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넘어… 숲본주의 로 일구는 아시아 생태 연대 [뉴스] [일러두기] 2026년 6월 19일부터 21일까지, 순천에서 ‘아류(亞流) 포럼 2026’이 열렸다. ‘비주류’라 불려 온 것들이 만드는 아시아의 새로운 흐름”이 주제였고, 형식은 ‘한일 생태문명전환 게더링’이었다. 글쓴이는 3일간 일본에서 참여한 이들과 동행했다. 그들이 실천해 온 장면들은 그야말로 ‘생태문명전환’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했다. ‘썩는 돈’이라는 공감 화폐, 리더가 없는 공동체 마을, 숲자본주의, 대안학교를 지원하는 회사…. 지금의 현대 사회와는 맞물릴 것 같지 않은 이러한 개념들이 이번 아류 포럼에서 울려 퍼졌다. 5회에 걸쳐서 포럼을 소개한다.
포럼 첫 날은 경남 남해군 상주면 양아로에 있는 ‘남해서울농장’이었다. 농장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개울 건너 팜프라촌을 둘러 보았다. 하루를 지낸 그날 밤, 일본 손님들이 도착했다. 후지이 요시히로도 함께.
우리는 그를 ‘후지몽’이라 불렀다. 그는 말수가 적었고, 진지했고, 맑았다. 가끔씩 그는 함께 어울린 참가자들을 지켜보면서 조용히 미소지었다. 말은 느렸으나, 그가 하는 말은 울림이 컸다. 말을 낼 때마다 머릿 속에서 시를 짓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될 정도였다.
그는 셋째날 발표했다. 순천 청년비지니스센터. 파워포인트를 띄워 놓고 조용히 숲 경전에서 길어 올린 숨빛 경구를 뱉어내듯, 그는 아포리즘 같은 말들을 띄엄띄엄 그러나 뚜렷하게 이어냈다. 그가 자본주의에 빗대어 ‘숲본주의’라는 말을 했을 때는 놀라서 기절할 뻔했다. 속물적 자본주의를 뒤흔든 벼락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 이야기를 할까 한다.
그가 한 말을 녹취했으나, 녹취록만으로는 그가 실천해 온 많은 일들을 다 알아차릴 수 없었다. 그래서 일본 언론에 소개된 자료를 조사한 뒤에 이 글을 완성할 수 있었다. 발표할 때는 몰랐는데 자료를 정리하면서 살펴보니 그가 실천해 온 일들은 경이로웠다.
포럼 셋째 날, 발표를 하고 있는 후지이 요시히로(藤井芳広)
‘회사원이 되지 않는 삶’과 대안사회 탐구
후지이 요시히로(藤井芳広, 통칭 ‘후지몽’)는 일본 현대사회가 직면한 근대 시스템의 한계를 온몸으로 돌파하며, ‘자연-인간-경제’가 상생하는 새로운 사회 모델을 구축해 나가고 있는 지역혁신가이자 환경운동가다.
1978년 일본 시가현(滋賀県)에서 태어난 그는 청소년 시절부터 남다른 삶의 궤적을 걷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그는 기존의 대량 생산, 대량 소비 중심의 근대 자본주의 사회 체제에는 ‘더 이상 지속 가능한 미래가 없다’는 강한 예감을 품었다. 이러한 직관은 그로 하여금 남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대학에 가고 대기업 ‘회사원’이 되어 부속품처럼 살아가는 삶을 거부하도록 이끌었다.
그는 나는 회사원이 되지 않겠다.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 그리고 미래 세대와 지구 환경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겠다”고 결심했다. 이 결심은 이후 그가 30년 가까이 펼쳐온 대안사회 운동의 견고한 주춧돌이 되었다.
그가 사회활동가로 첫발을 내딛은 것은 2003년, 일본의 대표적인 대안문화 환경운동 단체인 ‘나무늘보 클럽’에 참여하면서부터였다. 이 단체는 ‘더 빠르게, 더 효율적으로’만을 외치는 현대사회에 브레이크를 걸고, ‘느림의 미학’과 친환경적 자급자족, 슬로스 비즈니스를 주창하는 곳이었다.
후지몽은 그곳에서 글로벌 환경문제의 실상을 깊이 공부하는 한편, 이론에만 머물지 않고 삶의 양식을 직접 바꾸는 실천적 환경운동 방법론을 체득하게 되었다. 유연하면서도 끈기 있는 그의 소통 방식과 기획력은 환경운동 진영 내에서 큰 주목을 받았고, 자연스럽게 그의 활동은 일본 국내를 넘어 한국과 아시아 전역으로 확장되는 계기를 맞이하게 된다.
2009년 12월 13일 오후 홍대 앞 클럽 오백에서 열린 walk9(워크나인) 한국 순례” 잔치. 출처: 오마이뉴스, 2009. 12. 14. ⓒ 김시연
한국과의 깊은 인연, 국경을 넘어선 환경·평화 운동 주춧돌
후지몽의 활동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가장 극적이고 중요한 전환점 중 하나는 2009년에 이루어진 walk9(워크나인) 한국 순례” 프로젝트였다. 그는 이 거대한 프로젝트의 총괄 코디네이터를 맡아, 한국의 산천과 도심을 무려 100일에 걸쳐 도보로 일주하는 대장정을 기획하고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이 순례는 국토대장정이나 관광이 아니었다. 생태위기와 평화위기가 고조되는 동아시아에서, 국경과 언어 장벽을 넘어서 공동의 생명 가치를 확인하고자 한 영성·생태운동이었다.
100일 동안 한국의 길 위에서 먹고 자며 수많은 한국 시민사회 활동가, 주민, 불교와 개신교 등 종교계 인사, 환경 운동가들과 깊은 대화를 나눈 후지몽은 커다란 사상적 각성을 경험하게 된다. 환경 파괴와 기후 위기, 그리고 전쟁 위협은 결코 하나의 국가 안에서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동아시아 시민들이 생태와 평화를 매개로 굳건한 연대 전선을 구축해야만 인류 미래를 담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절감한 것.
특히 그는, 한국사회가 가진 역동적인 시민공동체 에너지와 생태적 지혜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일본으로 돌아간 뒤 자신의 삶을 완전히 새롭게 디자인하게 된다.
그는 아시아와 물리적·정서적 교류가 가장 용이하고, 역사적으로도 한반도와 교류 관문이었던 큐슈 지역, 그중에서도 후쿠오카현(福岡県)의 아름다운 해안과 산을 품은 이토시마시(糸島市)로 2010년에 전격 이주를 단행하기에 이른다. 서울과 도쿄라는 거대 메트로폴리스 중심부에서 벗어나, 변방의 지역에서부터 진정한 아시아 생태공동체 모델을 직접 증명해 보이겠다는 야심 찬 도전의 시작이었다.
walk9 한국 순례 프로젝트를 제안한 일본 생명평화 운동가 마사키 다카시 초청 강연회 벽종이다. 불교시민사회네트워크가 주관했고, 2016년 조계사 안심당에서 진행되었다. 사진 속 인물이 마사키 다카시다.
(※ walk9 한국 순례” 프로젝트: 2009년 9월 9일부터 12월 17일까지 100일 동안 일본인 평화운동가들과 한·일 청년들이 함께 한국 국토 약 1,500km를 도보로 이동한 평화·사죄 순례 운동이다. 일본의 생명평화운동가 마사키 다카시의 제안으로 시작되었으며, 과거사 사죄와 동아시아 평화 정착을 핵심 가치로 내걸었다
프로젝트 명칭은, ‘Walk’와 전쟁 포기, 그리고 군대 보유 금지를 명시한 ‘일본 평화헌법 제9조’의 숫자 ‘9’를 합성해 만들었다. 순례 목적은 과거 일제강점기 일본이 한국인에게 준 고통에 대해 대지 위에서 직접 사죄하고, 일본 헌법 9조 개정(우경화) 움직임을 막아 동아시아 평화를 지키려는데 있었다.
일본인 평화운동가와 청년 20여 명, 재일동포, 한국인 청년 등이 주축이 되어 매일 30~40여 명이 대장정을 함께 소화했다. 순례는 100일간 남한 땅을 시계 방향으로 크게 한 바퀴 도는 경로로 진행되었다.
9월 9일, 인천 강화도 마니산에서 첫걸음을 뗐다. 김포, 부천을 거쳐 강원도 원주와 강릉, 경북 경주, 부산, 광주 등 전국 주요 거점을 도보로 걸었다. 이동 중 위안부 피해 할머니, 원폭 피해자 후손, 대안학교 학생들, 시민단체들과 만나 소통하고 강연회와 평화 문화 행사를 열었다.
12월 17일, 분단의 상징인 파주 임진각에 도착하여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이 프로젝트는 국가 간 정치 갈등을 넘어서 양국의 민간 청년들이 ‘길 위에서’ 직접 몸으로 부딪치며 초국적 시민 연대를 형성한 대표적인 생명평화운동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이토시마 정착과 ‘NPO 법인 이토나미’ 탄생
2010년 이토시마에 둥지를 튼 후지몽은 지역의 자연환경에 녹아들며 뜻을 함께하는 동료들을 모았다. 그리고 결성한 단체가 바로 ‘NPO 법인 이토나미(いとなみ)’다. 일본어 ‘이토나미(営み)’는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온갖 행위와 생업, 그리고 자연의 거대한 순환 활동을 모두 포괄하는 아름다운 말이다. 후지몽이 이끄는 이토나미는 ‘숲 재생’과 ‘아시아 시민 교류’라는 두 가지 핵심 축을 중심으로, 파편화된 현대인의 삶을 유기적인 순환형 공동체로 다시 엮어내는 작업을 본격화했다.
후지몽의 활동 방식이 가진 가장 큰 특징은 철저한 현장성과 대중성이다. 그는 강의실에서 환경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도시 아이들과 청년들을 숲으로 불러 모았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외감을 느끼거나 무기력증에 빠진 이들이 울창하고 깊은 숲속에서 땀 흘려 일하고 자연의 거대한 생명력과 연결될 때, 내면의 상처가 치유되고 새로운 삶의 에너지를 얻는 모습을 수없이 목격했다.
후지몽에게 숲은 보존해야 할 물리적 대상일 뿐만 아니라, 인간의 영성과 공동체성을 회복시키는 거대한 학교이자 치유 공간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철학을 바탕으로 이토나미는 이토시마의 거친 산림을 가꾸고, 아시아 청년들이 모여 대안적인 삶의 방식을 토론하며 함께 숙식하는 ‘대안적 지구시민촌’ 비전을 구체화해 나가기 시작했다.
후쿠오카현(福岡県) 이토시마시(糸島市)로 2010년에 이주한 뒤, ‘피나무 간벌 운동’을 시작한 후지몽(후지이 요시히로).
환경 재생의 구체적 실천, 친환경 간벌과 ‘푸드 포레스트’
① 피나무 간벌(皮むき間伐) 운동
NPO 법인 이토나미가 이토시마의 숲을 지키기 위해 전개한 가장 대표적인 실천 활동은 ‘피나무 간벌(껍질 벗기기 간벌)’이다. 일본의 많은 인공림은 과거 경제 성장기에 심어진 뒤 방치되어, 나무들이 너무 빽빽하게 자란 나머지 햇빛이 땅바닥까지 닿지 않아 하층 식생이 죽고 토양이 황폐해지는 심각한 문제를 겪고 있다. 기존의 전통적인 간벌 방식은 거대한 중장비와 기계톱을 동원해 나무를 베어 넘기는 방식이었는데, 이는 막대한 석유 에너지를 소비할 뿐만 아니라, 산림 지형과 토양을 훼손하는 부작용이 있었다.
반면, 후지몽이 도입한 ‘피나무 간벌’은 초봄부터 초여름 사이, 나무가 수분을 한창 끌어올리는 시기에 나무 밑동의 껍질을 살짝 벗겨낸 뒤 대나무 주걱 등을 이용해 위쪽으로 껍질을 길게 벗겨내는 아날로그 방식이다. 이렇게 껍질이 벗겨진 나무는 서서히 수분이 차단되면서 서 있는 상태 그대로 자연스럽게 건조되어 죽게 된다. 이 방식의 장점은 실로 지대하다.
첫째, 중장비나 위험한 기계톱이 필요 없기 때문에 남녀노소, 심지어 어린아이들과 유치원생까지도 안전하게 숲 가꾸기 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
둘째, 나무가 서서히 잎을 떨어뜨리기 때문에 숲속으로 햇빛이 갑자기 쏟아지는 것이 아니라, 아주 부드럽고 점진적으로 스며들어 주변 생태계가 충격을 받지 않는다.
셋째, 서서히 건조된 나무는 가볍고 단단해져 나중에 벌목할 때도 인력으로 충분히 운반할 수 있으며, 고품질 천연 건축 자재나 가구재로 곧바로 사용할 수 있다.
후쿠오카시 공업고등학교 학생들이 졸업 작품을 만들기 위해 후지몽의 지도를 받으며 피나무 간벌을 체험하는 등, 이 활동은 지역 사회의 훌륭한 생태교육프로그램으로 완벽하게 자리 잡았다. 후지몽은 이를 가리켜 선조들이 정성껏 가꾸어 우리에게 물려준 숲을, 우리 역시 잘 다듬어서 100년 뒤의 후손들에게 고스란히 돌려주기 위한 약속의 행위”라고 설명한다.
② 이토시마 푸드 포레스트(糸島 food forest)
2020년, 후지몽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이토시마 푸드 포레스트(먹을 수 있는 숲 만들기)’ 프로젝트를 런칭했다. 이는 전통적인 영농 방식처럼 숲을 싹 밀어버리고 단일 작물을 재배하는 농업이 아니라, 기존 숲의 다층적 생태 구조(교목, 관목, 덩굴식물, 지표식물 등)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인간에게 필요한 과수, 견과류, 약초, 버섯, 산나물 등을 조화롭게 배치하는 ‘일본형 삼림농업’ 모델이다.
푸드 포레스트 안에서는 화학 비료나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낙엽이 썩어 자연스럽게 토양의 영양분이 되고, 다양한 생물이 공존하며 해충을 스스로 조절하는 완벽한 자립형 생태계가 구현된다. 인간은 자연 순환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숲이 베풀어주는 풍요로운 먹거리와 에너지를 감사히 수확할 뿐이다. 이 프로젝트는 기후 변화 시대에 농업이 나아가야 할 ‘(재생형) 농업’의 선구적인 모델로 일본 국내외 환경 학자들과 농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가 실천하는 것은 ‘지금 여기’도 중요하지만, 미래 세대를 위해서라는 것이 더 적확하다. 그는 7세대 뒤의 아이들을 위해서 뛰고 있다. 그가 들고 있는 판넬 속 문구는 이렇다. 7세대 뒤의 아이들을 위해서,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다 함께 생각하고, 다 함께 결정하고,다 함께 실현하는 마을.
제도권 정치 도전, 8년간 이토시마시 의원 활동
지역 현장 실천이 깊어지면서 후지몽은 또 다른 결단을 내린다. 공동체의 건강한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풀뿌리 시민운동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의 법과 제도를 바꾸는 공적인 거버넌스 영역에도 참여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낀 것이다. 이에 그는 2014년 2월, 이토시마시 시의원 선거에 과감히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정치 기반이나 막강한 자금이 없는 시민활동가 출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지역 숲을 가꾸며 다져온 진정성과 청년들의 열정적인 지지에 힘입어 시의회에 입성하는 이변을 연출했다.
후지몽은 공동체 변화를 위해 풀뿌리 시민운동뿐만 아니라, 공적인 거버넌스에도 참여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고 이토시마시 시의원 선거에 출말해 당선되었다. 그는 8년간 의정활동을 수행했다.
그는 이후 2기 8년 동안 시의원으로 활약하며 이토시마시의 환경정책, 교육 혁신, 지역공동체 활성화 조례 제정 등에 앞장섰다. 시의원 시절에도 그는 결코 양복을 빼입고 권위를 내세우는 정치인이 아니었다. 평일에는 의회에서 날카로운 질의와 정책 제안을 쏟아내고, 주말에는 다시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주민들과 함께 숲에서 나무껍질을 벗기는 소탈하고 역동적인 모습을 유지했다. 주민들은 그에게 ‘드라에몽’처럼 무엇이든 뚝딱 해결해 주고 친근하다는 의미를 담아 ‘후지몽’이라는 애정 어린 별명을 붙여주었다.
8년간의 의정 활동을 통해 그는 행정시스템이 작동하는 원리를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민관 협력을 통한 지역 거버넌스의 거대한 가능성을 확인한 뒤, 2022년 다시 전업 활동가 영역으로 복귀해서 더욱 대담한 사회 실험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대안 경제 시스템 실험, 코몬 포레스트 와 지역통화 ‘이~트mo’
① 일반사단법인 코몬 포레스트 재팬 (Common Forest Japan)
2022년, 의원직을 마친 후지몽은 ‘일반사단법인 코몬 포레스트 재팬’을 설립했다. 이 운동의 핵심 철학은 숲을 사유재산이나 국가 소유물이 아닌, 지역 주민 전체가 공동으로 관리하고 누리는 공공 자산, 즉 ‘커몬즈(Commons)’로 선언한 것이다. 자본주의 경제학에서 말하는 ‘공유지 비극’을 뛰어넘어, 주민 스스로가 주인이 되어 숲 자원을 지속 가능하게 이용하고 보존하는 고도의 자치 모델을 지향한다. 이를 통해 거대 자본에 의해 지역 자연환경이 무분별하게 개발되거나 사유화되는 것을 막고, 미래 세대를 위해 안전하게 공유지를 상속하는 제도적 틀을 다져나가고 있다.
② 3개월이면 소멸하는 지역통화 ‘이~트mo (い〜とmo)’
후지몽이 전개한 가장 파격적이고 혁신적인 사회 실험은 2024년 4월, 이토시마와 후쿠오카 지역에서 전격 도입한 지역통화 ‘이~트mo(い〜とmo)’ 시스템이다. 이 통화는 현대 화폐 체제의 본질적인 모순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화폐다. 기존 법정 화폐는 통장에 저축해두면 이자가 붙고 가치가 보존되거나 증식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돈을 쓰지 않고 움켜쥐려 한다. 이는 필연적으로 부의 편중과 경제 불평등을 낳는다.
‘이~트mo’는 발행 후 3개월이 지나면 가치가 완전히 사라지는(썩는) 돈”이다. 돈을 축적하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 화폐를 획득한 주민들은 유효기간이 지나기 전에 지역 내 다른 이웃이나 상점에서 반드시 화폐를 소비해야만 한다. 결과적으로 화폐 순환 속도가 압도적으로 빨라지며, 지역 내 유기농 농가, 전통 공예 장인, 로컬 카페, 대안학교 등 가치 지향적인 상점들 사이에서 거대한 상생의 혈류가 형성된다.
실제로 매년 개최되는 ‘이~트mo 마르셰’ 등의 실험 장터에서는 수많은 주민과 로컬 상점들이 참여하여 이 ‘썩는 돈’을 매개로 서로의 노고를 위로하고 친밀한 공동체 유대를 확인하는 축제를 펼치고 있다. 후지몽은 이를 통해 숲(자연)과 사람(공동체), 그리고 경제(화폐)가 삼위일체화 되어 서로를 지탱하는 새로운 재생적 사회 모델”이 현실에서 완벽히 작동할 수 있음을 증명해 보였다.
그가 펴낸 숲의 재생은 우리의 재생(森の再生は僕らの再生) 이다.
생태철학 집대성, 『숲의 재생은 우리의 재생(森の再生は僕らの再生)』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현장에서 온몸으로 부딪히며 축적한 후지몽의 생태·사상 고찰은 2025년 7월 출판된 기념비적인 저서 『숲의 재생은 우리의 재생』을 통해 세상에 고스란히 공개되었다. 출간 즉시 일본 대안사회운동 진영의 ‘새로운 사회를 위한 교과서’라는 극찬을 받았다.
후지몽은 이 책에서 현대 인류가 겪고 있는 우울증, 공동체 붕괴, 불평등, 기후위기 등의 모든 파국적 징후들이 결국 ‘인간이 숲(자연)과의 연결감을 상실했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라고 진단한다. 그가 경험한 숲은 나무들의 집합소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미생물과 균근 네트워크를 통해 서로 소통하고 돕는 경이로운 대가족이자 생명의 바다였다.
인간이 오만한 지배자의 시선을 거두고 숲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할 때, 지구가 직면한 위기를 해결할 전혀 새로운 지혜와 영성이 열린다는 것이 그의 핵심 주장이다. 즉, ‘숲을 되살리는 행위’는 외부에 있는 자연을 고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탐욕과 분리감으로 망가진 ‘인간 우리 자신의 내면과 삶을 치유하고 재생하는 행위’와 완전히 동의어라는 뜻이다. 그의 이러한 심오한 생태철학은 전통적인 경제 전문지 사라이 등 주류 언론에서도 비중 있게 다뤄졌고, 현대 문명의 대전환을 모색하는 수많은 이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고 있다.
후지몽은 ‘숲본주의’, ‘숲주주의’를 말한다. 숲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할 때, 지구가 직면한 위기를 해결할 전혀 새로운 지혜와 영성이 열린다는 것이 그의 핵심 주장이다.
아시아 대안 흐름(Asian Alternative Flow)으로 건너가기
2026년 현재, 후지몽은 또 다른 거대한 도약의 기로에 서 있다. 그는 최근 설립한 ‘합동회사 아류(亞流, Asian Alternative Flow)’를 통해, 그동안 이토시마라는 로컬에서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환경·경제·공동체 모델을 한국, 대만 등 아시아 전역의 대안 공동체들과 연결하는 글로벌 네트워크 작업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가 주창하는 ‘아류(亞流)’는 주류 자본주의 문명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고유한 생태 영성과 자급하는 삶을 개척해 나가는 아시아 변방의 모든 아름다운 흐름들을 의미한다. 다가오는 10월에는 이토시마에서 한국과 일본의 대안 활동가들이 대거 집결하는 ‘동아시아 지구 시민촌’ 심포지엄과 워크숍, 그리고 이토시마 투어와 마르셰 축제를 대대적으로 개최할 예정이다. 이는 17년 전 그가 한국의 길 위에서 다짐했던 ‘국경을 넘어선 아시아 생태 평화 공동체’의 꿈이 마침내 구체적인 현실의 열매로 맺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 될 것이다.
후지몽은 우리에게 묻는다. 시스템의 톱니바퀴가 되어 안락하지만 무기력하게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 삶의 주권자가 되어 자연과 이웃을 살리는 풍요로운 ‘이토나미(생업과 삶)’를 일구어갈 것인가. 변방의 지역 이토시마의 깊은 숲속에서 시작된 그의 부드러운 혁명은, 이제 아시아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뜨겁고 생생한 생명의 에너지로 세상을 뒤흔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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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발(蛇足)
후지몽은 발표 중에 ‘숲본주의(森本主義)’라는 말을 했다. 무슨 뜻일까?
‘숲본주의(森本主義, 신폰슈기)’는 파괴적인 ‘자본주의(資本主義)’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인간의 재생은 숲과의 연결을 되찾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그의 생태철학을 담고 있다. 《숲의 재생은 우리의 재생(森の再生は僕らの再生)》 제2장 제목이 바로 ‘자본주의에서 숲본주의로(資本主義から森本主義へ)’ 와 ‘민주주의에서 숲주주의로(民主主義から森主主義へ)’이다.
일본 친환경 단체인 나마케모노 클럽(슬로스 클럽) 등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디지털 퍼실리테이터인 타하라 마사토의 ‘미래 사회의 교과서를 만들자’는 제안에 응해 이 책을 썼다”고 밝혔다.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이미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레일 끝에는 거대한 파멸(검은 구멍)이 기다리고 있다는 직관을 얻었으며, 이후 숲에 들어가 얻은 깨달음을 바탕으로 새로운 사회 패러다임을 제안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숲본주의’ 메시지는 무엇일까?
숲본주의는 다음과 같은 실천 패러다임 전환을 요구한다.
숲의 가치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후지몽.
첫째, 가치 전환이다. (자본주의 ➔ 숲본주의)
돈을 중심에 두고 자연을 착취하던 파괴적 구조에서 벗어나, 인간과 생태계의 원형인 ‘숲’을 중심에 두고 삶의 양식을 재편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근대 합리주의와 자본주의는 인간과 자연을 철저히 분리했다. 후지몽은 이를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연을 ‘무한한 자원 창고’이자 ‘쓰레기통’으로 취급하는 자본주의 방식에서 탈피하자는 것이 숲본주의 시작이다.
숲본주의의 중심에는 내가 곧 숲이고, 숲이 곧 나다”라는 자아 확장이 자리 잡고 있다. 자연을 착취하는 주체에서 벗어나 생태계 일부로 동화되는 삶을 지향한다. 한 마디로 스스로가 숲이 되는 확장이다. 후지몽은 숲을 재생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우리 인간 재생”이라고 말한다. 인간의 가치관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비로소 자연도 살아날 수 있다는 뜻다.
둘째, 의식 전환이다. (하류下流의식 ➔ 상류上流의식)
환경을 단순한 소비재나 ‘하류(결과물)’로 보지 않고, 모든 생명력과 물, 자원이 시작되는 ‘상류(근원)’로서의 숲을 보살피는 감각을 회복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우리는 대개 물을 받아 쓰는 ‘하류’ 소비자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하지만 후지몽은 우리 스스로가 물을 만들어내는 상류의 수원(水源)이자 공급자가 되자”고 제안한다. 내가 머무는 자리에서부터 숲을 가꾸고 맑은 에너지를 흘려보내는 주체성을 강조하는 메시지다.
글쓴이와 후지몽. 후지몽은 ‘합동회사 아류(亞流, Asian Alternative Flow)’를 설립했다. 더불어 ‘아류 코리아’도 설립되었다. 이토시마 지역에서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환경·경제·공동체 모델을 한국, 대만 등 아시아 전역의 대안 공동체들과 연결하는 글로벌 네트워크가 시작된 것이다. 그 첫 출발이 이번 아류 포럼 2026”이었다.
셋째, 정치 전환이다. (민주주의 ➔ 숲주주의)
인간 중심의 다수결 방식인 민주주의를 넘어서, 숲의 다양성과 생태적 합의 형성을 모방한 새로운 공동체 의사결정 모델을 제시하는 주장이다.
의사결정 주체를 ‘숲’으로 하면 어떨까?. 숲주주의(森主主義)는 기존 민주주의(民主主義) 확장판이다. 인간(民) 중심 다수결로 사회를 움직이는 게 아니라, ‘숲(森)’과 자연 생태계 전체를 의사결정 중심 주체로 삼아야 한다는 독창적 개념이다.
1000년 뒤를 내다보는 시선이랄까! 인간의 눈앞에 놓인 이익이 아니라, 숲과 지구 생태계가 지속할 수 있는 방안을 최우선으로 고민하는 정치·사회적 철학이다.
후지몽은 당장 내일부터 100% 완벽한 숲의 사회로 갈 수는 없다고 말한다. 대신 매년 우리 사회의 ‘숲도(숲의 농도)’를 1%씩만 높여가자고 제안한다. 나무껍질을 벗겨 친환경적으로 숲을 솎아내는 ‘껍질 벗기기 간벌’ 체험을 민간에 끊임없이 교육하는 것도 바로 사회의 숲도를 1%씩 높이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 방식이다.
이처럼 그의 ‘숲본주의’는 환경보호 구호를 넘어서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를 생태 중심으로 전면 재구성하려는 거대한 철학적·현실적 도전이라고 볼 수 있다.
* 글을 쓰면서 참조한 일본 언론 기사는 아래와 같다.
- https://meets-itoshima.com/post-853/(2026.7.3. 최종 확인)
- https://www.sloth.gr.jp/post/_0711(2026.7.3. 최종 확인)
- ttps://www.forma-fae.com/miraima/240901-morinosaisei-ohanashi(2026.7.3. 최종 확인)
- https://serai.jp/living/1181031(2026.7.3. 최종 확인)김종길 시민기자, 다석철학 연구자 gjg6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