dranx@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