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렌 켈러, 기적의 장애인 소녀가 불온한 여자로 [사람들] 미국 앨라배마 시골마을, 우물가에서 손바닥에 철자를 받아 적던 어린소녀. 태어난 지 19개월 만에 원인모를 고열로 시력과 청력을 모두 잃은 아이가, 어느 날 손바닥에 흐르는 물과 water”라는 단어를 연결시키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 이 이야기는 전 세계 교과서와 위인전에 실려 인간승리”의 대명사가 됐다. 그 주인공이 바로 헬렌 애덤스 켈러(Helen Adams Keller, 1880~1968)다.
그런데 이 감동적인 서사에는 결정적으로 빠진 부분이 있다. 켈러는 단순히 역경을 이겨낸 착한 소녀가 아니라, 평생을 자본주의와 전쟁, 차별에 맞서 싸운 급진적 사회주의자였다는 사실이다. 위인전은 그 부분에서 늘 조용히 페이지를 넘긴다.
1904년경의 켈러(위키피디아)
앤 설리번, 그리고 기적의 공동제작자
켈러가 세상과 다시 연결된 데는 스승 앤 설리번(Anne Sullivan, 1866~1936)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설리번 역시 어릴 적 눈병을 앓아 시력이 온전치 못했고, 극심한 가난 속에서 자랐다. 그런 그녀가 퍼킨스 맹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스무 살의 나이로 켈러의 교사가 됐다.
두 사람의 인연에는 전화기를 발명한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Alexander Graham Bell, 1847~1922)도 등장한다. 켈러의 부모가 백방으로 수소문하다 만난 사람이 벨이었고, 그가 설리번을 소개해준 것이다. 켈러는 훗날 벨에게 자신의 책을 헌정하기도 했다. 발명가와 교사와 제자가 만든 이 삼각형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아는 헬렌 켈러는 없었을 것이다.
설리번의 헌신적인 지도 아래 켈러는 점자와 수화, 입술읽기, 발성법까지 익혔고 1904년 래드클리프 대학을 졸업했다. 시청각 장애인으로는 미국 최초의 학사학위 취득자였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익히 아는 기적”이다. 문제는 그다음부터다.
1888년 7월 헬렌 켈러와 앤 설리번(위키피디아)
대학을 나온 뒤, 그녀는 위험해졌다
졸업 후 켈러는 정치에 눈을 뜬다. 1909년 미국 사회당에 입당했고, 이후 더 급진적인 노동조합인 세계산업노동자동맹(Industrial Workers of the World: IWW)에도 가입했다. 여성참정권 운동, 산아제한 운동, 아동노동 반대 운동에 앞장섰고, 제1차 세계대전을 두고는 자본가들의 이익을 위해 노동자들이 서로를 죽이는 전쟁”이라며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1920년에는 사회운동가 제인 애덤스(Jane Addams, 1860~1935), 노동운동가 로저 볼드윈(Roger Baldwin, 1884~1981) 등과 함께 미국시민자유연맹(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 ACLU)을 창립했다. 반전운동가와 노동자들이 국가권력에 의해 함부로 잡혀가고 추방되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든 단체였다. 1916년에는 흑인 인권단체 전미유색인지위향상협회에 후원금을 보내기도 했다.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왜 우리는 학교에서 설탕같이 달콤하고 착한 시청각장애인 소녀” 이야기만 배우고, 국가권력과 자본에 맞선 투사” 켈러는 배우지 못했을까.
앨라배마 주 터스컴비아에 있는 켈러의 출생지(위키피디아)
지워진 급진주의자
답은 간단하다. 불편했기 때문이다. 당대 언론과 정치인들은 저 불쌍하고 순수한 소녀가 어쩌다 저런 위험한 사상에 물들었을까”라는 논조로 켈러를 깎아내렸다. 장애를 가진 여성의 정치적 발언은 진지하게 다뤄지기보다, 누군가에게 이용당한 결과로 취급됐다. 미국 연방수사국은 실제로 그녀를 감시대상 인물로 분류해 파일을 만들기도 했다.
역설적으로 이 지워내기 작업은 대성공을 거뒀다. 지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켈러 하면 우물가의 소녀만 떠올린다. 감동은 안전하게 소비되고, 불편한 정치색은 편집실 바닥에 버려졌다. 한 사람의 삶에서 가장 용감했던 부분을 도려내고 가장 무해한 부분만 박제해 후대에 넘겨준 셈이다.
1920년경 목련을 들고 있는 켈러(위키피디아)
한국에 던지는 질문
이 대목에서 자연스레 눈이 한국으로 향한다. 지금도 지하철역에서 이동권을 요구하며 몸으로 저항하는 장애인 단체들을 향해 불편을 끼친다”는 비난이 먼저 쏟아지는 나라, 장애인의 존재는 감동서사로 소비하면서 정작 그들의 정치적 발언과 조직적 요구에는 귀를 닫는 나라. 백여 년 전 미국에서 벌어진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더 넓게 보면, 한 인물의 불편한 진실을 지우고 예쁘게 다듬어 전시하는 습관자체가 낯설지 않다. 2024년 12월 3일 밤, 계엄이라는 초헌법적 사태를 겪고도 몇 달만 지나면 그날의 공포를 해프닝” 정도로 축소해 기억하려는 흐름이 있었다. 불편한 역사는 감동적이거나 우스운 이야기로 순화시켜야 마음이 편해지는 것은 어느 사회나 비슷한 모양이다.
그러나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헬렌 켈러가 백 년도 더 지난 지금 다시 위험한 사회주의자”로 재조명되듯이, 지운다고 해서 진실이 영영 묻히지는 않는다. 우물가의 소녀는 결국 자본과 전쟁에 맞서 싸운 어른이 되었다. 그 사실을 기억하는 일이야말로, 그녀가 남긴 진짜 유산이다.
앨라배마주 25센트 주화에 묘사된 헬렌 켈러의 모습. 주화에 새겨진 점자는 HELEN KELLER 를 나타내는 영어 점자(위키피디아)
김성수 시민기자 wadans@empas.com