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훈의 ESG 리터러시】기업전략과 지속가능성: 실질과 상징 사이 [칼럼] 몇 년 전 한 글로벌 석유·가스 기업이 특정 지역에서 수십 년간 운영해 온 생산 시설을 통째로 매각했다. 당시 이 기업은 높은 부채비율뿐만 아니라, 부진한 환경 성과로 인해 파리기후협정 이행 요구와 주주들의 기후 관련 결의안 등 다양한 형태의 제도적 압력에 직면해 있었다. 해당 기업은 이 자산 매각 결정을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의 일환이라고 밝히면서, 이를 통해 온실가스 배출량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매각이 마무리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 기업은 시설 매각 덕분에 조직 수준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줄었다고 자평했다. 그런데 일부 매체의 추적 보도에 따르면, 시설을 인수한 비상장기업이 생산량을 끌어올리면서 온실가스 배출량은 오히려 늘었다고 한다.
생산 시설을 판매한 기업 입장에서는 이 자산 매각을 통해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에 기여한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적어도 이 기업의 환경 성과 지표는 개선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 전체 수준의 배출량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 기업의 전략이 지속가능성 개선에 기여했는지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붙는다. 매각 이후 그 시설에서 나오는 온실가스는 매각한 기업의 장부에서는 지워졌지만, 실제 대기 중으로는 오히려 더 많이 배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경영학에서 기업전략(corporate strategy)은 기업이 나아갈 전체적인 방향을 정하고, 여러 사업부문을 묶어 시너지를 만들어내는 일로 정의된다. 하나의 사업부문에서 어떻게 경쟁 우위를 확보할지를 다루는 사업전략(business strategy)과 달리, 기업전략은 어떤 사업에 뛰어들고 어떤 사업을 접을지, 사업 영역을 얼마나 넓힐지, 누구와 손잡을지, 어느 시장에 진출할지 등을 결정한다. 인수합병, 자산 매각, 다각화, 수직적 통합, 전략적 제휴, 해외시장 진출 등이 모두 기업전략의 대표적인 예시다.
한편 최근 기업의 지속가능경영에 대한 논의는 ESG 의무공시 기준과 ESG 등급 평가에 집중되어 있다. 물론 ESG 공시와 등급 평가도 지속가능경영에 중요한 부분이지만, 이러한 활동들은 기본적으로 기업전략을 어떻게 수립하고 실행하는지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또한 앞서 언급한 자산 매각 사례처럼, 기업전략은 환경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할 수 있다. 기업전략이 지속가능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지속가능성은 환경뿐 아니라 사회적 측면까지 포괄하는 개념이지만, 이 글에서는 환경 지속가능성을 중심으로 논의한다.
그렇다면 기업전략은 지속가능성 개선에 실질적으로 기여하고 있는가, 아니면 단순히 그렇게 보이게 할 뿐인가?(Does corporate strategy drive substantive or symbolic sustainability outcomes?) 필자는 지난 8월 초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Academy of Management 연례 학술대회에서 기업 지속가능경영 전략 분야의 대표 학자들을 초청해 해당 질문을 다루는 패널 심포지엄을 조직했다. 네 명의 학자가 두 진영으로 나뉘어 각자의 논리를 펼친 뒤 상대편의 주장을 반박하는 방식으로 토론이 진행되었다. 한쪽은 기업전략이 조직 수준의 지표 개선을 넘어 사회 전체 수준의 실질적인 지속가능성 개선까지 만들어낼 수 있다고 보는 학자들이었고(실질론), 다른 한쪽은 기업전략이 조직의 지표만 좋아 보이게 만들 뿐 사회 전체 수준에서의 의미 있는 개선으로는 이어지지 않는다고 보는 학자들이었다(상징론).
기업전략이 지속가능성에 미치는 실질적 영향을 옹호하는 측에서는 먼저 ‘실질적’이라는 단어의 의미부터 짚었다. 이들은 이 단어가 환경 문제를 단번에 완전히 해결한다는 뜻이 아니라, ‘의미 있는 수준의 긍정적 변화’를 만들어낸다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그 근거로 같은 산업 내에서도 기업 간 온실가스 배출량 격차가 크게 나타난다는 연구 결과를 소개하며, 기업전략이 환경 성과에 유의미한 차이를 낳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격차를 만들어내는 여러 경로 중 하나로 ‘환경 역량의 내재화’를 제시했다. 예를 들어 오염물질 저감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생산 공정에 적용하는 등 환경 역량이 기업의 핵심 운영에 뿌리내리면, 실제 환경 성과 향상으로 이어지고 이러한 변화가 축적되어 사회 수준에서의 지속가능성 개선을 이끌어낸다는 것이다. 자산 인수가 이러한 역량이 전이되는 또 다른 통로가 된다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도 더해졌다. 환경 역량이 뛰어난 기업이 환경 성과가 상대적으로 뒤처진 시설을 인수하여 자사의 역량을 적극적으로 이식함으로써, 피인수 시설의 환경 성과를 끌어올린다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변화가 저절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인정했다. 지속가능성과 결부된 기업전략은 단기적으로 기업에 이익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고, 기업의 실제 지속가능경영 활동을 외부에서 투명하게 검증하기도 여전히 까다롭기 때문이다.
반면 기업전략이 미치는 영향이 결국 ‘상징’에 그친다고 보는 측에서는 기업전략이 실질적인 지속가능성 개선보다는 외부 시선을 의식한 ‘평판 관리’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기업전략의 지속가능성 기여를 평가하는 기준은 개별 기업의 표면적인 성과 지표가 아니라 ‘사회 수준에서의 실제 영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애초에 기업전략이란 불확실한 경영 환경 속에서 외부 이해관계자들의 압박을 무마하고 조직의 정당성을 얻기 위한 방어 수단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로는 기업이 사업 포트폴리오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구조적 맹점이 거론되었다. 가령 자산 인수를 통해 환경 성과가 개선된 것은 기업의 친환경 역량이 향상된 결과가 아니라 원래부터 성과가 좋은 사업장만 골라 품에 안은 착시 현상일 수 있다. 자산 매각 역시 오염을 근본적으로 감축하는 것이 아니라, 시설을 새로 인수한 타 기업에게 배출원을 떠넘겨 자사의 배출량 지표만 낮추는 수단이라고 지적했다. 이밖에도 실질적인 감축 성과를 내는 데 한계에 부딪히면, 기업이 배출량 목표 자체를 조정하거나 불리한 정보를 복잡한 언어로 공시해 책임을 모호하게 만든다는 연구 결과도 더해졌다.
토론이 진행될수록 양측의 주장이 만나는 지점도 분명해졌다. 같은 기업전략이라도 상황에 따라 실질적인 지속가능성 개선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상징적인 수준에 머물기도 한다는 것이다. 앞서 살펴본 자산 매각은 하나의 사례일 뿐이며, 인수합병, 다각화, 전략적 제휴, 해외시장 진출 등 다양한 기업전략과 지속가능성의 연관성은 앞으로도 꾸준히 부각될 것이다.
따라서 기업전략이 어떠한 조건 속에서 실질적인 지속가능성 개선을 이끌어낼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할 시점이다. 예를 들어 경영진의 의지나 내부 거버넌스처럼 조직 내부의 역량과 유인이 갖춰져야 하는 것은 물론, 외부의 제도적 압력이나 공시 제도가 어떻게 설계되어 있는가에 따라서도 성패가 갈릴 수 있다. 이러한 조건들을 만들어 가는 일은 기업만의 몫이 아니다. 기업에 제도적 압력을 행사하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주요 제도를 설계하는 정책 입안자 모두에게 남겨진 과제다.
☞ 박정훈 교수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위치한 Loyola Marymount University 경영대학 조교수로 재직 중이며, 기업의 글로벌 지속가능경영 전략을 연구하고 있다. City University of New York Baruch College and The Graduate Center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경희대학교에서 국제경영학 석사 및 무역학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Journal of International Business Studies, Business & Society 등 최상위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